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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4
#1. 편전? 혹은 공민 집무실
최영이 기철의 앞까지 걸어가 선다.
최영 : 이왕 누명을 씌울 거면 그냥.. 대역죄로 하지요. 오백냥이 뭡니까.
기철 : 그러니까. 기껏 오백냥을 벌겠다고 피붙이같은 부하들에게 부실 무기를 쓰게 하였는가.
목은 : 최영대장. 이 전표는 본 적이 없다 했습니까.
그럼 이것은 저 부하들이 대장 모르게 받은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까?
최영이 돌배네를 돌아본다. 억울해서 쳐다보고 있는 부하들.
최영, 너무 어이없어 웃음도 안 나오다가. 뚜벅뚜벅 걸어와 전표가 든 상자를 들더니
최영 : 이 상자 니들이 받았냐.
돌배 : 예.
최영 : 열어봤냐.
돌배 : 아닙니다.
덕만 : 아닙니다.
최영 :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내 방에 갖다 놓은 거야.
돌 덕 : 예.
돌배 : 근데 그것이..
최영 : (익재에게) 들으신대로 이 놈들은 이게 뭔지 모릅니다. 허니 돌려보내겠습니다. (돌배들에게) 나가.
돌배들 일어서며 꾸물거린다. 충석이 무섭게 눈짓을 하자 나간다.
최영이 상자를 탁자에 거칠게 소리나게 놓고.
최영 : 계속하십시오. (화가 솟구치고 있는 중)
공민 : 이분들은 제보를 받았다 합니다.
익재 : 이것이 누명이라 하면 스스로 벗을 기회를 줄 수도 있네. (최영에게) 해명을 해보시게.
최영 : 저더러 오백냥의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해명을 해보란 겁니까.
익재 :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최영 : (공민에게) 받은 바 없습니다.
공민 : 대장.
최영 :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파직을 시키든 감옥에 쳐넣든 알아서 하십시오.
처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공민에게 절을 하더니 돌아서 나가버린다. 완전히 성이 나있다.
익재가 허어 해서 본다.
공민이 기철을 돌아보더니.
공민 :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기철 : 오해십니다. 신은 오백냥짜리 제보 같은 건 안합니다.
다만 이 자리 오길 잘했다고 생각중입니다.
살수 일곱을 보내도 꺽지 못했던 사내. 약점이 의외의 것이었구나 알게 되어서요.
#2. 편전 앞 회랑
최영이 성이 나서 나오고 있다.
기다리고 있던 돌배와 덕만이 붙으려 하자 걸으며 손을 내밀어 저지시키며.
최영 : 내 근처에 오지 마.
멈추는 부하들.
최영이 걸어가며 뭔가를 호되게 후려친다. 분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3. 최영의 방
벌컥 문을 열며 들어서던 최영이 방의 꼴을 본다. 여기저기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다.
대충 발로 차며 들어서다가 매희의 두건을 발견하고 집어든다. 또 열이 뻗친다.
겨우 삭이며 문갑에 넣고 돌아서는데.
문을 두들기는 소리. 인상이 확 찌푸려지는데. 문이 열리며.
덕만 : 대장. 찾아왔습니다.
최영이 나가고 난 뒤. 바닥에 보여지는 아스피린병. 구석에 굴러가 박혀 있다.
#4. 장교홀
들어서는 최영. 한쪽에 어두운 얼굴로 몰려서 있는 우달치들.
그리고 반대쪽에는 조일신이 금군들을 호위로 서 있다.
일신 : 우달치 최영에게 어사대의 처결을 전하러 왔네. 나 한성사 조일신은 이 처결을 전함에 있어서..
최영 : (짜증나서) 본론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신 : (나름 위엄있게) 우달치 최영은 뇌물 수뢰 및 직권 남용의 죄를 저지른 바.
내막과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우달치의 대장 직을 박탈한다.
우달치들이 우루루 뭐야. 이건. 떠들며 앞으로 몰려나오는 것을 최영이 손을 들어 멈추게 한다.
일신 잠시 겁먹었다가 계속.
일신 : 차후 처분이 이어질 때까지 평무사로 우달치에 근무하며
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주석 : 말도 안됩니다. 우리 우달치는 주상전하의 명에 의한 특권이 있습니다.
전하가 아니시면 누구도 우리한테 이따위로 처결 못합니다. 제가 전하께 다녀오겠습니다.
일신 : 그 특권 특혜는 이미 거두어졌네. 정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보든가..
최영 : (일신의 앞으로 다가선다)
일신 : (움찔 물러서는데)
최영 : 대감이었군.
일신 : 뭐가.
최영 : 내 오백냥 사건. 대감이 만든 거였어.
일신 : .. 내가 무엇을 하건 그건 오로지 대고려와 주상전하를 위한 충정에서..
최영 : 내가 뇌물을 쳐먹는 게 고려하고 전하하고 무슨 상관인데.
일신 : ... 우달치.
최영 : (더 바싹) 좀 가르쳐주시지. 응?
#5. 공민왕 집무실
공민이 분기탱천해서. 그 앞에는 익재와 목은.
공민 : 그새 잊었습니까? 거기 두 분을 비롯한 학자들.
그대들이 오늘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압니까?
최영 그이가 지 목숨을 내놓고 싸워온 덕분이에요.
익재 : 알고 있습니다.
공민 : 알면서 어째요? 오백냥 뇌물..
익재 : 전하.
공민 : 왜요. 불편부당없이 일하고 계시다 또 자랑하시게요?
그대들을 죽이려 했던 부원군 기철. 그자의 태산같은 비리는 아니 보이시고.
그대들을 위해 피를 흘려온 최영의 오백냥은 그리 잘 보입디까?
익재 : 이제 새롭게 전하의 곁을 지키게 된 저희들의 가장 큰 임무는 왕권을 강화하는 일이올습니다.
공민 : 그래서요.
익재 : 가장 급선무는 소문을 잠재우는 일이었지요.
공민 : 소문?
익재 : 전하께서 어리신 탓에 최영이란 자가 그 뒤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며
거의 섭정에 다름없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목은 : 또한 최영 그자는 이제껏 수없이 사람을 베어온 살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렇게 피칠갑의 형상을 가진 자가 전하의 옆에 있다는 것은 아주 좋지가 않습니다.
익재 : 더 많은 인재를 모아야할 시기입니다. 어지신 임금님이 아니라 악귀의 아래로 모여들 사람은 없습니다.
공민 : 악귀.. (말이 막혀서 보다가..) 그래서. 나를 위해 내 우달치 대장. 그 사람을 모함하였다는 겁니까?
그것도.. 그리 치욕스러운 일에 엮어서?
목은 : 저희는 제보를 받아 그에 마땅한 조사를 하는 것 뿐이올습니다.
전하의 가장 측근에 있는 자의 일이라 가장 신속하게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구요.
익재 : 어쩌시겠습니까. 전하의 권위로 중단시키시겠습니까? 그러시다면 신들은 따를 밖에요.
공민이 대답을 못한다.
#6. 전의시
은수가 수첩을 옆에 놓고 한지에 붓으로 숫자들을 베끼고 있다.
이미 서너장의 종이에 숫자와 영어들이 가득 적혀져 있고.
수첩 내용 중에 형광펜 부분은 밑줄을 그어서. 한지 한 장이 가득 찼다.
은수가 옆에 놓여져 있던 한지에서 위의 한 장을 떼낸다. 잘 안 떨어져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떼낸다.
(여러 장이 포개져 있는 한지. 따로 따주세요.
은수가 한 장을 들어내는데. 잘 안 떨어져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떼내는 장면도 따로 따주시고,
이거 종이에 독이 발려져 있다는 설정입니다)
은수가 수첩의 한 장을 넘기다 멈칫. 거기 앞과 비슷하게 나열된 숫자들 구석에 적혀진 글자.
(메모하듯 날림글자로) R= k(10g+ f)
은수가 얼른 종이에 베껴쓴다.
옆에는 덕흥이 자기 책을 읽고 있다가 돌아본다.
은수가 또 베끼기를 하고 있다가 멈춘다. 중얼중얼 쓰던 숫자를 읽어보다가..
