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잡기(靑城雜記)】제3권 / 성언(醒言) 66. 〔이름 바꾸기의 해학〕
이름 바꾸기의 해학
회암(晦菴 주희(朱熹) 이 《음부경(陰符經)》을 주석(註釋)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추희(鄒訢)라고 바꾸어 썼다. 주(朱)는 주(邾)에서 나왔고 주(邾)가 변하여 추(鄒)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기》 악기(樂記)에 “천지가 감동하여 화합한다.〔天地訢合〕”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희(訢) 자는 희(熹)의 뜻이다. 군자(君子)도 익살스러운 면이 있다.
사마 온공(司馬溫公)이 명함을 가지고 소 강절(邵康節)에게 가서 자신을 정 수재(程秀才)라고 소개하자, 강절이 깜짝 놀라 왜 그렇게 칭하는지 물었더니 온공은 이렇게 답하였다.
“사마씨(司馬氏)는 정백휴보(程伯休父)를 시조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러한 익살을 본떠서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인들은 성(姓)이 있으면 반드시 씨(氏)가 있다. 그러므로 성을 바꾸어 말해도 비난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씨와 성이 서로 섞여 있어서 바꾸어 말할 수 없다.
[주-C001] 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 음부경(陰符經) : 도가(道家) 계통의 서적이다.
[주-D002] 주(朱)는 …… 때문이다 : 주(邾) 성은 고양씨(高陽氏)에서 나왔는데, 주(周)나라가 조협(曹挾)을 주(邾)에 봉하였으므로 씨(氏)를 삼았다. 주(邾)나라가 망한 뒤 자손들이 주(朱)라고 썼다. 그리고 추(鄒)라고 한 것은 처음에 지금의 곡부현(曲阜縣) 동남쪽에 도읍하였다가 뒤에 지금의 추현(鄒縣) 동남쪽으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이다.
[주-D003] 사마 온공(司馬溫公) : 온공은 사마광(司馬光)의 봉호이다. 송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우부(迂夫)ㆍ우수(迂叟)이다. 신종(神宗) 초년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관직을 사양하고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편찬에 전념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주-D004] 소 강절(邵康節) : 북송(北宋)의 학자로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이며,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상수론(象數論)을 제창한 대사상가이다. 이지재(李之才)에게 하도(河圖), 낙서(洛書), 복희(伏羲)의 팔괘육십사괘도상(八卦六十四卦圖像)을 전수받아 깊이 연구하여 대부분 자득하였는데, 이지재는 또 목수(穆脩)에게서 수학하였다.
[주-D005] 사마씨(司馬氏)는 …… 때문입니다 : 정백휴보(程伯休父)는 주나라 선왕(宣王) 때의 대부인데, 그를 사마(司馬)로 삼았기 때문에 사마씨(司馬氏)라 하였다. 《詩經 大雅 常武》
[주-D006] 성(姓)이 …… 있다 : 성과 씨는 본래 구별이 있는데, 성은 여계(女系)에서 기원하고 씨는 남계(男系)에서 기원하였다. 《통지(通志)》 씨족약서(氏族略序)에 “삼대(三代) 이전에는 성과 씨를 나누어 둘로 하였는데, 남자는 씨로 부르고 여자는 성으로 불렀다. 삼대 이후로는 성과 씨를 합하여 하나로 하였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