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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윤석열 대통령의 '종전선언', '유엔사 해체' 발언
23.06.28.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자유총연맹 69년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다시 침략해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다"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한 가짜평화 주장이었다"고 규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전임정부의 종전선언 추진과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는 '북한에게 굴종적인 접근'이었고, '북한 퍼주기'이었으며, '가짜 평화'라는 요지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종전선언 추진과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는 잘못된 전략일까요? 종전선언은 무엇일까요? 유엔사 해체는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요? △'남북 종전선언'이 추진된 배경, △유엔사 해체와 결부된 '주한미군 주둔' 문제, △'북핵문제의 본질' 3가지를 중심으로 글을 서술해보겠습니다.
1. '종전선언'의 시원(始源)은 '부시 행정부'이다.
'종전선언'은 '두 국가 혹은 두 집단 간 전쟁 혹은 무력충돌을 종료한다는 대외적인 선언'입니다. 더 이상의 상호간 살상, 폭격, 파괴 등 공격 및 적대행위 일체를 끝낸다는 정치적 선언입니다. 1953.07.27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은 휴전협정입니다. '전쟁을 일시중단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언제든 상호 살상이나 공격이 재발할 수 있는 불안정한 평화입니다. 올해 2023년은 남북간 군사적 대치를 70년동안 유지한 정전협정 70주년 해입니다.
종전선언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부시행정부가 노무현정부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인 북핵문제 해결' 노선을 적극 수용한 후 내놓은 해법입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미 중간선거 공화당 참패 이후, 국내외적으로 수세에 몰렸던 부시행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외교노선을 내놓습니다. 더 이상의 대북 제재 · 압박만으로는 북핵문제를 풀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2006.11월 하노이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중 한-미정상회담에서 당시 부시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신과 내가 김정일을 만나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문제를 협의하자. 그걸 추진했으면 좋겠다."라고 언급했습니다. 2007.09월 호주 시드니 APEC 정상회의 중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부시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한국전쟁 종료를 선언하는 문제를 선언하는 문제를 협의해보자'라며 같은 말을 했습니다.
두 차례 한반도 종전선언 언급은 부시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입니다. 2001.09.11 테러 이후, '3대 악의 축(이란, 이라크, 북한)' 언급하며, '부시독트린'을 발표한 부시행정부는 '북한 선제타격'을 언급한 네오콘 강경 보수정부이었습니다. 대북 강경노선을 천명한 부시대통령과 외교안보진이 대북정책 노선을 바꾼 것입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인식 전환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됩니다. 남북은 10.4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체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로 했다.'(4항)라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종전선언은 현실화되지 못합니다. 2008년 남한에서는 정권교체됩니다. 집권한 이명박정부는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을 지향했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며 2013년에 집권한 박근혜정부도 '통일 대박'을 내세우며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이어갑니다. 그 사이 남북관계는 2008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등으로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한편, 북한의 핵실험은 6차례 계속되며, 핵 미사일과 핵 시설은 고도화됩니다.
2017.11.29 북한 '화성 15호' ICBM 발사 및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합니다. 2017.12.05~09 4박 5일동안, 당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평양을 방문합니다. 이에 북한도, 남한과 관계 개선 이후, 남한을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평화모드로 전환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북미간 대화를 적극 조성·중재했습니다. 남-북-미 모두 대화와 협상의 노력의 결과로, 2018.06.12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처음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합니다. 북-미 싱가포르 선언에서는 △새로운 북-미관계(북미수교), △한반도 평화체제(평화협정) △한반도 비핵화 △북-미 유해송환 4가지를 합의했습니다. 북-미양국은 북미수교·평화협정을 북한 비핵화 조치와 '단계적인 동시행동원칙'에 맞교환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인하고자, 당시 문재인 정부는 그 출발점으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입니다. 남북간 종전선언을 매개로, 북한 비핵화와 북미수교·남북미중 평화협정을 이끌어내어 궁극적으로 한반도평화체제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이었습니다. 즉, 종전선언은 북한에게 굴종적인 접근이 아닌, 한미 양국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전략의 일부이었습니다.