은수 : 이거.. 일일칠하나 일일일육... 엑스. 에이.. (뭔가를 알았다. 다시 본다. 아.. 벌떡 일어선다)
덕흥 : 뭔가를 아셨습니까.
은수 : (그제서야 덕흥의 존재가 깨달아져서 아.. 한 채로 보는)
덕흥 : 아셨군요.
은수 : (갑자기 정신 차리고) 아 글쎄요. 확실한 건 아닌데..
(대충 한 줄을 짚으며) 이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공식이 아닌가.
그리고 이 줄은 에.. 파인만의 법칙? 또 이건..
덕흥 : 그 줄이 그렇게 읽혀진다구요.
은수 : 그렇죠. 이게 아주 깊은 연구가 필요할 거 같은데.. 시간도 오래 걸릴 거 같고..
덕흥이 웃으며 일어서더니 수첩을 집어 들어 챙긴다.
은수 : 왜요. 아직 다 베끼지 못했는데.
덕흥 : 제가 떠돌이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서역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더러 그곳 글자도 배웠지요.
은수 : (굳어서 보는)
덕흥 : 그래서.. (은수가 베껴놓은 숫자들을 보며) 그 글자가 숫자라는 정도는 압니다.
은수 : .. (바로 단념하고) 속여서 미안해요. 근데.. 아직 그쪽이 누구편인지도 모르겠고.
어디까지 알려줘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덕흥 : 부원군의 말이 맞군요. 의선의 지식을 알고 싶으면 마음을 먼저 가지라고 하더니.
은수 쪽으로 바싹 다가선다. 은수가 당황해서 뒤로 좀 물러선다.
덕흥 :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는 은수를 지나쳐서 간다.
은수 : 잠깐만..
덕흥 : (돌아보면)
은수 : 그거 한번만 더 볼게요. 맨 뒤..
하며 다가선다. 덕흥이 손바닥 위에 수첩을 얹어 보여준다.
은수가 조심스레 수첩의 맨 뒤를 펼쳐본다. 거기 써있는 자신의 이름.
은수. 손가락으로 옆의 허공에 은수라고 적어본다. 필체를 살펴보듯.
은수 : 됐어요. 가세요.
하며 물러서서 뒷짐을 진다.
덕흥이 기웃해서 보며.
덕흥 : 역시 쉽지 않겠네.
은수 : 뭐가요.
덕흥, 그냥 웃고 돌아선다.
#7. 궁의 정원
장희가 걸어가고 있다. 슬쩍 주위를 살핀다.
그 앞으로 걸어오는 금군. 언제나처럼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쪽지.
장희와 금군이 헤어져 간 길에 조용히 나타나는 최상궁. 금군이 가는 쪽을 보더니 한쪽으로 고개짓을 한다.
사복을 입은 무각시 둘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금군의 뒤를 쫓는다.
#8. 기철의 집 대문 쪽
천음자가 금군이 가져온 쪽지를 건네받는다. 그 위로 들리는.
기철소리 : 토사구팽.
#9. 부유고 내부
기철이 그 쪽지를 펼쳐보며.
기철 : 아마도 주상의 새 중신들이 최영을 내칠 궁리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그 앞 탁자에서 덕흥이 수첩의 내용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 조심스레 한 장을 넘겨본다.
기철 : 그래서 의선은 그 내용을 해석한 거 같습니까.
덕흥 : 글쎄.
기철 : 의선의 마음 가져오는 것.. 언제쯤이면 되겠습니까.
덕흥 : 마음..
#10. 회상 12부 #20 다리 위
은수가 최영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긴다.
덕흥이 그런 은수의 손길을 놓치지 않고 봤다.
은수 : 가요 우리.
#11. 부유고
기철 : 의선을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건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돈이든. 힘이든.
덕흥 : 필요한 건 뭐든지.. 원하는 건 뭐든지..
기철 : 예.
덕흥 : 왕비의 자리는 어떤가.
기철 : ...!
덕흥 : 왕의 옆, 왕비의 자리라면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뭐.. 하늘세상이 어떤지 모르니 왕비자리와 견줘 볼 재간은 없지만..
기철 : 먼저 왕이 되셔야겠습니까.
덕흥 : 죽지 않으려면 별 수 없지 않나.
기철 : 어이쿠 무슨 그런 말씀을.
덕흥 : 그동안 잘 숨어 지내다가 여기까지 끌려나왔고. 주상의 면전에서 도발도 했으니.
이제 왕이 되지 못하면 내가 죽어야겠지. 생각없는 나라도 그 정도는 아네.
(덕흥이 다시 수첩에 관심을 쏟는다)
기철 : (웃더니) 알겠습니다. 그럼.. 왕의 자리를 가져와야 하는데. 뭐 간단한 방법이 없을까...
(진짜 생각해보는)
#12. 궁의 정원
스파이 금군이 돌아오고 있다. 마악 코너를 도는데 앞뒤에서 스윽 들어오는 칼.
금군이 허리춤의 칼에 손을 얹은 채. 멈춘다.
돌배와 주석. 그 중의 하나가 금군의 칼을 빼낸다. 무기압수.
# 13. 궁 내 회랑
장희가 걸어오고 있다. 긴장한다. 손이 검으로 간다.
다음 순간 날카롭게 들어오는 검. 장희가 받아친다. 그러나 뒤에서 또 다른 검이 들어온다.
장희가 반격을 하지만 결국 검이 막히고. 목에 칼이 들어와 무릎이 꿇린다.
장희를 제압한 무각시들.
장희가 앞을 본다. 거기 차갑게 쳐다보고 있던 최상궁.
순간 빠르게 다가오더니 장희의 턱을 잡아채고 뒷목을 쳐서 강제로 입안의 것을 뱉어내게 한다.
자결을 하려던 환약이 떨어져 나온다.
#14. 공민왕의 집무실
충석과 최상궁이 함께 들어와 공민에게 예를 올린다.
공민 : 그래 간자가 입을 열었는가.
최상궁 : 자결 직전에 잡아. 좀 험한 꼴을 보게 했습니다. 털어놓았습니다.
공민 : 무어라 하든가.
최상궁 : 국왕지인.
공민 : 나의 옥새?
최상궁 : 아마도 옥새를 훔쳐 원에 대한 명분을 세우려는 듯 싶습니다.
원의 황제가 내린 옥새를 분실했다. 이것은 전하께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꺼리가 되니까요.
충석 : 옥새를 목표로 정하였다면 습격이 계속될 겁니다. 대장께 보고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공민이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한다.
최상궁 : (슬쩍 충석에게) 이제는 대장이 아닙니다. 평무사지.
공민 : (그런 최상궁의 서운한 마음을 안다) 대장은.. 무얼 하고 지내는가.
충석 : 다시 돌아가신 듯 합니다. 예전 모습으로.
#15. 장교홀
다른 우달치들은 없다.
단상 한곳에서 최영이 잠들어 있다. 갑옷은 입지 않고. 단출한 옷차림.
그 자는 모습 충분히 보여지다가. 이쪽으로 돌아눕다가 문득 잠결에 긴장한다. 근처에 누가 있다.
손이 슬그머니 옆에 세워둔 검 쪽을 향한다.
다음 순간 검을 채잡으며 일어나 앉다가 멈췄다. 거의 발검할 뻔 했는데.
옆에 서서 소독약 같은 걸 꺼내놓고 있는 은수.
은수 : 아침부터 자고 있다면서요.
최영 : (그제야 후 숨쉬고) 여기서 뭐합니까.
은수 : 오늘 실밥 제거할라고요. 손목 내봐요. (하며 올라와 옆에 앉는다)
최영 : (움찔 옆으로 피하려는데)
은수 : 손목.
최영 : (부시시해진 얼굴을 쓰다듬고. 할 수없이 손목을 대준다. 소매도 알아서 걷어준다)
은수 : (붕대 떼고. 소독약 뿌리고. 가위로 실밥 제거하는 과정을 익숙하게 하며) 알아서 찾아주는 출장의사.
근데 이 환자. 치료비는 언제 줄래나. 어디 보자. 잘 아물었네요. 역시 내가 솜씨가 좋아.
