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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 끝.
제19장 명승구적(名勝舊蹟)
충주시가전경
이 사진은 일제시대 충주전경을 담은 엽서다. 비록 작은 엽서에 나오는 사진이지만 일제시대에 충주를 담은 사진은 극히 희귀하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 《충주발전지》원본 사진을 구했어야 했는데, 복사본을 옮기다 보니 사진이 전부 검게 나왔다. 이런 이유로 이해를 돕기위해 다른 곳에서 쓴 사진들을 첨부하였다.
충주신사와 충혼비
社稷山忠州神社は、大正二年十月の建立にして、伊勢大神宮大麻を奉祀す、境内に日清日露の兩後戰沒軍人忠魂碑あり、忠州を南に數町、忠州公園にして眺望絶佳、四時雅人墨客の杖を曳くもの絶えず。
(사직산 충주신사는 대정 2년(1913년) 10월에 건립되어 이세 대신궁의 대마(神札, 오오마사)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청일·러일 양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충혼비가 있다. 충주에서 남쪽으로 몇 백 미터(數町, 1정은 109.1m) 떨어진 곳에 충주공원이 있으며, 전망이 매우 뛰어나 사계절 내내 풍류객과 시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위 두 사진들도 《충주발전지》에 나오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실었다.
忠州錦町通り
昔江戶の錦繪を偲ぶ錦町通りは忠州の花街にして、紅欄大厦硏を競ひ、闌燈の下絃歌湧き、歡聲流れ、瀟洒な妖艶の氣が漂うて居る。
(충주 니시키마치 거리(通り, 토오리)
옛 에도의 니시키에(錦繪)를 떠올리게 하는 니시키마치는 충주의 유흥가(花街)로서, 화려한 난간을 가진 큰 건물들이 자태를 겨루고, 밝은 등불 아래 가야금 소리와 노래가 샘솟듯 퍼지며, 환호성이 흐르고, 깔끔하면서도 요염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錦町은 지금 성서동을 말한다. 한때 술집과 유흥가가 있었으나 1990년대 중반경 정화되었다.)
위 사진은 일제시대 본정통(本町通, 혼마치도리) 사진이라 한다. 지금 관아골 가구점 골목이 되고 성내동이다.
충주시장
泉橋を西一直線を割せる忠州市場は、陰曆二、七を定例日とし一箇月六回の開市にして、一日の取引額二萬圓以上に達し、忠清北道屈指の大市場である。(샘다리(泉橋,이즈미바시)를 건너 서쪽으로 직선거리를 달리는 충주시장은 음력 2일, 7일을 정기 장날로 하여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열리며, 하루 거래액이 2만 원(엔,円) 이상에 달하는 충청북도 굴지의 대시장이다.
※泉橋는 지금 예성교이고, 서쪽으로 직선거리라는 것은 지금 자유시장 일대를 말한다.)
천운정(天雲亭)
一名六角堂と謂ふ、公立忠州普通學校庭內にあり、亭は池に望み、石橋を架す、池中蓮花硏を競ひ、夏湖納涼の客繁し、建立の由來詳細ならずと雖も觀察府時代の遊園なりしものの如し。
(일명 육각당이라고도 부르며, 공립 충주보통학교 뜰 안에 있다. 정자는 못에 면해 있고 돌다리가 놓여 있으며, 못 속에는 연꽃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여름철에는 나들이 겸 피서를 즐기는 손님들로 붐빈다. 건립의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관찰부 시절의 유원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관찰부(觀察府): 1896년(건양 1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북도의 수부(首府, 監營)가 충주에 설치되었을 때의 구한말 지방행정 조직이다. 1908년 청주로 이전하게 된다. 지금의 道廳에 해당한다. 천운정은 2023년말 복원되었는데 주희(朱熹)의 시〈관서유감(觀書有感)〉의 <天光雲影共徘徊>구절에서 유래했다.)
