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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35회>
씬 1 문경 관문 강변
멀리서부터 대주의 첨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달려와 카메라를 스쳐 멀리 사라져간다.
씬 2 그 강변 다른 곳
대주가 여검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첨병들이 그 쪽으로 달려와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리고 보고를 한다.
첨병 궁예군이 산 아래 강변까지 내려와 있사옵니다.
대주 산 아래까지? 군사들의 수는 얼마나 되던가?
첨병 수십 명이 되어 보였사옵니다.
대주 그래? (갸우뚱하며) 이상한 일이구나.. 그 정도 병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여검사1 싸우러 온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정탐 군사들인 듯 싶사옵니다.
대주 ....(끄덕이며) 그래.. 불과 수십 명의 군사로 전쟁을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허나 정탐이건 무엇이건 우리의 경계를 넘어왔으니 묵과할 수 없느니라. 유인책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혼을 내자꾸나. 모두들 전투태세를 갖추거라.
여검사1 예. (뒤를 돌아보며) 모두들 전투태세를 갖추거라.
그 때 저만치서 궁예군이 몰려오고 있다. 대주의 시야로 궁예군이 멀리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여온다.
씬 3 그 곳
박술희와 능산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박술희가 앞으로 달려나와 대주의 군사들 쪽을 유심히 살핀다. 입이 헤 벌어진다.
박술희 (미소가 번지며) 오 정말 여자들이 아닌가...? 히야... 저 가운데에 있는 장수가 대주도금인가 하는 그 여자인가?
군사 ....(보다가) 예, 그렇사옵니다. 바로 그 여자이옵니다.
박술희 (황홀해 하며) 나는 첫눈에 알아 보았다네.. 멀리서 보아도 군계 일학일세 그려.. 하하하. 여자 장수라...? 이 나이 되도록 여자 장수는 처음 본다네.
능산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
박술희 예?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능산 상대는 우리보다 군사가 많아.
박술희 헤헤헤... 설마하니 형님과 이 박술희가 저깟 계집들에게 당하겠사옵니까?
능산 ....계집이 문제가 아니라, 일부러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박술희 그렇지 않사옵니다, 형님. 잠깐이면 될 것이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옵니까? 저 처자가 견훤왕의 여동생이라는 거예요.
능산 ......
박술희 저 귀여운 것을 사로잡아 버리십시다. 왕건형님께 이보다 큰 선물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능산 자네 오늘따라 아주 이상하구먼... 왜 그렇게 저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박술희 얼마나 기가 막히옵니까? 주변이 그저 훤하지 않사옵니까?
능산 이런, 이런, 이런...
그러는 사이 대주와 그 군사들이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박술희가 마른 침을 삼키며 영을 내린다.
박술희 여봐라..
군사1 예..
박술희 너희가 먼저 나가보아라. 체면이 있지 나나 형님이 어찌 먼저 나가겠는가? 상대는 여인들이야. 상하지 않도록 살살 다루도록 하게
군사1 (미소) 알겠사옵니다. 이랴!
군사 1이 말고삐를 힘껏 당기며 그 주변 몇몇과 달려나간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박술희의 모습에서..
씬 4 그 강변 대주의 진영
대주와 여검사들이 달려오는 박술희의 군사들을 바라보고 있다. 군사들이 어느 지점에서 말을 멈추고 소리를 친다.
군사1 대주가 누구인가? 나는 장군 박술희님의 수하니라.
대주 ........ (미소)
군사1 항복하라. 아니면 혼이 날 것이다.
대주 (군사들에게) 내가 유인할 것이니 너희들은 매복지로 가 있거라.
여검사 예..
여검사 하나와 따르는 군사들이 급히 말을 돌려 뒤 쪽으로 다시 사라져 간다. 대주가 말고삐를 나꿔채며 천천히 박술희의 부하들이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대주 나를 보고 항복하라 하였느냐...?
군사1 그렇다. 우리 박술희 장군께서는 인정이 많으시다. 항복하라
저만큼에서 박술희가 끄덕이며 '그렇지, 그렇지'하고 좋아한다.
박술희 암, 나야말로 인정이 많고 말고 녀석 말한번 잘한다. 히히히...
대주와 군사1의 말싸움은 계속된다.
대주 대체 박술희가 누구이냐?
군사1 우리 장군님이시다.
대주 왕건이라는 사람의 졸개로구나.
군사1 졸개가 아니라 부장님이시다.
대주 긴말 할 것 없다. 우선 네 놈의 목부터 잘라주마, 그리고 박술희를 나오라 하거라. 이랴...
대주가 말의 배를 걷어차며 급히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박술희의 부하도 알아채고는 다시 달려나온다. 드디어 그들이 어우러져 한 판 싸움이 벌어진다. 대주의 검술은 상상 이상이다. 군사1이 쩔쩔매다가 불과 십여 합만에 목이 베어지며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다른 군사가 다시 덤벼들지만 그 역시도 몇 합만에 말에서 떨어진다. 대주가 그 기세로 다시 덤벼들자 다른 군사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을 친다. 저만큼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술희와 능산들이 대경실색한다. 처음에는 웃던 그 표정이 어느새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대주를 보고 있다.
박술희 저, 저럴 수가..! 형님 보셨소...?
능산 .....?
저만큼의 대주는 미소를 띄우고 있다.
대주 천하무적의 궁예군이라더니 겨우 이 정도였느냐? 호호호...이런 군사들로 어떻게 양길을 이겼는지 모르겠구나!
