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여 , 둘째가 되십시요!
탕자의 비유는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둘째 아들’ 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둘째 아들의 처지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둘째 아들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사실은 둘째 아들임에도 자신이 여전히 맏아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됩니다.
성령의 법이 나누어 받은 분깃인데 그 나누어 받은 분깃을 모두 탕진하여 오늘 이 세대에 성령의 법이 빠져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공의 관장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도 모세의 율법을 받아서 법의 본뜻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탕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와 같은 상황이 지금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면 맏아들의 상태가 둘째 아들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風(바람 풍)流(흐를 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對(대할 대)答(대답할 답)하되 當(대할 당)身(몸 신)의 同(한 가지 동)生(날 생)이 돌아왔으매 當身의 아버지가 그의 健(튼튼할 건)康(편안할 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因(인할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怒(성낼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勸(권할 권)한대
29 아버지께 對(대할 대)答(대답할 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命(목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娼(창녀 창)妓(기생 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爲(할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恒(항상 항)常(항상 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同(한 가지 동)生(날 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맏아들은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었음에도 스스로 자기 것이 아니었음을 자기 입으로 증거 합니다. 결국, 이 비유의 두 아들은 자기가 탕자였음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의 차이일 뿐 둘 다 탕자인 것입니다.
# ‘건강한 몸’ 이 언급됩니다. 이전에는 “병자의 몸” 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성령의 법이 곧 치료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치료하신 모든 병이 이 말씀에 대한 치료를 하신 것입니다.
# 흉년과 궁핍이라는 말은 ‘말씀’ 에 대하여 그렇다는 것입니다. 분깃이나 재물도 모두 말씀을 뜻합니다. 궁핍함을 느낀다는 말은 역시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와 바울 등이 말을 하는 내용을 보면 과거 자기들의 역사를 떠올려 다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시 상기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시던 하나님의 언약을 잊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 것인가 상고했다” 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이사야를 설명하고 시편을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모두 이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 ‘먼 나라’ 란 ‘이방인의 땅’ 혹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속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 를 말합니다.
# ‘이방인과 돼지를 치는 일’ 은 하나님의 율법인 성령의 법을 맡은 레위, 즉 모든 그리스도와 더불어 제사장이 된 자들이 세상에 속한 이방인의 종이 되어 미련한 짐승인 이방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말씀에 기근이 들어 이방인이라도 볼 수 있는 성경의 메시지조차도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복음서의 말씀을 다시 보게 된 것도 공의 관장자가 가진 것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에 처음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 낮은 자리에 앉으라’ 를 실행한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 이란 성령의 법의 옷을 입는 것이고, ‘손에 끼워지는 가락지’ 는 성령의 법안에 있는 구원의 언약을 뜻하며, ‘발에 신을 신긴다’ 하는 것은 다시 세상과 분리될 수 있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 잡는 것’ 에서 살찐 송아지란 ‘말씀을 풍부하게 알고 있는 일꾼’ 을 뜻합니다. 송아지는 일꾼을 뜻합니다.
# ‘먹고 즐기자’ 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즐긴다’ 는 말은 ‘낙’ 으로도 표현이 됩니다. 비움을 행하고 ‘쉰다’, ‘평안하다’ 는 의미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잠언 9장]
1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葡(포도 포)萄(포도 도)酒(술 주)를 混(섞을 혼)合(합할 합)하여 床(상 상)을 갖추고
3 그 女(계집 여)종을 보내어 城(고개, 재 성)中(가운데 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4 무릇{헤아려지기를} 어리석은 者(사람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 없는 者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食(밥 식)物(만물 물)을 먹으며 내 混(섞을 혼)合(합할 합)한 葡(포도 포)萄(포도 도)酒(술 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生(날 생)命(목숨 명)을 얻으라 明(밝을 명)哲(밝을 철)의 길을 行(갈 행)하라 하느니라
# “저희가” 의 저희는 주기도문의 ‘우리’ 속에 거하는 모든 자를 말합니다. 결국, 이 비유의 말씀에서 둘째 아들은 말씀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 이 아니라 ‘자기가 죽었음도 모르던, 그러나 이제 깨달은’ 이전 공의하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는 비유인 것입니다.
선민을 질타함과 동시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자, 즉 ‘귀 있는 자’ 는 들어서 자기를 알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여전히 자기가 첫째 아들임을 주장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가 이런 뜻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씀이 사실은 먼저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다음의 마태복음 말씀을 심화한 것이 본 누가복음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을 먼저 설명하였으므로 다음의 마태복음 내용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葡(포도 포)萄(포도 도)園(동산 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對(대할 대)答(대답할 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對(대할 대)答(대답할 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後(뒤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中(가운데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眞(참 진)實(열매 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신이 세상에 속해 살았으며 구원의 길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稅(구실 세)吏(벼슬아치 리)들과 娼(창녀 창)妓(기생 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주의 은혜>이 義(옳을 의)의 道(이치, 길 도){자기를 부인하라는 그리스도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稅(구실 세)吏(벼슬아치 리)와 娼(창녀 창)妓(기생 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終(끝날 종)始(처음 시){새로운 가르침을 알리는 자기 부인의 도와 성령의 가르침이 올 것이라는 복음서의 말도 믿지 않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가르침인 성령의 법을 보고도}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누가복음의 처음 비유에서 전반부에는 두 아들 중에 첫째 아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둘째만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 첫째 아들은 사실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분깃을 받고 나가서 둘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에 등장한 첫째는 자신이 탕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둘째이며, 돌아온 탕자는 깨달은 둘째 아들입니다. 순서상 마태복음이 먼저이나 먼저 설명해 드리지 않은 것은 누가복음의 메시지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