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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_
열반(涅槃)의 필수조건이라는 청정(淸淨)과
지혜의 수행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답 _
위빠사나 수행으로 도과(道果)에 도달해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고도로 원숙해져야 합니다.
지혜는 16단계(혹은 10단계)를
순서대로 거쳐 성숙되는데,
이 과정의 필수조건이
바로 ‘청정’입니다.
청정함은 지혜를 일으키는
통찰력을 함양하기 때문입니다.
청정과 지혜는 상호보완 작용으로
상승효과를 이루는,
깨달음의 길을 함께 가는
최상의 도반(道伴)과도 같습니다.
청정에는 7단계(7청정)*가 있으며,
각 단계는 바로 다음 단계의
받침대가 되어줍니다.
첫 번째 청정은 계(戒),
두 번째 청정은 정(定),
나머지 다섯 단계의 청정은 지혜의 근간이 되며,
1~6번째 청정까지는 세간(世間)의 도(道),
마지막 7번째 청정은 출세간(出世間)의 도로 구분됩니다.
1. 지계의 청정(戒淸淨)
계청정은 계(戒)의 준수를 통한
‘행위의 정화(淨化)’로,
7청정의 기반이 됩니다.
도덕률인 계를 지키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본성을 통찰할 수 없으므로
수행이 향상될 수 없습니다.
계는 출가수행자의 계와
재가수행자의 계로 구분되는데,
출가수행자의 계는 4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계목(戒目)을 단속하는 계로,
비구는 227계를 지켜야 합니다.
둘째는 감각기능을 단속하는 계로,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챙김(sati)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출가수행자 본분에 맞게
생계(生計)의 청정을 준수하는 계,
넷째는 필수품을 정법하게 구하고 사용하는
청정을 지키는 계입니다.
재가수행자는
5계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음주를 금하는 계율)나
8계 (5계에, 화려한 장식이나 가무, 안락한 침대, 오후 식사를 금하는
3계를 더한 계율)를 지켜야 합니다.
2. 마음의 청정(心淸淨)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번뇌가 제거되어야 하므로,
계청정으로 다스려진 마음을 집중시켜
번뇌를 차단하는 삼매
(samadhi)를 닦아야 합니다.
삼매는 망상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알아차려
알아차림이 끊어짐 없이 지속됨으로써
5장애
(감각적 욕망, 악의, 무기력과
혼침, 들뜸과 불안, 회의적 의심) 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하고 청정해진 마음상태에서의 집중으로,
본삼매와 근접삼매,
찰나삼매로 분류됩니다.
본삼매는 사마타(samatha, 禪定, 止) 수행의
선정에서 사용되는 완전히 몰입된 깊은 삼매로
색계(色界) 선정의 최고 경지인
4선정(四禪定)의 상태이며,
근접삼매는 초선정(初禪定)에서 4선정에 근접해가는
초기삼매의 집중상태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모두 사용됩니다.
찰나삼매는 순간적 집중상태로
위빠사나 수행에 활용됩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찰나삼매를
‘마음의 청정’으로 간주합니다.
사마타 수행이 향상되어 5장애들이 사라지면
곧바로 근접삼매에 이르게 되지만,
아직 ‘선정의 5요소 (밀착된 주시, 지속적 고찰,
기쁨, 행복, 心一境性)’들이 일어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불안정하므로
주시(sati)가 표상(表象, nimitta)에서
5요소들로 옮겨가지 못해
본삼매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표상이 명확해야 5요소를 한데 모아
일념(一念)의 상태에서 집중대상으로 의식하는
본삼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표상은 명상대상의 영상(映像)으로,
이것을 마음속에 일으키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사마타 수행의 핵심입니다.
표상에 일념(一念)으로 집중된 상태가
바로 삼매이기 때문입니다.
표상은
준비단계의 표상, 익힌 표상, 닮은 표상
으로 분류됩니다.
‘준비단계의 표상’은
표상을 마음속에 일으키려 노력하는 준비단계
수행의 집중대상이며,
‘익힌 표상’은
눈앞의 대상과 똑같이
마음에 인지된 대상의 복사판입니다.