박술희의 놀란 얼굴에 점차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박술희 형님, 능산 형님. 저 목소리 들으셨소..?
능산 ......?
박술희 마치 천상의 꾀꼬리가 하강을 한 것 같지않소? 옥방울이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려.
능산 정신 차리게, 이사람아. 우리 군사가 둘이나 죽었어.
박술희 인물 좋고 목소리 좋고.... 거기다가 검술 또한 일품이고....히야.
그 때 도망친 군사 하나가 달려와 숨가쁘게 이른다.
군사2 장군, 대단한 여인이옵니다. 우리로서는 감당키 어렵사옵니다.
박술희 오냐, 다 보았다. 너희들로는 아니 되겠다. 내가 가 보아야 겠다.
능산 더 쫓을 게 뭐 있겠는가? 그만 돌아가세.
박술희 아니,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옵니까? 제가 사로잡아 오겠사옵니다.
능산 아우가 오늘따라 너무 덤벙대는 것 같으이...
박술희 그럴 수 밖에요. 저런 선녀는 처음보니까요. (달려나가며) 가서 잡아 오겠사옵니다.
능산 조심하게.
박술희가 검을 빼어들고 달려나간다. 그리고 소리친다.
박술희 이보시오, 낭자! 처음 뵙겠소이다. 나 박술희라는 사람이외다.
대주 호호호... 마치 산적같이 생겼구려.
박술희 생긴 건 그러하지만 마음은 비단 같은 사람이오.
대주 어찌하여 남의 경계를 넘어 오셨소..?
박술희 이 땅이 어떻게 생겼는가 궁금하여 왔소이다.
대주 죽기 싫으면 썩 돌아가오. 아니면 경을 칠 것이오.
박술희 제발 경을 좀 쳐주시오, 낭자. 헤헤헤.... 우리 검무 한번 추십시다.
대주 후회하지 말렸다. 어서 오너라.
드디어 박술희와 대주가 일대접전을 벌인다. 수합을 겨루면서 박술희가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대단한 무예인 것이다.
박술희 견훤의 누이라더니 검을 쓰는 솜씨가 대단하구려. 허나, 이 박술희에게는 아직도 멀었소이다.
박술희가 더욱 거세게 공격을 퍼부어댄다. 대주가 조금 밀리는 듯하더니 말머리를 돌려 도망을 친다.
박술희 아니, 낭자! 도망치는 게요? 하하하.. 그러면 안돼지, 나좀 봅시다, 낭자. 헤헤헤.... 뒷모습도 참으로 아름답구나. (돌아보며)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저들을 쫓아라!
군사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온다. 능산과 안내해온 군사만이 그 자리에 남는다. 능산이 불안해하며 소리친다.
능산 이보게, 아우, 멀리 쫓지 말게. 복병이 있을 수도 있어!
씬 5 그 곳/산길
숲 속이 곳곳에 복병들이 숨어있다. 저만큼 산길로 대주와 그녀의 군사들이 도망을 쳐오고 있다. 그 뒤로 사이를 두고 박술희들이 급히 쫓아오고 있다. 그리고 대주들이 복병이 있는 그곳을 지나고 나자 박술희들이 그 앞에 이른다. 그리고 드디어 비오듯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 박술희가 당황하며 어쩔줄 모른다.
박술희 이런... 속았다. 복병이다! 모두 퇴각하라! 어서 퇴각하라!
그러나 곳곳에서 군사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박술희가 연신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걷어내며 간신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는데 대주와 그녀의 군사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되돌아와 거세게 몰아부친다. 여검사들이 귀신같은 솜씨로 궁예군을 닥치는 대로 벤다. 그리고 한쪽에서 대주와 박술희가 다시 맞붙었다.
대주 이보시오, 박장군.
박술희 ......?
대주 박술희 장군이라 하였소..?
박술희 ...... 그렇소이다.
대주 호호호... 어떠시오? 또 한번 싸워 보시겠소?
박술희 이보시오, 대주낭자. 지금까지는 여인의 몸이라 봐주려 했소이다만 아니되겠소이다.
박술희가 비로소 어깨의 철퇴를 꺼내든다. 그리고 휘두르기 시작하자 대주 앞에 서 있던 군사들이 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한다. 대주가 비로소 놀란다. 무서운 괴력인 것이다. 군사들이 수 없이 달려들지만 계속해 쓰러진다. 그때 대주의 오라버니인 용개가 대주를 부르며 달려와 합세한다.
대주 오라버님, 여긴 어인 일이시옵니까?
용개 말은 나중에 하고 저 자부터 처치하자.
두 남매가 양쪽에서 협공을 해온다. 수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자 초조해진 박술희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대주 놓치지 말아라. 어서 저 자를 쫓아라!
대주와 용개가 박술희를 쫓는다. 박술희가 철퇴를 휘두르며 가로막는 대주의 군사들 사이를 뚫고 달려간다. 그러나 겹겹이 군사들이 버티고 있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위기의 순간, 뒷쪽에서 능산이 대주의 군사들을 베고 활로를 연다.
박술희 형님...!
능산이 거침없이 군사들을 베어 넘긴다. 드디어 길이 열리고 대주의 군사들이 주춤하며 선다. 이들과 사이가 벌어졌다.
능산 자, 그만하고 이곳을 빠져나가세.
박술희 .......?
능산 어서..
이들, 대주쪽을 보다가는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대주 뭣들 하느냐? 어서 쫓지 않고..?