2.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공감한다.
보수정당, 보수언론, 보수학계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되면, 유엔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종전선언 → 유엔사 해체 → 주한미군 철수]이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실제 북한 '우리민족끼리' 선전매체에서도 종종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보도를 내보냅니다.
하지만,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첫 단추인 '정치적 선언'입니다. 국제법상,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엄연히 정전협정의 효력이 유지됩니다. 비유하자면,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 선언'을 발표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이혼상태'입니다. 다시, 부부가 혼인신고를 해야, '이혼상태'에서 '혼인상태'로 전환됩니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곧장 유엔사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북한 3대 지도자 모두,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김일성 시기) 89년 동유럽 공산권의 해체, 90년 독일의 재통일 및 소련 해체 등 90년대 초 국제정세는 탈냉전 시기를 맞이합니다.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우리나라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를 내세우며,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89년 유고슬라비아 수교-90년 소련 수교-92년 중국 수교)를 맺습니다. 북한 역시, 탈냉전 시기에 대응하여, 적대관계였던 미국, 일본과 관계정상화를 시도합니다. 92년 당시 북한 노동당 김용순 국제비서가 미 워싱턴으로 가 당시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정부차관을 만나, '제발 북미수교를 맺어달라. 수교만 맺어준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시기) 2000년 최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대통령에게 비밀사항을 말씀드린다며 주한미군 문제를 언급했습니다."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하고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동북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김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걸로 아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또한, 10월달 미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사상 첫 평양 방문을 했을 때, 당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냉전 이후 우리 입장이 달라졌다. 미군은 이제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라고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김정은 시기) 2018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이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정의용-서훈을 필두로 한 대북특사를 평양으로 파견합니다. 2018.03.05. 평양에서 대북특사를 접견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에게 비핵화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자국 경제특구에 투자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같은 달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김 위원장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 내 미국인들이 필요하며, 중국 공산당은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처럼 다루기 위해 미군 철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반도에 미국의 미사일이나 지상전력이 증강되는 것을 북한은 전혀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 줄타기외교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입니다. 북미수교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50~60년대, 중-소 분쟁시기, 북한이 소련-중국 사이에서 취했던 '등거리 실리외교 전략'과 유사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 주한미군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어 우려가 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처음 언급합니다. 이 개념은 주한미군이 기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는 기존의 역할을 뛰어넘어 동아시아 국제 분쟁에도 적극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한미군의 핵심전력이 38선 부근이 아닌, 군산, 평택, 오산 서해안에 배치된 것이 주목할 만 합니다. 바로 '대만해협'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산과 평택 미군기지에서 대만해협까지 1600km으로 항공기로 2시간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일부를 대만으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게 파병 혹은 전쟁물자 지원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은 주한미군기지를 직접 공격할 수 있고, 이를 틈타 북한도 대남 군사적 도발을 벌일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북 억지용'에서 '대중국 견제용'으로 확장된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 불안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3. 북핵의 본질은 "북미관계 적대적 산물 + a"
다시 근원적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북핵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북미관계의 적대적 산물'입니다. 90년대 초, 탈냉전 시기, 북한이 미국과 외교정상화를 맺지 못한 것이 오늘날 북핵 고도화, 한반도 위기 고조로 이어진 것입니다. 북한이 북미수교 대가로 핵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과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에 몰두했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오늘날과 무척 다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베트남의 경우,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맺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91년 4월 미-베트남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며, 베트남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95.1월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95.7월 공식 수교를 맺습니다. 경제 부분의 경우, 93.7월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수조치를 부분적으로 해제하고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94.2월에 가서야 금수조치를 전면적으로 해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베트남은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2007년에 세계무역기구 가입했습니다.