彈琴臺
邑內を距る一里、千仭の崖壁、漢江の深潭に望み、流水淙々として琴を彈ずるが如し、文祿役の古戰場にして、又樂師于勒の加耶琴を傳へた所である、一名大門山と謂ふ、破驛人なくして栖鴉樹梢に噪ぎ、昔歌舞宴樂の地、今や悲慘の歷史を語る。(읍내에서 1리(1里는 일본에서 쓰던 거리단위로 3,927m이다.) 떨어진 곳으로, 천 길 낭떠러지 바위 절벽이 한강의 깊은 못을 굽어보고 있으며, 흐르는 물소리는 쫄쫄 끊임없이 가야금을 타는 듯하다. 임진왜란의 옛 전장(文祿役の古戰場)이자,또 악사 우륵이 가야금을 전한 곳이기도 하다. 일명 대문산이라고도 부른다. 파괴된 역참에는 사람이 없고 둥지의 까마귀만 나뭇가지 끝에서 소란스러우니, 옛날 가무와 연회가 펼쳐지던 땅이 이제는 비참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문록의 역(文祿の役, 분로쿠노 에키)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당시 일본 덴노의 연호(1592년~1596년)이다. 여기서는 1592년 4월 있었던 탄금대 전투를 말한다.
*문록의 역 (文祿の役): 1592년 침략부터 정전 회담이 진행되던 시기까지 (임진왜란).
*정경의 역 (慶長の役, 케이쵸노 에키): 1597년 정전 회담 결렬 후 재침략한 시기 (정유재란). )
《충주발전지》에 나오는 사진과 동일한 구도로 선명하여 실었다. 일제시대에 나온 엽서.
탄금대를 다른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다.
앞에 보이는 절벽은 열두대의 모습이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忠烈祠
文祿役の古戰場にして、邑內を距る西南一里、丁丑の役清軍を擊攘して偉勳を樹てたる勇將林將軍慶業を祀る、祠は檐端壞れ、朱丹色褪せて、蕭々たる雨聲唧々たる蟲音哀情深し。
(임진왜란의 옛 전장으로서, 읍내에서 서남쪽으로 1리(1里는 3,927m) 떨어진 곳에 있다. 병자호란(丁丑の役)
때 청나라 군사를 물리쳐 위대한 공훈을 세운 용맹한 장수 임경업 장군을 모신 곳이다. 사당은 처마 끝이 부서지고 붉은 단청 색조차 바래어, 쓸쓸히 내리는 빗소리와 찌르르 울어대는 벌레 소리에 슬픈 감회가 깊어진다.
※병자호란을 정축의역(丁丑の役)이라 한 것은 병자호란(1636년 ~ 1637년)이 끝난 해의 간지(干支)가 정축년(丁丑年)이기 때문이다. 충렬사가 있는 곳이 丹月인데 조선시대에는 達川이란 말을 많이 썼다. 임진왜란의 옛전장이란 표현은 달천평야 일대에서 임진왜란 전투가 벌어진 것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이 일대의 지형은 『 황색종연초경작연혁사(黃色種煙草耕作沿革史, 1936년) 』에서 다루었다.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국립중앙박물관 설명에는 단호사(丹湖寺)라 써붙였는데 일제시대 충렬사 모습이다.
오른쪽 전각은 《정조어제달천충렬사비(正祖御製達川忠烈詞碑)》이다. 줄여 《어제달천충렬사비》라 한다.
지금 충렬사는 1978년 대대적으로 건물을 새로 짓고 정화사업을 벌인후의 모습이다.
陵 岩 里 重 石 鑛
陵岩里重石鑛 忠州郭(仰)城面陵岩里重石鑛は、三井物産株式會社の直營にして一箇月の一噸にして 産額五十噸内外であつて、郡內に於ける設備の完全にして規模大なる鑛 業所は、唯一陵岩里重石鑛あるのみのみ。
(충주 앙성면 능암리 중석광산은 미쓰이물산 주식회사의 직영으로서 한 달 생산량이 50톤 안팎에 달한다. 군내에서 설비가 완비되어 있고 규모가 큰 광업소로는 오직 능암리 중석광산이 유일할 뿐이다.