대주가 쫓으려 하자 용개가 만류한다.
용개 대주야, 그만 하거라.
대주 ..왜 그러시옵니까, 용개 오라버니....?
용개 성으로 돌아 가자. 견훤 형님이 오신다 하는구나?
대주 네...? 견훤 오라버니가요...?
용개 그래, 견훤형님이 군사를 끌고 오신다 하여 성안이 걱정이 많다. 어서 가자.
대주 (한숨) 그렇다면 일단 돌아가십시다. (박술희들이 도망간 쪽을 다시 한 번 아쉬운 듯 바라보고는) 다잡은 범을 놓쳤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장수였어요... (돌아서며) 가십시다.
대주와 군사들이 되돌아간다.
씬 6 그곳 조령으로 가는 길
박술희와 능산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들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안내군사를 비롯해서 단 십여 명뿐이다. 능산이 잠시 서서 군사들을 돌아본다. 한숨을 훅 쉰다.
능산 오십 여 명의 군사가 열명도 채 안남았네 그려
박술희 ...........면목 없사옵니다. 형님.
능산 내가 뭐라고 했는가..? 여긴 적지야. 자네답지 않게 왜 그리 서둘렀는가?
박술희 그러게 말이옵니다. 내 눈에 뭐가 씌었는지
능산 하여간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세. 아직도 이곳은 사벌주 관내야. 조령을 넘어야 안심할 수 있어.
박술희 형님, 이대로 돌아가자는 것이옵니까?
능산 이 사람아, 아니가면...?
박술희 망신당한 것은 갚아주고 나서 가십시다.
능산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지금 견훤의 군대가 이리로 오고 있다네. .
박술희 하지만, 형님....
능산 자, 서두르세. 오늘 중으로 저 영을 넘어야해.
박술희 예...?
능산 자고로 어떤 경우에도 장수에게 있어서 여자란 마물이야. 알아듣겠는가? 마귀같은 존재란 말일세.
박술희 마귀라니요, 형님. 아니, 형님도 봤지만 그 대주라는 낭자가 어째서 마귀같다는 것이옵니까?
능산 (기가 막히다) 이런, 이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 그래. (군사들에게) 자, 어서들 가자.
박술희 ....... (너무도 아쉽고 미련이 많다)
씬 7 사벌주 길
견훤이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 박씨와 두 아들 그리고 두 딸이 함께 오고 있다. 그 한쪽에서 최승우가 어느 군사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군사가 물러가고 최승우가 견훤 곁으로 다가 붙는다.
최승우 폐하, 궁예의 선발대가 조령을 넘어왔다 하옵니다.
견훤 뭐라, 궁예군이 벌써 조령을 넘어...?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최승우 대주 아가씨께서 그들을 막으려 나가셨다 하옵니다.
견훤 대주가?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일이 급하게 됐구나. 아버님이 계시는 본성에 전령은 보냈는가?
최승우 예, 폐하. 능애님이 앞서 가셨사옵니다.
견훤 능애가...? 이런, 지난번에 머리통이 터져서 왔는데... 또 능애를 보냈는가..? 이런.... 아무튼 서둘러 가야겠구먼..
능환 아무래도 이쯤해서 군사들을 나누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견훤 옳은 말일세. 굳이 대병을 이끌고 사벌주성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 괜한 오해를 살 테니까.. 계획대로 여러 장군들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군현들을 공취하도록 하게. .
능환 예, 폐하.. 장수들에게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견훤 아버님이 오해가 없으셔야 할 것인데... 제발 오해가 없어야.....
견훤의 그 초조한 모습 위로
아자개(E) 네 이놈.....!
씬 8 사벌주 성
아자개가 노기등등해 있다. 능애가 와 있다.
아자개 네 놈이 또 왔어? 지난번에 터진 머리통은 어찌 되었느냐..?
능애 아버님...
아자개 머리통이 아니라 이번에는 네 놈의 목을 아예 끊어주랴..?
능애 아버님, 고정하시고 소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시오소서. 오죽하면 아버님의 진노를 알면서도 또 왔겠사옵니까?
아자개 들어보고 자시고 할 것이 무에 있느냐? 견훤이와 네 놈들이 내 영지를 유린하고 있는데!
능애 형님폐하께서는 아버님을 도우시려는 것이옵니다.
아자개 닥치거라. 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 없다 하였느니라. 그런데도 제 놈들 마음대로 보란 듯이 군대를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어...?
능애 .....그 때문에 다시 아뢰는 것이옵니다. 제발 아버님 오해를 푸시오소서. 형님 폐하께오서는 궁예군을 염려하여 오시는 것이옵니다. 그 점을 꼭 이해하여 줍시사 하여 소자를 다시 보내시는 것이옵니다.
아자개 닥쳐라.. 이놈들이 제 놈들 마음대로 일세 그려. 멋대로 군사를 몰아오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이놈들이 아주
이거 제 멋대로야. 계모 그렇습니다. 아주 속이 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 성을 빼앗는 것이 목적입니다. 속지 마시어요...
능애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제발....
아자개 그렇거나 아니 그렇거나 간에 나는 너희들을 보기 싫다고 하였다. 공연히 조용히 살고 있는 이 애비한테 와서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가서 전하여라. 즉시 되돌아가라고...아니면 애비 자식간에 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이놈들이 감히 누구를 업신여기고 이리 하는 게야?
