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82강 – 2 – b
3. 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며,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其心尊重하야 終無厭怠가 是智業이요.
마음으로 존중하게 여기며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4. 樂法樂義하야,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無有厭足하며 遠離邪念하고,
만족함이 없으며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勤修正念이 是智業이요. 바른 생각을 부지런히 닦음이 지혜의 업이니라.
굳이 설명 할 것도 없습니다.
정성스럽게 읽으면 이것은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완제품 같습니다. 완제품요.
5. 於一切衆生에 離於我慢하며, 일체중생에게 교만한 마음을 여의고,
於諸菩薩에 起如來想하며, 보살들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며, 와~~
愛重正法을 如惜己身(여석기신)하며,
바른 법 사랑하기를 내 몸을 아끼듯이 하고,
尊奉如來를 如護己命하며, 여래를 받들기를 내 목숨 보호 하듯이 하며,
於修行者에 生諸佛想이 是智業이요
수행하는 이에게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 지혜의 업이니라.
6. 身語意業이, 몸과 말과 뜻의 업에, 3업에
無諸不善이라. 착하지 아니함이 없고,
讚美賢聖하며 隨順菩提가 是智業이요.
성현들을 찬탄하고 보리를 순종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7. 不壞緣起하고, 연기를 파괴하지 아니하고,
離諸邪見하며, 삿된 소견을 여의고,
破暗得明(파암득명)하야,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열어서,
照一切法이 是智業이요. 모든 법을 비춤이 지혜의 업이니라.
8. 十種廻向으로 隨順修行하며, 열 가지 회향을 따라서 수행하며,
於諸波羅蜜에 起慈母想하며,
바라밀다에는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생각을 내고,
於善巧方便에 起慈父想하야,
아주 솜씨 있는 방편에는 자상한 아버지라는 생각을 내어서,
以深淨心으로,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入菩提舍가 是智業이요. 집에 들어감이 지혜의 업이니라.
“願我速會無爲舍(원아속회무위사)
菩提舍!!!”
이름 좋잖아요. 그렇지요?
“입보리사. 보리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이것이 지혜의 업이다.”
9. 施戒多聞과, 보시ㆍ계율ㆍ다문.
“다문”이라고 하는 것에 포함된 뜻은 그 겁니다.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안다.”는 것.
止觀福慧의 그치고 관을 관하고 복과 지혜의
如是一切助道之法을, 온갖 도를 돕는 것을, 지혜 조도법을
常勤積集하야 無有厭倦이 是智業이요.
항상 부지런히 모아서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이니라.
10. 若有一業이 爲佛所讚하야, 한 가지 업이라도 부처님을 찬탄하고,
能破衆魔煩惱鬪諍(능파중마번뇌투쟁)하며,
모든 마의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能離一切障蓋纏縛(능리일체장개전박)하며,
모든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能敎化調伏一切衆生하며,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며
能隨順智慧하야 攝取正法하며,
지혜를 따라서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能嚴淨佛刹하며,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能發起通明이면 皆勤修習하야 無有懈退가 是智業이라.
신통과 밝음을 발기하여 부지런히 닦고 물러가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니
라.
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則得如來의 一切善巧方便인 無上大智業이니라.
여래의 온갖 교묘한 방편과 위없는 큰 지혜의 업을 얻느니라.
(30) 菩薩의 十種魔所攝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所攝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懈怠心이 魔所攝持며 志樂狹劣이 魔所攝持며
於少行生足이 魔所攝持며 受一非餘가 魔所攝持며
不發大願이 魔所攝持며 樂處寂滅하야 斷除煩惱가 魔所攝持며
永斷生死가 魔所攝持며 捨菩薩行이 魔所攝持며
不化衆生이 魔所攝持며 疑謗正法이 魔所攝持니 是爲十이니라
(30) 菩薩의 十種魔所攝持(보살10종마소섭지)
보살은 열 가지 마에 섭지함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所攝持하니,
불자야,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에 붙들림이 있으니,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열 가지인가?
1. 所謂懈怠心(해태심)이 魔所攝持며,
이른바 게으른 마음이 마에 섭지되고, 붙들리고,
2. 志樂狹劣(지락협열)이 魔所攝持며,
뜻이 옹졸하고 못난 마에 붙들리고,
3. 於少行生足이 魔所攝持며,
조금 행하고 만족하다는 그런 마에 붙들리고,
4. 受一非餘가 魔所攝持며,
하나를 받고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의 마에 붙들리고,
5. 不發大願이 魔所攝持며,
대원의 큰 원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 마에 섭지되는 것이고,
6. 樂處寂滅하야 斷除煩惱가 魔所攝持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번뇌를 끊는 마에 붙들리고,
참선만하고 고요히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그런 마에 붙들리고,
7. 永斷生死가 魔所攝持며, 생사를 아주 끊는 마에 붙들리고,
8. 捨菩薩行이 魔所攝持며, 보살의 행을 버리는 마에 섭지되고,
9. 不化衆生이 魔所攝持며,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마에 붙들리고,
10. 疑謗正法(의방정법)이 魔所攝持니,
바른 법을 비방하는 마에 붙들리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전에는 우리가 3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니까 조금 시간이 진도가 있었는
데요. 3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다가 어땠습니까?
다섯 시 반까지 하다가, 또 다섯 시 20분까지 하다가, 10분까지 하다가,
그 다음에 다섯 시까지 줄어들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보니까 두 시간 됐습니다. 두 시간요.
