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색 윤희경- 여름 저녁하늘, 고흐가 다녀간다 지난달에는 분홍구름을 타고 왔다 오늘은 일본 비단 천을 두르고 왔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사랑했던 색, 콕 집어서 말하면 자포니즘 코발트블루 그 색이다 가난한 화가의 색, 수염도 얼굴도 눈빛까지 엉키게 하는 색, 하루에도 심장이 몇 번씩 벌렁거리고, 술잔에 울화를 가득 부어 들이키던 색, 갈탄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린 색이며 석탄 캐는 광부의 기침 색이다 일몰을 곱게 훔치던 색, 노랗게 타오르는 밀밭을 제 집처럼 자주 머물다 가던 색, 비단 구름이 매일 다녀가면 좋겠다 까마귀 떼가 내려와 앉아도 좋겠다 시푸른 광 기가 회오리치는 밤이면 나도 코발트블루 꽃을 든 우울한 남자를 찾아가고 싶다 아픈 시엔을 찾아가 스케치를 하던 고흐의 거친 사랑을 닮고 싶다 어릴 적 보았던 키 큰 사이프러스, 아픈 하늘 속으로 줄지어 간다
회색기러기의 잘 죽는 법 '죽게 되면 함께 죽읍시다' 마지막에 할 말이겠죠 기러기 이동하듯 우리의 머나먼 항해 입 밖으로 꺼낸 말이 제 길이 된다는 배 기둥에 박힌 편자 손으로 만지고 입술에 갖다 대어 바닷길이 순해진다고 믿는 -당신을 잃을까 봐 겁이 났어요 반쪽으로 사는 게, 가끔 대체물이 없는 게 있잖아요 갑판 나무 바닥에 엎드려 쓴 기도문 순풍과 역풍을 아우르고 끝내 어딘가에 닿자는 회색기러기가 죽지 않는 법은 쇠기러기와 더불어 기어이 날아가는 것이다 '살게 되면 함께 삽시다' 거친 항해 중에 만졌던 편자의 운으로 윤희경 시인 ※약력 -2015년 『미네르바』 신인상 등단.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 『문학과 시드니』 편집위원 -<문학동인 캥거루>, <문학동인 빈터>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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