능애 아버님.... 한번만 만나 보시오소서. 자식이 아버님을 뵙겠다고 먼 길을 왔사옵니다. 절이라도 올리고 가야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아자개 저...얼....?
능애 손주, 손녀들도 모두 데리고 오고 있사옵니다. 천하의 이런 법이 있사옵니까? 보지도 않고 쫓아 버리시옵니까? 무슨 죽을 죄를 그리 져서 이리 하시옵니까?
아자개 군사가 아니라.... 손녀들도 와...?
능애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계모 뒤에는 군사들이 오고 있다 합니다. 군사가 없기는 왜 없습니까?
능애 손주와 며느리를 앞세우고 오는 군사들도 있사옵니까? 그들은 이곳이 목적이 아니옵니다. 굽어 살피시오소서, 아버님.
아자개 .......... (흔들린다) ........
씬 9 인서트 길
견훤군이 긴 행렬을 늘어뜨리며 가고 있다.
씬 10 사벌주 성 근처
견훤이 그 곳에 당도하여 멀리 성을 바라보고 있다. 매우 착잡한 표정이다.
최승우 폐하, 저기가 사벌주성이옵니다.
견훤 참으로 오랜만에 와보네 그려. 아버님과 아우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낯설게만 느껴지는구먼..
박씨 .........
그 때 대주의 군사들이 멀리서 다가온다. 견훤이 그 쪽을 바라본다.
견훤 .......? 대주가 아닌가?
대주도 견훤을 알아보고 그 쪽으로 달려온다.
대주 오라버님!
견훤 (표정이 밝아지며) 오.. 대주야...
대주가 가까이 다가온다.
대주 오라버님.. 오신다는 소식 들었사옵니다. 올케도 오셨습니까?
박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주 예..
견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대주 백제국의 대왕폐하가 되셨다지요?
견훤 허허허.. 그리 되었느니라. (불현듯) 참, 궁예군을 막으러 나갔다더니 어찌 되었느냐?
대주 지금 그들을 물리치고 오는 길이옵니다.
견훤 오 그래? 허허허.. 장하구나. 과연 내 누이니라..
대주 오라버님께서 오신 것을 알면 아버님께서 불호령을 내리실 것인데....
견훤 ....어찌 하겠느냐? 각오하고 왔느니라.
대주 아버님께서는 오라버님이 이 성을 빼앗으러 오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옵니다.
견훤 자식이 어찌 부모를 칠 수가 있겠느냐? 너도 이 오래비를 그리 생각하느냐?
대주 저야 오라버님을 믿사옵니다만.....
견훤 이 옷을 보거라. 갑옷이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네 올케도 데려오지 않았느냐?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태황제로 모시기 위해 온 것이니라.
대주 아버님의 오해가 언제나 풀릴지.....안타깝사옵니다.
견훤 언젠가 다 풀릴 것이다. 아버님이나 나나 원체 성질들이 급하고 곧아 놓아서 그런 것이야. 자, 가자.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견훤의 모습에서..
씬 11 동 성안
견훤과 박씨, 그리고 두 아들과 두 딸이 아자개에게 절을 올리고 있다. 계모와 대주, 용개와 보개도 함께해 있다. 최승우와 능환같은 군신들도 보고 있다. .
견훤 오랜만에 문안 인사를 드리옵니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사옵니까?
아자개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 이 곳에 온 네 진심을 말해보거라.
견훤 아버님, 오해를 푸시오소서. 먼저 손주들과 손녀들을 좀 보아 주시오소서.
아자개 ........ (애써 외면하듯 헛기침)
견훤 이 큰 아이가 신검이옵니다. 이제 다 커서 스승들을 두고 무예와 글을 익히고 있사옵니다.
신검 할아버님, 소손 신검이옵니다.
아자개 어흠, 음...... 그래....
견훤 이 아이는 양검이라 하옵니다.
양검 양검이옵니다. 할아버님.
아자개 어흠....
박씨 두 딸아이옵니다.
아자개 그래, 인사는 되었고... 이제 네 속셈을 좀 들어보자꾸나. 어찌 하겠다는 것이냐?
견훤 아버님... 비록 소자가 먼 길을 나가서 한 나라를 세웠습니다마는... 아버님을 뫼시려는 효성은 변함이 없사옵니다.
계모 그 효성이 조금만 더 지나치면 큰 일 나겠네 그려.... 오지 말라는 군사는 무엇하러 성 밖까지 끌고 왔는가....?
견훤 궁예군이 이미 조령까지 넘어왔다는 것으로 아옵니다. 소자가 어찌 군사를 끌고 오지 않을 수 있사옵니까? 또한 사벌주 관내의 저 많은 성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된 주인이 없사옵니다. 그냥 두면은 신라 땅이 되거나 궁예 땅이 되옵니다. 소자가 어찌 두고 볼 수만 있겠사옵니까? 살펴 헤아리시오소서.
계모 듣지 마시오소서. 결국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 성도 다 빼앗을 것입니다.
견훤 부모와 자식간에 빼앗고 빼앗긴다는 것이 말이 되옵니까? 제가 나라를 세웠으나 제 것이기 이전에 아버님의 것이옵니다. 아버님 없는 자식이 어찌 있을 수 있사옵니까?
계모 참으로 말은 잘 합니다. 기가 막혀요.
아자개 부인은 좀 잠자코 계시구려.
계모 ........
아자개 다 좋다. 문제는 너와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견훤아? 부자간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촌각도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그 지독한 고집에다가 조금도 양보라는 것이 없어. 그게 우리 부자 사이야. 그렇다고 애비가 져주랴?
