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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산책 스크랩 『수행지침서』- 제 2장 계율수행 - 4. 계율수행의 실제(2)
無盡藏 추천 0 조회 49 12.10.19 05: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재가불자를 위한
수 행 지 침 서
    2) 현대 사회에서 계율의 실천 앞에서 보았듯이 계율 수행은 단순히 계목 하나를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삼취정계의 총체적인 견지에서 모든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보살계에서 언급되고 있는 환자를 간호하고 장애인을 돌보고 하는 것 등은 오늘날 사회복지의 측면과 많이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활동이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계율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수행의 구체적 범위를 말할려면 끝이 없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도 계율 수행의 일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며, 5계를 통해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① 불살생 불살생계는 생명존중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불교 계율의 대표적인 계문이다. 그 중에서도 살인은 가장 중한 죄이며 세간법에서도 가장 큰 죄가 된다. 율장에서는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죽인 경우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으로 직 간접적으로 살인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계하였다. 이러한 일은 현대사회에도 남은 과제로 낙태, 자살, 사형제도, 안락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 낙태 가장 심각한 생명유린의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의 태아가 생명을 빼앗기고 있다. 유엔인구기금의 97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서는 매년 최소한 7천 5백만명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있고, 이들 중 4천 5백만명의 산모가 낙태시술을 받고 있으며 또 이들 중 6만 7천명이 숨진다고 한다. 또한 성차별이 심한 아시아에서만 지금까지 성감별을 통해 낙태된 여아와 출생 뒤 살해당한 여아가 6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낙태반대운동엽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백 50만여명이나 되는 생명체가 ‘임신중절’로 ‘제거’된다는 것이다. 20초당 한 명 꼴에 해당된다. 이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우리사회에서 임신중절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닌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일은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소극적인(방임적인)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많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까? 타종교에서는 조직적인 낙태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으나 불교 쪽에서는 아직까지 이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 불교에서는 임신을 부모들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태에 들 때 능동적으로 입태하는 주체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중지 또는 중음이라하여 사람이 죽으면 업의 종자가 남게 되는데 그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죽은지 7일 내지 49일 동안에 지은 업력에 따라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아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이미 독립된 생명체인 것이다. 감히 다른 사람의 생명을 누가 마음대로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에 보면 다섯가지 참회하기 어려운 죄가 있다. 첫째, 아버지를 죽이는 것, 둘째 어머니를 죽이는 것, 셋째 태아를 죽이는 것, 넷째 부처님 몸에 피내는 것, 다섯째 화합승을 파함이다. 낙태가 이렇게 중한 죄이므로 과보 또한 크다. 살생죄를 비롯하여 갖가지 죄로 인해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아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아귀보응경>에 낙태죄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아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아귀가 와서 물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나 손발이 없으므로 마치 한 덩어리 고기와 같습니다. 넓은 들에 있으면 범, 이리, 여우, 표범, 새, 매, 독수리, 뭇 개와 짐승이 다투어 와서 쪼아 먹으니 고통을 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죄 때문이옵니까.” “너는 사람이었을 때 나쁜 방편을 부려 스스로 남이 임신한 때에 약을 주어 태가 녹아지게 하였느니라. 이 까닭에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이니 이제는 꽃피는 갚음을 받거니와 열매는 지옥에 있느니라.”
      경전에서는 스스로 낙태했거나 다른 사람을 낙태시킨 과보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고 율장에서도 낙태, 자살 등을 살인에 해당된다고 보고 중한 죄로 취급했다. 현재 교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작된 일이 낙태아 천도에 관련된 일이다.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일은 이 일을 예방하는 것이다. 심각한 낙태의 현실을 방관한 채 낙태아의 천도에 매달린다면 오히려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불살생계를 받아 지닌 불교인들의 보다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 자살 생명을 지키는 계율과 관련하여 또하나 관심을 갖아야 할 문제가 자살에 대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높은 자살률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은 자살 증후군, 기력쇠진 징후군이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중고년층 자살이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하고, 프랑스는 ?자살 방지의 날?을 정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자살방지의 날을 제정했을까 싶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하루 25.4명 꼴로 자살하여 교통사고사망자수를 앞질렀다고 하니, 이제 자살은 개인적인 판단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불교적 관점에서 말하면 자살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며 또 하나의 무거운 업을 쌓는 결과가 될 뿐이다. 현재의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자신의 업이니 자신이 감당하지 않으면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의연하게 해쳐나갈 수 있는 것이 불교인의 자세일 것이다. 피하면 두려움이 더욱 커져서 실제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다.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은 최소화된다. 아무리 큰 고통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그 고통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그칠 때가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상적인 캠패인과 더불어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들을 함께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 인권 불살생이란 궁극적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생명은 존귀한 것이며 평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한 인권 보장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백인과 흑인 사이의 불평등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또한 일본은 제일교포를 비롯 제일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차별관행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인권하면 양심수나 정치범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외에도 성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 장애인차별, 외국인 차별, 동성애 차별 등 각종 불합리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 이런 차별들이 얼마나 각자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사회를 거칠게 하는지 모른다. 일상생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차별부터 없애고 타인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권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 이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하에서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안보를 우선시하게 되었고 이것을 악용한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더욱 사회 깊숙히 뿌리 내렸다. 