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0:15-21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Living with your Dreams, by David Seamands 라는 책에보면 창세기 50:20을 50/20 vision 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좋은 눈을 20/20 라고 부르는데 50/20은 큰 picture을 보는 눈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만들어 가시고 계시며 뒤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그러한 뜻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때로는 사용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44:2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고레스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또 45:4에 보면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그리고 예레미야 25:9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 대해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종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것이라." 27: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왕을 가리켜 "나의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인도네시야라는 나라에 큰 부흥이 1960대 70년대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20년동안 Sukarno 라고 하는 대통령이 그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는 민주주의적 이었는데 점점 독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공상당은 아니었지만 공상당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었고 그러다 보니 그나라 사람 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공상당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세번째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965년도에는 공산당원들이 자신있게 구테타를 시도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원래 1967년도에 하려고 하였지만 너무 잘되어가고 있어 미리 시도를 한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이 있는 왕궁을 점령해버렸고 가장 힘이 있는 장군 여섯명을 죽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Suharto 라고 하는 장군은 그날 따라 그의 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하루 밤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살아남았고 군대를 모아 쿠데타를 눌러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장군의 딸이 아팠던 것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하여 그나라가 공산당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인구가 다섯번째로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나라가 그때에 공산당으로 넘어갔다면 인구가 그렇게 많은 두나라 중국과 인도네시야가 합하면 세계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그런 일이 있고난후 그나라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나라 백성들이 공산당들에 분노하여 그때 40만명이 넘는 공산당 사람들을 학살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무슬람이 되었을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산당원들이 무슬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공산당원들을 학살하는데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명의 공산당원들과 무슬람 사람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개종하였습니다. 그후 1년 반사이에 25만명이 기독교로 개종되었고 지금은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약 85%가 무슬람이고 기독교인들은 약 9% 정도 밖에 안되지만 무슬람의 숫자가 줄어지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심한 핍박가운데서도 늘고 있다고 하여 무슬람 사람들의 걱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야곱과 그의 11 아들들이 애굽으로 이민 간것이 이미 17년이 지났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간것은 그가 130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147세가 될때까지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 죄책감아 오래가는 것같습니다. 오늘 말씀 15절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크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금 까지는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우리를 그냥 봐주었겠지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가 우리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하고 우리가 행한 악을 갚지는 않겠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 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이것은 거짓말이기가 쉬운것 같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런 말을 하려면 왜 직접하지 형들에게 말하겠습니까? 그들의 말은 두려워서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은 그때로 부터 30년전에 저질렀던 일로 인해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그때로 부터 17년전에 창 45:5에 보면 요셉이 이미 형들에게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분명히 그렇게 용서를 하였는데도 그들은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의 그런 말을 들은 요셉은 그 말을 듣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이 앞에 다시 와서 엎드리여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에 요셉이는 그들에게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합니다. 요셉의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Am I in the place of God? 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30:1에 보면 라헬이 자식이 안생기는 것이 답답하여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하였을 때에 야곱은 대답하기를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말은 자식을 낳게하고 안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왜 나에게 따지느냐는 것입니다. 주석가 Keil and Delitzsch는 말하기를 "Am I in a position to interfere of my own accord with the purposes of God, and not rather bound to submit to them myself?" 라고 해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방해 하겠느냐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분를 품으면서 형들 어떻게 그랬을 수가 있느냐, 내가 얼마나 마음이 상해서 울었는지, 고생했는지 모를 것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요셉이는 형들의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마음에 원한이 없었고 이미 마음에는 용서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하였을까요? 우리 주변에도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무시한 사람을, 나에게 욕을 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수가 있을까요? 원한을 갖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깨달은 것 하나는 그의 어려웠던 과거를 감독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20절을 보면 요셉은 그 모든 역사뒤에 형들이 자기를 구덩이에 빠트리고 놀리고 조롱하였던 것, 그리고 요셉이가 통곡을 하며 자기를 살려달라고 하였을 때의 아픔과 슬픔뒤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을 받고 다시 회복되어 가고 있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였다고 소리를 질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의 억울함과 슬펐던 때도 바로 그뒤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요셉이는 더 형들을 용서해 줄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는 자기가 겪었던 모든 아픔과 괴로움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할 때에 형들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할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과의 다른 점하나는 그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시편 43편 1-5절까지와 44편 1-8절까지를 읽어 보면서 느낀 것 한가지는 그 13절이 되는 말씀에 "하나님"과 "주"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 13절이 되는데 한절 한절 보면 "하나님"이나 "주"란 단어가 안나오는 구절은 44:6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도 보면 "나는 내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그 구절도 자기의 가진 무기로 자신을 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응답이 없을 때에도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다윗은 하나님은 자기의 힘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자기는 오직 하나님만 바란다는 말을 고백하며,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을 안하시니 버리시냐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식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는 그의 모든 삶에 일에 하나님 중심되게 살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넓은 마음을 가질수 있었고 형제들의 악을 선으로 갚을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복을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교만이요 월권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일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용서입니다. 