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이주송
머릿속에 내가 모르는 길이 났나 불빛이 없는 지하도를 걷는 듯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머리가 조이고 어깨는 공중을 버티기 힘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뼈들, 낯선 얼굴들이 오가고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은 음을 벗어나
목소리 몇 가닥엔 비음 섞인 이야기책을 읽는 소리, 타이어 같기도 미얀마 말 같기도 아프리카를 건너온 코끼리 숨소리
선글라스를 쓰고 걷는 사람들은
그렇고, 그래서라는 말을 수시로 내뿜어
접속사가 자꾸 귀찮게 해
나를 찾고 싶어, 더듬을수록
손가락 숫자는 늘어나고 감정은 굴절돼
휴지를 드릴까요 붕대를 드릴까요
두루마리로 말리는 시간에 뒤죽박죽 얽히는 스토리, 머리에 침을 꽂고 불가사리처럼 누워 헤매다 보면 계단 없는 머릿속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여기저기 나를 닮은 사람들
그림자에 묻힌 발자국을 꺼내주세요
MRI 통돌이 속에서
끼이끽 뚜 뚜 뚜 굴착기 클랙슨을 울리며
나인 듯 너인 듯, 내 머릿속을 함부로 산책하는 자는 누구인가
번역기를 돌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도마뱀 꼬리로 툭툭 끊어지는 백색소음들 런, 런, 도망쳐야 해
번지점프를 즐기기 좋은 오월과 유월의 경계
견과류를 추천한다고요 모자도 괜찮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