※仰城面은 仰岩面과 福城面에서 한 字씩 따서 만든 합성지명이다. 仰은 孟子에도 나오는 쉬운 漢字인데 제대로 풀이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 上)〉에 君子三樂이 나오는데 다음 구절이다.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教育之 三樂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들에게 아무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
퇴임한 교장 선생님들의 모임이 삼락회(三樂會)인데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앙성면은 노은면과 여주시를 경계로 남한강 줄기를 따라 길쭘하게 펼쳐져 있는데 면소재지에 가보면 남쪽으로 보련산과 국망산 높은 봉우리 위에 岩峰들이 펼쳐져 있다. 仰岩은 이를 잘 표현한 것이다. 바위들을 우러러 본다. 그러면 복성면(福城面)은 무슨 뜻일까?
일제시대에 나온《충주군지도, 1: 50,000.》
출처: 국가기록원.
통합전 앙성면의 앙암면과 복성면이 표시되어 있다.
○仰岩面 (앙암면)
青山里 (청산리), 沙店里 (사점리) , 江亭里 (강정리) , 末岩里 (말암리) , 永竹里 (영죽리), 東幕里 (동막리), 楮田里 (저전리), 栗木洞 (율목동), 毛亭里 (모정리), 中方里 (중방리), 鶴尾洞 (학미동), 庫村里 (고촌리), 鋤音里 (서음리), 楸洞里 (추동리), 泉浦里 (천포리), 檢丹里 (검단리)
○福城面 (복성면)
竹岩里 (죽암리), 蓮洞 (연동), 新岱里 (신대리), 月浦里 (월포리), 三堂里 (삼당리), 釣臺里 (조대리), 沙伊洞 (사이동), 內龍堂里 (내용당리), 有良里 (유량리), 智莊里 (지장리), 陵洞 (능동), 馬場里 (마장리), 伐川里 (벌천리), 葛峙里 (갈티리), 山亭里 (산정리),風美里 (풍미리), 河南里 (하남리), 本福里 (본복리), 敦潭里 (돈담리), 宮坪里 (궁평리), 龍堂里 (용당리), 唐坪里 (당평리).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 1912년』충청북도 충주군.
《필사본 조선지지자료,1914년》
충청북도 충주군 앙성면에서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충청북도 충주군편 맨 앞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忠州邑(충주읍) 아래 비고(備考)란에 部落名ハ大正三年四月一日区域名称変更以前旧名称ニシテ 里洞名ハ変更後ノ新名称ナリ 以下各面傚此(부락명은 대정 3년(1914년) 4월 1일 구역 명칭 변경 이전의 구 명칭이고, 리동명(里洞名)은 변경 후의 새 명칭이다. 이하 각 면(面)도 이와 같다.)]
이런 이유로 이 필사본의 연대를 1914년이라 보는 것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1914년 이후에 필사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디에도 써 있지 않으므로 1914년으로 본다.
본복(本福) 복성골 本坪里가 보인다.
법정리 본평리에 속한 마을로 당평(唐坪), 복성골(本福), 가느개(細浦)가 보인다. 여기서 복성골을 본복(本福)이라 한 것은 本家, 本洞이란 말을 생각하면 본복성(本福城)을 줄여 본복(本福)이라 했다고 봐야 한다.
앙성면 본평리 본복마을. 인터넷 자료.
앙성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있다.
복성면(福城面)의 복성(福城)은 본복(本福)마을의 원이름인 《복성골》에서 왔다고 봐야 한다.
그럼 복성(福城)은 무슨 말인가? 복숭아의 충주방언이 《복상》이다. 노은면 일대는 물론 이웃한 음성군 감곡면에 복숭아가 유명한데 《복성골》은 복숭아나무가 많은 마을《복상나무골》에서 온 마을이름이다 漢字로 福城이라 쓰니 어마어마한 뜻이 있는줄 아는 것이다. 복숭아의 방언 《복상》을 한자로 음차(音借)한 것이 福城이다.
최근에 입수한 책에서 인용한다. 이 책은 다음에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충주에서 나온 한지로 된 분량이 작은 古書다.
《桃之(복숑아) 夭夭 灼灼其華, 桃木名 華紅 實可食. 夭夭 少好之皃(貌와 同字) 灼灼 華之盛也. 木少則華盛 有蕡其實 蕡實之盛也. 其葉蓁蓁 蓁蓁葉之盛也.
