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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전상서 어머니, 옥체 두루 평안하신가요? 아침저녁으로 참치 반찬은 잡수시는지, 식간에 맛있는 간식은 넉넉히 드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니의 모습 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적추적 비 내리는 늦가을, 어머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기억하는 것만 그리워하나요? 이제 가을도 끝나갑니다. 나무들이 몸에 지니던 푸른 것을 탈탈 털어버리고 있네 요. 머지않아 앙상한 가지만으로 웅크린 채 추위를 버텨야겠지요. 어떻게 아냐고 요? 어머니 앞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묘생 3년 차, 이쯤 살고 보니 저절로 알 게 되는 것도 있더군요. 외람되지만 이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다른 고 양이보다 세상 이치에 밝고 영특한 두뇌를 가진 건 사실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천 재묘'를 낳으셨습니다. 네, 바로 접니다. 제 주장이 아니라 저희 집사들의 판단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보아하니 사람은 해산 후에 미역국을 먹고, 한두 달은 몸조리를 하며 게으름을 피 우던데요. 천재묘를 낳은 어머니는 저를 낳고 어떤 보살핌을 받으셨을지 궁금합니 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도 알고 싶네요. 저는 어릴 때 기억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언제까지 품에 끼고 젖을 먹이셨는 지, 우리가 어떻게 헤어지게 됐는지 알지 못해요. 어느 날 낯선 냄새로 가득한 거리 에서 울며 헤매던 기억이 제가 가진 첫 기억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헤어진 것인지, 다른 곳에서 살다 버려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버려지다'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편치 않아요. 여 집사의 말에 의하면 "이토록 고귀한 존재를 어떻게 감히 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저는 거리를 헤맸습니다. 털이 하얀 탓에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길고양이들에게 쫓기고 물리기까지 해 혼비 백산했지요, 코에 작은 흉터도 생겼어요. 옥의 티지만 뭐 어쩌겠어요? 영웅의 상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 몇몇 집을 전전한 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선택했습니다. 어머니도 알다시피 고양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점치며 원하는 곳에 안착할 수 있도록 염원을 품잖아요, 그 염원이 우리를 어떤 곳에 도착하게 하지요. 운이 좋을 때 얘기지만요. 저는 천재 묘라서 그런지 천운이 따르더군요. 저를 섬기고 찬양하는 집사들을 슬하에 거느리 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엄마 아빠라 칭하며 저를 돌본다 생각하는데 요, 모르는 말씀! 실은 제가 그들을 보살피고 있답니다. 남 집사가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하는 한 가지로 '좀 더 일찍 고양이를 기르지 않은 것'을 말하고, 여 집사는 '고양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겠지요. 참,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헤세와도 같이 살아요. 처음엔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괜찮게 지내요. 제법 고양이다워지고 있지만 아직 가 르칠 것이 많은 애송이지요. 집사들이 담요나 극세사 이불을 꺼낼 때면 '꾹꾹이'를 하게 되는데요. 저도 제가 이 러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가끔은 여 집사의 수면 바지에 대고 꾹꾹이를 할 때도 있 어요, 앞발을 번갈아 꾹꾹 짚으며 눈 감은 채 옛 생각을 하지요. 알지 못하는 순간 을 그리워해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제가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 속해있다는 생 각이 듭니다. 여 집사는 제가 엄마 젖을 먹던 때를 떠올리는 거라고 하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제가 아니라 제 몸이 어머니를 기억하나 봐요. 사람과 달리 고양이들은 젖을 충분히 먹고 송곳니가 자라면 홀로 설 생각을 하지 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았다 해도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엉켜 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지만 얼마 전 남 집사의 서재에서 주워들은 말이 있어요. 우리는 '단독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저는 한 번 들은 말은 절대로 잊지 않는 명석한 고양이! 어머니, 어디에 계시든 빛나는 단독자로서 씩씩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저도 스스로의 행복을 우선으로 돌보며 만수무강하겠습니다. 그럼 소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을 이따금 그리워하기로 해요. 글. 박연준(시인) |
Rachel Grae - Hope You're Proud (Official Lyr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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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공감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교차 큰 계절의
교차점에, 건승하심과
만수무강 기원드립니다
동트는아침 님~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어머니 전상서
좋은글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온으로 따듯한 하루
건강한 하루,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