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국에 폭우가 잦고 그 피해도 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예전에는 비도 그렇게 극악스럽게 내리지는 않았는데... 하며 회상을 하다가, 제 십 대 때의 어느 비 오던 날의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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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우산은 없다.
딱 하나 있던 성한 양산은 이미 아버지 출근길에 들고나가셨고, 한 두 군데 실밥이 터져 녹슨 종아리 내보이는 양산은 나보다 일찍 학교를 가는 작은형이 들고나갔고, 남아 있는 비닐우산들은 폐품처럼 두어 개 바닥에 누워있다.
그나마 덜 망가진 우산 하나 골라 들고 펼치니, 녹슨 걸이가 아직은 제 날개 지탱할 정도의 기운이 있어 보인다.
비 오는 날, 종아리는 내 것이 아니다.
종아리는 그나마 체면이라도 차리지... 한두 군데 터진 운동화는 발을 꼬드겨 길바닥에 고인 빗물과 어느새 형 동생 사이를 만들어 놓는다.
용량에 비해 턱없이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책가방은 비 오는 날, 더 아우성이다.
책에 공책에 참고서에 콘사이스에, 체육복에 교련복에 도시락과 반찬통까지...
새것을 사보았자 끈이 견뎌내는 기간은 채 석 달이나 될까?
빗물까지 무게를 더하니 덧대어 기운 곳이 끊어지기 직전이다. 제발 학교까지만 버티어다오.
학교 교문이 보이는데, 아... 결국엔 툭!
부끄러울 틈이 어디 있어. 얼른 주워 담고 황급히 달려가야 지각이라도 면하지.
주워 담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저만치 도망가는 비닐우산.
집어드니 훌러덩~ 속 내장이 다 보인다.
그래 믿은 내가 잘못이지. 네 탓이 뭐 있겠냐.
왼쪽 옆구리엔 비닐우산 끼고, 오른쪽 옆구리엔 책가방을 끼고, 럭비선수처럼 교문을 향해 달린다.
비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모자챙을 두드리며 타다닥타다닥 얄밉게도 웃는다.
비 개인 오후, 아직 덜 마른 운동화를 신고 도착한 집.
허겁지겁 수돗가로 달려가면, 붉은색 큰 다라이에 가득 담긴 빗물이 반겨준다.
그 안에 담긴 비 개인 하늘은 걱정 하나 없이 파랗게 웃고, 먹장구름 비운 자리 새로 채운 흰구름은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통통하다.
빗물 한 바가지 가득 퍼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비에 부푼 빨래 비누로 빡빡머리도 박박 감고...
대청마루에 누우면 몸도 개운하고 마음도 개운하다.
졸린 눈이 닿은 처마 밑 땅바닥에는 빗물이 파낸 자리가 볼록 옴폭 볼록 옴폭. 개미들 한동안 신나게 놀겠다.
“가방 끈 고쳐야 되는데... 가방 끈 새로 덧대어 기워야 하는데....... “
졸린 눈이 더는 못 버티고 스르륵 세상을 덮어버린다.
첫댓글 영한사전이라니 저는 59년도 말에서 60년도 초까지 10킬로를 걸어다녀녔는데 눈비도 왔겠지만 어찌 피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네요.
그당시 시골에선 우산이란 것도 없었는데요.
있어야 새거다 낡은거나 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59년이면 제가 태어나던 해인데, 그때도 석촌님께선 열심히 사셨군요.
제가 추억한 때는 70년대 중반 쯤,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라 그나마 양산이나 우산이 널리 보급된 시절 이야기랍니다. ㅎ
비오는 날에는 질퍽 질퍽 새는 운동화
비 오는날 하루가 아니고 한번 밖에 쓸수 없는 비닐 우산
그 우산을 쓰면 하체 는 비에 흠벅 젖어버리고
그 당시 비오는 날에는 학교 다니기가 더욱 힘 들었었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한번 쓰고 말아야 할 비닐우산을 몇번은 썼지요. 비닐우산 살로 꼬리연을 만들면 아주 튼튼한 뼈대가 되어주었던 생각도 납니다. ㅎ
저의 시골 국민학교 시절, 우산은 있는 집에서나
있던 사치품이었고 대개 비료포대 덮어쓰고 댕겼
는데 지금 떠오르는 건 내 앞으로 오는 바람은
가슴 바람, 등 뒤에서 오는 바람은 등바람이었을
뿐ㅎ 내남없이 참 가난했던 후진국의 60년대..
비료포대는 더 힘들었겠습니다.
어릴 때 부르던 동요,
이슬비 내리는 이름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깜장.. 찢어진 우산...