이 ‘익힌 표상’은 일어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므로
잘 보호해 ‘닮은 표상’으로 승화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사마타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수련입니다.
‘닮은 표상’은 ‘익힌 표상’과 닮았지만
‘익힌 표상’에 복사된
본래 대상의 결점들이 제거되어
더욱 청정하고 완전한 형태로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표상입니다.
이것은 색깔도 형태도 없으며
근접삼매를 얻은 수행자의 인식[想]에서 비롯된
‘나타남’의 한 형태일 뿐이지만,
이 표상이 일어나면
5장애들이 제압되므로
본삼매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접삼매에서
‘닮은 표상’을 일으키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일단 이 표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확대시켜 본삼매에 진입해야 하며,
여의치 못하면 표상을 최대한 보호하여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표상은
사마타 수행의 ‘키워드(key word)’이지만,
개념(pannatti)의 영역에 속하므로
궁극적 실재(paramattha)는 아닙니다.
따라서
개념인 표상에 몰입된 상태인 삼매로는
삼법인(無常·苦·無我)을 통찰하여
번뇌를 뿌리 뽑을 수 없으므로,
궁극적 실재를 대상으로 삼아서
삼법인의 통찰지혜로 해탈에 이르는
위빠사나 수행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궁극적 실재인 몸(물질)과 마음(정신)의
‘본성(本性)’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매순간 집중하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상도 그 알아차리는 마음도
찰나마다 변해서
집중이 깊게 머물 수 없으므로,
찰나와 찰나를 이어서
매순간 마음을 대상에 고정시키는
‘찰나삼매’를 사용해
삼법인을 통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찰나삼매가
‘순수 위빠사나’의 ‘마음청정’입니다.
순수 위빠사나는, 사마타 수행을 겸하지 않고
‘계청정’을 지키면서 위빠사나만 닦는 수행입니다.
마음의 ‘하나됨’이 한순간만 지속되는,
매순간의 마음집중인 이 찰나삼매의 수관
(隨觀: 지속적 관찰)에 힘이 붙으면,
마음이 정신과 물질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자연스레 집중되어 근접삼매에 필적하는
고요와 확고함을 체득하게 됩니다.
때문에 순수 위빠사나에서는
이 찰나삼매를 ‘마음청정’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청정을 이루지 못하면
통찰지혜도 계발될 수 없으므로
마음청정은 ‘16단계 지혜’의 기초이자,
열반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3. 견해의 청정(見淸淨)
마음청정을 통해 알아차림이 순일해지면
매순간의 알아차림마다
정신과 물질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지혜가 발현됩니다.
1)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
대상에 대한 마음집중에 숙달되면
대상의 물질적 현상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정신적 과정을
구분하여 볼 수 있게 됩니다.
호흡수행 시에는
배가 일어나고 꺼지는 것은 물질적 현상,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정신)입니다.
마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둘 다 마음입니다.
이 지혜가 성숙되면
몸(물질)과 마음의 현상과 이를 ‘아는 마음’을
입체적으로 포착하게 되므로
삿된 견해인
상견(常見: 영혼이나 개아가 영원하다는 견해)과
단견(斷見: 물질과 마음은 죽음과 함께 소멸한다는 견해),
유신견(有身見: 몸과 마음을 ‘나’라고 믿는 견해)
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아는 단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과 마음의 복합적 혼합물에 불과함을 알아차리는
‘견해의 청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 단계부터 비로소 위빠사나가 시작됩니다.
4. 의심을 극복하는 청정
‘견청정’으로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나 행위에서
정신과 물질의 원인(조건)과 그 결과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일어납니다.
2) 원인(조건)을 식별하는 지혜
수행이 깊어지면
몸의 움직임에 선행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의도를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물질적 과정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현상(결과)들은
원인(조건)을 갖게 마련이며,
이 원인과 결과들은
연기(緣起), 업(業), 찰나에 의해 발생됩니다.
