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악회 아마다블람 원정대/조상희.박일화,정호진.주영등 남서릉으로 등정
히말라야에서 타오른 용악의 불꽃 글 원종민 원정대원·사진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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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에서 정상등정 후 하산하는 대원을 지켜보는 박일화 대원. |
작년 말 송년모임에서 조상희 선배로부터 불쑥 제안된 아마다블람(6856m) 원정이 용악의 불을 다시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1976년 산악부가 폐쇄되면서 노령화된 산악회에 평균 연령 55세의 실버원정대가 조직된 것이다. 반지원정대가 반지를 찾아 떠나듯 용악회(용산고 산악부OB 모임)의 실버원정대는 히말라야의 보석 아마다블람의 정상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11월 6일 늦은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방콕을 거쳐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에서 이틀을 묵은 후 공항에서 무시무시하게 큰 소련제 헬기를 타고 루크라로 향했다. 루크라에서 팍딩, 남체 탕보체를 거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 아마다블람의 베이스캠프는 초록빛을 잃었지만 드넓은 목초지와도 같다.
수량이 풍부한 개울이 흐르고 골프를 쳐도 좋을 만한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아마다블람도 정면으로 바라보이고 아침부터 밤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과 조화를 이룬 주변 산들의 풍광은 최고의 베이스캠프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베이스캠프에는 25인용의 대형 텐트를 설치했다. 펜타곤이란 이름의 이 멋진 텐트는 외국 원정대가 모두 부러워한 텐트다. 식탁과 의자를 갖춘 식당과 휴게실의 용도로 각자의 텐트에서 잠을 자는 시간 외의 모든 생활을 이곳에서 하게 되었다.
발전기를 가동하여 전등과 노트북에 MP3 음악,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등의 충전도 가능해 말 그대로 쾌적한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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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1~C2 구간중 옐로타워를 주마링으로 오르는 원종민 대원. |
계속된 좋은 날씨 속에 등반
이번 원정은 혜초여행사에 원정 수속, 인허가, 항공, 셰르파, 포터 등의 제반 서비스를 의뢰하였다. 원정 매니저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신동우씨가 담당하고 있는데, 용악회 선배들하고도 오래 전부터 교분이 있어 매우 편하게 원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원정에는 혜초여행사 카트만두 지사 소속의 셰르파 3명이 참여했는데, 에베레스트를 다섯 번 등정하는 등의 경력을 갖추고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쿡 또한 한국말도 잘 하고 한국 요리도 잘하는 베테랑으로 모두 원더풀인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들도 같은 몽골리언인 그들을 마치 동생처럼 애정을 가지고 항상 예의를 지키며 대했기에 그들도 우리들을 매우 좋아하고 공경해주며 정도 많이 들었다.
베이스캠프 도착 다음날에는 팡보체 사원의 라마승을 모시고 라마제를 올렸다. 셰르파들과 고소포터들은 C1, C2, C3에 각각 텐트 2동씩 건설하고 식량과 장비를 데포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캠프를 오르내렸다. 대원들은 고소 순응을 위해 ABC(5500m)를 다녀왔다.
전체적으로 날씨는 매우 좋았다. 햇빛이 좋은 한낮에는 따듯했으며, 밤에는 영하 10도 내외로 추웠다.
항상 오후 3~4시부터는 구름이 몰려 와서 날씨가 흐려지며, 간간이 눈발을 날리기도 한다. 정상은 2개 팀으로 나누어 오르기로 했다. 원정대장 전용규 선배는 베이스캠프에서 지휘를 하고, 1진은 조상희·주영·원종민, 2진은 조대행·정호진·박일화로 나누었다.
11월 19일, 베이스캠프 도착 6일째 날에 1진이 캠프1로 올랐다. 가벼운 트레킹화를 신고 약 6시간 30분을 올라 1300m의 고도를 높였다.
긴 능선과 너덜지대를 지나 능선상의 협소하고 경사가 급한 곳에 텐트 2동을 설치한 캠프1(5800m)을 만났다. 키친보이가 미리 올라와서 따뜻한 차와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대원 모두 컨디션이 좋았다. 캠프1의 밤은 베이스캠프보다 더 따듯한 듯했다. 지형의 영향으로 베이스캠프가 더 추운 것 같았다.
20일에 누룽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캠프2로 향한다. 캠프2까지는 너덜지대, 리지, 벽 등이 혼합되어 있고 모든 구간에 고정 로프가 설치되어 주마링을 하며 오른다.
