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오빠를 임금님 오빠라 불렀다.
내가 2학년 때 학교에서 학예회를 했었는데 6학년이던
그 오빠가 '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의 임금님 역을 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전교 학생이라고 해야 350명 정도
한 학년에 한 반인 촌 동네 학교였다.
니보다 한 살 어린 사촌이 큰집인 우리 집에서
나랑 쌍둥이처럼 같이 학교에 다녔다.
사촌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우리가 귀여웠는지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우리 둘을 많이 예뻐했다.
오다 가다 만나게 되는 임금님 오빠는
나에게 늘 아는 척을 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대답도 잘 못하는
수줍은 아이였었다.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읍내 중학교로
자전거 통학을 하던 그 오빠를 학교에
갈 때, 집에 올 때 마주쳤다.
그 오빠는 쎙 지나가면서도 " 학교가냐?"묻기도 하고
" 빨리 집에 가거라 "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그 오빠가 가는 길과 내가 가는길은
반대 방향이었기에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었다 .
방과 후 남아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혼자서
길가의 온갖것에 참견을 하면서 집에 오다가
그 오빠를 만나면 고개가 절로 푹 숙여졌다.
"집까지 태워다 줄까?" 묻기라도 하면
모기만 한 소리로 " 아니요 괜찮아요 ''했다.
교복 입은 그 오빠가 어른으로 생각되었다 .
그러다 몇 년이 자났을까 ?
그때까지 우리 동네에는 펌프 있는 집이 별로 없고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두레박 우물도 아니고 바가지로 물을 뜨는
샘이었는데 어른들은 물맛이 좋다며 동네의
자랑거리로 여겼던것 같다 .
엄마의 심부름으로 우물에서 커다란 양재기에
물을 담아 오는데 그 오빠가 있었다.
" 너 많이 컸다. 그 물을 나 좀 줄래?"
아무 말도 못 하고 물이 가득한 양재기를
그 오빠한테 내밀었다.
나는 그 순간에 버들잎 생각이 났다.
그 오빠는 서울로 고등학교를 갔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우리 동네
거기에 왜 있었는지 모르겠다 .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렀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전통은 고 2가 되는
8월 15일에 동창회를 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도회지로 돈 벌러 간 아이, 공부하러 간 아이,
고향에서 농사일하는 아이, 읍내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후 몇 년 만에 만나게 되는 날이다.
그날 나도 한껏 멋을 부린다고 원피스를 입고
시간이 좀 남아있기에 자전거를 타고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윗마을 입구 다리를 건너가는데 어떤 군복을
입은 아저씨가 불렀다.
왜 그럴까 하면서 자전거를 끌고 그쪽으로
가니 그 오빠였다.
" 많이 컸다. 오늘 동창회 하지?
그만 까불고 다녀라 "
내가 그 오빠를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고작 한다는 말이
나를 까부는 아이로 보는가 싶어 기분이 확 나빠져서
목례만 하고 그곳을 떠났다.
위문편지라도 하라며 부대 주소라도 적어 주었으면
정성을 다해 글을 보냈을지 모르는데 ..
그게 그 오빠를 본 마지막이다.
그러다 몇십 년이 지났다.
그 오빠의 형이랑 나의 작은 오빠가 동창이어서
부부끼라도 잘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작은 올케언니랑 마음을 터 놓고 지내는 사이여서
그 오빠 이야기를 했다.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올케도 그 오빠를 본 적이 있다 하면서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는 말을 들었단다.
형제간 사이도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올케가 책임지고 그 오빠 연락처를 알아다 준다고
하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어느 해 한국을 나가니 정말 그 오빠의 비즈니스카드 (명함)을
올케언니가 나에게 줬다.
연락 한번 해 보라고..
뭐 어떻냐고.....
거기에 적힌 회사 웹 사이트에 접속을 해보니
몇 년째 휴면 상태였다.
딱히 할 말도 없고 그 오빠가 나를 기억 못 할지도
모르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 공터에 천막을 치고 보았던 흑백영화처럼
그 오빠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기억의 장면들이다.
