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40>
“먹방, 언제까지 할 겁니까?”
김 병 호 (수필가)
중국 절강성의 갑부인 왕 회장은 한창 나이에 죽었는데,
19억 위안이나 되는(한화로 약 380억 정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의 부인은
죽은 남편의 젊은 운전기사와 재혼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운전기사가 "전에는, 내가 왕 회장님을 위해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와 보니, 그 동안 왕 회장님이 나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새삼,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돈에 대한 경구(警句)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은행에 넣어둔 돈은 은행돈이고, 찾아서 쓴 돈만 내 돈이다.
죽으면 땡전 한 푼도 못가지고 가니, 미리 천국으로 보내두는 방법은 적선뿐이다.”
묘하고 묘한 것이 돈이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돈이다.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내는 것이 돈이지만, 가난했어도 행복했던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자,
태만과 방탕으로 불행하게 되는 것도 돈 때문이다.
돈은 벌기도 힘들지만, 쓰기는 더 힘들다.
돌아가신 정 회장님 같은 분도 돈 버는 데는 경영 9단이었지만,
돈을 쓰는 재주는 버는 재주에 못 미쳤던 것 같다.
정치판이 얼마나 한심했으면 그랬을까 만은,
노년에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선거판에 끼어들었다가
수백억 돈을 바람결에 티끌처럼 날려버렸다.
잃은 것은 돈 뿐이 아니었다. 건강도 잃었고 마음의 상처도 컷 던 것 같다.
출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던 분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타계한 것도
선거 중에 무리했던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선거판에서 뿌린 돈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썼더라면,
대통령이 되어서 쌓았을 치적보다 더 큰 공덕이 되었을 것이다.
버는 재주만큼 쓰는 재주도 좋았더라면 칭송 듣고 오래 살고...
역시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요,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외국 재벌들의 통 큰 기부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부부는 어렵게 얻은 첫딸의 출산에 감사하며
페이스북 지분의 99%인 450억 달러( 한화 약 52조 원)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는 “제 딸에게 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유산으로 넘기겠습니다.”라고 하였다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10년 전에 비해 양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아직은 선진국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인 것 같다.
더군다나, 많은 국민들이 재벌의 기부를 순수한 자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기부의 타이밍이 법을 어기고 구속된 기업총수의 면죄부로 쓰이는 것 같은 인상을
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진짜 순수한 자선가들의 기부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된다.
돈 이야기가 나온 김에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불편한 진실>을 하나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정부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섰다며,
세계 GNI 순위가 12위네, 13위네 하며 자랑을 하지만,
국민의 소득수준에 비하여 국민의 문화적 수준은
아직 미얀마나 태국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미얀마 국민의 기부문화에 미치지 못하고,
태국 국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정신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통상, 인간은 누구라도 소득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관심과 욕구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중의 변화된 관심과 욕구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 TV 프로그램이다.
국민소득 1만 불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방송은 먹는 방송(소위 먹방)이라 하고,
2만 불 시대에는 패션, 3만 불 시대의 관심사항은 인문학과 해외여행,
4만 불 시대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복지,
5만 불 시대에는 빈곤국에 대한 지원이나 기부 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만 불 시대에도 먹방, 2만 불 시대에도 역시 먹방,
3만 불 시대인 오늘도 먹방이다.
일본 TV에서 배워온 듯한, 젊은 여성 리포터들의 경박한 호들갑과 오두방정은
특히 먹방에서 극성이다.
“으~음...맛이 단백하고, 식감이 쫄깃하고... 입에서 녹는 듯한...”이런 말은
이제는 식상하다 못 해 역겹기까지 하다.
언제까지,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독거노인들과
‘7포 세대’라 불리는 구직난의 젊은이들을 외면한 채,
국영 방송까지 나서서 <전국 맛 자랑>으로 3만 불 시대에 걸맞지 않은
천민문화에 비위를 맞추고 있을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먹방, 언제까지 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