사랑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무시하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상처, 기분 나빴던 것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용서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큰 일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믿을 때에는 나의 마음을 좀 넓게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요셉이의 형들 처럼 요셉을 괴롭힌 사람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마음에서 용서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실 뿐아니라 자신을 해하려 하는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에겐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우리는 모두 잘모릅니다. 모두 잘안다면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지금 어려운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꾸셔서 좋은 일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용서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원한과 분노와 미음과 시기와 질투를 품고 있으면 그것이 독이 되어서 나의 정신 세계를 괴롭히고 나의 신앙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기지 못하게 하든지 내몸에 병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또 용서를 서로 받아야 합니다.
또 요셉이 그런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인내할수 있었습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우리 주위에도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세가지 의 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는 원망하느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친구 잘 못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친구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수가 없어"라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될대로 되라," "어떻게 되겠지"라고 하며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번째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겠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거야"라고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은 세번째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그는 모든 일뒤에 하나님이 계시고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얼마든지 좌절할수 있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았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교도소장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온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섬기며 그들의 꾼꿈을 해셕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아십니까? 사람이 머리가 좋다고 성공했다는 말은 들어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꾸준히 인내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Edison 이 발명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인내를 가지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만 계속 인내해서 그런일을 해냈습니다. Abraham Lincoln 같은 사람은 정치에서 여러번 실패했지만 나중에는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중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요셉도 만약에 감옥에 갇혔을 때에 왜 나는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이곳에 또 묵여있어야 하나 하고 보디발과 그의 아내를 원망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도 술맡은 관원장과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도와 주었기 때문에, 인내하였기 때문에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해석대로 술맡은 관원장은 다시 지위가 회복되어 왕앞에 서게 되었지만 그는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2년동안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습니다. 만약에 술맡은 자가 가자마자 바로왕에게 요셉에 대해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곧 풀려나가 고향으로 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당시 2년동안 요셉이는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 생겼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사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은 우연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않좋은 일이 일어나면 "재수없다"라고 말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22장 29절 이하를 보면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동맹하여 아람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때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동맹군인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자기는 변장을 하고 전쟁에 나갈 텐데 당신은 왕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적군인 아람나라의 벤하닷 왕은 부하들에게 다른 사람과 싸우지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합 왕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벤하닷 왕의 명령을 받은 아람나라 군사들은 왕복을 입은 한 사람을 추격했다가 그 사람이 아합 왕이 아닌 것을 알고 더이상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아람나라 병사들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체포하는데 싶해샜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22장 34절을 보면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람나라의 한 병사가 아합인 줄 모르고 그냥 활을 쏘았는데 아합이 맞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 병사 입장에서 보면 "우연히 아합이 맞았다"고 볼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38절에는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왕이 그렇게도 죽지 않아보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게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라도 땅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로마 시대에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16세 된 영국 소년이 납치되어 야만인들이 노예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 소년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처절한 현실 앞에서 그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5년후 그 소년은 170 마일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탈출에 성공하여 마침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후 그 소년은 매일 밤 같은 내용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과거 네가 납치되었던 곳으로 돌아가 그 야만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일랜드의 성자로 존경받고 있는 성 피트릭입니다. 그는 노예로 납치했던 사람들을 용서했을 뿐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수 있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쉽게 판단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정적인 해석을 하시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요셉처럼 어려운일들을 이길수 있는 힘이 생기고 인내할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처럼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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