견훤 아버님, 그것은 지난 일이옵니다. 소자가 젊었을 때 일이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사옵니다. 소자를 따라 가시오소서. 가셔서 소자 위에 어른으로써 태황제의 자리에 오르시오소서.
모두들 ...........?
아자개 태황제....? 그것 참 이름한번 거창하구나. 하지만 싫다 이놈아. 나는 여기가 좋아. 여기는 내 고향이야. 그만 돌아가거라.
견훤 아버님....
박씨 아버님... 이렇게 찾아와 빌고 있사옵니다. 함께 가시오소서.
아자개 일없다. 나는 분명히 아니 간다 하였다. 여기서 살 것이다. 다른 성들이야 네 놈이 갔던 말던 나는 모른다. 단 이곳은 아니 된다. 여기는 나의 성이야, 알겠느냐?
견훤 아버님....?
절망이다. 견훤은 눈을 감는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답답한 표정들이다.
씬 12 산길
박술희와 능산들이 숲이 무성한 소로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들의 행색이 남루하기 그지없다. 박술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능산 땅 꺼지겠네, 이 사람아. 웬 한숨이야?
박술희 이놈의 몰골이 생각할 수록 한심해서 그러하옵니다. 세상에 원... 살다살다 이런 꼴은 처음 보옵니다. 계집에게 당하다니요.
능산 좋은 경험을 한 것이야. 세상에 누구든 간에 겉만 보고 판단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아릿따운 여자라고 해서 자네는 방심을 했었든 게야.
박술희 그렇기는 하지만... 기가 막히지 않사옵니까? 세상에.. 그만한 미색에다가 그 청량한 목소리하고..... 누가 그런 여인에게서 그런 놀라운 무예가 나올 줄 알겠사옵니까?
능산 아직도 꿈속에 젖어 있는가? 아직도 그 낭자 생각인가? 이런... 돌아가서 우리 주군이신 큰 형님께 뭐라고 말할 참인가?
박술희 그러게 말입니다요...
능산 단단히 각오하게. 군사를 수십 명이나 잃었어. 큰 형님께서 크게 노하실 게야.
박술희 ........
능산 어쨋거나 빨리 가세. 충주 관내까지는 아직도 길이 한참이야.
씬 13 충주 관아 외경
씬 14 관아 안 회의장
왕건과 유금필, 홍유, 배현경, 김언, 김락이 유긍달과 논의를 하고 있다.
왕건 정탐을 나간 사람들이 여지껏 소식이 없다니... 좀 불안하지 않습니까?
유긍달 그러게 말이옵니다. 분명 올 때가 지났는데.....
홍유 많은 것을 자세히 보자면 시간이야 얼마든지 더 걸릴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왕건 그렇기는 하오마는....
유금필 아, 능산이나 박술희가 누구이옵니까? 더 기다려 보시오소서.
왕건 (끄덕이고) 그럴 수밖에... 그건 그렇고..이보시오, 유장자?
유긍달 예, 장군.
왕건 장자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 이상은 결국 공격이 무리라는 것이 아닙니까?
유긍달 그렇다고 보아야 하옵니다. 조령 산맥은 어지간한 성 수십 배 보다도 견고하고 단단하옵니다. 또한 험하고 산세가 굴곡이 심해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이드는 곳이옵니다.
왕건 (한숨) .......
유긍달 대군을 이끌고 저곳을 넘어 사벌주를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옵니다.
배현경 그러나 우리 황제폐하께서는 그 옛날 저 설악에서 대관령을 넘어 명주를 공격하신 적이 있소이다.
유긍달 허허허... 그 쪽 산세와 이 쪽은 비교가 아니 되옵니다. 이곳은 절대로 군사를 끌고 넘어갈 수가 없사옵니다.
김락 저도 여러모로 알아보았사온데.. 유장자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저 험난한 곳을 군사들과 무기와 군수품을 이끌고 넘는다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김언 아마도 한동안 이 충주를 우리 고려와 백제의 경계로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왕건 송악에 그렇게 장계를 띄워야 할 것 같구먼... 더는 어려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유금필 그건 그러하옵니다. 조금더 조령을 우회해서 사벌주를 들어가는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아무튼 이곳은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렇다 하더라도 첩자들을 계속 띄워서 저쪽의 동향을 낱낱이 확인해야 할 것이야. 이럴 때는 정보가 곧 생명이 되는 것이니까.
유긍달 지당하시옵니다. 다른 인편을 통해 들으니 견훤왕이 지금 조령 넘어 에 와 있다 하옵니다. 장군께서 이곳에 와 계시니 그 쪽도 아주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옵니다, 허허허...
씬 15 어느 길
견훤의 행렬이 오고 있다. 어느 쯤에 다가와 멈춰서고 긴 개활지를 보고 있다. 견훤이 큰 한숨을 내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견훤 이 무슨 망신인고.... 자식이 그 아버지를 찾아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가는 이 꼴하고는....
박씨 너무 상심 마시오소서.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누그러지신 것 같아 보였사옵니다.
견훤 ....... 하지만 이렇게 밖으로 쫓겨 나와 돌아가고 있소이다. 천하의 대 백제국 황제라는 사람이 말이오.