(31) 菩薩의 十種佛所攝持
若諸菩薩이 能棄捨此魔所攝持하면 則得十種佛所攝持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初始能發菩提之心이 佛所攝持며
於生生中에 持菩提心하야 不令忘失이 佛所攝持며
覺諸魔事하야 悉能遠離가 佛所攝持며
聞諸波羅蜜하고 如說修行이 佛所攝持며
知生死苦호대 而不厭惡가 佛所攝持며
觀甚深法하고 得無量果가 佛所攝持며
爲諸衆生하야 說二乘法호대 而不證取彼乘解脫이 佛所攝持며
樂觀無爲法호대 而不住其中하야 於有爲無爲에 不生二想이
佛所攝持며
至無生處호대 而現受生이 佛所攝持며
雖證得一切智나 而起菩薩行하야 不斷菩薩種이 佛所攝持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諸佛의 無上攝持力이니라
(31) 菩薩의 十種佛所攝持(보살10종불소섭지)
若諸菩薩이 能棄捨此魔所攝持(능기사차마소섭지)하면,
만일 보살들이 마에 붙들림을 버리면,
則得十種佛所攝持하나니,
열 가지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을ㆍ섭지하심을 만나니,
마에 붙들리는 것은 지저분한 것이고,
밝음의 부처님한테 섭지되는 것. 섭수돼서 지탱되는 것ㆍ유지되는 것을
얻게된다.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부처님한테 붙어 살 수 있겠는가?
부처님이 호념해 주시는가?
1. 所謂初始能發菩提之心이 佛所攝持며,
이른바 초발심을 하면, “초시능발” 초발심. 그것 또 잘못 읽어서,
“시발심” 이라고 읽으면 골치 아픕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처음에 보리심을 내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2. 於生生中에, 나고 나는 가운데
持菩提心하야 不令忘失이 佛所攝持며,
보리심을 지니고 잊지 않게 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3. 覺諸魔事하야 悉能遠離가 佛所攝持며
마의 일을 깨달아 멀리 여의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4. 聞諸波羅蜜하고 如說修行이 佛所攝持며,
바라밀다를 듣고 말한 대로 수행하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5. 知生死苦호대 而不厭惡가 佛所攝持며,
생사의 고통을 알고 싫어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6. 觀甚深法하고 得無量果가 佛所攝持며,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하여 한량없는 과보를 얻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7. 爲諸衆生하야 說二乘法호대, 중생들에게 2승의 법을 말하면서도
而不證取彼乘解脫이 佛所攝持며,
그 법으로 해탈함을 증취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8. 樂觀無爲法(요관무위법)호대 而不住其中하야,
無爲法을 관찰하되 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於有爲無爲에, 아~~ 줄 그으세요. “유위무위에,” 아주 중요합니다.
不生二想이 佛所攝持며,
유위무위에 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有爲無爲”에 줄, 그으셔야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가끔씩 물어봅니다.
누가 서울에서 불교대학 교수하시는 분. 동대 중생들 교수하시는 도반
스님이 물었습니다.
“一切賢聖은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한다는데 네 한 번 해석해줘 봐라.”
“그럼 유위법하고 무위법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물어보니까,
“다르지요.”
“아니요. 같습니다.” ←이러니까,
“아니요. 다른데, 有爲는 뭐고... 無爲는 뭐고...”
“아니요. 같습니다.”
有爲無爲에 不生二想이 佛所攝持며, ←이런 것을 못 봐서 그럽니다.
有爲는 허망하게 있는 것이고, 無爲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有爲를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二行이 永絶(이행영절)”이라고 해서 이세간품 처음에도 나왔고,
여래명호품 처음에도 나왔습니다.
“妙悟皆滿(묘오개만).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어
二行이 永絶하였다.”
이세간품 앞 대목하고, 여래명호품 앞 대목하고 글자 한자ㆍ토하나 안
틀리게 복사해서 붙인듯이 똑같이 나옵니다.
그 대목을 이해하시면 有爲ㆍ無爲가 전부 이해되는 겁니다.
有爲ㆍ無爲를 이해하기 위해서 지공화상의 十四科頌을 보면 됩니다.
소견도 없으면서... 소견 없어도 괜찮습니다.
화엄경 이세간품에 보니까,
“有爲無爲에 不生二想이 佛所攝持라.
유위무위에 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종경록에도 ↑이대로 나온 것이 있습니다.
기신론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것이 1승의 견해입니다. 1승의 견해요.
事학적으로는 無相이요. 理적으로는 無性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有爲ㆍ無爲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
9. 至無生處호대 而現受生이 佛所攝持며,
생이 없는 처지에 무생에 이르고도 일부러 태어나면 부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10. 雖證得一切智나, 온갖 지혜를 증득하고도
而起菩薩行하야 不斷菩薩種이 佛所攝持라.
보살의 행을 일으키어 보살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
느니라.
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에 안주기중하면,
則得諸佛의 無上攝持力이니라.
즉득 모든 부처님께서 위없는 최고의 섭수하고 유지해 주는 그런 힘을 얻
나니라.
첫댓글 _()()()_
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초시능발. 초발심. 그것 또 잘못 읽어서,
시발심 이라고 읽으면 골치 아픕니다." --- 녹치하다가 이곳 저곳에서 자주 미친년 됩니다.
이 시간에도 허파에 바람이...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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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有爲無爲에 不生二想이 佛所攝持라"
근념하셨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대원성님 덕분에 따라갑니다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