복숭아나무 싱싱하고 그 꽃이 화사하게 피었네.
도(桃)는 나무이름이니, 꽃은 붉고 열매는 먹을 수 있다.
요요(夭夭)는 어린 나무가 신선하고 예쁜 모양이다.
작작(灼灼)은 꽃이 성하게 피어난 모양이다.
나무가 어리면 꽃이 성하고, 열매(蕡) 또한 주렁주렁 맺히니, 분(蕡)은 열매가 성하게 맺힌 모양이다. 그 잎이 무성하도다. 진진(蓁蓁)은 잎이 무성한 모양이다. 》
이 구절은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도요(桃夭)〉편에 나오는 주희(朱熹)의 《시집전(詩集傳)》주석 내용이라 한다. 복숭아를 《복숑아》로 적었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桃 복셩화 도 俗呼桃兒라 써있다. 俗呼桃兒란 일반 백성들이 조선말로 복셩아로 부른다는 뜻이다. 위에서 앙성면 본복마을 원이름 복성골이 복숭아에서 유래했다 했다. 조선시대에는 복셩화, 복셩아 또 달리 복숑아라 표기했으니 맞다고 확신한다.
중석(重石)은 텅스텐이고 원소기호는 W이며, 비중(밀도)은 약 19.25 g/cm³으로 금(Au) 19.3g/cm³보다 약간 작으나 철(Fe) 7.88g/cm³보다 무겁다. 텡스텐은 방산무기의 핵심 자원이다. 돈(噸)은 무게단위 ton을 한자로 음역(音譯)해서 쓴 글자다. 일제시대 《능암리중석광산》의 위치는 앙성면 능암리 능골로 나온다. 좀더 살펴보아야 하는데, 능암온천 뒷산인 송이산에서 10m쯤 파들어간 폐광을 본 적이 있다. )
弘法大師碑
佛教全盛時代の遺物にして、東良面開天寺の跡にあり
口碑の傳ふる所によれば、法鏡大師が先師空海上人の
功德を賞讚し、不忘の碑を建立したるものにして、千載の舊蹟
古色淒く、しん荊蘿茫々として昔を偲ぶ
(불교 전성시대의 유물로서 동량면 개천사(開天寺) 터에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법경대사(法鏡大師)가 선사(先師)인 공해상인(空海上人)의 공덕을 칭송하고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천년의 옛 자취는 예스러움이 그윽하고, 가시 덩굴이 우거져 아득한 모습에서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법경대사(法鏡大師, 879~941년)는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고, 925년 당나라에서 귀국하자 경애왕은 국사로 예우하고 정토사 주지로 청하였으며,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法鏡’의 시호와, ‘慈燈’의 탑명을 내렸다 한다.
홍법대사는 통일신라 신덕왕대(재위: 912∼917)에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였고, 그 뒤 당나라에 들어가 각지를 편력하고 귀국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의 칭호가 내려지고, 목종 때 국사에 봉하여 봉은사에 머물렀다. 그 뒤 정토사에 기거하다 입적하자, 목종은 시호와 탑명을 내리고 손몽주(孫夢周)에게 비문을 짓게 하여 1017년(현종 8)에 탑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법경대사(法鏡大師)가 선사(先師)인 공해상인(空海上人)의 공덕을 칭송하고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는 구절은 잘못된 것이다. 空海上人은 생몰년대가 774년 ~ 835년으로 일본불교 진언종의 개조(開祖)이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실상탑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實相塔)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狂 佛
忠州郡廳内庭にあり、新羅時代の坐佛であつて、天蓋な家とし風雪に晒(원문에 酒자로 써있는데 誤字다. 晒字가 맞다. 고친다.)さるゝ數百年、古色蒼然として信感交互々銘す、國寶の一なり。
(충주군청 안뜰에 있는 이 불상은 신라시대의 좌불이다.
머리 위를 가릴 천개(天蓋)없이 노천에서 수백 년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아오며 견뎌온 모습이 고색창연하여,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신심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국보중 하나이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정식명칭은 《충주철조여래좌상(忠州鐵造如來坐像)》이다. 지금 충주 지현동 대원사(大圓寺)에 모셔져 있다.
