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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 나이트클럽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역사를 뒤져봐도 좋은 것은 발전해 가고 시대에 뒤 떨어지는 것은 쇠퇴해 사라져 갔다.
TV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봐도 동·식물을 통 털어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은 발전하고 자신의 특성상 필요 없는 부분은 쇠퇴해 가지 않던가.
서울에서는 나이트클럽에서 영업을 하여 매출에 대한 봉사료를 갖는 사람을 웨이터라고 하고, 심부름을 하며 팁을 받는 사람들을 보조라고 일컫는다.
부산에서는 영업을 하여 매출에 대한 봉사료를 갖는 사람을 주임이라 부르고, 심부름을 하고 팁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을 웨이터라고 부른다. 부산에서 호칭을 한 등급 높여 부른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서울식 나이트클럽의 영업은 웨이터들이 외부 판촉을 위주로 한다. 길에서 커피를 돌린다거나, 닉네임에 맞는 분장을 하고 시내를 돌며 고객을 유치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특성중 하나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인데 그들은 그런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열심히만 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말이었다.
부산식 나이트클럽의 영업은 주임들이 외부 판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외부판촉은 업소 차원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홍보를 하고, 봉사료를 갖는 주임은 클럽 내에서 항시 대기하며 업소를 찾아오는 고객에게 부킹을 위주로 최선을 다하여 영업에 임한다.
고객을 판촉으로 유치하는 서울식보다, 한 번 온 손님을 다음에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부산식 영업 전략이다.
물론 방식만 다를 뿐이지 대한민국 국민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다시 찾는다. 부산에서도 열심히만 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하늘은 부산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정통나이트 클럽과는 달리 미드나이트라는 형태의 업소가 있는데 정통 나이트클럽 보다 주대가 싸고 규모가 적어 붙여진 이름인데 ‘치고받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치고받고 라는 표현이 붙여진 것은 적은 규모의 클럽 특성상 주임과 웨이터를 따로 두지 않고 한 사람이 주임과 웨이터의 역할을 같이 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임의 역할을 하며 봉사료를 갖고, 웨이터 역할을 하며 팁까지 받는다고 해서 돈을 곱으로 버는 것은 아니다. 매출에 대한 봉사료가 정통나이트 클럽에 비해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은 업소는 적은 업소대로 주대를 적게 받지만 봉사료를 적게 주는 방식으로 업소의 수입을 맞추는 것이다.
1987년 부산 연산동에 한국관 나이트클럽이 신장개업을 했다.
개업 업소에는 항상 많은 영업주임 및 웨이터들이 몰려들었다.
개업쇼로 한참 잘나가는 훈아가 오는 날이라 홀은 초저녁부터 초만원을 이뤘다.
“네, 사장님.”
길중이 자세를 낮춰 캔들을 든 손님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음악소리에 묻혀 말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맥주 3병.”
“넵,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길중이 빠텐으로 맥주를 가지러 가지 않고 어두운 홀의 조명 밑으로 눈을 번득였다. 춤추러 나간 손님의 테이블을 정리하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테이블에서 맥주병 3개를 든 길중이 홀을 한 바퀴 돌아와 술을 시킨 손님에게 맥주병을 내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즐겁게 드십시오.”
손님에게 준 맥주는 옆 테이블을 정리하며 술이 들어 있는 병을 치웠다가 가져다 준 것이었다.
정확히 법을 적용하자면 절도에 해당되지만 발각 되어도 절도로 고소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개업 업소의 특성상 질서가 없고, 혼잡한 틈을 이용해 바가지요금을 받는 직원들이 극성을 부렸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춤을 추고 들어 온 손님이 캔들을 신경질 적으로 들어 올렸다.
“예, 사장님.”
길중이 뛰어갔다.
“야, 술이 없어졌어.”
“다 드신 것 아닙니까?”
“손도 안 됐어.”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맥주 세 병 가져와.”
“네, 사장님.”
길중이 고개를 돌려보자 조금 전에 술을 시켜놓은 사람들은 춤추러 나가고 자리에 없었다.
그 테이블의 술을 들고 홀을 한 바퀴 돌아 술을 시킨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즐겁게 드십시오. 사장님.”
손님은 자신의 술을 먹는 것이었지만 길중의 주머니에는 벌써 맥주 6병 값이 들어가 있었다.
손님들은 술이 없어진 것을 알고 따지기도 하지만 개업업소는 항상 복잡하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없어진 술은 찾을 길이 없다.
종업원에게서 친절을 원하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었다.
자신의 고객 술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일하는 정직한 웨이터들도 다수 있었다. 자신의 술을 지키기 위해 일행들끼리 교대로 보초를 서는 손님도 있었고.
술을 훔쳤다는 표현을 하지만, 말이 훔치는 것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었던 시절이라 다른 자리의 술을 들고 가다 들켜도 죄의식을 갖거나 책임추궁을 심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고객들이 심하게 따지고 들면 직원이 손님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손님이 구석자리로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울고 가던 시절이었다.
경찰에 고소를 해도 경찰이 업소로부터 상납을 받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같이 맞았다고 쌍방 고소를 하면 경찰이 업소 측에 유리하게 조서를 꾸며 주었는데, 피해자인 고객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나서면 ‘당신이 수사관이야?’하며 경찰이 손님의 따귀를 때려대곤 했었기에 경험 있는 손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오징어 하나 주세요.”
“네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신이나 있었다.
여자들은 맥주 추가를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서로 받지 않으려고 웨이터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데 여자들은 간혹 오징어를 먹었다. 횡재였다.
그는 구석자리로 가며 홀을 둘러봤다. 지배인이 손님 안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오징어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길중이 테이블 밑에 손을 넣었다 빼자 손에는 오징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오른 손을 사용해 오징어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오징어를 들고 가며 미리 보아둔 빈 집시를 슬쩍 집어 들었다. 오징어를 접시에 올리고 여자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저씨 마요네즈 없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는 빠텐으로 가서 마요네즈를 가져다주었다.
영업을 하기 전에 미리 오징어를 한 축씩 구석 테이블 밑에 테이프로 붙여두었던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짓이었다.
어떤 날은 웨이터들이 다 훔쳐가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자신도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그들의 오징어를 훔치기도 했다.
양주를 추가 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대박이었다. 슈퍼에서 양주를 구입해 팔며 산 가격의 열배를 넘게 받았다.
개업 후 삼사 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바가지요금을 받는 직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해고 되는 직원들이 개업 때 들어왔던 인원의 절반이 되었다.
더러는 죄질이 사악해 엄청나게 얻어맞고 나가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업소에 취직하지만 그 곳에서도 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해고당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다 보면, 업소 관리자가 해고된 직원을 알아보고 취직을 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종내는 일 할 곳이 없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부산에서 일할 곳이 없는 사람 몇과 서울 쪽을 지망하는 사람 등 아홉 명이 모여 서울행을 결심했다.
길중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