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작년 오월 말 집사람이 유방암 진단을 받아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에서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 상태에서 몇 시간에 걸쳐 한 쪽 가슴을 도려내는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외과적 상처가 아물고 나서도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호르몬제를 쓰고 공허해진 마음을 추스르는 일도 꽤나 신경 쓰였다. 집사람은 부종과 오십견이 한꺼번에 겹쳐 고생했다.
집사람은 석 달에 한 차례 수술 받은 병원으로 올라가 추수 검진과 투약을 계속 받아오고 있다. 매번 오르내릴 때마다 일주일 간격으로 먼저 검진 받은 결과의 수치에 따른 처방전으로 약을 타온다. 이번 유월 말 서울 걸음은 아침 이른 시각부터 하루 종일 여러 종류 검진이 예약되었다. 수술 후 일 년 경과하면서 신체 다른 부분에 암세포가 숨어 있는지 여부를 정밀검사하지 싶다.
평소는 집안에서 집사람이 차지한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몰랐다. 집사람 몸이 아프고 나서부터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그간 내가 집안일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소극적이었는지 통절히 반성하고 있다. 반성으로 그치지 않고 집안일에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다한다고 해도 집사람 마음엔 들지 않는 모양이다. 집사람 건강이 예전만큼은 어려울지라도 어서 회복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근무지 학교에서야 내가 맡은 일엔 소홀함 없이 지낸다. 내가 나서야 할 집안 대소사는 변함없이 참석한다. 반면 초등학교 동창회나 문학 동인회 같은 정기 모임엔 얼굴을 드러내기가 머뭇거려진다. 집안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바깥으로 나도는 것이 알량한 자존심이 용남하질 않았다. 즐겨 가는 산행도 하루 종일은 어렵고 반나절만 후딱 다녀와 집안일을 거드는 경우가 많다.
지난 유월 넷째 일요일이었다. 점심 식후 산딸기를 딸 겸 근교 산자락을 올랐다가 내려왔다. 귀로에 창원역에서 다가오는 주중 화요일 오후에 출발하는 서울행 KTX 열차표를 한 장 예매했다. 창원에서 서울 가는 KTX 열차표는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당일 출발 시각을 앞두고 창구에서 표를 구하려면 어렵다. 나는 인터넷 예매를 할 줄 몰라 발품을 팔아 창구에서 직접 표를 구한다.
이번에 집사람이 받는 검진은 시간이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전날 올라가야 했다. 아들 녀석한테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기로 되어 있다. 나도 하루 연가를 내어 같이 올라갈 셈이었는데 수업을 돌려 바꾸어야하는 눈치가 보였다. 마침 큰 녀석이 근무 회사 월차를 내어 병원 동행이 가능하다기에 마음 놓였다. 나는 집사람이 타고 갈 열차 승차권만 구해주면 되었다
집사람이 서울로 올라가는 날 아침 병원 검진을 앞둔 때였다. 열차표를 건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출근했다. 오전에 수업이 빈 시간 집사람으로부터 드문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내가 끊어준 열차표는 일주일 뒤 화요일 표라고 했다. 일주일 뒤 서울을 다시 올라가야하긴 했다만 당장 표가 없었다. 내가 창구에서 열차표를 예매하면서 한 주를 건너뛰고 말았더랬다.
매표창구 역무원이 승차권을 출력해 출발 일자와 시각을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 그려가며 확인시켜주어도 예사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순간에 유월은 일요일이 으레 네 번으로 끝나지 이번처럼 다섯 번까지 있는 줄 몰랐다. 남은 수업을 마쳐 놓고 점심시간 황급히 창원역으로 달려갔다. 집사람이 타고 갈 열차는 만석이라 남은 표가 없어 난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들 녀석이 퇴근해 서울역으로 마중 나올 텐데 시간을 못 지키면 어쩌나 싶었다. 고속버스가 있긴 했으나 시간이 더 걸렸다. 밀양에서 환승하는 KTX표를 구하니 출발시각이 예정보다 한 시간 당겨졌다. 집사람은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창원역으로 왔다. 집사람을 열차 탑승구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니 내 마음은 씁쓸했다. 못난 남편 만나 이래저래 고생하는 집사람이 안쓰러웠다. 1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