이런 검상이나 봉합하기엔 많이 아깝지.
최영 : (은수의 수다에 좀 마음이 풀어지는)
은수 : 덕흥군이란 사람 왔었어요. 내 수첩 들고. 갑자기 왜 그런 마음을 먹은 건지 모르겠지만..
최영 : .. 예.
은수 : 나.. (최영을 보는) 수첩에 있는 숫자. 뭔지 알았어요.
최영 : 아셨습니까.
은수 : 그거 날짜드라구요. (작업하며) 몇 년 몇월 며칠.
내 세상에서 날짜 기록하는 방식으로 시간에 분까지 적혀 있는 거였어요.
최영 : 날짜에 시간.
은수 : 아마.. 하늘문이 열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겠죠?
최영 : 언젭니까. 다음 문이 열리는 시간.
은수 : 계산해봐야 되요. 거기 적힌 서기 년도수를 여기서 쓰는 방식으로 맞춰봐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아서 고민 중. 다 됐다..
(상처부위를 새삼스레 보며) 진짜.. 회복력이 엄청 좋단 말야.
붕대 더 안 붙여도 될 거 같은데.. (하며 고개 들다 보면)
최영 : (물끄러미 은수를 보고 있다가. 시선을 피하며) 시간 계산이 되면 알려주십시오. 미리 준비해야 되니까.
은수 : .. 아닐 수도 있어요.
최영 : (보는)
은수 : 서기 천백년부터 주욱.. 날짜가 적혀있는데. 그게 무얼 말하는 건지 아직 몰라요.
최영, 끄덕인다.
은수 소독약이며 가위를 챙겨 넣다가. 아.
은수 : 내가 최영씨 방에 먼저 갔었거든요. 거기 있는 줄 알고.
최영 : 거기 이제 내 방 아닙니다.
은수 : 근데 거기서 이걸 발견했지.
하며 가방에서 꺼내는 거. 아스피린 병이다.
최영이 반사적으로 뺏어버린다.
은수가 새침한 얼굴로 단을 내려가며.
은수 : 근데.. 마른 꽃 같은 거 약이랑 같이 둬도 괜찮나.
최영. 으.. 해서 병을 품에 넣어버린다. 아직 잠이 덜 깬 기분. 얼굴을 비비다 보면.
은수가 아래서 빤히 자신을 마주 보고 있다.
은수 : 하늘 세상에 당신 노래 있는 거 알아요?
최영 : 노래요?
은수 : (그냥 읽는 느낌으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어..
최영 : (굳었다) 그 말..
은수 : 한평생 나라 위해 바치셨으니. 겨레의 스승이라 최영장군.
최영 : 어디서 들었습니까. 황금.. 돌.
은수 : 하늘 세상에서 당신 엄청 유명하다구 했잖아요. 아버님 유언까지 넣어서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구요.
너무나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라서.
최영 : (진짜 놀랐다)
은수 : 당신이 뇌물을 먹었다구요? 하늘 사람들이 다 웃어요. (웃더니)
뭘 놀라요. 내가 하늘 사람인 거 당신만 못 믿었나? 자기가 델구 와 놓구선.
은수가 입구로 가며 손을 뒤로 흔들어준다.
은수 : 나 가요.
최영이 가는 은수를 본다. 은수는 최영장군 노래를 흥얼흥얼하며 나가고 있다.
#16. 궁의 일각
익재와 목은, 다른 중신 둘이 걸어오다가 보면
다른 쪽에서 걸어오던 기철의 무리. 양 옆에 양사와 기원.
기철이 익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익재도 고개를 숙인다.
기철이 익재의 옆에 나란히 걸으며
기철 : 충선대왕하고는 아주 막역한 사이셨지요.
익재 : 성은을 넘치게 받긴 했습니다.
기철 : 그 아드님이신 덕흥군.. 일전에 만나셨지요. 어떻든가요.
익재 : (냉정하게)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기철 : 한번 선택하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익재 : 선택을 하다니.
기철 : 왕을요.
익재 : (놀라 멈춰 보면)
기철 : 언제나 주어진 왕만 섬기지 마시고 선택을 해보시라고. 잘 살펴서 마음에 드는 분으로.
하며 먼저 걸어가는 기철. 그 위로 마음의 소리.
기철 : 필요하면 왕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하늘도 바꾼다.
#17. 편전
익재를 비롯한 새로 바뀐 중신들이 모인 가운데. 공민이 말하고 있다.
공민 : 이 나라 고려 땅의 팔할을. 일할도 되지 않는 자들이 갖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자기 땅이 없습니다. 땅을 잃고 농민은 노비가 되고.
한번 노비는 세세손손 노비입니다. 그래서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은..
덕흥 : 평장정사 덕흥이 주상께 아뢰옵니다.
공민이 멈췄다가 돌아본다.
기철의 옆에 앉아있던 덕흥. 익재를 비롯한 중신들이 모두 쳐다본다.
덕흥 : 전민변정도감은 이미 선대왕들 때에도 몇번 만들어봤던 기관이지요. 헌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공민 : (덕흥의 앞까지 걸어와 서며) 계속하세요
덕흥 : 취지는 훌륭합니다. 세도가의 땅과 노비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자.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합니까.
공민 : (부드럽게) 과인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덕흥 : 제 바로 옆에 계신 덕성 부원군.
기철 : (난처한 듯 웃는..)
덕흥 : (기철에게) 갖고 계신 노비가 얼마나 됩니까?
기철 : 글쎄요.. 세기가 힘든데.. 지방까지 합하면 천명은 넘지요?
덕흥 : 다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기철 : 허허.. 그러면 그들이 하던 일은 누가 하구요.
덕흥 : 땅과 일자리도 함께 내어주면 안되겠습니까.
기철 : 누구에게요. (공민을 보며) 전하께요. 그럼 전하께서 그것들을 다 관리하시겠습니까.
덕흥 : (공민을 보며) 설마 전하의 뒤에 있다는 우달치가 다 가져오라 했습니까? (온화한 얼굴로 말하고 있다)
자신이 다 관리할 수 있다 했습니까?
옥좌 옆을 지키던 충석이 불안해서 보고 있다.
공민이 그들의 수작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덕흥에게.
공민 : 가진 자에게 붙어 가진 자의 논리로 말씀하시는군요.
백성의 머리가 되는 왕족이 그리하시면 백성은 누굴 의지해야 됩니까.
덕흥 : 주상께서는 칼을 쓰는 무사에게 배운 것이 너무 많으신 거 같습니다.
많이 가진 자에게 가서 무조건 뺏으라. 맘에 드는 자들에게 나눠줘라.
그 과정에서 이 나라의 혼란은 어찌 책임지시려구요.
전하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실 작정이십니까.
공민.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익재 등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18. 병영 장교홀
아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최영. 그 옆에 충석이 붙어서 나직하게 말하고 있다.
충석 : 칼을 쓰는 무사에게 배웠느냐. 그가 그리 시키더냐.. 아주 작정을 한 듯 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대장하고 전하를 이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고..
최영이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한다. 생각이 많다.
#19. 전의시
탁자에 흩어져 있는 은수가 수첩을 베낀 종이들..
은수가 원의 수시력을 들춰보며 맞춰보는 중.
은수 : 이게 단기력만 있으면 간단한 건데. 단기 2333년. 빼기 더하기. 응? 근데 이게 뭐냐..
한자 공부 좀 해놓을걸.. (소리를 질러) 장선생님. 이 수시력이란 거, 여기 좀 읽어주..
하다가 놀라 멈춘다.
조일신과 익재. 목은. 그리고 다른 중신 몇이 우루루 들어서고 있다.
장빈이 안에서 나오며 그들을 맞는다.
장빈 : 어찌 오셨습니까.
일신 : 우리 의선을 뵈러 왔네. (은수에게 반갑다고) 편안하시지요.
은수 : 아.. 네. 안녕하셨어요.
일신 : (익재 등에게) 이분이 의선이십니다.
하늘문을 통해서 하늘에서 오시는 것을 제가 이 두눈으로 똑똑히 뵈었지요.
#20. 은수의 거처?
