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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268) - '꽃보다 할배' 신드롬을 바라보며
맹위를 떨치는 폭염 속에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일상이 불안하다. 오랜 장마로 강물이 늘어난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 노량진 수원지 개수공사의 인명사고와 지역민의 만류와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한 태안해수욕장 해병대 캠프의 고등학생들 참사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매우 허술하고 취약한 것이 안타깝다.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권의 편 가르기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경박함도 짜증스럽고. 세상이 어수선해도 밝은 미래를 가꾸는 것이 우리들의 몫, 좋은 날들로 나아가시라..
2주째 구청에서 열고 있는 컴퓨터강좌에 출석하여 더위를 식힌다. 작년에 이어 세 번째인데 아직도 컴퓨터를 다루는데 부족함이 많다. 수강자 대부분이 나이든 이들이라 10년 넘게 강좌를 이끈 중년의 강사가 수강생을 일컫는 호칭은 어르신이다. 강좌명은 인터넷활용인데 이미 알고 내용도 있지만 새로 깨치는 것들이 많아서 흥미있게 배우고 있다. 열성적인 강사가 어제는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정보화교육장에 나오셔서 인터넷 배우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장미 몇 장 보냅니다. 저장하시고 사용하세요. 늘! 건강 유의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컴퓨터 강좌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살핀 오팔족과 솔개의 갱생을 소개한다. * 오팔족을 아시나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힘으로 등장하고 있는 오팔족!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집에만 있어야한다는 개념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60세가 되어서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다. 간단히 말해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사는 노인들'을 말한다. 이 용어는 니시무라 아키라와 하타 마미코가 지은 '여자의 지갑을 열게 하라'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Old People with Active Life(OPAL)'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오팔족들은 노년기를 조용히 보내기보다는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봉사활동이나 각자에 맞는 취미생활을 하며 보람 있게 보내기를 원한다. 이들은 젊었을 때 쌓아놓은 지식과 경제력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만개했던 꽃이 진다고 해서 힘없이 시드는 것이 아닌,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오팔족! 비록 한 창 젊을 때처럼 많은 일들을 소화하거나, 경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더욱 더 활짝 피어나는 꽃으로 가득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더욱 보람차게, 더욱 즐겁게, 더욱 활동적으로 살기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열정의 향기가 아직 그 맛을 느껴보지 못한 어르신들께도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 솔개의 갱생 솔개는 보통 70년의 수명을 가진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수를 하려면 40세 정도가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중대 결심을 해야 한다. 솔개는 40세정도가 되면 발톱은 안으로 굽어진 채로 굳어지고, 부리는 길게 자라서 가슴으로 구부러져 먹이를 낚아채기 힘들어지게 되고, 또한 깃털은 두꺼워져 날아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워진다. 이런 상태가 되면 솔개는 먹이를 구하지 못해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던가 아니면 고통스런 갱생의 과정을 수행하던가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주어진 자신의 처지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거듭남을 택한 솔개는 150일 동안 산꼭대기 절벽 끝 바위틈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절벽의 바위틈으로 들어간 솔개는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 날카로운 새부리가 나면 낡은 발톱을 부리로 쪼아 모두 뽑아낸다. 그런 다음 낡고 무거워진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깃털이 다 자랄 때 까지 조용히 견디며 기다린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하늘 높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때에 맞게 '꽃보다 할배'라는 티브이엔(tvN)의 금요 예능프로그램이 화제에 올랐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인기 TV 텔런트 네 ‘할배’들의 배낭여행을 담은 관찰 예능이다. 7월5일(금요일) 밤에 첫 회가 방송된 '꽃보다 할배'는 어제(7월 19일)로 3회에 접어들었는데 각 언론 매체가 큰 비중으로 이를 소개하고 있다. 평균 연령 76살인 할배들에게 젊은이들이 즐기는 배낭여행은 힘들다. 그래서 짐꾼을 붙여주었다. '1박2일' 등에서 친근감을 높인 배우 이서진이 ‘걸그룹 멤버 두 명과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작진의 말에 속아 짐꾼으로 합류한다.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나왔다가 할배들과 마주친 순간, 당혹해하는 이서진의 표정은 첫 회의 백미다. 네 할배와 중년의 이서진이 환상궁합을 이룬 셈이다.
어느 평론가가 쓴 '꽃보다 할배'를 보는 재미의 분석이 설득력 있다. 첫째, 할배들의 생생한 개성이다. ‘직진순재’니 ‘심통일섭’이니 하는 캐릭터는 수십 년 간 형성된 그들의 개성이다. 할배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시청자나 제작진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덕분에 리얼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화면에 그득하다. 둘째, 노년이 전하는 색다른 감회가 있다. 신구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죽으면서도 오늘 본 잔상이 떠오를 것 같다”고 말할 때, 여행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신구는 에펠탑 앞에서 젊은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신념을 밀고 나가라”는 소회를 전한다. 셋째, 노인이란 존재를 이해하게 한다. 이순재는 배낭여행을 해봤냐는 질문에 “6·25 때 쌀자루는 져 봤다”고 답한다. 배낭여행과 6·25라는 전혀 다른 계열의 단어가 여든 살 노인의 생애사에서 만난다. 노인이란 얼마나 아찔한 역사적 존재인가. 그는 피란을 가듯 여행지에서도 홀로 진격한다. 성공한 노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취동기가 높은 유형으로,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넷째, 내 노년을 생각하게 된다. 백일섭은 이순재보다 10살이나 어리지만, 무릎 통증으로 뒤처진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건강관리에 성공한 사람이다. 신구는 홀로 여행하는 20대 여성에게, 기특하다거나 대견하다고 말하지 않고 “존경스럽다”라고 말한다. 젊은이에게 삶의 태도를 배우려는 겸손한 모습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순재의 건강과 신구의 겸양을 지닐 수 있을까. 다섯째, 고령화 사회를 숙고하게 된다. 이제 노인들은 과거와 전혀 다른 노년을 맞게 된다. 그들은 건강한 상태로 수십 년간 동년배들과 함께 산다. 곧 712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을 맞이한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높은 연금을 받는 노인도 있고,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노인도 생길 것이다. 70살인 백일섭이 커피를 타고, 43살인 이서진이 심부름하는 모습은 곧 닥칠 고령사회의 단면이다. 젊은 세대들은 노동시장에선 은퇴하지 않는 노인들과 경쟁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은퇴한 노인들의 연금을 감당해야 한다. 가장 유능한 젊은이만이 공고한 베이비붐 세대의 네트워크를 비집고 짐꾼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겨레 2013. 7. 19 '왜 꽃보다 할배인가?'에서)
몇 차례의 배낭여행과 걷기행사를 통하여 오팔족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연습을 한 셈인데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솔개의 갱생처럼 피나는 육체적, 정신적 변신의 과정도 거쳐야 하리라. 오팔족의 득세가 자라는 세대들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지혜도 터득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