中央塔(원문에는 中史塔으로 잘못 써있다.)
邑内を距る二里、可金面塔坪里にあり、新羅元聖王二十年の建立に成
其の由來詳かならざると雖も朝鮮の中央を示す標せ るものゝ如し、高さ數十仭,
漢江の水に映じて、宏壯偉觀な極む。
(읍내에서 2리(1里는 3,927m이다. 2리는 7,854m) 떨어진 가금면 탑평리에 있다. 신라 원성왕 20년(원성왕은 신라 38대왕으로 798년 원성왕 14년에 사망했다. 따라서 원문의 원성왕 20년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세워졌다. 그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한반도)의 중앙을 나타내는 표지(標示, 표지(標識))로 삼은 듯하다. 높이는 수십 척에 달하며, 한강 물빛에 비치는 모습이 매우 웅장하고 장엄한 경관으로 비할데 없이 뛰어나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일명 중앙탑이라 하고 일대가 명소(名所)가 되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샤신(寫眞)
충주 오테마치(大手町) 히라노 슈잔(平野秀山).
사진관을 광고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책에는 광고가 많이 나온다. 출판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협찬을 받아 책에 광고를 실은 것으로 봐야 한다.
사소하게 넘길 수 있지만 당시의 충주 지역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되므로 상세히 소개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10년전에 이미 충주에 일본 상인과 기술자와 사업가들이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근대 문물도 전해졌다고 봐야 한다.
카이세키 오료리(會席御料理) --- 코스 형태로 나오는 일본의 연회용 정식 요리.
키요시마야(淸島屋)
충주 錦町(니시키쵸)
忠州發展誌發刊ヲ祝ス (충주발전지 발간을 축하합니다)
충청북도 충주 본정 4정목 (本町 四丁目, 혼마치 요쵸메, 4街)
和洋菓子製造卸商 藤井爲藏商店
(와요가시 세조 오로시쇼 후지이 타메조 쇼텐)
*和洋菓子 (화양과자): 일본 전통 과자와 서양식 과자(양과자/빵·제과류)를 모두 의미.
*製造卸商 (제조 도매상): 과자를 직접 만들어 도매(도매급 납품)로 판매하는 상점.
*藤井爲藏商店 (후지이 타메조 상점): 후지이 타메조(藤井爲藏)라는 일본인 상인의 이름을 딴 가게 이름.
四季流行帽子 (사계절 유행 모자)
メリヤス類一式 (메리야스류 일체)
裝身具化粧品 (장신구·화장품)
和洋雜貨帽子メリヤス (화양 잡화·모자·메리야스)
化粧品裝身具 (화장품ㆍ장신구)
AK(마크)
--- A = Akiyama (주인 성씨인 아키야마), K = Kaisha (會社의 일본발음)을 딴 영문약자. 쉽게 상점 로그다.
秋山洋物店 (아키야마 양물점)
*양물점(洋物店)'은 서양 잡화, 의류, 화장품 등을 파는 가게를 의미한다.
忠淸北道忠州日之出町 (충청북도 충주 히노데쵸)
電信略號 (ア)又ハ(アキ) --- (ア)又ハ(アキ)는 아 또는 아키로 아키야마(秋山)에서 따온 단축코드다.
建築請負業 (건축청부업) --- 건축도급업.
충주 금정(錦町, 니시키쵸)
신무라 쇼이치 (新村松一)
和洋菓子製造卸小賣(화양과자 제조도소매)
*和洋菓子: 일본 전통 과자(화과자)와 서양식 과자·빵류(양과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製造卸小賣: 과자를 직접 만들어 도매(卸, 오로시) 및 소매(小賣, 코우리)로 모두 판매한다는 뜻이다.
忠州本町二丁目(혼마치 니쵸메, 2街)
田中鶴衛 (타나카 카쿠에이)
土木建築請負 (토목건축 도급, 토목ㆍ건축 공사수주)
氷貯藏販賣 (얼음저장 및 판매)
--- 얼음을 저장해서 판매한다는 뜻.
忠州日之出町(충주히네데쵸)
本部由三郎(혼부 요사부로)
忠州吾妻町(아즈마쵸)
建築請負(건축청부)
--- 청부는 도급을 받아 시공한다는 뜻.