이 노래 풍경 정도면 서울 어딘가가 배경이었겠지요? ㅎ
구봉님 말씀처럼 비료포대가 있었는데
창피해서 그것도 안 쓴 것 같고
비오는날 어찌 학교를 다녔는지
정말 생각이 안 나네요.
그냥 비맞고 다녔던거 같기도 해요.ㅋㅋ
에고... 뭐라도 좀 쓰시지... ㅎ
비오는 풍경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네요 ^^
서울에서 비오는날에는 비닐우산장사와 신문파는 소년이
떠오릅니다
비오는 날, 신문배달 소년들 고생이 참 많았을 겁니다.
저는 비를 맞고 다녔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오리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요.
마음자리 님은 기억력이 넘 좋습니다.
전 이제 그 옛날 기억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흐릿합니다.ㅎ
엄마 돌아가시고부터
애써 옛날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마음자리 님, 비오는 날의 수채화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리길을 비맞고 다니시면 체온 떨어져서 탈 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머님과 이베리아님 옛 기억의 속 깊은 연관 관계는 모르지만 괜히 제 마음이 짠해집니다.
@마음자리 아구, 괜히 마음자리 님
마음 짠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ㅎ
저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
제 엄마입니다.
그리고 닮고 싶은 분이고요.
여러가지 일을 많이 겪었던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 해 옵니다.
비오는 날의 풍경,
마음자리님의 비오는 날이
댓글에 오신 님들의 비오는 날의 풍경이
누구랄 것도 없이 비슷하네요.
제 친구들이나 저는,
갑빠라는 우비를 입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았는 이유입니다.
저도 시골서 자랐으면,
여러분과 다름이 없었겠지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레인코트이지요.^^
비오는 날이면, 저학년 교실은
교실바닥이 진흙인 때도 있었답니다.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우리끼리 통해서,
정겨운 비오는 날의 학교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후덥지근한 습기많은 날에,
맘자리님의 등교길 우산이야기에 웃어 봅니다.
갑빠와 예쁜 색의 장화.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하늘색 장화를 초5때 어머니가
사주셨는데, 신이 나서 하루종일 물 고여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철벅거리며 놀던 기억 납니다. ㅎ
어쩜 그 시절 모습이 그대로 영화처럼 재현되는 듯 해요.
한 대목 대목마다 까까머리 중학생 오라버니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죙일 바빠서 이제야 읽어보는데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지는듯..
늘 안전운전 하셔요.
멀리 다녀와 집에서 쉬면서 답글 달고 있는데, 커쇼님의 댓글이 저에게 큰 쉼을 선물하시네요. ㅎ
늘 잘 읽어주시고 기운 나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나무 살에 파랗고 얇은 비닐 덮어 만든 비닐 우산
수십년 생갹할 일 없어 잊고 살았는데
오늘 마음님 글 읽으며 웃음이 지어집니다.
바람불어 우산이 맥도 못추고 뒤집히고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아서면 훅 제 모습으로 원상복귀 되던 비닐우산
많이 불편하기도 했던 비닐우산인데 정겨운 그림으로 머리에 그려집니다.
대단한 기억력에 오늘도
엄지 척 입니다.
비닐우산을 잘 쓰려면 빗줄기와 바람 방향에 따라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ㅎ
그 적절한 방향과 타임을 놓치면 다시 쓰기 어렵게 망가져버리던 비닐우산. 잊을 수가 없지요. ㅎ
글 속의 마음자리님 모습을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옵니다 .
그 시대 학생들은 거의 다 비슷 했을것 같은데요.
비 맞고 온날은 짜증부리고 좋은우산 차지하려고
욕심 부리고 장화 사달라고 졸라서 일부러 장에 나가셨던
우리 엄마한테 불효한것을 반성하고 살고 있습니다 .
그런 모습으로 교문으로 뛰어들어가던
학생들이 히나둘이 아니었습니다. ㅎ
ㅎㅎ
참..비닐우산은 말할 것도 없고
철제 우산도 강풍에 훌러덩 뒤집어지던
그시절이 마음자리님 글읽으며 회상되고
웃을 일 아닌데도 빙그레 웃게 합니다~~^^
철제 우산은 그나마 잘 수리하면
다시 쓸 수 있었는데, 비닐우산은 한번 쓰면 거의 끝이었지요.
그때는 왜 콘사이스까지 넣고 다녔는지 몰라요ㅠㅠ
비닐우산의 대참사 잊지못할 경험을
하셨네요.
그러게요. 가지고 가도 몇번 보지도
않으면서 왜 기를 쓰고 가지고 다녔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