은수가 불안해서 앉아있고, 그 옆을 장빈이 지키고.
은수와 마주앉은 익재. 나머지는 익재를 둘러서.
익재 : 앞날을 보신다 들었습니다. (아직 거의 믿지 않고 있어 싸늘한)
은수 : 그건.. (눈치를 보는데)
일신 : 그뿐이 아닙니다. 화타의 제자로서 의술 실력 또한 대단하시지요.
익재 : 앞날을 아십니까.
은수 : (난처해서 장빈을 보는)
장빈 : 주상께서는 의선을 보호하는 책임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묻겠습니다. 어르신들의 질문에 의선이 왜 답을 해야 되는 것인지요.
익재 : 이 나라를 위해서네.
장빈 : 나라..입니까.
익재 : 의선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 지식과 힘. 이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될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주상께서 더 이상 미혹되시게 놓아 둘 수가 없어.
은수가 듣다가 허.. 어이없어 웃는다. 뭐야 또 시작이야.
일신 : (은수에게) 마음 쓰실 거 없습니다. 의선께서 진실하심을 제가 압니다.
목은 : 선생님. 그럼 질문을 드릴까요.
익재가 끄덕인다. 목은이 은수에게.
목은 : 조정대신들이 있는 앞에서 원은 곧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선다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은수 : (한숨을 쉬더니) 그땐.. 내가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구요. 그냥.. 홧김에 말이 나와버려서..
목은 :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은수 : 그렇게 말한 건 사실이에요. 네.
목은 : 원이 언제 망합니까.
은수 : 그 정확한 연도수까지는 내가 모르죠. 아참. 연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지금 이 시대의 연도에 대해 공부중인데요.
익재 : 어느 주상이 이 나라에 득입니까.
은수 : ...예?
익재 : 연도는 몰라도 임금님의 치적 정도는 아실 거 아닙니까. 지금의 주상은 이 나라에 득입니까.
은수 : 와아. 진짜.. (한숨 나온다)
익재 : 주상전하의 끝은 어떻습니까.
은수 : (스윽 둘러본다. 이대로는 곤란하겠다. 자세를 바로하더니) 천기누설은. 곤란합니다.
익재 : 곤란합니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은수 : 적어도.. 저에게 뭔가를 알아내고 싶으면 임금님께서 직접 질문하라 하세요.
그럼. 천기누설. 아주 약간은 가능할 수 있으니까. 알아 들으셨습니까?
#21. 약초원 앞
중신들이 모두 떠나가고 있다.
은수가 문 앞에서 그들을 보면서 혼자 궁시렁.
은수 : 아니 뭘 물어보고 싶으면 복채라도 가져오든가. 이건 뭐 내가 공짜 검색 사이트도 아니고..
하며 돌아서다가 깜짝 놀란다. 거기 언제 왔는지 서서 보고 있는 최영.
은수 : 언제 왔어요. 다 듣고 있었던 거에요?
최영 : 전하께서 질문하면 천기누설 약간은 할 수 있다. 거기까지.
은수 : (흘기더니) 암튼 지 발로 날 찾아오기도 하고. 기특하시네. 들어와요. 차 한잔 드릴께.
문을 열려는데. 최영이 팔을 뻗어 막더니.
최영 : 내일 새벽, 동이 틀 무렵. 길 떠날 준비하시고 매일 만나자던 그 자리에서 만나지요.
은수 : 떠..나요?
최영 : 짐은 너무 많이 싸지 마시고. 가볍게.
은수 : 나.. 떠나라구요?
최영 : 저 꽉 막힌 선생들. 정말 필요하다 생각되면 임자를 옥에 가두고 주리라도 틀 겁니다.
은수 : 거짓말. (웃는데)
최영 : (웃지 않고 본다)
은수 : (굳는) 진짜?
최영 : 노숙하게 되면 추우니까 옷은 든든하게.
은수 : 같이 갈 거에요?
최영 : ...
은수 : 그래도 되요? 그럴 수 없잖아요. 당신은 임금님하고..
최영 : 같이 갈 겁니다. 함께.
최영이 좀 웃는 거 같더니 팔을 거둬 걸어간다.
은수. 믿기지 않아서 가는 최영을 본다.
#22. 전의시
뛰어 들어오는 은수. 탁자 위에 있던 베낀 종이며 달력들 급하게 쓸어모아 달려나간다.
환자를 보던 장빈과 더기가 이상해서 본다.
나가던 은수가 다시 달려들어온다. 자기 약병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약병 몇 개를 재빨리 챙긴다.
아참 해서 옆에 붕대천 감아놓은 것도 챙긴다. 다시 달려 나간다.
#23. 은수의 거처
은수가 달려 들어온다. 보자기를 펼치고 짐을 싸기 시작하는 중이다.
보자기 위에는 앞에 쓸어모아온 것 외에 옷가지도 던져져 있고.
이동하다가 고려청자 앞에 멈춘다. 역시 아깝다. 그래도 발을 굴러 에잇 포기하고 지나친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온다. 청자 옆에 화장품 병으로 쓸만한 자기병이 몇 개 놓여져 있다.
#24. 궁의 내부 회랑
은수가 자기병이 든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는데. 뭔가 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저만치 지키는 우달치들이 모여서 수군수군. 그 중 하나가 은수를 보더니 얼른 인사를 한다.
// 또 다른 곳에는 무각시들이 시녀들과 모여서 수군수군.
그 옆을 지나쳐 가는 은수. 이상해서 한번 더 돌아본다.
#25. 노국의 방
탁자 위에 놓여진 자기병.
은수가 병에서 크림을 떠서 앞에 마주앉은 노국의 얼굴에 발라주는 중이다.
은수 : 우리 장빈 선생 약제실에 갔더니 별 게 다 있드라구요.
그 중에 천삼이란 게 있지 뭡니까. 홍삼 중에 제일 비싼 거래요. 그래서 내가 좀 썼어요. 괜찮죠?
노국 : 괜찮습니다.
은수 : 그걸로 만든 거에요. 사포닌이 많아서 피부를 탱탱하게 해줄거에요.
은수가 마주 앉은 노국을 새삼스레 본다.
노국 : 어찌 그리 보십니까.
은수 : 이쁘셔서.. (하더니 노국의 두 손을 모아 잡는다)
노국 : (당황하는데)
은수 : 장선생님한테 부탁해놨어요. 자궁 쪽에 좋은 약 많이 해드리라구요.
내가 전공은 아니지만 부인과 진료를 좀 해드리구 싶은데 도구가 너무 없네요.
노국 : 내가.. 어디 안 좋은지요.
은수 : (손을 들어 언니처럼 노국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내가.. 하늘의 지식을 쪼끔 알려드릴께 잘 들으세요.
노국 : (끄덕이는)
은수 : 이 땅에 참 많은 왕과 왕비님이 계셨고. 앞으로도 많이 나오시겠지만.
두분만큼 서로 사랑하는 분은 없었어요.
노국 : 저..하고 전하.
은수 : 그래요. 두 분.
노국 :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은수 : 전하께서 왕비님을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시냐 하면요.
..혹시라도 왕비님이 어디 아프거나 먼저 떠나거나 하시면 식음도 전폐하고. 나라일도 전폐하고
오직 왕비님만 생각할만큼.. 그만큼 사랑하세요.
노국 : (놀라서) 저는 어디 떠나지 않습니다. 전하를 두고 안갑니다.
은수 : 그러니까.. (어쩐지 목이 메이는 듯 해서) 한번 안아 드려도 되요? 버릇없지만 하늘나라 언니니까.
노국. 어어. 하는데. 은수가 노국을 꼭 안는다.
노국 뻣뻣하게 앉아있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은수가 포옹을 풀며 웃는데.
밖에서 급히 들어서는 최상궁. 얼른 절을 하더니.
최상궁 : 시작되었답니다.
은수 : (무슨 일인가)
노국 : (은수를 보며) 최영 대장. 친국이 있습니다.
#26. 궁의 회랑
최영이 걸어가고 있다. 양 옆에는 금군이 호위하는 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달치들이 애가 닳아서 최영을 보고 있지만.
최영은 묵묵히 앞만 보고 있다.