능환 폐하. 하오나 황후 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어르신께서는 분명 많이 달라지셨사옵니다. 폐하께오서 사벌주 관내의 여러 성들을 취하시는 것을 아시면서도 묵인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견훤 그거야 그렇지마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한단 말인가...? 백성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말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백성들의 눈은 무서운 것이옵니다. 먼 훗날을 위해서라도 아자개님과의 일은 어떤 방법으로든 분명하고 빠르게 매듭을 지셔야 하옵니다.
견훤 하지만 대안이 없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 우리 부자는 아마 끝까지 이렇게 갈게야.
한숨을 짖는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17 사벌주/아자개의 처소
아자개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그 위로 견훤의 음성이 들려온다.
견훤 (E) 부모와 자식간에 빼앗고 빼앗긴다는 것이 말이 되옵니까? 제가 나라를 세웠으나 제 것이기 이전에 아버님의 것이옵니다. 아버님 없는 자식이 어찌 있을 수 있사옵니까? ....(사이).... 소자를 따라 가시오소서. 가셔서 소자 위에 어른으로써 태황제의 자리에 오르시오소서.
아자개 (중얼거린다) 고연놈..... 그런다고 내가 제 놈을 따라갈 줄 알아?
아자개가 무겁게 도리질을 친다. 대주가 다가와 말한다.
대주 아버님.. 아버님이 하도 화를 내시니 오라버니는 멀리 성 밖에다가 군막을 쳤사옵니다.
아자개 ....... ?
대주 그래도 일국의 황제라 하는 오라버님이옵니다. 너무 하시는 것 아니옵니까?
계모 너무 하다니..? 얘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대주 어머니, 그래도 자식이 인사를 온 것이옵니다. 성 밖으로 내 쫓아서 군막에 있게 하다니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용개 ....
계모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 큰 일을 치를 것이야. 네 오래비들을 봐라. 과연 견훤이 밑에서 오래 살 수 있겠느냐? 배다른 아우들을 저 견훤이가 예쁘게 봐 줄것 같으냐?
대주 어머님, 자꾸 그렇게 생각하시면 우리 가족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옵니다.
계모 멀어지는 것이 좋다. 가까워지면 탈이 난다.
아자개 그만들하거라, 그만들해요...... 에잉.
대주 오라버님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도 서로 손을 잡는데, 오라버님과 가까이 못하시겠다니 소녀는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오라버님은 백제국의 폐하시옵니다. 그것을 인정하셔야 하옵니다.
아자개 그만 하라고 하지 않느냐? 이런.... 이봐라, 용개야
용개 예, 아버님.
아자개 견훤이놈은 견훤이고 그 궁예인가 뭔가 하는 놈들의 군대는 어찌 되었느냐?
용개 아직도 충주에서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아자개 그럼 그렇지.. 제놈들이 어떻게 조령을 넘어와..? 놈들은 평생을 걸려도 저 산줄기는 넘어오지 못할 게다. 저 조령이 있는 한 이 사벌주는 끄덕이 없다 이 말씀이야. 암, 미련한 것들 같으니라고...여기가 어디라고 와, 오기를... 어림도 없지....
씬 18 송악 황궁 외경
씬 19 동 대전
궁예와 강장자, 박지윤이 마주해 있다. 한바탕 웃음을 웃는다.
박지윤 죽주에서 전투를 승리한 이후 왕건장군이 승승장구하여 충주까지 이르렀다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옵니다.
강장자 그러하옵니다, 폐하. 충주가 어디이옵니까? 바로 백제땅과 붙어 있는 곳이 아니옵니까?
박지윤 왜 아니겠습니까? 조령을 경계로 해서 그 넘어는 백제의 견훤이 있는 곳이오, 또 이쪽은 충주가 아닙니까?
강장자 그렇다면 조령을 넘어서 백제땅을 도모할 날도 얼마 아니 남았겠습니다 그려...?
궁예 허허허..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령은 백두대간 줄기예요. 그 옛날 짐이 대관령을 넘어 명주로 가본 적이 있습니다마는... 참으로 어려운 길이지요. 특히나 조령은 더 험하다고 들었습니다.
박지윤 허지만, 폐하의 군대올습니다. 지금까지 저 본적이 없는 군대 아니옵니까? 불패의 미륵군이옵니다. 조령이 험하다 한들 어찌 못넘겠사옵니까?
궁예 그렇지가 않아요. 지형자체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넘을 수가 없는 길이랍니다. 우회를 하던가 아니면 다른 길로 가던가 하는 길을 찾아야겠지요.
강장자 폐하, 오늘따라 어떻게 내원께서....아니 보이시옵니다마는....
궁예 지난번부터 대거 학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요즘 그 일에 바빠 놔서...
강장자 학자들이라니요...?
궁예 이 나라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려면 그만한 학문적 기반과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종간내원께서 시작을 하셨답니다, 허허허.... 내노라하는 학자들이 다 모이고 있다는군요. 종일 내원에 있었으니 지금쯤 지루할 겝니다. 불러서 그 얘기도 좀 들어보고 위로좀 해 주십시다. 허허허...
씬 20 동 내원 외경
종간 (E) 자장 사마천은 지금으로부터 천 백여 년 전의 사람이올시다.
씬 21 동 내원 안
여러 승려들과 늙은 학자들이 가득히 고서들을 연구하고 있다. 종간이 그들 곁을 지나치며 말하고 있다.