青山文治(아오야마 문지)
自転車 附屬品 修繕一切(자전거 및 부속품 수리일체)
忠州本町二丁目(혼마치 니쵸메)
長谷川自転車店(하세가와 자전거점)
電略(ハセ) --- 전신약호(電信略號), 하세(ハセ)는 주인이름 하세가와에서 딴 것이다.
忠淸北道 忠州 大手町(오테마치)
土木請負(토목도급)
坂本治太郎(사카모토 지타로)
忠州 龍山里(용산리)
瓦製造販賣 (기와제조판매)
山本八郎 (야마모토 하치로)
祝忠州發展誌發刊ヲ祝ス (충주발전지(忠州發展誌) 발간을 축하합니다)
土木鑛山測量 (토목·광산 측량 / 건축 설계)
堀井佐傳次 (호리이 사덴지)
忠州 龍山里 (용산리)
p85
○附錄 忠州著名人物名鑑 (부록 충주저명인물명감)
*大手橋外之部 (대수교외의 부)
農農業 (농업): 市川晉吉 (이치카와 신키치)同 (농업): 武川平治 (무카와 헤이지)
*大手町之部 (대수정의 부)味噌醬油釀造業 (미소·장유 양조업): 西村市郎 (니시무라 이치로)
農業 (농업): 笹本政平 (사사모토 마사헤이)
同 (농업): 鈴木政一 (수즈키 마사이치)
農業 (농업): 飯野 (이이노 - 이름 미기재)
請負業 (청부업): 松本作市 (마츠모토 사쿠이치)
農業 (농업): 鹽田禎介 (시오타 테이스케)
建築業 (건축업): 伊藤龍次郎 (이토 류지로)
寫眞業 (사진업): 平野秀山 (히라노 슈잔)
僧侶 (승려): 佐藤淨海 (사토 조카이)
運送業 (운송업): 永留信之 (나가토메 노부유키)
吳服太物商 (포목점): 三浦淺次 (미우라 아사지)
印刷業 (인쇄업): 加藤建三郎 (카토 켄자부로)
賣藥業 (매약업 - 약품 판매): 大崎卯十 (오사키 우주) 菓子商 (과자점): 伊藤愛次郎 (이토 아이지로)
土木請負業 (토목청부업): 坂本治太郎 (사카모토 지타로)
質商 (전당포): 川本時之助 (카와모토 토시노스케)
p86
*校峴之部 (교현의 부)
農業 (농업): 大瀨由平 (오세 요헤이)
*本町之部 (본정의 부)
菓子商 (과자점): 濱中律 (하마나카 리츠)
雜貨商 (잡화점): 川本角一 (카와모토 카쿠이치)
土木建築請負業 (토목건축청부업): 宇野伊三郎 (우노 이삼랑)
指物業 (목공업/가구 제작): 櫻井芳次郎 (사쿠라이 요시지로)
金物製麵業 (철물 및 제면업): 大石長作 (오이시 초사쿠)
會社員 (회사원): 栢之間亮 (카야노마 료)
食料雜貨商 (식료잡화점): 絹谷宇八 (키누야 우하치)同
(동 - 식료잡화점): 宇野佐平 (우노 사헤이)
三日月湯 (미카즈키 탕 - 목욕탕): 中野次郎 (나카노 지로)
飲食店 (음식점): 後藤松次 (고토 마츠지)
齒科專門醫 (치과 전문의): 山村源治 (야마무라 겐지) 建築業 (건축업): 長田新藏 (오사다 신조)
自転車業 (자전거업): 長谷川源之丞 (하세가와 겐노조)
質商 (전당포): 赤松時圓 (아카마츠 토시마루)
賣藥業 (매약업): 上村賀一 (우에무라 카이치)
米穀商 (미곡상 - 쌀집): 石丸靜夫 (이시마루 시즈오) 農業 (농업): 高村甚一 (타카무라 진이치)
菓子商 (과자점): 田中鶴衛 (타나카 츠루에)
魚菜商 (어채상 - 생선 및 채소점): 小村久助 (코무라 히사스케)
洋服店 (양복점): 古市幸助 (후루이치 코스케)