연기에서는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가
올바른 알아차림을 방해해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유신견’의 착각이 집착을 수반한
의도와 행동을 일으켜,
몸과 마음(名色)이 6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여(受) 애착(愛)을 일으키면서
생사(生死)를 되풀이하는 것이
12연기의 과정입니다.
업에 의해 발생되는 원인과 결과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릅니다.
즉, 모든 물질적-정신적 현상들은
그 이전에 일어난 과정들에 의해 조건지어지며,
무지와 갈애, 집착이 일으킨
과거 업의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실재하는 것은
오직 원인과 결과의 끊임없는 흐름뿐입니다.
찰나에 의해 발생되는 원인과 결과는
실제 수행 시에 알아차리는 순간마다 발생합니다.
일례로, 호흡수행 시에
배가 팽창함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원인은
숨을 들이마시려는 의도이며,
들숨은 그 결과입니다.
이처럼 알아차릴 때마다
그 원인과 결과를 식별할 수 있게 되면
모든 현상들은 원인과 결과로 조건지어진 것들일 뿐
독립된 ‘개아(個我)’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의심을 극복하는 청정’에 이르게 됩니다.
5. 도(道)와 비도(非道)를 아는 청정
3) 현상을 바로 아는 지혜
원인을 식별하는 지혜가 성숙되면
모든 관찰대상에서
처음, 중간, 끝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즉, 대상이 일어나 지속되다
사라지는 현상의 3단계와,
하나의 대상이 사라져야만
그 다음 현상이 일어남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을 통찰하게 됩니다.
무상의 관찰은 상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상들에 집중해서 관찰해야 합니다.
먼저, 관찰대상이 명확해지도록 집중하여
그 대상이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일어나는지,
일어난 순간 어떻게 유지되고
어떤 기능을 하다가 왜 어떻게 사라져 버리는지를
빠짐없이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일례로 마음의 작용에서 무상을 관찰하려면,
그 마음상태가 어떤 생각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그 생각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나서 변화하다가
왜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이렇게 무상을 자각하게 되면
일어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라는 괴로움(苦)과,
모든 존재는 단지 오온(五蘊)의 집합일 뿐이라는
무아(無我)를 동시에 꿰뚫어보게 됩니다.
이 통찰지혜가 ‘현상을 바로 아는 지혜’입니다.
4) 생멸(生滅)의 지혜
조건들이 일어날 때 형성된 것들이
어떻게 일어나서,
조건들이 변할 때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끊임없이 수관(隨觀)하다보면
‘생멸의 지혜’가 발현됩니다.
찰나에 일어나는 이 지혜를 계발하려면,
일어남(현상의 일어난 원인과 순간)만을 관찰하거나,
사라짐(현상의 사라지는 원인과 순간)만을 관찰하거나,
일어남과 사라짐(현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원인과 순간)을
동시에 관찰합니다.
일어남과 사라짐의 관찰은
일어남의 원인과 결과,
사라짐의 원인과 결과를
차례로 관찰한 다음,
그 원인과 결과의
무상함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 같은 관찰이 예리해지면
몸과 마음의 모든 현상들을
명확히 분리해서 수관할 수 있게 되므로,
무상·고·무아가 순일하게 관찰되면서
통찰지혜(위빠사나)의 10가지 경계들이 나타납니다:
① 광명(光明)
②지혜
③희열
④경안(輕安)
⑤행복
⑥확신
⑦분발(정진)
⑧확립(마음챙김)
⑨평온
⑩욕구(위빠사나에 대한 집착).
이들 중,
광명과 욕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로운 현상들이지만
수행자가 이들에 집착하게 되면
장애가 되므로 ‘경계’라고 이릅니다.
서툰 수행자는 이러한 경이로운 경계들이 일어나면
드디어 도과(道果)에 도달했다는 착각에 빠져
이 경계들을 즐기느라
수행을 중단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수행자는
이 경계들이 수행향상의 부산물임을 알아차려
이들 또한 삼법인(三法印)으로 수관함으로써,
들뜸이나 집착 없이
계속 수행에 전념할 것입니다.
