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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장콜 노동자’가 단식투쟁하는 이유
기자명 강혜민 기자 입력 2021.05.26 18:31
[인터뷰] 강태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종시 누리콜지회장
세종시청 앞에서 지난 20일, 누리콜 공공운영에 따른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 사진은 단식 4일째인 지난 23일의 모습. 사진 강혜민
세종시청 앞에서 지난 20일, 누리콜 공공운영에 따른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 사진은 단식 4일째인 지난 23일의 모습. 사진 강혜민
젊은 시절, 강태훈은 용산 삼각지에서 식료품 영업을 했다. 그러나 수익은 좋지 않았다. 대전으로 내려와 시작한 안경점 영업일로 안정되는가 싶더니, IMF 이후 들어온 외국 프랜차이즈 자본에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결국 퇴사하게 됐다. 소아마비 장애에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강태훈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컴퓨터 수리점을 열었으나 이미 사양산업이었다. 스마트폰이 컴퓨터 기능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다가 2018년 9월, 세종시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운전원이 됐다. 누리콜은 세종시지체장애인협회(아래 지장협)에서 세종시 민간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운전원이 된 지 1년째 되던 날, 세종시 공무원이 찾아와 ‘조만간 세종도시교통공사가 누리콜을 운영하게 되며, 고용승계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날부터 운전원 사이에서는 고용승계에 대한 불안이 감돌았다. 안 그래도 기간제 비정규직이었던 이들은 매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강태훈은 두 번의 탈락 끝에 어렵사리 누리콜 운전원이 된 만큼 오래 일하고 싶었다. 그에겐 책임져야 할 아내와 두 자녀가 있었다. 강태훈은 한 달 만에 사람들을 조직해 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평소 지장협의 방만한 누리콜 운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지장협에 붙어 기득권을 누리던 이들이 그를 괴롭히고 폭행했다.
그러는 사이, 세종도시교통공사로 넘어간다던 누리콜 운영은 계속 지장협에 맡겨졌다. 강태훈은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세종시에 공공운영을 촉구하며 나섰다. 누리콜은 법에 명시된 차량 대수마저 지키지 않았는데, 이조차 하루 이틀 전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강태훈은 장애인 이용자들을 조직해 이용자연대를 꾸리고, 시민사회단체를 찾아가 시민사회대책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세종시를 상대로 한 싸움은 쉽지 않았다. 성과없는 날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지쳐갔다.
세종시청 입구에는 ‘시민주권 특별자치시 행정수도 세종’라는 문구가 붙어 있으며, 그 옆으로 강태훈 지회장이 단식하는 농성장이 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등이 지지 방문을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세종시청 입구에는 ‘시민주권 특별자치시 행정수도 세종’라는 문구가 붙어 있으며, 그 옆으로 강태훈 지회장이 단식하는 농성장이 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등이 지지 방문을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강혜민
2020년 9월, 우연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연이 닿았다. 그때부터 “투쟁다운 투쟁”이 시작됐다. 세종시청을 점거하고,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 활동가 수백 명이 결의대회를 열었으며, 시청 앞에는 농성천막이 세워졌다. 너무나도 힘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밖으로 터뜨리지 못한 화가 그의 속을 갉아 먹고 있었다. 지장협 사람들의 이간질 속에 노조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과거 과반수가 넘었던 노조에는 고작 7명만이 남았다. 그러나 남은 이들 또한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싸우고 싸워 올해 3월, 마침내 공사가 누리콜 운영을 맡게 됐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었다. 세종시와 세종도시교통공사는 고용승계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정부 합동으로 만든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용승계해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권고마저 무시한 채, 고용승계는 절대 없다며 온갖 핑계를 가져다 댔다.
그 결과가 지난 14일 드러났다. 공사는 올해 7월부터 시작될 누리콜 공공운영 운전원 채용공고를 띄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강태훈을 포함해 기존 운전원 절반(11명)이 응시조차 못한다. 게다가 이번 채용기준은 마을버스 같은 다른 직군보다 유달리 높고 까다롭다. 마치 눈엣가시였던 강태훈은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선포하는 것처럼.