저 뒤를 따라오고 있는 대만. 최영의 칼을 가슴에 안고 있다.
대만의 뒤로 더 못 참겠는 덕만이 자리를 이탈해서 붙는다. 우달치들이 하나씩 붙는다. 따른다.
#27. 강안전 친국장 앞
문의 양 옆을 지키고 있는 주석과 돌배.
멈춰선 최영이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거기 우루루 따라온 우달치들.
최영이 돌배에게.
최영 : 저기 자리 이탈한 놈들, 대부분 을조야.
돌배 : 시정하겠습니다.
문이 열린다. 최영이 금군들과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긴다.
#28. 친국장
최영이 들어와 가운데 버티고 선다. 양쪽으로 익재 목은. 그리고 덕흥군이 보인다.
덕흥은 최영과 시선이 마주치더니 웃어보인다.
저 앞, 양쪽으로 필기를 준비하고 있는 서기들. 방의 곳곳에는 금군이 우달치 대신 자리하고.
공민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직 비어있다.
#29. 공민의 서재
공민이 말없이 책상 앞에 서있다. 그 옆에서 일신이 열심히 고하는 중.
일신 : 익재 선생을 비롯한 개경의 학자들 뿐 아니라. 이제 전국 각지의 사대부들이 전하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 친국의 결과를 아아주 중요시하고 있겠지요.
과연 전하께서는 측근의 비리에 과감하실 것인가.
최영의 옷소매에 매달리는.. 아이쿠.. 제 말이 아니옵고 시중의 말이 그렇습니다.
그런 전하가 아니시고 홀로 우뚝 서신 결단력있고. 총명하신 분이신가.
공민 : 찬성사.
일신 : 예. 전하.
공민 : 오늘 친국의 주제는 간단한 겁니다. 최영이 수뢰를 했는가 아닌가.
일신 : 물론 그야 그렇습니다만..
공민 : 난 그에 맞는 답만 구할 것이에요.
일신 : 전하. 저언하.
공민 : 최영이 그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끝.
일신 : 전하께선 기어이 그 악귀같은 놈을 곁에 두시겠다는 말씀..
허나 한걸음에 달려온 공민이 일신의 멱살을 틀어쥐는 바람에 말이 끊긴다.
공민 : 다시는 최영을 그리 부르지 마라. 그자가 나를 알고 나서 흘려야 했던 피. 죽여야 했던 생명,
하나하나 죄다 내 값이었어. 알아 들었는가?
일신 : (애절하게) 그 자가 고려의 임금님. 전하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어찌 부인하십니까.
공민 일신의 멱살을 떨쳐내더니.
공민 : 이제 난 준비되었네. 가지.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30. 친국장
공민이 들어선다. 방안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공민을 향해 예를 올리고.
공민이 가운데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따라 들어선 일신이 불안한 얼굴로 자리 잡고.
공민이 최영을 본다. 최영이 순하게 공민을 본다.
공민 : 시작하세요.
목은 : 우달치 대장이었던 최영의 수뢰죄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일곱날 동안 어사대에서는
최영에 대해 스스로의 무죄를 밝힐 기회를 주었습니다. 죄인. 최영. 증명할 것이 있으면 하게.
최영 : (생각을 정리해보고 있다)
목은 : 증거나 증인. 준비된 것이 있는가.
공민 : 증거는 모르겠으나 증인이라면 여기 있네.
우달치 최영의 무죄를 밝히는데 과인이 직접 그 증인이 될 것이야.
일신 : 전하. (애가 타는데)
공민 : 과인이 최영을 알게 된 이후로 내가 듣고 보아온 그의 인품에 대해 고려왕의 이름으로 증언하겠다.
목은이 당황하여 익재에게 뭐라 속삭이며 조언을 구한다.
익재의 뒤에 서 있던 중신들 몇도 모여들어 빠르게 의논을 한다.
덕흥 : 평장정사의 임무로 전하께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공민 : 경청하지요.
덕흥 : 이 자리는 전하의 친국 자리입니다.
전하는 죄인을 판단하실 뿐. 사사로운 감정으로 편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공민 무어라 말하려는데.
최영 : 죄인. 최영이 말씀 올리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최영에게 집중이 되고.
최영 : (공민을 똑바로 보며) 신은 지난 칠년동안 우달치의 대장 직을 맡아왔습니다.
말년에 이르러 총애하여 주시는 주상전하를 만나 교만이 도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공민 : (불안해서 보는)
최영 : 그러던 와중에 잠시 물욕에 흔들렸고. 군무기 납입자들에게서 수뢰를 하게 된 점을 인정합니다.
공민 : (충격으로) 최영. 이 사람아.
최영 : 전하께 누를 끼치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공민이 탁자를 땅 쳐서 벌떡 일어나는데.
일신 : (재빨리 끼어들며) 죄인이 자백을 하였소이다.
어사대에서는 어서 그에 걸맞는 형량을 제시하여 전하께서 명하게 하시오.
목은 : 죄인 최영은 장물을 계산하여 도형에 처하는 것이 적정한 줄로 아뢰옵니다.
관아에 구금하고 야철장의 노역을 행하게 하면 될 것이고 형기는 일년에서 삼년이 적당할 것입니다.
- 자막 도형(徒刑) : 구금형. 노비와 함께 관청 등의 노역을 충당했다.
공민이 충격으로 떨며 최영을 본다.
최영은 그저 묵묵히 공민을 보고 있다가 좀 웃는 듯 싶더니 고개를 살짝 젓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는 최영을 어라.. 해서 보는 공민.
#31. 은수의 거처 외경 / 밤
장빈이 급히 은수의 거처로 이동한다.
#32. 은수의 거처 / 밤
은수가 놀라서 돌아본다.
은수 : 포박이요?
장빈 : 현장에서 묶였다 합니다.
은수. 더 말없이 짐을 마저 묶는다. (옷차림은 새로 준비한 것이 없으면 남장을 다시 이용하겠습니다)
장빈 : 날이 밝으면 야철장으로 끌려갈 모양입니다.
은수 : 그럴 리 없어요.
장빈 : 의선.
은수 : 가서 기다릴 거에요. 온다 그랬으니까 올 거에요.
알잖아요. 그 사람. 온다 그러면 오고. 간다 그러면 가는 사람이니까.
장빈 : (보다가 입구 쪽으로 가며) 의선의 수술도구를 챙겨오겠습니다. 갖고 다니세요.
그리고.. (멈추더니)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돌아오세요.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고.
은수 : 올 거에요. 그 사람. (웃는)
#33. 기철의 서재
기철이 이해가 안되서 덕흥을 돌아본다.
기철 : 최영이 자백을 했다 했습니까.
덕흥 : 그러네. 아주 순순히.
기철 :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자. 차라리 역모죄로 죽을지언정
수뢰죄를 인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 보았는데. 형량은 어찌 정해졌습니까.
덕흥 : 도형 일년.
기철 : 그 형을 주상이 직접 언도하셨습니까.
덕흥 : 그랬지.
기철 : 직접.. 아무렇지도 않게? 부끄러움이나 주저함도 없이요.
덕흥이 생각해본다.
#34. 회상 // 친국장
공민이 최영을 보며 말하고 있다. (아직은 불안하지만 믿으며)
공민 : 도형 일년에 처한다.
공민을 마주 보고 있는 최영. 조금 끄덕인다.
#35. 기철의 서재
덕흥 : 그러고보니..
기철 : (열심 듣는)
덕흥 : 주상과 최영이란 자. 형을 내리고 받는 자의 눈빛이라기엔 뭔가 이상했네.
기철 : 이상했다 하심은?
덕흥 : 분노. 억울함. 체념..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어.
기철 : ... 빌어먹을.
덕흥 : 무엇이라 했나.
기철 : 그 놈이 또 수작을 부리나봅니다. (문으로 달려가며 버럭) 사제! 사매!
#36. 기철의 집 마당 / 밤
화수인과 천음자가 빠르게 이동하여 나오고 있다. 그 위로.
기철소리 : 의선을 빼낼지 모른다. 어떻게든 잡아놔. 좀 다쳐도 상관없으니 절대 놓치지 마라.