이처럼, 10가지 경계들이 도(道)가 아님을 꿰뚫어보고
이 ‘감미로운 오염원’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
‘도(道)와 비도(非道)를 아는 청정’의 단계입니다.
6. 수행과정의 지(知)와 견(見)에 의한 청정
5) 사라짐(소멸)의 지혜 (bhanga-nana)
수행이 깊어지면서 ‘생멸(生滅)의 지혜’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관찰하다보면,
현상(sankhara, 行)들의 일어남이 빨라지면서
형태가 모호해지다 보이지 않게 되며
단지 그 사라짐만 관찰됩니다.
그런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정신적 과정도
동일한 단계를 거쳐 사라집니다.
이처럼 현상의 일어남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의식이
한 쌍을 이루어
사라지는 것만을 연속적으로 관찰하게 되면,
대상들이 흔들리는 듯해 보이거나
자기 몸의 형체조차 불분명해지며,
팔 다리를 뻗으려 할 때도
그 의도가 사라짐을 즉시 알아차리게 되므로
일시적으로 뻗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라짐을 수관하는 지혜가 매우 빠르고 명징해져
의식의 흐름 사이의 순간적 무의식까지도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관찰대상을
6근(六根) 중 현재의 ‘일어남’이 야기된 부위로
변경해야 합니다.
이 ‘사라짐에 대한 지혜’가 더욱 진전되어
몸과 마음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관찰이 순일해지면,
듣는 소리도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 또한 산산조각나
상호 연속성이 사라져 버리므로
‘나’라는 인식 또한 소멸되어
비로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사라짐의 속도가 너무도 빨라
일어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고,
시야가 흐릿해져 현기증이 일기도 합니다.
이런 부작용은 인식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므로
잠시 관찰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상과 그 알아차림의 사라짐만이
계속 관찰되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삼라만상은 결국 사라져 소멸될 뿐이라는
무상(無常)의 자각이 들게 마련이며,
이런 생각도 삼법인(三法印)의 통찰을 위해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6) 두려움에 대한 지혜 (bhaya-nana)
‘사라짐의 지혜’를 통해
몸과 마음마저도 사라져 버림을 체험하게 되면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들은
결국 소멸될 뿐임을 절감하게 되므로
삶 자체가 두려워집니다.
7) 고통(위험)에 대한 지혜 (adlnava-nana)
이처럼 모든 현상들에 내재된 위험과
고통을 자각하게 되면서
무기력과 불만에 휩싸이게 되지만,
이런 절망감은 지혜가 성장하고 있다는 징후이므로
현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꾸준히 관찰해나가면
극복될 수 있습니다.
8) 혐오감에 대한 지혜 (nibbida-nana)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자각에
허탈한 혐오감이 일어납니다.
9) 해탈을 원하는 지혜 (muncitukamyata-nana)
삶에 대한 환멸이 심화되면
무상·고·무아를 절감하게 되면서
모든 욕망과 집착들이 떨어져 나가며,
해탈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일어납니다.
10) 깊이 숙고하는(다시 살펴보는) 지혜 (patisankha-nana)
해탈에 이르기 위해
통찰지혜로 현상들에 내재된
무상·고·무아를 깊이 내관하면
그중 한 가지 특성이 명확히 나타나지만,
아직 관찰이 미흡하다고 느껴져
자주 수행자세를 바꾸게 되므로 불안정해집니다.
온몸이 따끔대거나 뜨겁고 뻣뻣해지는 등의
불쾌한 감각들과 무기력함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증상들은
현상의 실재(實在)를 알아차리게 된 데서 기인하므로
한 가지 자세를 고수하며
초연하게 관찰하면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11)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 (sankharupekkha-nana)
이처럼 깊은 숙고가 이어지면
희로애락에 무심해져
중도(中道)의 평등심(平等心)이 유지되며,
관찰과 알아차림도 별다른 노력 없이
순일하게 이루어져 감각이 일어나자마자
즉각 관찰됩니다.
이런 상태를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라 이릅니다.
이 단계에서는 간혹
너무 많은 현상들이 출몰해
알아차림이 가속화되기도 하며,
몸의 형체가 순식간에 사라져
정신적 현상만 남아
청정한 환희를 누리게도 됩니다.