또한 근본적 인권의 상실은 산업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에만 국한된 사랑이 아닌 모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절실한 때이다. 앞에서 자비는 수행의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깨달음을 향해 한발작도 옮지지 못한 것이니 자비의 마음을 크게 갖고 그 에너지로 이 사회를 불평등과 인권유린이 없는 맑고 깨끗한 땅(정토)으로 만들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사형제도 사형제도에 대한 각국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에 천주교 측에서는 즉각적인 반대성명과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불교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죄는 죄 자체일 뿐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이 부당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사형을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물론 이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죄를 지었다면 스스로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참회한 후에 그 죄업을 갚기 위해 더욱 헌신하며 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라는 것으로 그의 죄가 소멸될 수 있을까?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더구나 23명의 사형수 중 5명은 시신과 안구를 기증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죄의 자성 본래없어 마음따라 일어나니 마음 만약 없어지면 죄도 또한 사라지네, 죄와 마음 모두 없애 두 가지다 공해지면 이를 일러 진실한 참회라 하네”라고 하였다. 마음으로 진정 참회하였으면 그 죄는 사라진다 하였으니 몸이 없어진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어떤 극악무도한 죄인도 스스로 참회하면 그 죄는 사라지는 것이며 그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죄를 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니 불살생계를 지키는 불자로써 사형제도를 용납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만약 임금이 죽일 것을 명령할 제 모시는 신하가 잘 한다고 칭송하면 이 왕과 신하는 죄가 다를 것이 없느니라. <우바새계경>
      * 놔사와 장기기증
        만약 임종에 이르러서 그 목숨이 남은 것이 한 생각만큼이라도 있는데 칼을 대어서 죽인다면 이것도 죽인 죄를 얻느니라. 만약 목숨이 이미 다했으면 칼을 내려도 죽인 죄를 얻지 않느니라. <우바새계경>
      사형제도와 더불어 뇌사에 대한 죽음 인정 여부와 안락사 문제가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97년 6월 26일 미 연방대법원은 안락사를 금지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는 안락사 옹호론자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으므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락사란 있을 수 없다. 생명에 대해 인위적인 해를 가하는 것은 모두 불살생의 계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그의 업에 달려 있는 것, 그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면 그 또한 그가 받아야할 고통인 것이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다. 안락사의 문제보다 한층 복잡한 문제가 뇌사의 인정 문제이다.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의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뇌사의 죽음 인정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현재 뇌사시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에 따라 장기기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97년 현재 장기기증 희망자는 1만 4천 65명으로 91년 설립당시 3천 6백 92명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전국민에 대한 사후 각막기증을 제도화하였는데 거부한 사람은 15%뿐이라고 한다. 즉, 국민의 85%가 사후 각막기증을 하는 셈이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는 각막기증률이 높아 이웃나라에까지 기증할 정도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시신을 보존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화장이 전통적으로 행해져 왔으므로 사후 각막기증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각막은 안구에서 각막만 제거하는 것이므로 외형적으로도 전혀 손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사후 시신기증이 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사후 시신기증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끔찍한 일로 생각될 수도 있으므로 각별한 결단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교계의 생명나눔실천회에 장기기증의사를 밝힌 사람은 1천 5백여명으로 3천건 정도 된다. 건별로는 사후각막기증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뇌사시 장기기증서약, 사후 시신기증 순이고 신장기증도 102명이 신청했으며 이중 21건이 이루어졌다. 신장기증과 골수 기증은 현재 상태로 하는 것이어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할 터인데 이런 마음을 내주신 분들께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뇌사에 대한 죽음 판정여부는 아직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 논란을 거듭할 문제이겠으나 수행자들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낭떨어지에서 떨어져 독수리 밥이 되었다거나, 배고픈 맹수의 밥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던져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거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뇌사를 어떻게 보느냐를 떠나 뇌사시 장기기증이라는 본인의 결의는 훌륭한 일이다. 불상생계를 받아지닌 계율수행자라면 사후 각막이식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된다. * 환경 또하나 심각한 생명파괴 현실은 환경문제이다. 지금도 도처에서 땅과 물과 공기가 총체적으로 오염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파괴는 조만간에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지구의 존립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불살생과 관련된 또 하나 해야 할 일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장기적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보다 직접적인 영향으로만 현재 수백만명이 죽어가고 있다. 유엔 환경 계획(UNEP)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수백만명이 환경요인 탓으로 숨지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후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들력을 갖는다. 즉, 자연에 대하여 인간은 지배자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 유기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개발과 발전이라는 물질적 풍요 대신에 소욕지족과 정신적 만족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운동이 실질적인 환경운동과 결합되어야만 전지구적인 환경파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에 불교가 가장 적합한 사상과 전통을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교인의 새로운 자각과 관심과 실천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 방생 우리는 생존 자체가 다른 생명체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완전한 불살생이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채식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식물을 죽이는 것이며, 물 한모금을 마셔도 그 안에 무수한 미생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 한 모금 마시고, 걸음 한 발자욱 내닫는 데서도 생명의 경외감을 가질 수 있다면 불살생계를 지키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원천적으로 저질러지는 불살생계에 대한 대치법으로 방생이 있다. 방생이란 잡히어 죽을 목숨을 살려주는 것으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이야기는 경전에 무수히 나온다. 그리고 그 공덕에 대해 설한 경도 무수히 많다. 모든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방생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계속>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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