#37. 곤성전 노국 침소 / 밤
잠자리 옷을 입은 공민과 노국.
공민은 가만 앉아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노심초사하는 중이다.
그런 공민이 안쓰러워 보고 있는 노국.
공민 : 분명히.. 괜찮다고 했습니다. 대장이 마음 속으로 건넨 소리. 내가 들었습니다. 괜찮다. 안심해라.
공민이 숨이 말라 마른 기침을 한다. 노국이 얼른 찻물을 따라 건넨다.
공민이 마시고 감정을 좀 가라앉혀서.
공민 : 지난 번 옥에 갇힌 대장을 보면서 내가 속으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 다시는 가두거나 묶이게 하지 않겠다. 이 사람을 묶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다..
노국 : 낮에 의선이 왔었습니다. 함께 있을 땐 몰랐는데 헤어지고 나서 깨달아진 것이 있습니다.
의선.. 어쩐지 헤어지는 인사를 하러 온 듯 했습니다.
공민이 그 말에 뭔가 생각이 되어지며 노국을 본다.
노국이 그런 공민에게 끄덕여 보인다.
#38. 뒷마당? / 밤
금군 둘이 마주 앉아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고. 다른 금군들이 여기저기서 지키고 있다.
죄인 호송 전에 대기하는 장소. 길다란 기둥에 여섯일곱명 정도? 각양각색의 죄인들이 묶여 있다.
그 중에 최영이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자리를 보며 시간을 재는 중.
#39. 전의시 / 밤
장빈이 호롱불을 끄려다가 멈춘다.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가 오고 있다.
불을 마저 끈다. 그리고는 조용히 옆으로 빠진다.
#40. 은수의 거처 / 밤
불이 꺼져서 어두운 공간.
문이 열린다. 들어서는 화수인과 천음자.
화수인이 옆의 호롱불에 손을 스친다. 불이 밝혀진다. 실내에는 아무도 없다.
#41. 전의시
약원이 지나가는데 뒤에서 거칠게 휘어잡는 손. 천음자다.
천음자 : 어디 있나.
#42. 마을 길 / 밤
화수인과 천음자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문득 천음자가 화수인을 멈추게 하더니 귀를 기울인다.
천음자 :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이쪽.
방향을 바꿔서 달린다.
#43. 마을 다른 길 / 밤
달려오는 화수인 천음자.
저 앞에 가는 장빈과 옆의 여자. 은수가 입던 의원 옷을 입고 있다.
그대로 달려가 공격해 들어가는 천음자. 장빈이 부채로 그 공격을 막는다. (한두합 더해도 좋고요)
이제 돌아보는 두 사람. 장빈과 은수 옷을 입은 더기다.
장빈 : 부원군댁 사람들 아닙니까.
화수인 : 의선을 찾는 중인데.
장빈 : 의선이라면 약초원에 계실텐데요. 무슨 일입니까.
화수인 바싹 약이 올라서 장갑을 벗으려 하며 장빈에게 다가선다.
장빈이 재빨리 더기를 뒤로 밀쳐보내는데.
천음자가 화수인의 어깨를 짚어 말리며.
천음자 : 왕실의 어의다. 골치 아파져.
화수인이 화가 나서 뒤쪽을 본다. 어디서 놓친 것인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천음자가 곧 옆으로 쫓는다.
#44. 교각 위 / 밤
은수가 기다리고 있다. 보따리를 안고.
어둠 속에서. 뭔가 소리가 나는 듯 하면 고개를 빼어 살펴보면서.
#45. 뒷마당 / 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영이 문득 고개를 든다. 돌아본다.
거기 허공에 크게 호를 그리며 날아오는 최영의 검.
최영, 미소 짓더니 손을 올려 검을 받아든다.
저만치 담 위에서 검을 날려보냈던 대만이 그대로 담에서 풀쩍 뛰어내리며 그 아래 있던 금군을 기절시킨다.
금군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빼낸다.
여기저기의 금군들이 놀라서 일어서고 무기를 뽑아들고. 옆의 죄인들이 웅성거리는데.
최영은 침착하게 일어선다. 다리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
검은 뽑지 않은 채, 달려오는 금군 둘을 찌르고 패서 쓰러뜨리고는.
저만치에서 대만이 던진 열쇠를 받아든다. 발목의 족쇄를 풀며. 그 자세로 달려든 금군을 또 기절시킨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이동해나간다. 걸리는 자는 그냥 기절시킨다.
대만도 쫄랑쫄랑 따르며 제 몫을 한다.
#46. 곤성전 노국 침소
공민과 노국이 돌아본다. 입구 쪽에 최상궁과 충석.
공민 : 탈옥?
최상궁 : 그게.. 호송직전의 죄인들을 모아서 대기 시켜놓았는데
그냥.. 지키는 자들을 쓰러뜨리고 가버렸다 합니다.
충석 : 금군들이 궁 안을 이잡듯 뒤지고 있다 합니다. 뭐.. 그래봤자 지들이.. (하다가 얼른 입 다무는)
공민 : (무표정) 알았네.
최상궁 : 도주한 죄인에 대해 달리 하명하실 일은..
공민 : 없어. 피곤하니 물러들 가보게.
최상궁과 충석이 예를 표하고 공손히 문을 닫아준다.
노국이 걱정되서 공민의 기색을 살핀다.
노국 쪽으로 돌아앉은 공민. 문득 풋 웃는데 쓸쓸하다.
노국 : 전하?
공민 : 하긴.. 처음부터 묶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머물기 전에는.
노국 : 묶인 것을 풀고 도주하였다는 것은..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일까요.
공민 : ... 내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떠난 모양인데..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 마음.
#47. 교각 위 / 밤
은수가 움찔해서 일어선다. 얼른 가장자리로 가서 먼데를 본다.
저 먼데 등불이 오락가락한다. 금군들이 횃불을 들고 찾으러 다니는 중. 가까운데도 누군가 온다.
은수가 얼른 보따리를 메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48. 궁 내부 숲 / 밤
금군 몇 명이 횃불을 들고 지나쳐간다.
이만치 뒤에 숨어서 그들을 보고 있는 은수. 이거 계속 숨어야 되는지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움찔거리다가 멈춘다. 저 뒤에서 들리는 소리. 나뭇가지로 나무 치는 소리(최영이 뒤를 보라고 낸 소리)
은수 쭈그려 앉은 자세로 발목의 단검을 빼려 하는데.
바지(치마)자락에 손이 걸리고 단검을 헛손질하느라고 낑낑.. 마음이 급해서 더 헤메는데.
최영소리 : 아직 한참 늦습니다. 그리 늦어서야..
은수가 돌아보면. 몇걸음 뒤에 최영이 서서 보고 있다.
최영 : 기다리셨습니까.
은수가 천천히 일어서는데.
잡혀갔단 소리 들었을 때부터 마음조림이 한꺼번에 울컥해서 최영을 노려본다.
최영 : (어색해서) 아직 새벽이 아니라.. 그래서 전의시로 모시러 갈까 하다가..
은수가 들고 있던 보따리가 땅에 뚝 떨어진다.
은수가 최영에게로 간다. 점점 빨리 그리고는 그 품에 들어가 끌어안는다.
최영. 놀라서 굳어 서있다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감싸 안아준다.
둘 다 뭐라 더 말은 하지 않지만 은수의 비로소 안심한 마음이 전해졌다.
#49. 기철의 서재
덕흥군이 책을 읽는 옆에서 기철이 버럭질을 하고 있다.
기철 : 개경 내 골목골목 전부 뒤지고. 나가는 길목은 전부 봉쇄해.
갖고있는 사병들 죄다 풀어. 평소 뭣땜에 먹이고 입혀왔는가.
기원 :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그 옥새 문제는..
기철 : 지금 당장. 어서어.
기원이 더 말을 못 붙이고 달려나간다.
기철 : 이것들은 분명히 북쪽으로 갔어. (양사에게) 국경까지 마을마다 전서구를 날린다.
모든 관에 모든 병력은 최우선 순위로 이것들을 잡아야 할 것이야.
용모파기 백장이고 천장이고 그려서 모든 저자거리. 포구. 성문마다 붙이게 하고.