‘나’라는 인식이 소멸되어 내가 아니라
현상이 다른 현상들을 인식하게 되므로,
고통에서 벗어나 망상 없이 오랜 시간
부동의 자세로 관찰수행이 가능해집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든
중단 없이 관찰을 이어가야 하며,
도과(道果)에 근접한 듯싶어
부쩍 노력을 기울이면
도리어 관찰이 둔화되므로
오직 순일하고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번뇌 망상에서
거의 벗어나게 되므로
관찰에 몰입하면 생각이 끊어져
시간의 흐름마저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과에 들기에 충분한 통찰력을
2~3시간 내에 체득하지 못하면
다시 생각들이 침입하게 됩니다.
이 같은 퇴행과 진보를
수 차례 반복하게 되더라도
도과의 발치에 근접한 징후이므로
실의에 빠져 수행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용맹정진으로 5근
(신심, 정진력, 마음챙김, 선정, 지혜)을
조화롭게 계발해 나가면
머지않아 열반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가
열반을 고요하다고 보게 되면,
모든 현상들이 기존의 진행궤도에서 이탈해
오로지 열반의 문으로만 진입하게 됩니다.
12) 수순(隨順)의 지혜 (anuloma-nana)
‘평등의 지혜’가 예리하게 강화되면
현상들에 내재된 삼법인 중 하나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나면서
알아차림도 훨씬 빨라져
저절로 진행되기에 이릅니다.
이윽고 ‘본삼매’에 들어서는 순간,
바왕가(bhavanga, 잠재의식)가 끊어지고
의문전향이 일어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에 틈이 없는
흐름[相續]이 연결되면서,
현상의 무상·고·무아를 대상으로 삼아
첫 번째 속행(速行, javana)의 마음인
‘준비(도에 이르기 위한 준비)의 마음’,
두 번째 속행의 마음인
‘근접(도에 근접)의 마음’,
세 번째 속행의 마음인
‘수순의 마음’
이 일어나 열반에 다가서게 됩니다.
‘수순’이란,
이전의 8단계 통찰지혜
(‘생멸의 지혜’~‘평등의 지혜’)와
앞으로 일어날 37가지 담마
(깨달음의 37가지 요소:
4념처, 4정근,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
에 순응(順應)함을 이릅니다.
이 ‘수순의 지혜’는
현상을 대상으로 삼는 마지막 지혜로,
사성제(四聖諦)가 명확히 출현해
번뇌를 퇴치할 수는 있지만
아직 열반을 대상으로 삼지는 못하는 단계입니다.
7. 지(知)와 견(見)에 의한 청정
13) 종성(種姓)의 지혜(gotrabhu-nana)
12단계 ‘수순의 지혜’가 일어난 직후에
모든 현상들이 소멸된
열반(涅槃)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이 최초로 모든 감각이 끊어진
심찰나(心刹那)의 상태를
‘종성의 지혜’라 이릅니다.
이 단계는
세간(世間)의 마지막 단계인
6청정과
출세간(出世間)의 첫 단계인
7청정
사이에 머무는 중간 상태로,
무상·고·무아로
현상을 통찰하지 않으므로
6청정에 속하지 않으며,
열반을 대상으로 인지하지만
사성제(四聖諦)를 가리는
번뇌가 아직 제거되지 못해
7청정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종성’이란 종족의 성씨로,
이 지혜에 이르면
범부(凡夫)에서 성인(聖人)으로
계통이 바뀌게 됨을 의미합니다.
즉 출세간 도(道)의 성취에 근접하는,
위빠사나의 (실질적) 마지막 단계이자
열반으로 전향하는 첫 단계로,
첫 번째 도과(道果)인
‘수다원’에 이르기 직전의 단계입니다.
14) 도(道)의 지혜(magga-nana)
‘종성의 지혜’가 한순간 진행된 직후,
사성제를 닦으면서
모든 현상들이 소멸된
열반을 대상으로 인지하여 체험하는
‘도의 지혜’에 비로소 들어서게 됩니다.