바위와 벽의 상태는 매우 투박하고 거칠다. 옐로타워라는 40m 정도의 수직암벽 구간에서는 주마를 2개 사용하여 오른다. 사다 옹추, 나, 주영, 조상희, 셰르파 락파의 순으로 오른다. 몇 동작을 하고 숨을 몰아쉬며 쉬었다가 다시 몇 동작을 반복한다. 독수리 요새처럼 보이던 캠프2(6100m)에 도착하였다.
캠프3까지 진출할 계획으로 캠프2를 올랐으나 많이 지쳐있어 캠프2에서 자기로 했다. 원래 캠프2는 비상 캠프였기에 텐트 한 동밖에 설치해 놓지 않았기에 한 동을 추가로 더 설치한다. 다행히 다른 팀의 텐트를 한 동 빌릴 수 있었다. 킴프2에서 내가 식욕이 급격히 저하된다. 저녁과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21일 아침 캠프3을 향해 출발한다. 이제부터 이중화와 크렘폰을 착용한다.
양쪽 절벽의 고도감이 아찔한 좁은 설릉과 리지, 암벽구간을 지나 그레이 타워라는 곳에 도착한다. 고정 로프가 여러 가닥 걸려 있고, 우리 팀의 셰르파가 새로 추가한 고정 로프도 보인다. 고정 로프는 여러 가닥 중 가장 튼실한 가닥을 골라야 한다.
앞사람이 안전하게 사용한 가닥을 유심히 보고 주마를 건 가닥 외에 다른 가닥에 확보줄을 더 걸어 보완을 해야 한다. 작년에 영국의 어느 경험 많은 가이드 등반가가 고정 로프를 잘못 골라 사망한 사건을 환기하며 집중력을 유지시킨다. 그레이 타워는 경사가 80~90도 이상에 약 60~80여m 얼음과 바위가 혼합된 구간이다.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꾸준하게 전체적으로 리지 구간인 짧은 암벽, 설벽, 빙벽 구간을 통과하여 버섯능선(Mushroom Ridge)이라고 하는 설릉 구간을 오른다. 부분적으로 오버행 구간도 있다.
캠프3(6450m)에는 사다 옹추와 주영 선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제법 넓고 평탄한 설사면 위에 텐트 2동을 설치했다. 여기저기 배설물이 노출되어 있고, 바람도 좀 분다. 따뜻한 텐트에서 휴식을 하며 억지로 좀 먹어보지만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결국 내가 구토를 하고 만다. 고소 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황청심환이 효과가 있는 것을 베이스캠프에서 경험했지만, 물까지 토해내고 있는 상황이라 먹을 수가 없다.
계속 먹어오던 다이아목스도 어제 저녁부터 먹지 못했다. 고소 증세에는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바로 토해서 먹기 힘들다. 잠을 자다가도 몇 번 구토를 하지만, 노란 액체만 조금 나올 뿐이다. 침낭도 좋고 옷도 잘 입어 춥지는 않다.
22일 아침, 6시에 기상하지만 기운이 없다. 사다 옹추가 등산화를 신겨주고 크렘폰도 채워준다.
아직 해가 들지 않아 추위가 매우 심하다.
일단 가는데 까지 가보며 판단하기로 했다. 사다 옹추, 주영 선배, 조상희 선배가 먼저 정상까지 설벽으로 이어진 서벽을 오른다. 설벽은 경사가 완만하여 기술적인 난이도는 거의 없지만 체력 소모는 극심하다. 100여m 올라가서 생각을 했다. ‘정상까지는 400m도 남지 않았다. 어떻게라도 올라갈 수는 있을 것이다. 기어서라도.
그러나 아마다블람의 하산은 그냥 걸어 내려가는 곳이 아니다. 고소 증세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무리한 등정 시도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주영 선배와 조상희 선배에게 캠프3에 남겠다고 알리고 내려온다. 점심 때가 지나 2시경에 정상을 다녀온 선배와 셰르파가 내려왔다. 정오를 전후해서 사다 옹추, 주영 선배, 조상희 선배, 셰르파 락파가 아마다블람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온 것이다. 형들이 부럽고 속상하다.
캠프2 하산에 정신을 집중한다. 전 구간 고정 로프는 있지만 잘 골라야 하고, 5~15m 마다 하강기를 빼내고 새로 걸어야 하는 동작의 연속이다. 점점 하강을 위한 제동 로프를 잡는 것조차 힘에 겹도록 기력이 빠져간다.