아니. 내 병사들을 풀어. 천명쯤 마을마다 나눠서 넣어.
양사 : 당장 조처하겠습니다.
양사도 달려나간다.
기철이 문득 덕흥을 향해 서더니.
기철 : 의선. 그것이 하늘문의 비밀을 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최영이 그 놈을 데리고 간 겁니다.
그렇지. 주상이 최영이 그 놈을 보낸 겁니다. 둘이서 작당을 한 것이지요. 내가 당했습니다.
덕흥 :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 아니신가. 설마 그만 일에 자신의 오른팔을 누명까지 씌워가며..
기철 : 서책을 내 준 것은 그 비밀을 알아오시라 한 것인데. 대체 무얼 하셨습니까?
알짜는 죄다 넘겨주고. 가서 얼굴 구경이나 하다 오셨습니까?
덕흥 : (읽던 책을 접으며 슬쩍 화제를 돌려) 주상이 연극까지 해가며 친위대장을 보냈다...
가서 무엇을 하라고.
기철 : (버럭) 하늘 세상입니다. 오가는 문을 여는 방법만 안다면 하늘의 지식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이 땅에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도대체가 왜 내 주변에는 그 정도 생각 크기를 가진 자가
단 한명도 없는 겁니까. 더불어 얘기를 나눌 자가 하나도 없어요.
대학자란 것들이 의선을 찾아가 기껏 물어봤다는 게 주상이 어떤 분이냐고?
허어. 그것이 뭐가 그리 궁금해.
(발에 걸리는 것들은 걷어차며 문으로 가며) 필요한 주상이 있으면 만들면 되지!!
기철이 나가고 거칠게 닫힌 문.
덕흥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50. 저자거리 / 낮
오가는 행인들. 그 사이를 걸어가는 최영과 은수.
계속 주변을 살피며 걷던 최영이 순간 은수를 잡아채 자기 몸으로 감싸며 옆으로 돌아선다. 다른 걸 구경하는 척.
저쪽을 지나쳐 가는 기철네 사병복장의 사내들.
최영의 몸으로 가리워진 채 숨죽이고 있는 은수.
최영이 은수를 밀어서 다른 길로 들어선다.
#51. 골목
숨어있는 은수. 골목 끝에서 상황을 엿보고 오는 최영.
은수 : (속삭이며) 그니까 지금 쫓기는 게 나에요. 그쪽이에요? 죄인인데 도망친 건 당신이잖아.
최영 : 부원군 집 사병들이 쫙 깔린 거 보니까. 아무래도 임자가 목표인 거 같은데.
은수 : 그럼 이렇게 하죠. 영 급해지면 내가 자수를 하는 거야. 그 틈에 당신은 도망가요.
생각해보면 이 고려 시대 떨어진 담에 그 부원군 집이 제일 침대도 좋았고.
밥에 반찬도 많았고. 새옷도 주고.. 그리고.. (하다 보면)
최영 :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은수 : 여기서 웃어야 되는데. 지금 농담하는 거라서.
최영 : 무슨 농이 재미도 없고.. (하면서 은수를 돌려서 밀어준다) 따라가 있어요.
밀려난 은수가 고개를 들다가 엄마야.
그 앞에 가로막고 서있는 거사. 은수를 향해 친근하게 웃어준다.
은수가 놀라서 도로 최영에게 달려간다.
은수 : (최영의 옷깃을 움켜잡으며 거사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최영 : (은수 손을 떼어내며) 상황을 좀 보구 오겠습니다.
최영이 골목을 나간다.
은수가 쫓아가려다 보면 그 앞을 가로막는 지호. 놀라서 옆으로 돌아서면 또 가로막는 시울.
뒤를 보니 여전히 웃고 있는 거사.
#52. 창고내부?
주춤주춤 들어서는 은수. 뒤에는 거사 등 세명이 몰이사냥을 하듯 은수를 밀어넣었다.
은수. 겁이 나고 있는데.
마마소리 : 국밥 한그릇 먹어봐요.
돌아보면 마마와 만보가 은수를 보고 있다. 그들 앞 상에 놓여져 있는 국밥 한그릇.
마마 : 내 국밥이 이게 보통 국밥이 아녀.
만보 : 개경 최고. 응.
마마 : 먹어봐요.
은수 : (아는 얼굴들이다) 안녕하세요...
(하며 거사 쪽을 보고 슬금슬금 마마네 앞에 가서 앉는다. 이쪽이 낫다)
마마 : 자아.. (하며 품에서 숫갈 하나를 빼준다)
은수 : 예에.. (하며 받는)
마마만보 : (열심히 보고 있다)
은수 : (국밥을 떠서 먹는다)
마마만보 : (둘이 입까지 벌리고 너무 열심히 보고 있다)
#53. 강안전 공민 집무실
공민의 집무실이 평소와 다르게 북적거리고 있다.
양쪽으로 앉아있는 새로운 중신들. 각자의 상에는 필기도구들.
옆에 쌓여있는 두루마리나 장부를 펼쳐 보는 이. 필기를 하는 이.
옆의 사람과 토론 중인 이들로 활기가 차있다.
그들 사이를 오가며 진척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목은도 보이고.
그런 그들을 중앙 자신의 자리에서 보고 있는 공민.
문득 옆을 돌아보면 언제나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석.
그리고 다른 한쪽을 보면 주석이 다른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일신이 싱글벙글 옆에 붙어서며.
일신 : 신이 뭐라 했습니까. 전하의 발목을 잡는 것들만 정리를 하면 이렇게..
사방에서 인재들이 몰려들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전하의 아래서 전하의 뜻을 펼치고 있는 저들..
신은 그저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라도 날 듯 하여..
말하다 보면 어느새 공민은 저쪽에 있는 익재에게 가고 있다. 좀 뻘쭘하지만 따라간다.
익재가 공민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익재 : 우선은 각 세도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 노비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민 : 부당하게 강제로 노비가 된 양민이 많다 들었어요 그들 먼저 찾아내어 지위를 환원시켜 주고.
그 보상 차원에서 땅을 나눠주는 게 어떤가요.
익재 : 토지몰수의 문제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공민이 신경쓰여서 보는 앞.
새로 들어온 환관에게서 새로운 전갈 쪽지를 받고 있는 목은. 그러는 동안 떠드는 일신.
일신 : 어허.. 일개 세도가들의 저항 따위.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신이 이미 금군 이천을 손에 잡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신에게 확실한 병권만 넘겨주시면 당장이라도...
공민 : (손을 들어 일신의 말을 멈추게 하고. 다가오는 목은을 본다)
(다가온 목은에게) 뭡니까. 혹 간밤 도주한 자에 대한 소식이라도..
목은 : 3경 12목의 향교에서 박사와 교수들이 올라오고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의 동명학파. 강화향교의 유수학파. 나주향교의 계성학파.
모두가 관료들을 수십명씩 배출해오던 명문학파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은 앞에서 어쩐지 실망하는 듯한 공민.
그런 공민의 기색을 살펴보고 있는 일신.
#54. 창고 앞
은수가 돌아본다. 최영이 들어오고 있다. 반가운데.
최영 : 어떻게 나갈 구멍이 없네. (하며 은수의 옆에 주저앉는다)
만보 : 니놈 혼자라면야 뭐 문제가 있겠냐만은. 이 분 모시고는 어림없지.
마마 : (품에서 숫갈을 하나 꺼내주며) 국밥 먹을랴.
최영, 숫갈을 받아들며 옆을 본다. 은수가 먹고 있던 국밥이 반 넘게 남아있다.
스윽 그릇을 당겨서 먹으며.
최영 :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은 없을까. 바닷길로 올라가는 거.
만보 : 포구는 더 빡빡혀. 아침에 우리 배 하나 띄우는데 댓놈이 달려들더니 배 밑창까지 뒤집어놓드만.
니놈하고 이분 찾겠다고.
마마 : 차라리 사나흘 여기 숨어있어.
만보 : 그렇지. 졸개놈들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마마 : 졸개는 졸개여.
만보 : 사나흘 지나면 지들도 할만큼 했으니께 대충 군기 빠지게 되있어. 그때 움직이라고.