藥種商 (약종상 - 약재상): 二軒谷市松 (니켄야 이치마츠)
漬物商 (절임음식점): 村田德一 (무라타 토쿠이치)
製麵業 (제면업): 梅木傳右衛門 (우메키 덴에몬)
p87
*本町之部 (본정의 부)
食料雜貨商 (식료잡화점): 原口一二 (하라구치 이치지) 旅館忠北館 (여관 충북관): 福山忠太郎 (후쿠야마 추타로)
質商 (전당포): 原口ヨネ (하라구치 요네)
剝製業 (박제업): 熊谷團藏 (쿠마가이 단조)
鍼力業 (침구/침술업): 石井福松 (이시이 후쿠마츠)
點燈業 (점등업): 中村藤一 (나카무라 토이치)
建具商 (창호/문구점): 中下四郎次 (나카시타 시로지) 菓子商 (과자점): 藤井爲藏 (후지이 타메조)
履物商 (신발점): 植田儀作 (우에다 기사쿠)
理髮業 (이발업): 松山鐵造 (마츠야마 철조)
醫師 (의사): 福岡榮太郎 (후쿠오카 에이타로)
吳服商 (포목점): 水野彌吉 (미즈노 야키치)
*寺內町之部 (사내정의 부)
代書業 (대서업): 新田一元 (니타 이치겐)
*日之出町之部 (일출정의 부)
小間物商 (잡화/화장도구점): 西端芳之助 (니시하타 요시노스케)
料理仕出日吉 (출장 요리 전문점 히요시): 松村力松 (마츠무라 리키마츠)
疊業 (다타미업): 黑瀨次郎 (쿠로세 지로)
和洋雜貨商 (화양 잡화점): 秋山兼吉 (아키야마 카네키치)
旅館鶴屋 (여관 츠루야): 宮地幸吉 (미야치 코키치)
藥種商 (약종상): 弓削義次郎 (유게 요시지로)
理髮業 (이발업): 豐田力松 (토요다 리키마츠)
飲食店 (음식점): 宮野庄太郎 (미야노 쇼타로)
測量業 (측량업): 竹內仁之助 (타케우치 진노스케)
鑛業 (광업): 廣富金次郎 (히로토미 긴지로)
p88
*仲之町之部 (나카노초/중정의 부)
豆腐業 (두부업): 星野梅吉 (호시노 우메키치)
鑛業 (광업): 馬場廣太 (바바 히로타)
新聞記者 (신문 기자): 金谷雅城 (카네야 마사키)
鐵工業 (철공업): 關谷政藏 (세키야 마사조)
醫師 (의사): 山崎泰次郎 (야마자키 야스지로)
建築業 (건축업): 中島宇八 (나카지마 우하치)
貸家業 (임대업/대여업): 外村トミ (소토무라 토미)
*錦町之部 (금정의 부)
旅館玉川 (여관 타마가와): 小川豐吉 (오가와 토요키치)
請負業 (청부업): 新村松市 (신무라 마츠이치)
鑛業 (광업): 內田亥內 (우치다 이나이)
金貸業 (대부업/금융업): 栗田英治 (쿠리타 에이지)
農業 (농업): 中川龍藏 (나카가와 류조)
料理店 (요리점): 宇野コン (우노 콘)
雜貨商 (잡화점): 木村房次 (키무라 후사지)
自転車業 (자전거업): 佐藤留藏 (사토 토메조)
忠州湯 (충주탕 - 목욕탕): 井上庫八 (이노우에 쿠라하치)
雜貨商 (잡화점): 井上肇 (이노우에 하지메)
菓子商 (과자점): 庄田竹次郎 (쇼다 타케지로)
下宿業廣島屋 (하숙업 히로시마야): 上田安太郎 (우에다 야스타로)
旅人宿 (여인숙/숙박업): 星野竹次 (호시노 타케지)
料理店 (요리점): 小島政吉 (코지마 마사키치)
同 (요리점): 川崎忠次郎 (카와사키 추지로)
同 (요리점): 佐藤カ子 (사토 카네)
同 (요리점): 稻田罵治 (이나다 마지)
p89
*琴平町之部 (금평정의 부)
