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르륵 하는소리 옆 친구 눈치챌까
슬그머니 교실 나와서
주린배 움켜잡고 운동장 구석 우물가에 뛰어가
두레박 당기니 양동이에 찬물그윽이라
숨쉬기도 귀찮은듯 벌컹벌컹들이쉬며
꼬르르륵 소리 잠재우고 주위 살펴보니
아무도 없음에 안도하며 태연한척 하네...
1968년경인것같다 4교시끝나면 집에가야하는데
집에는 갈생각않고 학교운동장 텐트쪽으로 양푼이 비슷한걸 갖고 줄을 서서
강냉이죽 배급을 먹고 집으로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조금 이후에는 상급생 누나들이 끓인죽을 바켓스에 담아 교실로 배달을해서 퍼주었던것같고
내가 상급생이던 때에는 강냉이빵을 배급으로 받아서 하교길에 먹어면서 집으로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빵을 배급받고 집으로 가면서 소위 장깨이뽀 라는 게임으로 빵을 따먹기도하고
그빵을 잃으면 그날은 고스란이 굶은적도 많았던것같다 조금더 먹어려는 생각에 ...
그때부터 도박에대한 기질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강냉이에 대한 추억은 그것뿐만은 아니다
우리가 공부하게하는 주 소득원이기도 했었다 우리의밭은 하천부지에 위치해있는데
한 천평 정도 되는 밭에 강냉이를 심었다 씨를뿌리고 김을매고 한여름이지나서 강냉이를
가마니에 담아서 팔아서 그 수익금으로 생활하고 학비도 조달했던것이다
하천부지에 밭이 위치하다보니 여름철 장마나 대구지방에 큰비가오면 어김없이 잠수되어
그해농사를 망칠때도 많았던것같다 지금은 동양최대의 수문이설치되어서 밭의흔적도 없어졌지만...
이렇듯 어려울때 우리와 함께했던 강냉이
강냉이라는말은 표준어 옥수수의 사투리로 "강남에서 온 것"이라는 뜻으로
"강남"이라는 말이 바뀐 것이라고한다. 옥수수는 구슬같이 노란 수수라는 뜻을담고있는 강냉이의표준어지만
난 그래도 옥수수보다는 강냉이가 더 정겹다
그렇게 소중한 추억이담긴 강냉기가 요즘 인터넷의 검색어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인민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흰 쌀밥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면서 ....
옛날 우리나라도 쌀이모자라서 씨레기를 섞어서 지은 소위 씨래기밥과
무우를 쌀과함께넣어지은 무우밥을 먹었다
아이티에서 먹는 진흙쿠키도 우리나라에서 먹었다는기록이 성호사설에 전해내려온다고 한다
쌀 한되에 진흙 다섯되로 섞어말려서 구워먹었다는 이야기가...
북한의 강냉이 밥은 우리가 흔히먹는 옥수수밥과는 다르다고한다
강냉이를 조각조각내어서 쌀만큼의 크기로 만들어 쌀처럼 만들어서 짖는 밥이라고하니 ...
1960년대의 풍경이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 백두산을 댕겨오면서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한의 추수하는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국경을 접한 곳에서는 조금나은편이라고하니 ......
2010.02.03. 옛날 급식할때의 강냉이 빵이 불현듯떠올라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갱운산의 헛소리
애러분사람을 생각하는 멋진사랑을 하는 하루 되세여...
첫댓글 그기 쉽고도 참으로 애럽은 거여 ...여그도 북조선사람이 에부 와 산다만 ....뿔달린 도깨비도 아니고 ......그저 최선생 크게 한방 쏘라우 정도의 사투리로 ㅎㅎㅎㅎ
크게쏘라미..
옥수수 빵이 먹고 싶어 도시락 두고 학교 갔다가 빵도 못먹고 왔던 추억속의 강냉이빵 사 주심?....(애러분 사람임 ㅎㅎㅎ)
글케애러바여? ㅋㅋ
녜 ㅎㅎㅎㅎㅎ
강냉이 빵 참 맛났지유~지금 아그들은 글케 맛난맛 모를기유~ 나도 애러분디~ㅋㅋ
그 강냉이빵을 아껴 먹을라고 신발 주머니에 넣어 집에와서 먹어니 모래가 씹혀서..그래도 다먹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