열반에는
도의 단계와 과(果)의 단계가 있습니다.
‘도’는 열반을 지향하거나
그에 이 르는 상태이며,
‘과’는 열반을 성취하여
성위(聖位)에 든 상태입니다.
도에 들어섬과 동시에 과를 통과하며,
도의 완전한 증득(證得)이 과인 것입니다.
도에 진입할 때는
초선(初禪)부터 4선을 거쳐
곧바로 들게 되는데,
대상이 먼저 사라지고
이를 알아차리는 마음(sati)마저 따라서 사라지면서
순식간에 멸(滅)의 상태인 열반으로 빨려들게 됩니다.
이 상태를 처음 체험할 때는
찰나에 스쳐지나가므로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진공(眞空) 상태가
수십 분, 몇 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열반에 머무는 시간은
선정력(禪定力)에 좌우 되지만,
도에 진입 여부는
사띠(sati, 마음챙김)에 좌우됩니다.
15) 과(果)의 지혜(phala-nana)
도에 진입하면 곧바로 과에 들게 되는데,
‘도의 지혜’의 마지막 진행단계에서
‘과의 지혜’가 일어납니다.
이 지혜 역시 열반을 대상으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갑니다.
출세간의 도과(道果)는
4가지 단계로 구분됩니다.
① 수다원 도과(sotapatti magga phala, 預流):
유신견,
사견,
의심,
질투,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 등
에서 벗어난 첫 번째 도과로,
마음이 5장애
(감각적 욕망, 악의, 무기력, 불안, 의심)
에서 완전히 벗어나
맑은 평온함과 행복감이 절로 솟아나서
법열(法悅)의 환희에 휩싸이는
일대 변혁이 일어납니다.
도에 들자마자 과를 통과한 직후에
알아차림이 되돌아오는 순간,
도과를 통과한 전(全)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한순간 밝은 불빛이나
어떤 형상을 보거나
번뇌가 제거되면서
통증과 열감이 야기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반을 체험한 직후에는
사띠가 느슨해져
정신적 흐름을 명확히 알아차릴 수 없어
대상이 모호해지므로
수행이 퇴보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며칠 지나면 완화되어
다시 현상을 명확하고 순일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수다원을 성취했을 때
사띠의 힘이 가장 왕성하므로
계속 용맹정진해
더 높은 도과를 증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이 효율적인데,
처음에는 열반에 머무는 시간을
미리 설정하고 지켜지도록 서원합니다.
이렇게 진지한 자세로 용맹정진하면
대부분 설정한 시간을 지킬 수 있게 되며,
점진적으로 시간을 늘려가
열반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첫 서원이 충분히 실현되면
다음 단계로 수다원 도과의 열반에
빨리 자주 들게 되기를 서원합니다.
도과를 성취하는 과정에서는
무수한 열반을 체험하기 마련인데,
수다원 단계에서는
최초로 열반을 체험했어도
반복해서 원하는 시간에 쉽게
열반에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서원들도 충분히 실현되어
2번째 도과인 사다함에 오르려면
수다원의 도과에 집착하지 않도록
“설정한 시간 내에
수다원에서 성취한 모든 법을 버려
다시 반복되지 않고,
보다 높은 법을 성취하겠다.”
는 서원을 세우고,
평소처럼 정신적·육체적 현상들을 관찰하여
알아차리면서 정진해야 합니다.
이 수행은 4단계 ‘생멸의 지혜’에서 출발하며,
11단계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
에 도달하기까지 하루 정도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도
밝은 빛이나 형상이 나타나고
통증을 느끼거나
육체적·정신적 흐름의 생멸현상이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그 진행과정이 이전보다 훨씬 더
명료하고 예리하게 드러납니다.
때로는 ‘평등의 지혜’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몇 달 또는 수년 동안 머물게 될 수도 있지만,
지혜의 힘이 충분히 성숙되면
사다함에 이르게 됩니다.
이 단계부터는
눈 밝은 스승의 지도가 절실히 필요해집니다.
