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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이단을 기성 교회와 구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통 교회와 이단, 성경적인 신앙과 비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처음 전도된 종교 단체의 영향으로
때로는 불제자가 되고, 때로는 천주교인이 되고 때로는 크리스챤이 되고,
때로는 소종파, 이단의 늪에 빠집니다.
소위 말하는 모태 신앙은
부모의 종교를 생명과 함께 물려받은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에 눈 뜬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기준으로 편향적 시각을 가졌습니다.
누구든 어느 종교가 참 종교인가를 탐색하고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비교종교학을 공부하지 않은 한 어느 종교인이든
현재 몸 담고 있는 종교만큼 타종교에 대한 이해는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떄문에
불교나 천주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도 예불이나 미사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불국사와 해인사와 통도사 등 유명 사찰의 출사를 다녔지만
스님을 만나도 낯설게 합장하여 인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스님이 성경을 읽어도 크리스챤이 쉽게 되지 않고
목사가 불경을 연구해도 불제자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종교든 몰입하면 종교의 힘은
그 종교적 광신의 늪에 빠지게 할 만큼 위력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종교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배타적 종교인으로 편향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21세기의 특징인 종교 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초한 종교 상대주의로 혼합과 융합과 포용의 가치를 가졌으나
성서적 기독교 신앙의 파괴현상을 낳았습니다.
종교의 차별금지 법안은
영국의 천년된 교회당이 모슬렘의 사원이 되는 비극적 현상을 낳았습니다.
종말론적인 종교 다원주의 시대 성서적 기독교 신앙은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왕래하며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을 찾는 예레미야의 갈증이 될 것입니다.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남왕국 유다 곧 이스라엘의 종말적 상황은
모세와 사무엘 뿐만 아니라 노아와 다니엘과 욥의 성서에 나타난 공의로도 자기 생명만 구원할 뿐
이스라엘의 멸망, 그 심판에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숩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15:1)
☞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14:20)
마태복음은 종말에 대한 에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종말적인 신앙의 경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4-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쟁과 기근과 지진은 재난의 시작이요,
그러한 환난 가운데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되는 내밀한 사역은 세상 끝날 떄까지
예수의 하나님 나라, 그 복음의 일꾼이 담당해야 할 역동적인 사역입니다.
율법의 마침과 완성으로 시작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신약의 교회를 통하여 모든 민족, 온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케 하는 물세례를 통하여
성령으로 세례 베푸실 메시야를 증거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메시야의 사역은 율법을 완성한 신약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과 사도들이 전하는 완전한 구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구원의 복음은 성령의 인치는 사역이요,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그 믿음의 역사로 충만하였습니다.
신약의 복음 증거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문제는 복음이 증거되기 전에 형성된 타종교의 텃밭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복음의 가라지, 곧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에 오염되지 않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곡을 추수하는 복음의 사명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으로 오염되었고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었으며 서머나 교회는 사탄의 회가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며 음행하였으며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였고
사데 교회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없었으며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탄의 회가 있었으나 인내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더욱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약지대의 초대교회 형편이 이럴진대
그 후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와 근.현대 기독교의 역사는 이단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교부 시대에 형성된 신학은 헬라 철학에 기반을 두었고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중심으로 중세 천년의 로만 카톨릭을 형성하였으며
16세기 칼뱅과 루터와 쯔빙글리는 종교개혁 시대를 열었으며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17,8세기의 개신교 부흥을 일으켰으나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으로 포스트 모던에 함몰되어 프리모던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세계 1,2차 대전의 후유증을 겪은 포스트모던 시대 종교 다원주의는 세계 종교의 연합과 통합 운동으로
성서지대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하는 종교적 상대주의를 지향하며 인본주의 신앙의 기치를 더높였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미국을 중심한 근본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 신앙이 전래되었으나
1925년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전래되어 해방신학과 민중 신학의 토대를 구축하였습니다.
구한말에 전래된 한국의 기독교는 일제 시대 고난과 핍박 가운데 성장하면서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발전하였고 세대주의 종말론은 그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로 혼합주의를 경험한 한국 교회는
한국 전쟁과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으로 토착화되었습니다.
