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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IS IS TOTAL WAR 원문보기 글쓴이: 사탕찌개
"또 하나의 에덴, 반(半)낙원,
전쟁의 손길이 미치지 않도록 대자연 스스로가 만들어준 요새,
은빛 바다 위에 놓인 보석,
해자처럼 은빛 바다는 덜 행복한 땅들의 질시로부터
이 축복받은 땅 잉글랜드를 둘러싸고 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리처드 2세'에서 (1595년)
"에스파냐인들은 너를 해적이라고 칭한다"
- 엘리자베스 1세 (Elisabeth I), 에스파냐의 무역상선을 능욕하던 유명한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 (Francis Drake)에게 에스파냐 대사가 보는앞에서 기사 작위를 주면서 (1581년)

"하늘과 땅이 결코 이보다 나은 인간의 거주지를 만든적은 없었다"
- 한 잉글랜드인 개척자, 오늘날의 미국 버지니아에 당도하면서 (1607년)
"소국의 역사에 불과한 그리스와 로마의 책을 불사르라!"
- 호레스 월폴, 옥스포드 공 (Horace Walpole, Earl of Oxford), 파리 조약이 채결되어 영국이 캐나다와 인도의 프랑스령을 차지하는 대제국이 되자 (1763년)

"우리가 이곳 땅을 차지한 이후로 지역 군주들은 모두 권력을 잃은 허수아비가 되었고 동인도회사가 실질적인 이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지역 군주들을 계속 존경하는 척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로버트 클라이브 (Robert Clive), 1757년의 플래시 전투에서 벵갈을 정복하면서 영국의 인도 점령의 길을 열은 국민영웅. 1767년에 인도를 떠나면서 동인도 회사의 이사들에게.
"바다에 재산을 던진것과 똑같다"
- 영국의 한 보험회사, 어느 상선이 물부족 때문에 흑인 노예들을 바다로 그냥 던져버린것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하자 승인하며. (1783년)
"만일 광신도가 된다는 것이 우리들과 같은 인간들의 고통을 느낄수 있다는것이면, 저는 뼛속까지 광신도입니다"
- 윌리엄 윌버포스 (William Wilberforce), 흑인노예 해방운동을 이끌은 영국의 정치인. 시대가 별로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열성적인 교인이었던 그는 때때로 광신도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흑인노예 해방은 19세기 초반에나 가서야 이루어졌다. (1791년)
"대영국의 현재 국왕의 역사는 악행과 착취를 되풀이한 역사이며, 그 목적은 이 땅에 직접 절대 전제 정치를 세우려는데 있었다."
- 미국 독립선언문중 (1776년)
"캐나다는 (영국에게) 친절하고 충직해서 자치를 얻은것이 아니라, 자치를 얻어서 친절하고 충직한 것이다"
- 찰스 더피 경 (Sir Charles Duffy), 19세기 호주의 아일랜드계 정치인. 1840년대에 일어났던 캐나다의 자치권 취득를 예로 들며 아일랜드 자치권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하며 (1886년)
- 사학자 존 미첼 (John Mitchel), 1861년.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아일랜드에는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들어 전체 인구 8백만명중 백만명이 굶어죽고 백만명이 먹을것을 찾기위해 이민을 가버렸다. 당시 스스로 하세요 자유주의를 맹신하던 영국인들은 구호활동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이는 흉작으로만 끝날수 있었던 일을 대기근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 압둘메키드는 구호를 위해 1만 파운드를 보내자 하였으나,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는 2천 파운드만 보냈다는 이유로 1천 파운드만 기부해 달라고 요구했다 (뭐 이런....). 술탄은 이 요구에 응하였지만, 또한 몰래 3개의 식료품이 가득찬 배를 보내어 아일랜드인들을 구제하고자 하였다... 아아 착한 뚫흑. 영국 당국의 뭐같은 놈들은 이마저 저지할려다가 결국은 포기하였다. 현재 아일랜드섬의 전체 인구는 아직까지도 6백만명이다.
