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12월은, 작은 행복
‘행복은 마음으로 짓는다고 합니다. 작은 마음으로 짓는 작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2009년 7월에, 서울 서초동에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법무사사무소를 개업하면서 내건 우리 사무소 캐치프레이즈가 그랬다.
일상의 작은 사연들에서 행복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 그 한 줄 문장에 담았었다.
지금도 변함없는 내 마음이다.
집안 혈육이 됐건, 고향땅 친구들이 됐건, 업무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됐건, ‘재경문경시산악회’ 회원들이 됐건, 나와 인연이 되어 어울리는 모든 사람들도 그 같은 마음이기를, 내 한사코 권한다.
하다못해 작은 이벤트 행사라도 벌려서, 함께 하는 주위들 마음에 행복을 느끼게 해주려고 애쓴다.
8년 전으로 거슬러, 나와 아내의 만년 삶을 보내게 될, ‘햇비농원’ 그 텃밭이 있는 문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읍내로 나가, 쌀집을 찾아가서도 그러고, 철물점을 찾아가서도 그러고, 농약상회를 찾아가서도 그러고, 단골집인 정배네 등심구이집이나 시장순대국 집을 찾아가서도 그런다.
또 있다.
읍내 중앙이발관이다.
이발관이면 이발을 하러 찾아가는 것일진대, 나는 거기에 하나 목적을 더 보태서 찾아간다.
곧 노래자랑이다.
지난해 봄인가 해서, 이발하러 그 이발관을 찾았었다.
얼굴의 주름으로 봐서 나이는 내 또래일 것 같은데, 나보다는 훨씬 젊은 분위기가 있었다.
뽀얀 얼굴에 검은 머리를 부풀린 그 품새로 봐서, 젊은 시절에 꽤나 멋쟁이 짓을 했겠다 싶었다.
내 그 짐작이 맞는지 아닌지 한 번 떠보고 싶었다.
내 그래서 이렇게 제안을 했다.
“우리 노래 자랑 한 번 합시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내기를 걸고 하자는 겁니다. 내가 잘 부르면, 내 이발비만 내고, 당신이 잘 부르면, 내 이발비에 2인분 이발비를 더 보태서 낼 겁니다. 그런데 그 이발비는 한 달 시효로 누구든 와서 내 이름 석 자를 대고 이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당신이 공돈을 먹으면 안 되니까요. 어때여?”
멋쟁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노래깨나 했음 직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딱 걸려들었다.
“좋습니다. 그럽시다.”
결과는 내가 지고 말았지만, 그 승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발사와 그 이발사를 돕는 아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내 그 이벤트의 목적은 이미 다 이룬 것이기 때문이었다.
올 12월 들어 첫날도 그랬다.
이른 아침인 오전 8시쯤에 읍내 중앙이발관을 또 찾았다.
“제발 이발 좀 하세요. 너무 지저분해요.”
아내의 그 잔소리를 더 이상 안 듣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이발관 이발사와 또 한 판 노래자랑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아침부터요?”
그 이발관을 들어서면서, 이발사를 향해서 또 노래자랑 한 번 하자고 도전하는 내 말에, 이발사 부인은 놀라는 표정으로 그리 대꾸를 했다.
그 대꾸에, 내 이렇게 답을 했다.
“그럼요. 재미있잖아요.”
내 그 답을 부추기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이발사의 한마디였다.
이랬다.
“좋아여. 또 붙지 뭐.”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