종간 사마천하면 '사기'를 떠올립니다. 이 사기는 바로 백성을 다스리는 법과 군주의 법, 그리고 군주를 받드는 신하의 예에 대하여 적혀 있소이다. 또한 인간들의 심성과 충의, 역신에 관해서도 적어놓고 있소이다. 바로 사기를 연구한다는 것은 정치를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종간 특히나 난세에 있어서 어떻게 한 나라를 경영할 것이며 그 경영 방법은 무엇인가를 또한 이 사기는 말하고 있소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을 서두에 이렇게 말했소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옛날과 지금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유익하게 쓰고 싶었다'
모두들 ......
종간 사기는 삼천 년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가장 계통적이고 완비된 사료를 적어놓은 것이예요. 그대들도 사마천과 같이 폐하의 제국을 완성하는데 있어 과거와 오늘을 연구하여 학문적 뒷받침을 하는데 크게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오. 이를 기쁘게 생각해야 해야 할 것이외다.
모두들 예.....
종간 앞으로 사기는 물론이거니와 대학과 중용, 서경 등 통치철학에 미치는 모든 사상적 학문을 이 내원에서 연구할 것이오. 불경도 이에 포함시킬 것이고... 또한 쉬임없이 나라의 인재들을 선별하여 뽑아 올리고 이곳에서 장려하여 공부하게 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모든 신료들에 앞서서 존경과 대우를 한 몸에 받게 될 것이오. 폐하의 황은을 깊이 가슴에 새기시오.
모두들 예....
그 때 밖에서 은부가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은부(E) 내원 어른, 소인 은부이옵니다.
종간 들어오시게. (학자들에게) 자, 그럼 모두들 맡은 학문에 정진토록들 하시오.
모두들 예....
학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흩어지면 종간이 한번 더 내원안을 돌아보고 들어서는 은부를 본다.
종간 어인 일인가...?
은부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며칠 째 내원의 일로 고생이 많으시다 하여 차라도 한잔하시자 하셨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이렇게 황공하올 때가 있나...?
은부 가시오소서.
종간 그러세.
이들 내원을 나선다.
씬 22 동 황궁 회랑
은부와 종간이 오며 얘기하고 있다.
종간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해야 하네. 그러자면 여러 가지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이념과 기술이 있어야 하네.
은부 저 학자들이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옵니까?
종간 그렇다네. 먼저 옛 고사를 연구하게 하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장점을 취하여 강한 법률을 만드는 것이야. 그리고 그 법률을 내세워 새로운 논리를 만드는 것이지. 그게 뭔줄 아는가...?
은부 소인이 어찌 알겠사옵니까?
종간 허허허... 자네라면 알 필요가 있지. 바로 신을 만들어내는 일이야. 폐하 말씀일세. 폐하를 이땅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절대적 신으로 올리는 일이야.
은부 그거야 이미... 그리 되어있지 않사옵니까?
종간 그렇기는 하지만 땅이 넓어지고 백성이 많아질수록 그 많은 대중을 믿게 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법일세. 의심하는 자들과 반항하는 자들, 또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지.
은부 .......?
종간 미련한 백성들은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올 수 있었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상층부의 지식관료와 호족들을 다스리는 일이 다가오고 있네. 그 준비작업을 하는 게야.
은부 (그제서야) 아, 예... 납득이 가옵니다.
종간 그래서 정치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야. 고도의 기술과 민심을 움직이는 지도력이 있어야 해. 폐하께서는 그것을 다 갖고 계시지. 이 종간이 있는 한 말씀이야, 허허허....
은부 ......... (보다가) 과연 그러하시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대전에는 폐하말고 누가 계시는가?
은부 광치나 박지윤 장자와 신천의 강장자께서 와 계시옵니다.
종간 강장자가...? 혼자서...?
은부 그 부인께서는 황후전에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황후전이라.....? 요즘은 아예 그곳에 붙어 사시는구먼...허허..
씬 23 황후전
연화와 백씨가 식혜와 다과를 들고 있다.
백씨 마마.. 요즘도 후원의 북원부인을 자주 만나시옵니까?
연화 .....왜 그러시옵니까?
백씨 (한숨)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그러하옵니다.
연화 무엇이 그렇게 안타깝습니까, 어머님..?
백씨 마마, 그 북원부인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폐하께 죽음을 당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북원부인도 벌써 죽음을 청했어야 합니다.
연화 ...... 어머님?
백씨 물론, 사람이야 동정이 가고 딱합니다마는... 우리 마마께는 두고두고 불행의 원인이 될 수가 있사옵니다.
연화 무엇이 불행이란 말이옵니까? 왜들 이러시옵니까?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옵니까?
백씨 타다남은 불씨는 언젠가 바람을 만나면 또 불길을 내옵니다.
연화 .......?
백씨 폐하와의 사이에 아들도 가지고 있사옵니다. 또, 이 나라와 폐하를 원망하고 있사옵니다. 그 사람이 훗날 어느때에 무슨일을 저지를 줄 알겠사옵니까?
연화 그래서 절보고 어쩌라는 것입니까?
백씨 한 나라의 황후이시옵니다. 그런 불길한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마시오소서.
연화 제발 그런 말씀 마시오소서. 무엇이 그리 초조하옵니까? 어머님까지 왜 이러시옵니까? 도대체 무얼 바라고 기대하시는 것이옵니까?
백씨 기왕에 황후가 되신 몸이시옵니다. 뜻을 크게 가지시고 어서어서 황태자도 보시오소서. 그래야 이 몸이 편할 것 같사옵니다. 세상이 하두 어수선하고 변화가 많아 놓아서....마마... 요즘 폐하는 모시옵니까?