민중신학은 민주화에 동원되었고
보수신학은 권력에 기생하여 조찬기도회에 동원되었습니다.
권력에 순응하는 한국 교회는
민생종교로 성장하여 대형교회의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보수 신앙의 빼대를 이루는 주일성수와 새벽기도회와 십일조의 교조적 신앙은
"성공과 번영"이라는 현세적 무속신앙의 꽃을 피웠습니다.
한국 교회 13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소중파로 불리는 이단에 둘러쌓인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며 이단과 공생하며 상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의 가라지 비유는
한국 교회의 종말론적인 현상이 되어 이단과 공생하며 상생하는 비극적 현상을 낳았습니다.
한국 교회의 텃밭에 함께 자란 복음의 가라지는
이단으로 정죄된 소종파를 비롯하여 민중신학과 영성신학과 번영신학과 새대주의 종말론 등
기복과 공덕과 맘몬의 현세적 무속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사라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그 천국의 복음은
성서지대의 순례하는 복음으로 복음의 가라지에 파묻히고 갇혀있습니다.
성서지대의 순례하는 복음은
교조주의 보수 신앙과 신비주의 영성 신앙과 사회주의 좌파 신앙의 철옹성에 갇혀버렸습니다.
한국 교회의 텃밭은
결실할 때 곡식은 보이지 않고 가라지만 가득한 바람의 겨가 되었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의 가라지로 가득한 한국 교회의 텃밭은
원수가 덧뿌린 가라지가 결실하여 종말론적인 추수의 때가 되었습니다.
일루미나티의 상징으로 가득한 대형교회당의 모습은
부활절 때마다 십자가의 M을 강단의 장식으로 치장하여 상징적 의미를 더하였습니다.
맘몬의 신앙으로 이룩한 대형 교회는
해방후 70년 동안 북한의 교회를 말살한 3대 세습 독재자를 평화의 사신으로 그 방남을 환영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정치적 평화와 평등과 인권과 민주와 복지의 가면놀이에 종교적 장단을 맞춰
좌파적 신앙으로 평화의 굿판을 벌이는 한국 교회는 과연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 그 알곡인가? 가라지인가?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며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단2:34-35)
☞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3-44)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한 그 나라, 곧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메시야의 나라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성령의 충만으로 영생의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는 그 나라 백성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주 예수의 복음이 한국 교회의 텃밭에 곡식으로 가득할 때
한국 교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주의 몸된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으로 오염되었듯
130년 한국 교회는 원수가 덧뿌린 가라지가 성장하여 만삭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고
시편 기자는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며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고 탄식하였습니다.
맘몬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기복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공덕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교조적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영성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알파 영성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중보 기도를 통한 성령의 임파테이션 곧 그 전이 운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신사도 운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각종 프렌차이즈식의 인본주의 교회 성장 시스템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백투더예루살렘 복음의 서진 운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영적도해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무속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연금술사의 비전과 대망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사회주의 민중 신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좌파적 밥상공동체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인본주의 실존 신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PC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좌파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직통계시의 방언 기도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영서와 방언 설교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이현령비현령 비유풀이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구속사적 알레고리와 메타포는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시한부 종말론과 세대주의 종말론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영생불사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천년왕국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신인협력 구원설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삼분설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화체설을 비롯한 믿으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크리슬람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동성애를 수용하는 신앙은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이 외에도 양의 탈을 쓴 복음의 가라지는
지면에 쌓을 곳이 없도록 많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이비와 이단의 놀이터가 되어
그들과 공생하고 상생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130년 동안 성장하면서
이렇게 많은 원수가 덧뿌린 가라지가 결실하여 이처럼 곡식의 쭉정이만 남았습니다.
본질적으로 사이비와 이단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교회는
과연 성령으로 세례 베푸는 메시야 사역의 복음적인 신앙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복음의 가라지를 추수꾼이 불태우고 나면
곡식의 알곡은 과연 얼마나 남을까?
곡식의 가라지와 알곡의 쭉정이와 바람의 겨와 폭풍의 검불이 된 한국 교회는 참된 진리의 인도를 받아
성령으로 세례 베푸시는 메시야의 복음을 온전히 증거하여
성령의 인치는 구원의 역사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