왜 북미관계는 정상화가 되지 못했을까요? 미국의 오판과 북한의 핵 미련, 북-미간 거듭된 불신 등이 원인입니다. 공산권 국가 중 GDP가 가장 높았던 동독이 몰락하고,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몰락했으니, 북한도 곧 붕괴할 것이라는 당시, 미국의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북한도 50년대 후반, 소련으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이전받은 후, 50-60년대 중소 분쟁, 80년대 말 탈냉전을 겪으며, 강대국들로부터 외교적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핵이 있어야 한다'는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북한은 기본적으로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 △외교에서 '자주'를 기본노선으로 채택합니다.) 비밀리에 영변 핵 재처리시설을 가동하는 한편, 미사일 기술 발전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또한, 북-미협상 과정에서 서로간 불신이 너무도 컸습니다. "CVID", "FFVD" 등 "북한의 선제적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주장하는 미국과 "자국에 대한 일체 적대적 행위 중단"(한미연합훈련 중단, 대북제재 완화 등)을 주장하는 북한간 양보없는 갈등이 협상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또다른 두가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한가지는 '미-중 패권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 본격화로, 기존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아닌, 미중 양극체제 혹은 다극체제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변화된 정세를 활용하여, 중국, 러시아와 밀착함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합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됩니다. 한편, 북-중, 북-러간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한에게 핵에 대한 집착을 키워줍니다. 90년대 초,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에서 독립할 당시 핵탄두 1656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6기, 전략핵폭격기 40대 등을 가진 세계 3대 핵보유국이었습니다. 94.1월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합니다. 이 양해각서는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 등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하는 내용입니다. 러시아·미국·영국 등 3대 핵강국이 이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에게 크림반도를 빼앗기고, 2022년에 침략을 당합니다. 북한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핵은 북한에게 남한, 미국,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영토적 침략을 당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즉, 북핵의 성격이 미국, 남한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북한의 핵 성격을 다변화한 것입니다.
변화된 국제정세에 따라, 북핵문제의 고차방정식도 심화되었습니다.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수교(북미관계 정상화)'뿐 아니라, 미-일-중-러 강대국 모두 북한의 체제보장이 필요합니다. '어느 강대국도 북한을 공격하지 않으며, 북한 체제를 보장한다'라는 확신을 주어야 북한의 핵개발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중요합니다. 미-일-중-러 모두가 북한의 영토와 북한 체제를 보장한다고 약속한들, 북한이 이를 의심하며 핵을 손에 놓치 않는다면,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요원할 것입니다.
4.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행위자는 미-중-러-일 강대국이 아닌 우리 자신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행위자는 누구일까요? 냉혹한 국제정세 관점에서는 주요 행위자는 강대국입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조선은 종속변수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이 대륙세력 청, 러시아를 차례로 제압하며, 조선을 식민지배합니다. 1945년 분단도 조선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의 태평양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서둘러 소련과 38선을 경계로 분할통치하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우리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수동적 종속변수이었나요? 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정세가 어떻듯, 우리의 의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2002.01.29. 부시대통령은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합니다.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고 '선제공격'으로 '정권 교체'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부시 독트린'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라고 반발하며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한 달 뒤, 2002.02.20. 서울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는 곧 전면전쟁이 될 것이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승리하겠지만, 한국과 미국도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침공하거나 공격할 의사가 없다",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위기 국면을 김대중 대통령의 대화와 설득으로 돌파한 것입니다.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2002.04.03. 임동원 대통령 특사를 평양으로 보냅니다. 경색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함입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접견 끝에, 남북은 △북미·북일 대화 재개 △남북경제협력(남북철도 연결사업 재개, 금강산 육로관광, 개성공단 건설 사업 추진 등) △이산가족 상봉 △남북정상회담 개최 장소 논의(김정일 위원장 서울 답방 후속논의) 등을 합의합니다.