"아 ㅅㅂ 그러니까... 내가 무어인들 두명을 봤다? 근데 그중 한놈이 '칸포르'라고 말하더라고. 내가 그게 뭔뜻인지 알지. 그래서 내 친구 탐 워커를 불렀고, 걔도 저녀석들이 '칸포르'라고 말하는걸 들었다? 걔도 그게 뭔뜻인지 알지. 그래서 그냥 두놈다 쏴서 죽여버렸어"
-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어느 한 영국 병사의 증언. 이 병사가 인도인들을 북아프리카의 '무어인'이라고 부른것은 그당시 일반인들의 지리에 대한 지식이 매우 낮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참고로 '칸포르'는 도시이름이다 (...). 1857년경.
"인도는 그이의 성격에 그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많은 면을 키워주었다. 예를 들자면 그의 현상안주나, 그의 매우 비판적인 태도나, 그의 섬세하지 않은 면이나"
- E.M 포스터의 소설 'A Passage to India'에서 나오는 인도에서 군생활을 한 전직 대령 캐릭의 거만함을 묘사하는 구절. 1924년. 인도 현지에서 식민지를 운영하는 영국인들은 인도인들에게 매우 거만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했으며, 그 성격을 본국에 와서도 죽이지 못하는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내 유언 집행자로써 식민장관 카르나본 공을 임명한다... 그는 비밀 결사조직을 세워 아프리카와 남미 전체, 예루살렘 성지, 중국과 일본의 해안가, 말레이시아의 여러 섬들, 키프로스 섬, 태평양의 모든 섬들을 영국 식민인들로 채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한 대영제국이 미국을 다시 품안에 들일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영국과 영국령 아프리카에서의 유명한 사업가이자 열렬한 제국주의자로 유명했던 세실 로즈 (Cecil Rhodes) 의 유서 초안 (내지 아시발꿈급의 동상이몽), 1877년.
"멀리서 우리의 해군이 녹아 사라져가고
사막의 모래에서는 불이 꺼진다
보라, 어제 우리의 모든 영광이
이제는 니네베와 티르와 다를바가 없게 되었구나!"
- 루디아드 키플링 (Rudyard Kipling), 그의 시 '퇴장'의 한구절. 1897년. 비참하게 망해버린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와 영국을 비교하며 제국의 몰락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19세기말 영국은 독일에게 추격받고 미국에게 위협받는 상태였다. 후세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19세기말 미국의 경제규모는 이미 영국을 한참 추월한 상태...
"대영제국은 살아남을수 있을까?"
- 영국의 어느 한 일간지가 독자들의 의견을 물으며 내보낸 기사의 제목, 1910년.
"전 미국을 외국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종이며 같은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영국에 있는 영국인들과, 캐나다에 있는 영국인들과 미국에 있는 영국인들을 구분하기를 거분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들의 것이며 그들의 미래는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족입니다."
- 조셉 체임벌린 (Joseph Chamberlain), 영국의 정치인, 1887년.
- 에드워드 그레이 (Edward Grey), 영국 외상. 1914년 1차세계대전 대독일 선전포고를 앞두고.
"아일랜드의 남자와 여자들이여: 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아일랜드에게 국가로써의 정체성을 주기위해 죽어간 선조들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고하느니, 아일랜드의 국기와 자유를 위하여 일어나라!"
-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 항쟁때 선포된 독립 선언문
"저는 간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질문을 물었습니다: "우리 영국쪽 식민 정부가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서 저항을 계속하는 것입니까?" 처음 간디는 이에 대한 대답을 피할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이런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자기는 예전에 이런 결과에 도달했다, 그것은 바로 인도의 식민 정부가 아무리 선해보이는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아니 정말로 선한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는 인도를 더더욱 영국의 지배하에 견고하게 묶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와 같은 결론이 식민정부의 모든 우호적인 제스쳐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 인도의 총독 리딩 경 (Lord Reading) 이 간디와의 담화후 수상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David Lloyd George) 에게 한 말. 1919년. 런던에서 백인 직원들을 거느리고 백인 여성과 결혼할 생각까지 한 골수 친영파였던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백인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독립투사가 된것은 유명한 일이다. 런던에서는 그럭저럭 백인들과 괜찮게 지내던 사람이 남아프리카에서 멸시당한것도 의미심장... 촌놈텃세?