金貸業 (대부업/금융업): 堤タッツ (츠츠미 타츠)
製繩業 (제승업 - 새끼/새끼줄 제조): 早川京太郎 (하야카와 쿄타로)
*吾妻町之部 (아즈마초/오처정의 부)
秦野町之部 (하타노초/진야정의 부)料理店 (요리점): 原田トモ (하라다 토모)農業 (농업): 新井田四郎 (아라이다 시로)建築業 (건축업): 鹽見賴之助 (시오미 요리노스케)請負業 (청부업): 青山文次 (아오야마 문지)食料雜貨商 (식료잡화점): 古道龜松 (후루미치 카메마츠)
*奏野町之部(하타노초, 주야정지부)僧侶 (승려): 清水機雄 (시미즈 기오)
*龍山里(용산리)農業 (농업): 山根淸一郎 (야마네 세이이치로)
同 (농업): 岡田市藏 (오카다 이치조)測量業 (측량업): 堀井左傳次 (호리이 사덴지)鑛業 (광업): 原德藏 (하라 토쿠조)
p90
충주발전지 終
*三ヶ月湯 / 中野次郎 / 忠州 本町 二丁目
(미카즈키 탕(목욕탕) / 나카노 지로 / 충주 본정 2정목)
*自転車附屬品販賣 並ニ修繕一切 / 佐藤自転車店 / 忠州錦町
(자전거 부속품 판매 및 수리 일체 / 사토 자전거점 / 충주 금정)
*大瀨由平 / 忠州 校峴里
(오세 요헤이 / 충주 교현리)
*川本時之助 / 忠州 大手町
(카와모토 토시노스케 / 충주 대수정)
*活版 印刷 / 忠州 大手町 / 忠州活版印刷所 / 加藤健三郎 (활판 인쇄 / 충주 대수정 / 충주 활판 인쇄소 / 카토 켄자부로 )
*忠州本町三丁目 / 最新流行 洋服調進 / 古市洋服店 / 古市幸助 (충주 본정 3정목 / 최신 유행 양복 맞춤 / 후루이치 양복점 / 후루이치 코스케 )
*壽司 鉢物 洋食 其他出前御好ニ應ズ / 食道樂 / 日吉 / 忠州日之出町
초밥, 일식 요리(鉢物), 양식 등 취향에 맞게 접대 요리 차림 / 식도락 / 히요시 / 충주 일출정
*忠州理髮組合 / 日之丸床 / 改良床
(충주 이발조합 / 히노마루 이발소 / 개량 이발소)
*小間物 化粧品 / 西端芳之助 / 忠州日之出町
(잡화(잡화류/화장도구)·화장품 / 니시하타 요시노스케 / 충주 일출정)
*履物 雨具 繪葉書 / 植田儀作 / 忠州本町四丁目
(신발·우구(비옷/우산)·그림엽서 / 우에다 기사쿠 / 충주 본정 4정목)
會席御料理 / 一心亭 / 忠州日之出町
(회석(가이세키) 요리 전문 / 이신테이 / 충주 일출정)
印判彫刻 / 伊藤茂 /大正五年十月二十
(도장 조각 / 이토 시게루 / 충주 본정 3정목)
大正五年十月二十日 印刷 (대정 5년 10월 20일 인쇄)大正五年[ 十月二拾日]發行 (대정 5년 10월 20일 발행)
不許複製 / 定價六拾錢 (불허복제 / 정가 60십전)
*著作者兼發行者: 朝鮮忠清北道忠州郡邑內面 金谷雅城 (저작자 겸 발행자: 조선 충청북도 충주군 읍내면 가네야 마사키)
*印刷者: 東京市京橋區日吉町十番地 渡邊爲藏 (인쇄자: 도쿄시 교바시구 히요시초 10번지 와타나베 타메조)
*印刷所: 東京市京橋區日吉町十番地 民友社 (인쇄소: 도쿄시 교바시구 히요시초 10번지 민우사)
*發行所: 忠清北道 忠州 金谷商會 (발행소: 충청북도 충주 가네야 상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