난 유럽축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유로2000을 보기위해 유럽으로 날아갔다....
독일과 루마니아전을 본후 경기장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독일아나운서가 흥분된 목소리로 뭐라고 하더니
저편에서 너무도 낯익은 얼굴..차범근을 소개했다...
그러자 경기장에 있던 5만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차붐"을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쳤다.
그현장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때 내가 느꼈던 감격,전율을
알지 못할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국내언론에 단 한줄도 보고되지 않았다....
난 다시한번 언론의 횡포에 이를 갈아야만 했다...
이글은 안티축협 활동중인 분의 유럽채험기.
얼마전에 체코에서 평가전이 열렸을 때에 응원을 갔습니다. (저는 오스트리아에 사는 축구팬입니다.) 관중석에 들어서는데 중년의 체코신사가 "차붐, 차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랬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종종 나이들은 축구팬들로부터 "차붐을 잘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체코에 가서도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차범근씨의 인기를 새삼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곳 유럽에서 볼 때는 차범근씨가 조추첨자로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의 현실이 기가막힐 뿐입니다. 어떤 분이 우리는 영웅을 가질 자격이 없나보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건 아닌지요. 얼마전 독일의 영웅 베켄바워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독일신문에서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웅으로서의 모습에는 하나도 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독일 축구를 위해 한 일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차범근 씨가 한국축구팬들을 위해서 한 일은 나라의 축구수준을 비교할 때에 베켄바워가 한일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 일을 잊지말고 그를 영원히 영웅으로 대했으면 합니다. 만일 그가 앞으로 다시금 국가대표 감독을 지내서 혹 안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차범근 씨는 영원히 한국의 위대한 축구인으로서 남을 것입니다.
차붐의활약상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마테우스! 차붐을 막아라>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한심한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신문 톱기사
<지구 최고의 선수 ''''차붐''''>
KICKER지
<차붐, 팀 창단 첫 UEFA 우승 두번이나 이끌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의 최고스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