"아주 불순한 미들 템플 (영국의 고유한 법학원) 출신의 변호사가, 이제는 동방의 약장사꾼으로 변신해, 반나체로 총독 관저에 달려들어가 우리의 국왕-황제폐하 (King-Emperor) 를 대표하는 총독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하는 꼴이라니!"
-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수상이 되기전 보수당의 주요 멤버였을때. 1935년.

"이것은 대영제국을 연결해줄 미래의 교통수단이며, 저는 이것을 통해 여행함으로써 하늘과 지구의 사방(四方)이 우리의 것임을 증명하려 합니다"
- 영국 국무장관 탐슨 경 (Lord Thomson) 이 런던에서 인도 델리로 가는 비행선 R-101의 첫 항해에 올라타면서. 다음날 아침 R-101은 프랑스 북부의 어느 마을 근처에서 탑승자 전원을 죽이며 폭발했다. 안습.... 1930년.
"현학적이고, 고통스럽고, 구역질난다"
-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대영제국 내의 자치령 (Dominion) 들이었던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등의 의회에 영국 의회와의 동등한 위치를 보장하는 웨스트민스터 법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이 일로 위의 자치령들은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완전한 독립국가로써의 위치를 얻었다. 1930년.
"난 대영제국의 해체를 시행하기 위해 제국의 수상이 된것이 아니었소!"
- 위에처럼 똑같이 윈스턴 처칠. 이번에는 수상이 된 이후. 젊었을때에는 진보, 나이들어서는 꼴보수였던 처칠은 대영제국의 종말을 매우 가슴아파하였다. 어릴적 죽마고우에게 대영제국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맹세는 히틀러를 물리친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극동에서의 대영제국은 그 명성 하나로 의존되고 있었다. 그 명성은 이제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 호주의 주중 대사, 1942년에 일어난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에 대해. 숫적으로 두배 이상이었던 영국군의 일본군에 대한 항복은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일으켰다.
"영국인들은 전세계 어딜가나 땅을 훔치려 든다. 그 땅이 고작 암초덩이라도."
-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Roosevelt), 미국 32대 대통령. 처칠은 미국이 반공주의를 위해 대영제국을 지지해줄것을 기대했지만 이는 허황된 망상일 뿐이었다.

"여러해 전에 우리는 운명과의 밀회를 가졌고, 이제 그와의 약속을 지킬 때가 다가옵니다. 자정 12시의 자명종이 울릴때, 전세계가 자는 그 시간에, 인도는 생명과 자유에 눈을 뜨게 될것입니다. 역사에 드물게 오는 그 순간, 우리가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걸음을 때게되는 그 순간, 그리고 오랫동안 억압받았던 한 민족의 영혼이 드디어 그 목소리를 되찾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자와할랄 네루 (Jawaharlal Nehru), 독립 인도의 초대 수상, 1947년 인도의 Dominion으로의 격상을 기다리며. 이 당시의 Dominion은 이미 사실상 독립국을 뜻하였으며 실제로도 격상이 되자마자 3년만에 인도는 인도 공화국으로 차를 갈아타고 완전한 분가를 한다. 문명 5의 트레일러에서도 쓰였던 연설.

똑같은 국부라도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간디나, 미친 로리돼지였던 마오쩌둥이나, 아니면 동양 어느 나라의 Prince Lee 같은 사람은 낼수없는 이 포스....
"변화의 바람이 이 대륙에 불고 있다. 우리가 싫든 좋든 민족의식의 향상은 분명한 현실이다."