어린 소녀였던 내가 그 오빠에게
한 모금의 물을 주는 그 순간에 버들잎을 띄우는
낭자가 되고 싶어 했던 민화의 풍경같은
여름날의 추억이기도 하다.
첫댓글 여름 날의 추억 속의 그 오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글이네요.
사랑이란 소리없이 오는 것이라
어쩌면 그 오빠가 아녜스 님의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제게는 아녜스 님처럼
추억속의 오빠는 없지만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때론 그가 펴낸 책도 사보게 되고...
그러나 이제는 가물가물
멀어져간 추억 일뿐입니다.
아녜스 님, 추억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첫사랑 이었을까요?
너무 어린나이라서 그런것 잘 몰랐답니다.
고향 생각 날때 아주 가끔 떠오르는 분 입니다 .
이베리아님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그분이
책도 내시고 성공하신듯 하니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좋지요.
그게 우리들의 순수한 사랑인듯 싶어요.
@아녜스 제가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살다보니 감정도
무디어 지더군요.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ㅎ
글 대로라면,
정말 밋밋합니다.
조용하면서 조신한 아녜스님의 어린 시절이네요.
그 임금 오빠도 아녜스님도,
속마음을 크게 들어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다가갔으면
좀 더 진한 추억으로 남았을텐데...요.
그 임금 오빠,
사업이 잘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옛이야기가 곳곳에서 재미있게 펼쳐나옵니다.
순수했던 그시절이 산너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날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마음에 그리며
잘 살아 나가요.^^ 우리 모두~~~~~~~
반전이 있었어야 하는데 '밋밋한 ' 이야기지요.
다른분들의 추억 이야기에 저도 동참을 해 보았습니다 .
여름방학때의 일들이라서요.
그 오빠는 재기를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그냥 제 마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지만요 .
지난날의 아름답던 시절을 마음에 그리며
잘 살아 나가자는 콩꽃님의 댓글이
저의 마음에 따스함으로 전달이 되었답니다.
저도
아주작은
초등학교다녔어요
1학년1반하고
2반만
6학년까지 반이 한번도 안바뀌고
지금도 3달에한번씩 모임하죠
임금오빠가 잘되었으면
연락주고받고 하였을탠데요
괜히 아쉽내요
글 참 잘쓰심니다~
여름에 님도 그려셨군요.
우리친구들은 남여 구분없이 경조사 참석을
하며 모임도 자주 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저는 멀리 와 있으니 그렇지 못해서
친구들이 부럽답니다 .
부족한 글을 칭찬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
"버들잎 띄우는
낭자가 되고 싶어 했던..."
에필로그가
아! 화룡점정입니다
임금오빠를
애틋하게 사랑했던 건
사실였네요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사랑이었을까요?
제가 그렇게 조숙 하지는 않았습니다 .
아 ~ 그래도 설레는 아음은 있었겠지요.
어디서 읽은적은 있어서 "버들잎" 생각이
났던게 제가 생각해도 재미있었답니다 .
저는 그 오빠가 저를 좋아했나 하는 착각도
했으니 그야말로 철부지지요.
어제. 오늘 수필방과 삶방에 올라오는 글 들이 재미와 추억과 심도깊은 고찰과 현 카페의 건승을 바라며 올린 글 들까지.
다 읽어내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그 중 아녜스님의 글이 올라오는걸 퇴근 전 보았는데 저녁모임이라 이제 봅니다.
추억 소환이네요. 여름에도 이런 추억들 떠 올리는데 가슴 시려지는 가을엔 어떨지..
그 오빠가 잘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이 있네요.
손 길 한번 스친적 없지만 여지껏 기억하고 계신 아녜스니믜 곱고 여린 마음에 감동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 새벽 산책 갔다가 길가에 핀 분꽃을 보고 아녜스님 글 생각 했더랬습니다.새벽시간에 꽃 봉우리가 피어있을까. 하고 슬쩍 봤지요. ㅎ
저도 어젯밤에 커쇼님과 마음자리님 글을 읽고
갑자기 글을 쓰느라 늦게 잠을 잤답니다 .ㅎㅎ
댓글에 답글 하고 커쇼님 글에 댓글 하러 가려고요 .