우리의 독수리 요새 캠프2에서 2진으로 올라온 선배와 셰르파가 힘을 내라고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 보인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간신히 캠프2에 도착했다. 주영 선배는 먼저 내려왔고, 조상희 선배는 락파 셰르파와 같이 내려오는데 어두워져 캠프2에 도착했다.
11월 22, 25일 두 차례 등정
22일 밤 캠프2에는 1진과 2진이 겹쳐져 텐트와 침낭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정대로 한다면, 1진은 캠프1로 내려가고, 2진은 캠프3으로 올랐어야 한다. 조대행 선배는 베이스캠프로 하산하였다고 한다. 총파, 락파 셰르파는 외국팀의 비어 있는 텐트에서 침낭 없이 버티고, 1진과 2진은 각각 3명이 침낭 2개로 자야 했다.
우모복과 보온의류는 모두 셰르파에게 주고 잠을 청하지만, 1진 텐트에서는 나와 조상희 선배가 얼음같이 차가운 바위장과 싸우며 밤을 지새웠다.
23일 아침 눈이 제법 내리고 있다. 1진은 무조건 베이스캠프로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한다. 거의 뻗어서 내려온 1진을 보고 걱정이 많아진 2진의 정호진, 박일화 선배 그리고 셀파 총파를 캠프2에 남겨두고 내리는 눈 속으로 탈출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하산을 한다.
카라비너를 조작할 힘조차 없다. 의지력을 집중시키고, 기력을 좀 모아 다시 몇 동작 움직이는 것을 반복한다.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동식이 있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이제 석회질이 많은 바위 냄새도 역겹게 느껴진다.
캠프1에 도착하니 키친보이가 사발면을 끓여 준다. 다행히 입맛이 돌아와 조금 먹을 수 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배출만 하고 있었다. 이때 먹은 라면 몇 가락으로 다시 힘을 내 본다. 캠프1에서 내려가는 너덜지대도 고행의 연속이었다. 너덜지대가 끝나고 ABC에 도착할 무렵 날이 어두워졌다.
이곳부터는 길이 좋기 때문에 터덜터덜 발만 밑으로 옮기면 된다. 아무리 느려도 2시간 후에는 베이스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며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며 내려간다. 저녁 7시 반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용규 형님과 대행 형님을 뵈니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진다.
24일 2진의 정호진, 박일화 선배는 캠프3로 올라간 후 정상까지 시도해 본다고 했지만, 캠프3에서 주저앉는다.
25일 아침 8시경 햇살이 서벽에 들어온 후 2진이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보통 3~4시간 걸리는 정상을 6시간 이상 소비하며 오른다. 베이스캠프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해 보지만, 움직임이 전혀 없다. 박일화 선배가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관찰된다. 결국 등정 후 캠프3에서 취침을 한다.
26일 2진이 캠프3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특별한 이상은 없으나 7일 동안 고소에 체류하여 기력은 많이 빠져 있었다. 베이스캠프의 대원들은 무사귀환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무사히 2진이 도착하자 모두 안도와 기쁨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2진도 몇 동작 움직이고 쉬면서 기력을 모으는 힘겨운 등반과 하산을 하였고, 박일화 선배는 왼손 새끼손가락 끝이 까맣게 변하는 동상에 걸렸다.
죽은 살이 떨어져 나가고, 새살이 나오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아마다블람은 결코 만만한 대상지가 아니었다.
만약 우리에게 셰르파가 없고 고정 로프가 없었다면 우리들의 능력으로 정상 등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6856m의 아마다블람은 낮은 산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보통 6000m대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소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면 그 높이를 만만히 볼 것도 못된다.
천화대보다 어려운 남서릉의 난이도, 캠프2에서 정상까지 전 루트에 깔려있는 고정 로프는 안전의 확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난이도와 거친 정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온몸의 근육과 균형을 사용해야 하는 어려운 주마링, 거의 전 구간을 로프 하강으로 내려와야 하는 하산길도 아마다블람의 특징이다.
즉 스스로 내려올 수 없다면 죽음이나 조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산길이 짧아도 체력 소모가 많고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곳에서 50대를 넘긴 연령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 등정에 성공한 조상희, 박일화, 정호진, 주영 선배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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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용산고등학교 총동창회 깃발을 펼친 주영 대원. |
2004 용악회 아마다블람 원정대
대상지 : 네팔 쿰부히말라야 아마다블람 남서릉
기 간 : 2004년 11월 6일~12월 4일 (29일간)
대 원 : 장문삼(원정단장) 전용규(원정대장) 정호진(등반대장) 조대행(의료) 조상희(기록) 박일화(행정·회계) 주 영(장비·촬영) 원종민(식량·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