- 헤롤드 맥밀란 (Harold Macmillan), 영국의 보수당 수상. 1960년 아프리카에서. 50년경부터 영국은 마침내 대영제국에 대한 미련을 물리치고 제국의 해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새로운 강국인 미국과 특히 소련이 제국주의에 관대하지 않았다는것, 그리고 국내에서 복지국가를 시행할려면 전세계 곳곳에 비싼 돈주고 식민정부를 유지할 겨를이 없다는 현실주의가 그 주된 이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영제국이 말뚝 뽑고 떠나가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제발이라도 조금 더 있어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중의 하나는 아직 국방력이 준비되지 않았던 신생국가 싱가포르의 젊은 지도자 리콴유였다.
"The Empire Strikes Back"
- 포클랜드 제도에서의 영국군의 승리를 보도하며 스타워즈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뉴스위크의 헤드라인. 1982년. 이빨빠진 사자가 아직 발톱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축하해야 할까? 아니면 한때 전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의 최강대국이 인구 2천명짜리의 코딱지만한 섬들을 두고 아르헨티나와 같은 쩌리와 싸워서 이기고 자축하는것을 슬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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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너무 까기만 한듯 하지만, 사실 프랑스에 비하면 대영제국은 진짜 신사죠. 물러날때에 물러날줄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프랑스는 그 특유의 진짜 캐망할때까지 땡깡부리기로 베트남에서도 개판, 알제리에서도 개판...
첫댓글 여기 양심 배달.. 은 농담이고요 재밌네요. 앞으로도 계속 양심을 버리.. 아니 연재해주시길 바랍니다.
크윽, Equus님의 말말말 시리즈는 이제 끝났으니 제가 그 브랜드 네임을 흡수해도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디엔비엔푸에서 죽빵을 한대 맞게 되지요.
잘봤습니다^^
포르투갈도 물러날때를 모르고 인도한테 게겼다더군요,....-.-;;
그리고 전쟁해서 발리지 않나요?
발렸죠...애초에 상대가 안되던데...무리한짓을...-.-;;
2차대전에서 승리하고 장렬하게 산화한 대영제국. 안습.
근데 왜 오토만 술탄이 아일랜드에 기부하려 했으며
월버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종교가 약했는지? 강한걸로 아는데
이슬람교는 의외로 매우 관대한종교입네다
윌버포스가 살았던 시대 = 계몽시대, 프랑스 혁명등... 서양에서 기독교가 다시 살아난 시기는 19세기 중반의 Great Awakening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슬람은 관대한 종교가 아닙니다... 이슬람이 관대한 종교면 한국 개신교는 천상의 종교에요. 이슬람탓이 아니라 저 술탄이 착한 사람이었던거죠. 술탄이 착한거랑 이슬람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이슬람은 뚫흑 술탄의 전부입네까?
창시될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관대 했지 않을까요. 뭐 지금은..
이슬람은 매우 관대했"었"죠
카톨릭이랑 선교사 놈들이 한짓 보다는 이슬람이 관대합니다. 괞히 지금 우리가 비잔틴 제국 유물을 보고 있는게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접근하기보단 윤리적으로 접근하는게 더 깔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보호론자가 활동하는 마당에 인간이 인간을 돕는다는 데에 그런건 큰 문제가 아니죠.
게다가 투르크는 다민족 국가이다보니 갈등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종교문제는 뒤로 물렸다고 판단해야할 듯 하군요.
tion5/
그래서 지금 유럽에는 이슬람이 번성하고 중동에서는 정교도 탄압.... 500년전 일을 가지고 현재를 보는것 좀 부자연하다 생각됩니다. 지긋지긋한 이슬람은 차켔다 드립... 이거 2000년대 초반부터 돌던것인데 아직도 안죽었군요.
tion5//비유 맞죠?
