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에 사는 동생은 국제학교(영어유치원) 선생님이다. 방학 동안 winter camp가 열리는데 서은이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마침 설연휴가 끼어있어 양가 부모님 뵙기도 좋고 아이들도 사촌들 만나기 좋아하니 잘 되었다. 수업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반까지. 집에 오면 3시이기에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자연스레 고민이 되었다. 매일 루틴대로 공부하기, 중학생 되는 큰 조카 공부 봐주기 등 2주만에 하기에 너무 빡빡하게 계획을 짜며 욕심을 부렸는데, 며칠이 지나며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아이들과 우쿨렐레 연주는 악기까지 준비했으니 꾸준히 하자.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고 가까이 사시는 친정 부모님과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보내자. 강서구 근처 가까운 곳으로 아이들과 다녀보고 저녁에 일기를 함께 쓰자. 이런 마음으로 즐거운 2주를 보내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1. 부산현대미술관 책그림섬 도서관
아이들과 가기 가장 만만한 곳이 도서관이다. 부산현대미술관 지하에 있는 책그림섬 도서관은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한 번씩은 들르게 되는데, 도서관 자체가 놀이터같은 데다 멋진 전시회도 덤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도서관을 마주보고 'post modern child'라는 주제로 어린이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함께 즐기기 딱이다.
책그림섬은 미로같기도 하고 늑목같기도 한 재미있는 구조이다. 신발을 벗고 예약 확인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서 들어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튕기듯 들어가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길을 따라 도서관을 한 바퀴 돈다. 2층의 조그만 그물 놀이터 공간도 들러줘야 하고 서가를 뱅뱅 돌아 1층으로 내려오면 손에는 이미 책 한 두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 앉을까 즐거운 고민~ 서은이가 즐겨 앉는 자리는 늑목처럼 올라가 맨 윗층 폭신한 공간. 가은이와 조카는 2층, 나는 1층이 오늘의 자리다.
미술관 내 도서관인 것을 인증하듯 이쁜 책들이 많다. 독립서점 출판 책이 따로 전시가 되어 있고 그 옆에 이어진 좁은 골목같은 통로로 들어가면 다시 공간이 약간 넓어지면서 양쪽으로 빅북을 전시회 놓았다. 눈이 시원하고 함께 읽기 좋은 빅북을 나는 좋아한다. 몇 권을 꺼내 읽다가 아이들이 추천하는 책들과 돌려 읽다가, 오늘의 책을 발견하였다. 바로 '바람꽃도서관'이다.
한 아이- 안나가 숲에서 책을 읽는다. 다른 동물이 와서 뭘 그리 들여다보냐 기웃거리다가 토끼도 참새도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올라가 누운 안나와 윗층에서 배깔고 누워 꼼짝않고 책 읽는 서은이가 겹쳐져 보인다. 마음으로 잠시 아이들을 축복한다. '저 모습 너무 이뻐요! 책을 즐거워하고 사랑해서 함께 나누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아늑하고 멋진 도서관이 된 숲을 그려놓았다. 커다란 나무를 기둥으로 책이 꽉 찬 서가가 늘어서 있고, 중앙의 큰 그루터기는 책상이 된다. 어른과 아이가 책을 찾고, 읽는 데 빠져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나 지금 아이들과 '섬'에 있지만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아늑함의 극치인 '숲'에도 가고 싶다^^ 실제 이 책을 쓰신 최지혜님은 강화도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하니 강화도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2. 부산국회도서관
지난 여름, 여의도에 있는 국회도서관에 처음으로 갔다. 국회도서관이 처음 설치된 1951년에는 전쟁 중이라 그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부산 소재 경남도청에 설치되었다 한다. 그리 보면 지역으로서는 처음으로 부산에 국회도서관이 세워진 것도 의미가 있다. '어느 도서관보다도 내용이 충실한 것이며' 라는 국회도서관 설치결의안의 한 문구와, 너무나도 빈약해서 구색만 맞추었나 싶었던 어린이 공간이 비교되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소지품을 맡기고 속이 다 보이는 가방에 꼭 챙겨야 할 것을 들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들어갔던 국회도서관에서 기둥 뒤 한 켠에 숨어있던 어린이 공간은 지도를 보고도 바로 못 찾을 만큼 안내표시도 잘 안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이 곳 부산국회도서관은 22년 4월에 개관한 만큼 시대의 요청을 잘 수용한 듯 하다. 일단 천장이 높아 공간이 탁 트여 보였고 입구에서 주욱 들어가면 넓은 어린이 공간이 있다. 맨발로 폭신한 집 모양의 매트 위에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가득한 유아를 위한 공간과 밖으로 계단과 원형탁자 등으로 다양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어린이 공간. 책이 아직 가득 차 있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독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한 편에는 일반서가로, 다른 편에는 화장실과 까페로 연결되어 열린 공간으로 가족들이 맘껏 다닐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래, 국회도서관이라면 이 쯤은 되어야지! 여의도에 있는 도서관도 어린이 공간이 다시 정비되길 바란다.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라 며칠 뒤 한 번 더 갔다. 이번에는 친정부모님도 함께 하였다. 시각 중증장애를 지닌 어머니가 날도 추운데 집 근처 공원만 도실 게 아니라 따뜻하고 구비가 잘 된 공공장소에서 걷기도 할 겸 바람도 쐴 겸 나오시면 좋겠다 싶었다. 화장실도 가까이 있고 까페에서 간단한 먹거리도 챙겨드실 수 있어 좋다. 엄마가 간식을 드실 때 늘 곁을 지키는 아버지는 책 한 권 뽑아와 잠시라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일반열람실 한 쪽에 점자도서코너와 장애인 열람석이 있었는데 이 곳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기분이 좋으시다. 집 근처에 신박한 공간을 알게 되셔서 그런지, 아니면 딸래미가 쏜 다과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셔서 그런지. 손주들은 십여미터 떨어진 공간에 책 읽다가 가끔씩 와서 도서관에서 허락된 정도의 소란을 떤다. 까페 벽에 붙여진 대형 사진-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잔디밭과 내부 회의장 앞에서 아버지는 마치 서울에 오신 양 기념사진을 찍고 흐뭇해 하셨다.
이번에 가 보지 못했지만 부산에 하나 있는 기적의 도서관도 이 곳 강서구, 동생네 집 근처에 있다. 그리고 분위기 있게 꾸며진 대형서점인 아크 앤 북(ARC.N.BOOK)도 지척이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섰다. '책'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읽으면서 살지 않나. 낙동강이 읽히고 미술 작품이 읽히는 공간들이다. 이 공간에서 피로감이 쌓인 나를 읽어주고 알아준다면, 마주하는 사람을 읽어주고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이 공간은 도서관으로 백점인 곳일 거다. 사실 읽는 행위가 지치면 잠시 쉬어가도 좋겠지. 도서관의 공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눈만 감고 앉았어도 힐링이 되니 말이다.
관람팁
1. 부산국회도서관은 평일에는 9:00-21:00, 주말에는 9:00-17:00까지 운영, 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해요.
2. 책그림섬 도서관은 부산광역시 통합예약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어요. 여유있게 시간을 잡고 미술관도 꼭 함께 둘러보세요. 행복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