2017년 한반도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리틀 로켓맨'으로 비하하며, ' 대북 코피전략' 을 검토했습니다. '코피 전략'이란 소규모 외과수술적 타격으로, 북한이 맞대응하지 않을 수준에서 핵 관련 시설 등 북한 핵심기지를 제한적으로 타격한다는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소규모 핵심 선제타격을 뜻합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본토가 핵 사정권 안에 있다”며 “미국은 결코 나와 국가를 상대로 전쟁으로 걸어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에게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07.06 베를린 연설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한반도 평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한 달 뒤, 문 대통령은 2017.0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무력 사용을 어떤 경우에도 불허합니다."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2017.12.19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의 연기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나는 미국에 이를 제안했고, 미국은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다."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여하여, 남북간 평화모드를 조성했으며, 북미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 북미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순간에도, 5.26 판문점 통일각에서 문재인-김정은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통해, 4.27 판문점 선언 이행과 더불어,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다시 살렸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패권경쟁이 한반도에 식민지배, 분단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1950.06.25. 북한의 남침으로 남북간 전면전으로 이어졌으며,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는 국제전으로 확전되었습니다. 6.25전쟁은 남북 서로간의 뿌리깊은 적대와 증오를 낳았으며, 동시에, 한반도를 경계로 대륙 공산권과 해양 자유권이 대립하는 동아시아 냉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올해 2023년은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을 맺은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전히 한반도는 남북간·강대국간 '힘의 투사(投射)' 공간입니다. 한-미는 한미연합훈련 실사격 훈련을 5년만에 재개하며, 기존 방어적 훈련을 넘어, '참수작전' '평양작전' 등 공세적 훈련을 실시하고, 핵탑재 폭격기, 핵잠수함, 핵항공모함 3대 핵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22.9월 '선제핵사용'을 명기한 '핵무력 법제화'를 천명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화성-31 소형 핵탄두를 공개하며, 탄도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ICBM, SLBM, 신형 장사정포 등에 탑재가능하다며 남한, 일본, 미국에 핵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중패권경쟁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고자 합니다. IRA법, 반도체법 등을 통해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경제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지 말 것을 압박합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중동지역, 유럽지역 등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통해 외교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4대 불가론"(△대만 등 핵심이익을 건든다면 한-중협력 불가, △미-일 편향적 외교한다면 한-중관계 악화 △이렇게 악화된 한-중관계 하에서는 시진핑 등 고위급 인사 방한 불가 △악화된 정세 하에서 대북주도권 행사 불가)을 내세우며 한국의 친미일변도 외교노선을 수정하라고 압박합니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전수방위 원칙을 폐기하고 GDP 2% 군비증강을 발표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에 일본군 자위대를 주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는 쿠릴열도와 사할린열도 등 동해에서 해군 훈련을 강화하는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척을 통해 동해와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국제정세 하에서 '수동적 종속변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하드파워(△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무역교액량 8위, △우주과학기술역량 5위)와 소프트파워(△모범적 민주주의 국가, △전세계적인 한류 열풍(K콘텐츠 인기)) 모두가 우수한 "중추적 중견국가"입니다. 달라진 대한민국 위상과 건강한 자존감을 토대로, 우리 스스로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는 "용기"와, 강대국간 패권경쟁을 실리외교로 역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남북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경쟁에 의해 또다시 한반도가 희생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능동적 독립변수'로써,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에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북간 군사적 대치를 통한 소극적 평화를 넘어, △남북간 대화·화해·교류·협력, △북한 비핵화-북미수교 맞교환 △남·북·미·중 평화협정 △동아시아(남·북·미·중·러·일·몽) 평화안보협력기구 창설 등 적극적 평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를 만드는 것은 남이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국제정세는 주도하지 않으면, 주도당합니다.
p.s. 91년 남북기본합의서, 98년 금강산 해로 관광, 99년 페리프로세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기여를 하셨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님의 자서전 마지막 부분을 수록합니다.
"우리는 인내심과 일관성, 신축성을 갖고 꾸준히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미국을 선도하여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미관계 정상화', '비핵화', '정전상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더하여 '남북관계 개선 발전'이 한반도 문제의 4대 핵심과제이다. 서로 긴밀한 연관성과 상호의존성을 지닌 이 4대 핵심과제는 포괄적·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지, 어느 한 요소만 먼저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지난 30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남-북, 한-미, 북-미가 이미 합의한 바 있고 중국도 동의한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한반도의 4대 핵심과제를 포괄적·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남북연합'을 형성하여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이룩하고, 평화와 번영의 통일국가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다시 평화> (임동원)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름다운 청년, leader방님이신가요? 이따금 올리시는 글 면면이 한마디로 '대박'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