제 경우를 말하면
저도 삶의 방 이야기에 있다가 수필방으로 왔답니다
글 쓰기는 그쪽이 더 마음이 편한데 분위기로는
수필방에 더 정이 갑니다 .
바쁘신 커쇼님이시니 편하게 카페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
요즘 한창 분꽃이 필 때지요.
저를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임금님 오빠,
별명을 그렇게 지은 자체가 심상치않아 보이긴 합니다.
왕자 오빠도 아니고 임금님 오빠. ㅎ
땀 흘리며 산길 걷다가 샘물 한잔 마신듯 글 읽는 기분이 시원합니다.
심상치 않은게 아니고 그저 단순입니다 .
슬픈 사랑이야기 아니면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뭐 그저 그런 이야기를 좋은 느낌으로 읽어 주시니
감사 합니다 .ㅎㅎ
그 오빠 인생 결과가 안 좋아서 안타깝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의 여자 친구를 나이가 50 대가 되어서 다시 또 만난적이 있는데?
일단은 살아 있다
경제적으로 살아 있다
가정적으로 살아 있다
그렇다면 훌륭하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사업이 잘 안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
태평성대님이 여친은 잘살고 있으시니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지요.
남자 친구를 잘 두셨기에 그분도 덕분에
태평성대 이신듯 합니다 ,ㅎㅎ
콩꽃님 말씀대로 '밋밋한' 아녜스님 잔잔한
글에 우리 모두가 급히 공감하고 가슴 아련
해짐은 누구나 임금님 오빠였고 버들잎 낭자
였기에 그럴 것이지요
옛생각이 잦아짐은 사람이 늙는 증좌라지만
삶의 숨은 결을 건드는 아녜스님 글이 영랑
생가의 들꽃처럼 참 소담스럽습니다
극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으나
입가에는 웃음이 지어집니다 .
이제 그나마 추억도 가물가물 해 지니
정신줄 꽉 잡으려 애를 쓰며
잊은 둣 했던 추억하나 꺼내 보았답니다 .
감사 합니다 .
참 아름답고 수채화같이 풋풋한 시절의
추억이시네요
그오빠가 사업도 잘되고 잘살고있으면 좋으련만
지금다시 만나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집니다
어린시절 누구가 있을법한 이야기지요.
그 오빠는 "누구신데요 ?" 할지도 모릅니다 .
제 생각엔 만나질 인연은 아닌것 같아요.
혹시 만나게 되면 수필방에 글로 쓰겠습니다 .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 잘 읽었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미국아줌마 예쁘게 생긴 분 같아요.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절대로 이쁘지 못합니다 .
태어나서 한번도 예쁘단 소리 못 듣고
살다가는게 제일 원통 합니다 .ㅠㅠ
맑고 아름다운 이야기..
여운이 남는 글 참 좋습니다.
아녜스님..우리카페 아름문학상에 응해 보시지요...
그렇게 읽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
아~~ 카페아름 문학상이 시작 되는군요.
저는 자격 미달이라서 ...
생각 한번 해 보겠습니다 .
글을 읽다 보니,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피천득님의 '인연'이 생각나네요..
소녀이었던 아사코와 세번의 만남과
이별을 하고는. 세번째 만남은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나 역시 씁쓸한 미소를 띄게하는
비슷한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그 글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
다 "인연" 이겠지요.
언제 한번 서글이님의 그 비슷한 이야기도
들어 봐야 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7.31 23:06
울아녜스님이 좋아하는 꽃들이랑 임금오빠 추억은 연관성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
그럴까요?
더위에 잘 지내고 계신지요.
남겨주신 흔적을 보면 늘 반갑고
제 마음을 보냅니다 .
여름날의 추억 아름답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한번 만날 수 있겠죠?
목적을 두면 만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