세종시청 정문 왼쪽에는 강태훈 지회장의 단식 농성장이, 오른쪽엔 2020년 12월 15일 세워진 세종시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7대 정책요구안 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다. 이 천막농성은 강태훈 지회장 단식농성 이후 잠시 중단됐다. 사진 강혜민
세종시청 정문 왼쪽에는 강태훈 지회장의 단식 농성장이, 오른쪽엔 2020년 12월 15일 세워진 세종시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7대 정책요구안 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다. 이 천막농성은 강태훈 지회장 단식농성 이후 잠시 중단됐다. 사진 강혜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20일, 강태훈은 세종시청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단식 결의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전장연 투쟁에 그는 일부러 아내를 데려갔다. 그날, 사람들은 장애인은 탈 수 없는 계단버스를 멈춰 세우며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알렸다.
투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연대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마무리 짓지 못하면 내가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아내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단식” 남편의 답에 아내는 한참의 침묵 끝에 이렇게 말했다. “단식 들어가면 물건 떼러 가기 쉽지 않겠다. 오늘 물건 해 다 놓자” 부부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채워 넣을 물건을 보러 서울로 향했다.
단식 나흘째던 지난 23일, 세종시청 앞 단식 농성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마치 오랫동안 그 물음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2시간 30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2018년 9월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지나 시민사회대책위를 꾸리고 마침내 전장연을 만나는 데에 이르러서야 힘이 들어갔다. 그는 특히 “그전엔 아무리 많아도 대여섯 명이었는데 이제 이삼십 명씩 오니” 너무 힘이 난다고 했다. “잠깐의 시간을 위해 여기까지 기꺼이 와주시는 거잖아요. 개개인이 가지는 연대의 힘이 진짜 우리의 힘 같아요.”
그에게 이 투쟁은 어떤 의미일까. “빚을 갚는달까요.” 그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갔다. 강태훈은 80년대 후반 당시 변혁적인 청년 장애인운동을 지향하며 건설된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에서 활동했다. 그 활동의 연장선으로 장애인복지신문에서 만평을 그리던 중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연 전신) 간사로 일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엔 장애인운동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25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장애인운동 앞에서 그는 한없이 미안해졌다. “이 나이 먹고 이런 의미 있는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텐 선물이죠.” 남편의 노조 활동을 돕던 아내는 ‘시민사회대책위 대변인’ 직책으로 ‘강태훈 지부장’의 단식을 지원한다.
지난 24일, 세종시와 면담을 마치고 나온 강태훈 지부장은 발언 중 눈물을 흘렸다. 사진 하민지
지난 24일, 세종시와 면담을 마치고 나온 강태훈 지부장은 발언 중 눈물을 흘렸다. 사진 하민지
그러던 그가 다음날,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세종시와 면담하고 나온 직후였다. 세종시는 고용노동부의 공식 입장조차 무시하며 여전히 배짱을 부렸고, 결국 면담은 서로 고성을 지르며 끝났다. 치밀어 오르는 화는 세종시 투쟁에 힘 모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동지들 앞에서 불쑥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강태훈은 어떻게든 이 세상에 도움 되는 싸움으로 이 투쟁을 마무리 짓자고 결심했다. 이렇게 끝나면 세종시가 기고만장해져서 앞으로 어떠한 싸움을 하든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고용승계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이춘희 세종시장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돌아볼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야지 싶어요. 저 천막농성도 접으려고 했는데 내년 대선까지는 유지해보려고요.”
그가 늘 앉아있는 교자상 위엔 십자가가 놓여 있다. 힘들 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내가 가져다 둔 십자가다. 세례명 ‘야고보’ 강태훈은 요즘 아침저녁으로 기도한다. ‘주여, 제가 비굴하지 않게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거세 추워지면 양지에 있다가 더우면 그늘에 가 있는다. 효소, 죽염, 물만 먹으며 버틴다. 지붕 없이 스티로폼 깔개에 전기장판, 이불 한 겹 덮고 자는 “지금이 몸은 불편하더라도 마음은 더 편안하다”고 말하며 웃는 그는, 어떠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걸까. 유리막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세종시청 앞에 그의 농성장이 있다.
세종시청 앞에서 지난 20일, 누리콜 공공운영에 따른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이 “투쟁”을 외치며 왼쪽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은 단식 4일째인 지난 23일의 모습. 교자상 위에는 아내가 챙겨준 십자가가 있으며, 그의 옆에는 그가 밤에 몸을 뉘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
세종시청 앞에서 지난 20일, 누리콜 공공운영에 따른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이 “투쟁”을 외치며 왼쪽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은 단식 4일째인 지난 23일의 모습. 교자상 위에는 아내가 챙겨준 십자가가 있으며, 그의 옆에는 그가 밤에 몸을 뉘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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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