② 사다함 도과(sakadagami magga phala, 一來):
수다원의 윗단계인 2번째 도과로,
거친 탐·진·치가 제거되어
아직 미미한 번뇌들이 잔존하기는 하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사다함에서 3번째 도과인 아나함에
오르려 수행할 때도 ①과 마찬가지로
“설정한 시간 내에
사다함에서 성취한 모든 법을 버려
반복되지 않고,
보다 높은 법을 성취하겠다.”
는 서원을 세운 다음,
역시 ‘생멸의 지혜’에서 출발합니다.
‘평등의 지혜’까지 금방 도달하게 되므로
지혜가 충분히 성숙되면
아나함에 오르게 되지만,
결코 쉽지 않아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수다원과 사다함은
계행(戒行)을 잘 준수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성취할 수 있지만,
아나함은 선정삼매가 충분히 깊어져야
성취되므로 힘겨운 용맹정진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③ 아나함 도과(anagami magga phala, 不還):
사다함의 윗단계인 3번째 도과로,
욕계의 감각적 욕망과 성냄, 근심 등이
제거된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 마지막 도과인 아라한에
오르려 할 때는
“정해진 시간 동안
아나함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지혜를 성취할 수 있기를”
서원하면서,
앞 단계들과 동일한 수행과정을 거치며
용맹정진하여 아라한에 오릅니다.
④ 아라한 도과(arahanta magga phala, 應供):
불법의 최고 단계이자 마지막 도과로,
모든 번뇌·무명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
최상의 성자인 아라한(arahant)에 등극합니다.
이처럼 매 단계마다
반복되는 수행과정과 용맹정진으로
각 도과의 지혜가 성숙되며,
이를 위해서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이
필수적입니다.
이들 도과의 증득은
공덕(功德)과 5근(信·念·精進·定·慧)이
성숙된 수행자에 한해서만 가능하며,
이 덕목들이 부실한 수행자는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 단계에
계속 머물게 됩니다.
이상의 4가지 도과에 대한 지혜를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이라 이릅니다.
16) 반조(返照)의 지혜 (paccavekkhana-nana)
한순간에 진행되는
도과(道果)를 통과한 후에는
알아차림이 지극히 명징해져
성취한 도과의 진행과정 전체를
역(逆)으로 성찰해서 아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지혜’
가 일어납니다.
즉, 4과(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의 각 단계마다
①도(道),
② 과(果),
③열반,
④제거된 번뇌들,
⑤아직 잔존하는 번뇌들
을 반조하게 되는데,
아라한 도과에서는 번뇌가 완전히 소멸되므로
① ~ ④까지만 반조하게 되어
최대 19가지 반조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도(道)의 반조는,
과(果)의 마음 끝에서 잠재의식에 들어간 다음,
그 잠재의식을 끊고
(마음이 대상을 향하는)
의문 전향이 일어나 사라질 때
도를 반조하는 7개의 속행
(速行, javana: 결정된 대상에 대해
재빠르게 일어나는 모든 마음작용)
이 차례로 진행되면서,
‘이것이 내가 도달한 도(道)이구나’
라고 반조하게 됩니다.
과(果)의 반조도 다시 잠재의식에 들어가
의문전향이 일어나면
위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것이 내가 성취한 과(果)이구나’
라고 반조합니다.
번뇌의 반조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것들이 내가 버린 오염들이구나’
라고 제거된 번뇌들을 반조하고,
‘이것 들이 아직 남아 있는 오염들이구나’
라고 잔존하는 번뇌들을 반조합니다.
마지막 열반의 반조는
모든 현상이 공(空)함을 체득함으로써
‘이 법(法)을 대상으로 내가 꿰뚫 었구나’
라고 반조하게 됩니다.
