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0호
호주 시드니에서 온 백 스물 번째 편지
내가 불과 칼과 나무는 가졌는데
옛날 어느 임금에게 예쁜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중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전국의 용하다는 수많은 의원을 불러다가 공주의 병을 고치려 했지만 공주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수척해졌습니다. 모든 의원들은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공주는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왕은 누구든지 딸을 살리는 자는 사위로 삼고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을 하며 포고령을 붙이게 했습니다.
먼 지방 시골에 세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제일 맏이 형은 천리 밖 멀리까지도 볼 수 있는 마법의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내는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신비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삼 형제 중 큰 형이 마법의 망원경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보다가 담 벽에 붙여진 포고령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막내가 가지고 있는 신비의 사과를 공중에게 먹여 죽을병에 걸린 공주를 살리자고 했습니다. 그 삼형제는 둘째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왕궁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막내가 가지고 있는 사과를 왕에게 드렸고 그 사과를 먹은 공주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왕은 약속대로 공주를 살린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왕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삼형제가 서로 자신이 공주를 살렸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큰 형은 자기가 아니었으면 포고문을 볼 수 없었고 그러면 공주는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자기가 아니었으면 이 먼 왕궁까지 올 수도 없었고 또 이렇게 빨리 오지 못했다면 공주는 죽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막내는 아무리 그 포고령을 보았다 해도 또 이렇게 먼 거리를 한 순간에 왔다 해도 이 사과가 없었다면 공주는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삼형제의 주장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삼형제 모두가 공주의 병을 고치는데 한 부분씩을 담당했습니다.
왕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오랜 고민 끝에 신비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던 막내를 사위로 맞이했습니다. 그 이유는 공주를 살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였고 또 형들이 가지고 있는 망원경과 양탄자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사과는 이미 공주가 먹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무려 하나님과의 약속을 25년이나 기다려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바치랍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시험인 동시에 영적 체험에 있어서도 최고봉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100세에 아들을 주시더니 이 아이가 이제 장성하니까 번제로 바치라고 하냐며 하나님께 대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는 살려 주시고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어가 달라고 하나님께 떼쓰지도 않았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시지나 않을까 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을 대동하여 이삭과 함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집을 떠났습니다.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을 멀리서 바라본 후에 아브라함은 사환들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이삭에게는 번제에 쓸 나무를 지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손에는 불과 칼만이 들려있었습니다.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삭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분명 번제에 쓰일 나무와 불 그리고 번제물에 사용할 칼은 있는데 번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번제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 봅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망원경과 양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파하는 사람을 위해 망원경과 양탄자는 제공하지만 그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과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고 함께 아파하며 또 그곳에 함께 동참하면서도 정작 그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불과 칼과 나무는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 드려야 할 어린 양은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봉사와 헌신과 헌금을 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너는 불과 칼과 나무는 가졌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왜 갖고 있지 않느냐?”
내가 주님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불과 칼과 나무는 가졌는데 정작 내가 드려야 할 아주 중요한 내 자신의 번제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나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
첫댓글 그러내요 감동의 글 잘읽고 갑니다 멜에 보내주셨는데 키보드를 잘못누르 는바람에....
아멘..
감사합니다~~
정작 내 자신 이 번제물이 있는지.. 다시한번 십자 가 를 마응에 새깁니다
내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를 깨닫고 갑니다...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과 글에 메일이 넘쳐서 어쩔수 없이 지워야 할때가 아쉽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이가벼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