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누군가는 꼭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을 했다”
- 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 언론시사회 열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임권택 감독이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 대한 특별한 소감을 밝혔다.
임권택 감독은 7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지금까지 판소리, 동양화 등을 통해 우리 선조가 이룩해 놓은 한국인의 문화, 그리고 그 문화가 가진 흥이나 정서적 아름다움을 쭉 해오면서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영화를 걱정하고 있을 때 한지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제안을 받고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이 1996년 <축제> 이후 15년만의 현대물로 복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영화인생 최초로 디지털 작업에 도전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복원 사업을 주도했던 공무원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임 감독은 “1년 이상을 취재하면서 많은 분을 만나면서 한지와 얽힌 생활문화를 다 따라가면 한도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지가 얼마나 좋은 종이며 왜 이 한지를 되찾아야 하느냐는 간단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4개월 정도 촬영이 지났는데 한지에 관해서 얘기를 해 줄 게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새로운 얘기였다. 심지어 촬영이 끝난 무렵까지도 새로운 한지 이야기를 들어야 되면서 섣불리 한지의 깊고 넓은 세계를 겁도 없이 영화화하겠다고 대들었다는 경솔함에 굉장히 후회했다”며 고충을 토로한 뒤, “그래도 한지의 깊은 세계의 어느 한쪽이나마 영화로 담을 수 있었다는 행운을 잡았다는 점에서는 좋기는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극영화 다큐멘터리가 뒤섞인 구성에 대해 “강수연 씨가 극영화를 찍는지 다큐멘터리를 찍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이번 영화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하고자 했다”며 말한 뒤, “군사정권 때처럼 정권이 요구하는 소재나 주제를 강제로 영화에 담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니냐는 마음의 걸림의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권이 지향했던 어떤 것을 영화에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됐을 시절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나 같은 나이 든 감독이라도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해서 후배들에게 남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영화제의 냉대에 대해서는 “우리 문화를 너무 인위적으로 드러내는 데서 오는 불쾌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나는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찍었다”고 말했다.
극중 7급 공무원 필용과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의 불륜적인 관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두 사람 사이의 불륜의 감정은 일상을 살면서 늘 안으로부터 피어나기도 했다가 또 잠잠해지기도 하는, 그냥 큰 사고 없이 일상이 지나간다는 것, 그 이상 확대해서 봐서는 안 된다”며 “한지의 매력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끝으로 임 감독은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틀을 미리 정해놓고 그 안에서 연출했는데 이번에는 열어놓고 편하게 연기자들과 매번 상의를 하면서 영화를 완성했다”면서 “이렇게 많이 열어놓고 영화를 해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 역을 연기한 강수연은 “한지하면 편지지나 편지봉토, 창호지 정도로만 알았지 한지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한지에 매력에 빠져들었다”며, 박중훈은 “임권택 감독님과 4개월 동안 같은 숙소를 쓰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게 가장 기뻤던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수연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이후 22년 만에 임권택 감독과의 조우이며, 박중훈과는 1987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후 24년만의 재회이다.
강수연은 “감독님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뵈었고, 박중훈 씨하고는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고 동료라 오랜만이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게 전혀 없었다”며 “한 가족 같았다”고 말했다.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는 자신의 바람 때문에 충격을 받고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를 돌보며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시청의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이 전과한 한지과에서 승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하고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매진하다가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지만 한지의 우수성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감독 지원(강수연)과 천년 가는 한지를 만드는 장인 등을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지의 깊은 매력에 빠져든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전주시가 진행한 사업에다 ‘한지’(韓紙)가 주된 소재인 만큼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적 요소에 강한 비중을 두었다. 영화 내내 한지를 다루는 '역사스페셜' 같은 다큐멘터리가 등장하고 다양한 한지 공예품들, 화선지와 한지의 차이 등 한지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온다. 게다가 실제 복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거 출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너무 설명적이라 크게 와 닿지 않으며 드라마와도 자연스럽게 섞이질 못해 극의 집중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실존 인물 등 비연기자의 출연 역시 극의 리얼리티보다는 마치 연출한 듯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천년 세월을 숨쉬는, 달빛을 닮은 우리의 종이 ‘한지’를 재현하는 과정을 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그래도 아내에게 주눅 든 박중훈의 표정연기는 볼만하며, 한폭의 그림 같은 엔딩 장면은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떠나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게 위해 노력하는 거장의 열정과 의지에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한편, 이 영화의 개봉을 위해 한국영화 최초로 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CJ엔터테인먼트 등 3대 투자·배급사가 각각 투자, 배급, 마케팅을 담당하며 지원사격에 나선다. 오는 3월 17일 개봉한다
★ 출처 코리아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