이 ‘반조의 지혜’가
16단계 지혜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멸진정(滅盡定, nirodha-samapatti)
색계(色界)의 4선정(四禪定)과
무색계(無色界)의 4선정에
완전히 통달한 아나함과와 아라한과에서는
인식과 마음작용들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경지인
‘멸진정’을 증득하게 됩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색계의 4선정(초선정~4선정)에서
무색계의 4선정(四無色定) 1) 까지
입정(入定)과 출정(出定)을 차례대로 거쳐
이 과정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무상·고·무아임을 수관(隨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증득과정에서 유의할 점은,
무색계 3선정인 ‘무소유처’에서
출정하는 단계에 이르면
무색계 4선정에 입정하기 전에
멸진정에 들기 위한
4가지 ‘마음준비’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①수행처와 생필품들이 파손되지 않도록 결의,
②승가(僧家)가 원하면 곧바로 멸진정에서 출정함,
③붓다께서 부르시면 출정함(붓다 재세 시에만 해당됨),
④7일 안에 수명(壽命)이 다하지 않을지를 확인함.
이 중, ①~③은 생략할 수도 있지만,
④는 반드시 점검·확인해야 합니다.
이상의 마음준비를 마친 후,
무색계 4선정인 ‘비상비비상처’에 입정해
2개의 속행이 일어났다 사라진 직후에야
드디어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완전히 소멸된
멸진정에 들게 됩니다.
멸진정에 드는 기간은
‘마음준비’에서 결의한 기간만큼 유지되며,
수행력에 따라 7일까지 가능합니다.
멸진정에서 출정할 때,
아나함은 아나함과의 마음이 한 번 일어나고,
아라한은 아라한과의 마음이 한 번 일어난 후에
잠재의식 속으로 가라앉게 되며,
이어서 ‘반조의 지혜’가 일어납니다.
해탈(解脫, vimokkha)
위빠사나 수행이 정점에 이르면,
수행자의 성향에 따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 중 하나에
확고하게 집중하여 수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이 강한 수행자는
‘무상’에 집중하므로,
이 무상의 수관으로 도과를 증득하면
‘표상이 없는 해탈’ 을 얻게 되며,
집중력이 강한 수행자는
‘고'에 집중하여 수관하므로
도과를 증득하면
‘원함이 없는 해탈’을,
지혜가 강한 수행자는
‘무아’에 집중하여 수관하므로
‘공(空) 한 해탈’을 구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모든 도과는
이 3가지 해탈을 모두 공유하기 마련입니다.
‘표상 없음(無相)’, ‘원함 없음(無願)’, ‘공함(空)’
은 해탈의 관문이자, 모든 도과가 공유하는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해탈’은
7청정과 16단계 지혜를 차례로 통과해
도과에 들어 열반을 체험함으로써
번뇌를 뿌리 뽑아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상태를 이릅니다.
7청정과 16단계 지혜를 통과하여
도과에 드는 것에 숙달되면,
좀 더 높은 도과를 성취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6근(六根: 眼·耳·鼻·舌·身·意)에서 일어나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에 집중해서 수관해야 하며,
도과의 성취를 좌우하는
5근(信·念·精 進·定·慧)을
조화롭게 향상시켜나가야 합니다.
5근의 계발을 위해서는
무상(無常)을 통찰하고,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빈틈없이 꾸준히 내관(內觀)해야 하며,
적절한 수행조건
(적절한 수행처, 탁발하기 쉬운 곳,
수행에 도움 되는 대화와 도반,
적절한 기후,
올바른 수행자세)
도 구비해야 합니다.
또한 면밀한 마음챙김으로
높은 단계에 도약했을 때의 수행법과
원인을 점검해 그 기법을 숙달시키고,
7각지(七覺支, 깨달음으로 이끄는 7가지 요건:
念覺支, 擇法覺支, 精進覺支, 喜覺支, 輕安覺支,
定覺支, 捨覺支)를 계발해야 하며,
고통을 인내하며 중단없는 용맹정진을
일상화시켜야 합니다.
더불어 공덕(功德)의 축적 또한
수행자의 덕목임을 늘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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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태국을 대표하는 위빠사나 대선사, 아짠 마하 부와가
영국을 초청방문하여 (1974년 6월) 설한 법문과 질의 응답들을 수록한
수행법문집, 『The Dhamma Teaching of Acariya Maha Boowa in London』 중,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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