사탕찌개//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십자군 이야기가 있었죠. 그정도면 뭐 이슬람 광역쉴드급... 수세기 동안 이슬람이 기독교, 서방권에서 가루로 까일 만큼 까여서 이제 오히려 과잉 보호, 찬양 하는듯하네요. 이슬람이 그렇다고 악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넹... 뭐 저도 이슬람이 싫어서 이러는게 아니라... 저는 동네에 히잡쓰고 다니는 여자봐도 편견 없음요. 다만 한쪽이 너무 쉴드를 받으니 깎아내려야 할 의무 비슷하게 느낍니다 ㅋ
당연히 상대적인 비교이자 비유죠. 워낙 기독교가 십자군 전쟁때 깽판친게 많고 이슬람도 이스탄불 점령했을때 약탈을 했으니까요.(마지막 함락당시 이야기 들어보면.) 제가 알기로는 발칸에서 반란났을때 오스만에서 잔인하게 밟았죠.(1800년대 였던거 같던데 터키역사책 본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나지는 않네요.) 다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테러행위에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반인 이 많다는게 문제겠죠. 워낙 기독교도 이슬람도 변질이 많이되서 걱정입니다. 이슬람은 (초기에) 착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 이야기 지만 아르메니아 학살 이야기도 전해내려오고 있죠.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지금까지도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있죠.그저 후세인의 그늘에 가려졌을뿐
저기 정치적학살이나 전쟁같은걸 왜종교에다가 붙이시는지 아르메니아 학살에 종교의 교리를 갔다붙였지만염 그건 사람잘못이지요 그렇게치면 유럽인들의 원주민학살,흑인노예는?
프랑스 제국이 몰락했을때도 저런 말들을 했을까요?
2차대전후 프랑스인들은 베트남과 알제리에 어떻게든 남아 있을려고 발악했지요... 영국은 아쉽다라고 말하고 현실을 인정했지만 프랑스는 끝까지... 알제리에서는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일부임!' 이런 개드립까지 쳤고... 하여간 프랑스는 옛날 옛적의 영광에 너무 사로잡히는 경향이 많습니다. 드골의 프랑스를 미국과 소련에 이은 세계 외교가의 제 3축으로 만들기 위한 뻘짓이나, 나토 탈퇴한 것이나, 무리하게 드골 핵항모 돌리는것이나, 1980년대까지 아프리카에서 사실상의 대규모 식민지를 운영한 것이나...
사실 프랑스를 보면 예전에도 답 4위에 들만큼 강대국 이였죠.....
아일랜드는 감자 말고 다른 식량은 모조리 영국이 다 가져가 버리니 먹을수 있었던 건 감자뿐이었는데...... 감자마른병이일어났을 때도 아일랜드에는 전국민이 먹을 만큼의 소와 밀등이 있었지만 영국이 죄다 가져가 버려서...... 결론:(아일랜드에게)영국 개객기
PS.오스만인이 아일랜드인들을 도우려 했다는 건 몰랐네요.
PS2.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데 반대하는 논리는 현재 복지제도를 반대하는 자들이 아주 유용한 논리로 쓰고 있죠(?)
아일랜드 소작농들이 수확한 밀은 모조리 영국행, 그래서 값싼 감자만 처묵처묵하는데 감자가 모두 죽어버리니 모두 굶고.. ==;; 영국 개객기야!!
역시나의 오스만!!!!!!!!.......그나저나 아일랜드인 지못미.(타이타닉에서도,.ㅜㅜ)
이,,이거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흥망의 장면이 보이네요
프랑스는 개객끼가 아닙니다. 개객끼는 영국이죠흐흥...
솔직히 베트남하고 알제리는 추함의 극치였...
그래도 나름 나머지는 투표까지해서...
프랑스는 그러고 보니까 노른자위 식민지가 있던가요?
뭐 알제리는 나름대로 노른자위였죠. 프랑스인도 많이 살고 있었구요.
어떤 책을 보았는데 막 독립된 알제리 사막여행 간 프랑스인(작가와 친구)가 독립하면서 프랑스어 표지판 없어졌다고 아랍어로 된 표지판에 돌던지고 있었죠.(문제는 그 책이 고등학교 육리독서에 선정된 도서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