연화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씨 이제는 밤을 함께 지내시느냐 묻는 것이옵니다. 벌써 국혼을 치른지 일 년이 넘었사옵니다.
연화 (냉소)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폐하는 부처님이십니다. 저와 합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드릴게 없답니다. 아시겠습니까? 드릴게 없습니다. 나나 저 후원에 갇혀 지내는 북원부인이나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를 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신세가 똑 같으니까요. 아시겠습니까?
백씨 ....... (질려서) 마마...
연화 그 불쌍한 사람을 더는 음해하지 마시어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줄 아십니까? 그 사람이야말로 부처가 되어가고 있어요. 하루종일 기도밖에는 모른답니다. 그런 그 불쌍한 사름을 왜들 이러는지....
씬 24 후원 외경
방문 앞에 월이가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다. 가끔씩 연민의 표정으로 닫혀있는 방쪽을 본다.
월이 딱도 하시지....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기도만 하시다니....폐하가 원망스럽지도 않으신가...? 그 분이 가르쳐 주신 불경과 기도에만 매달려 계시니....
씬 25 동 방안
미향이 염주를 굴리며 불상 앞에 하염없이 앉아있다.
미향 (E)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소녀 미향이는 비옵니다. 이제 소녀에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사옵니다. 아비가 남편에게 죽었사옵니다. 이러고도 소녀가 살아있어야 하옵니까...? 미륵부처를 자처하는 남편이 소녀의 아비와 삼촌과 많은 일가를 도륙했사옵니다. 이러고도 그 남편의 아이를 낳은 소녀가 이렇게 살아있어야 하옵니까? (사이) 대답을 주시오소서, 부처님.... 소녀는 어찌해야 하옵니까? 삶의 아무런 미련이 없사옵니다. 하지만... 제가 낳은 자식 얼굴만은 한번 보고 싶사옵니다. 그 원을 이루어 주시오소서. 아들의 얼굴을 보여주오소서. 그것이 소원이옵니다. 이 미련한 것의 마지막 소원이옵니다. 자식이 보고 싶사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염주를 굴리는 미향의 그 간절한 합장한 모습에서..... 궁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26 대전 밖
환관들과 궁녀들이 시립해 있다. 웃음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씬 27 대전 안
궁예와 종간, 박지윤, 강장자, 은부가 함께 해 있다.
궁예 내원께서 학자들을 모아 국가의 통치이념을 더욱 확실하게 정립한다 하니 든든한 생각이 듭니다. 밖에는 왕건이 있고 안에는 내원이 있으니 짐이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하하하....
종간 황공하옵니다, 폐하. 거듭 칭찬을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강장자 싸움이야 힘이 세고 무예만 좋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그러나 학문과 지혜는 아무나 가질 수가 없사옵니다. 내원님의 그 높고 큰 학문이 참으로 존경스럽사옵니다.
박지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신 분을 함께 해 계시옵니다. 모든 신료들이 다 우러러보고 있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무슨..
궁예 압니다, 알아요. 내원은 사사로이는 짐의 사형이올시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고 총명하였습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숱한 사람들의 관상과 운명을 정확히 알아 맞추었지요.
두사람 허허...
종간 폐하, 그만하시오소서. 민망하옵니다. 하옵고.... 여기 은부장군으로 부터 여러 가지 국내외의 소식을 들었사옵니다마는...
궁예 말씀하시구려.
종간 어느덧 다시 신라의 영토가 갈라져서 삼국의 시대가 되었사옵니다. 폐하와 더불어 백제의 견훤, 그리고 신라가 그것이옵니다. 명실상부하게 후삼국의 시대가 도래했사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후삼국이라....맞는 말이오.
종간 이제부터는 과연 누가 그 옛날의 통일신라처럼 이 삼한을 하나로 모으느냐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사옵니다. 그러자면 그만한 힘과 더불어 대외에 내세울 명분과 이름이 있어야 하옵니다.
궁예 .........?
종간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막연히 북쪽에서 일어났다 하여 고려라 했을 뿐, 하나의 국가로서 그 국호를 대외에 공표하지 못했다는 것이옵니다. 국호 말이옵니다.
궁예 국호라 국호...?
종간 견훤왕은 일찍부터 대왕을 칭했지만 완산주로 들어가면서부터 비로소 대외에 백제가 다시 건국했음을 알렸사옵니다. 그것은 한 국가의 탄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사옵니다.
궁예 .......?
종간 우리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었사옵니다. 우리도 황제국으로서 국호가 고려임을 만방에 알릴 때가 되었사옵니다. 우물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 천지에 제국의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옵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제국의 시작을 여는 것이옵니다. 폐하.
해설 국호, 이때까지만 해도 후백제나 후고려 모두 사실 나라라 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작은 고을에서 일어나 조금씩 땅을 넓혀갔던 이들은 말로만 대왕을 칭했을 뿐, 본격적인 국가체제는 사실상 갖추지 못했다. 그것을 견훤이 후백제를 표방하며 나섰고 정개라는 연호까지 내세우며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등 본격적인 국가 체제 확립에 나서자 종간도 뒤질세라 이를 궁예에게 권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랬다. 이 일을 계기로 후삼국 시대는 비로소 새로운 역사적 분기점을 맞게 된다. 후고려, 후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국가 대 국가로서 그 장을 열게 된 것이었다.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 열변을 토하는 종간과 심각하게 듣고 있는 궁예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3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