마마 : 조용하고 눈에 안 띄는 방 하나 구해줄테니까.
만보 : 그렇지. 방 하나.
최영 : 아무래도 그래야할 거 같은데.. (하고 은수를 돌아보면)
은수 : (숫가락을 든 채 국밥그릇을 내려다보고 있다) 설마.
최영 : 뭐가요.
은수 : 다 먹었어.
최영이 내려다보면 바닥이 보이는 국밥그릇.
최영 슬그머니 옆쪽에서 놀고 있는 지호 시울에게.
최영 : 느네 찬성사 조일신 알지?
지호 : 알지.
최영 : 미행 좀 붙어줘야겠다. 누굴 만나는지. 무슨 얘길 하는지까지 알아오면 더 좋고.
시울 : 궁 안은 안되고 밖에서 하는 짓만 다 따오면 되지?
최영 : 그렇지.
만보 : 어이 너 지금 뭐하냐.
마마 : 설마 너 아직도 그 왕을 위해 일하는 거냐?
최영 : 어.
만보 : 그 왕이 니를 누명 씌워서 도형 먹였다매. 머하라고?
최영 : 야철장 가서 철 캐라고. 일년동안.
마마 : 그런데 아직도 니 왕이야?
최영 : 어. (어이없어하는 만보네는 놔두고 은수를 향해 돌아앉더니) 며칠 숨어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은수 : 들었어요.
최영 : 할 수 있겠습니까? 조신하게 조용하게 숨어 있는 거.
은수 : 숨만 쉬고?
최영 : 절대 나대지 말고.
은수 : (생각해보는)
최영 : (기다리는)
만보남매가 마주본다. 쟤들 뭐하는 거야?
은수 : (진지하게) 밥은.
최영 : (결국 웃는다) 줄 겁니다. 많이.
#55. 궁의 일각
일신이 걸어오고 있다.
뭘 혼자 생각하는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기도 하고 절레절레 고개도 저으며 오다가 깜짝 놀라 선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덕흥.
일신이 새침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인다. 그리고는 옆으로 비켜 가려는데.
덕흥 : 찬성사.
일신 : (할 수 없다는 듯 돌아보며) 예.
덕흥 : 바둑 좋아하시나?
#56. 궁 내 어느 방
탁자 위에 놓여진 빈 바둑판. 사이에 두고 일신과 마주앉은 덕흥.
이하.. 일신이 뭘 생각할 틈이 없이 몰아치는 덕흥.
일신 : (권위있어 보이려 애쓰며) 다시 말씀드리지만.. 바둑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덕흥 : 그럼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돌 하나 집으시고.
일신 : (할 수 없이 검은 돌을 집어들긴 했는데..)
덕흥 : 얹으시게.
일신 : (대충 아무데나 올려놓는다)
덕흥 : 그렇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야. 그럼 나는..
(흰돌을 들더니 검은 돌 하나 외에는 없는 판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일신 :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이렇게 덕흥군 마마와 함께 있는 것.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또..
덕흥 : 부원군 기철이 시방 지정신이 아니네. 의선 하나를 잡겠다고 사병들을 전국에 흩어놓고 있어.
일신 : 제가 그 정도 소식은 듣고 있습지요.
덕흥 : (돌을 딱 놓더니) 이때 금군 이천만 이끌고 쳐들어가면 승산이 구할인데.
주상께서는 뭘 하고 계신가.
일신 : (엥?)
덕흥 : 여전히 무슨 땅을 뺏고 노비를 풀고 그런 탁상공론에 매달려 계신가.
일신 : 그야. ..
덕흥 : 자네는 십년동안 주상을 모셔왔다지?
일신 : 그렇습니다. 지난 십년을 하루같이 ..
덕흥 : 그런 자네가 정승이 아니라니 이상하군. 뭐하나. 돌.
일신 : (얼른 흑돌 하나를 대충 놓으며)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덕흥 : 내 사람이 되게.
일신 : ..예?
덕흥 : 그럼 지금 덕성 부원군의 자리를 내가 드리지. 그 재산. 그 힘.
일신 : 그럼.. 마마께선..
덕흥 : (덤덤한 얼굴) 왕이 되야겠지. 그 자리를 내주려면.
일신 : (입이 딱 벌어졌다가 주위를 다시 살피고) 설마.. 지금 하시는 말씀이 역.. 역모를..
덕흥 : 어차피 기철 그 자가 나를 왕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알고 있으시지?
일신 : (끄덕끄덕)
덕흥 : 근데 난 그 자가 무서워. 그래서 다른 자가 내 편이 되었으면 좋겠네.
일신 :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엄한 얼굴을 하더니) 참으로 해괴한 말씀. 겁도 없이 하시는데.
내 당장 이 자리에서 들은 모든 이야기를..
덕흥 : 가서 일러바치시게?
일신 : ...
덕흥 : 내가 지금 왕이 되려 한다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든가?
(들고 있던 흰돌을 따악 놓더니 일어선다) 그럼 다른 이를 알아봐야겠군. (돌아서 가려는데)
일신 : 마마.
덕흥 : (보는)
일신 : 기철의 자리라 하셨습니까?
덕흥 : 그러네. 그 집. 그 재산. 그 자리.
일신 : 그럼 제가 부원군이 된다는..
덕흥 : 뭐 맘에 드는 걸로.
일신 : 그럼.. (숨이 막혔다가) 제가 무. 무엇을 하면..
덕흥 : 아. 참 그.. 우달치 대장이었던 자 이름이 뭐라 했는가.
일신 : .. 최영 말씀이십니까.
덕흥 : 궁 안에 그 자와 내통할만한 자가 있을 거 같은데. 누가 있을까.
#57. 창고 안
문 앞에 (혹은 벽 창문 쪽에) 서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최영이 돌아본다.
거기 은수가 무릎 가득이 종이를 늘어놓고 공부 중이다. 옆에는 원의 수시력을 펼쳐놓고 있고.
공부할 때 원래 그러는지. 생각이 안나면 머리를 있는대로 헝클어뜨리고 있어서 지금 머리칼이 난리가 났다.
(좀 이상하게 묶어놓은 상태에서 머리칼이 삐진 상태도 좋습니다)
다른 종이로 넘기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묻혀 넘긴다.
그 종이에는 전에 베껴 쓴 공식이 적혀져 있다. R= k(10g+ f)
은수 : 알은 상수 케이.. (생각날 듯 말 듯. 머리를 쥐어뜯는다)
최영 : (어이없어 구경중)
은수 : 이 공식 어디서 봤는데..봤는데.. 뭐지? 어디지?
괴로워 하다가 보면. 앞에 최영이 쭈그려 앉아서 구경하며.
최영 :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은수 : 분명히 내가 아는 공식인데.
최영 : 애들 오면 같이 이동할 거니까. 사람들 오기 전에 그 머리 좀 어떻게..
은수 : (갑자기 여러번 외워서 스타트하면 끝까지 바로 이어지는 쪼로)
알은 상수 케이 곱하기 십지 플러스 에프!
최영 : 예?
은수 : 지구과학 2.!
최영 : ?
은수 : 거기 나와요. 그게.. 그게.. 볼프넘버!!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필사 종이들을 열심히 뒤져가며 대조해보며)
흑점군의 수가 G. 상수 K. 흑점수 F. 와 미치겠네. 그럼 이거 알파벳들은
(앞에 앉아 있는 최영의 어깨를 쳐가며 너무 좋아서) 태양흑점 지수에요.
아아 어뜩해. 수능에서 지구과학 만점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니까 이게 뭐야.
다시 들여다보며 머리털을 헤집는다.
최영, 그 머리칼을 어떻게 해주고 싶어서 손이 올라갔다가 겨우 참는다.
최영 : 뭐가 좀 풀립니까?
은수 : 문제는. 여기 적힌 이 날짜가 지금 쓰이는 게 아니라서요.
여기 장빈 선생이 준 원의 수시력하고 맞춰봐야 되요.
이게 양력 음력이 다 적혀있대는데 근데 다 한자야. 젠장.. (수시력을 들추다가 고개 들어 보면)
최영 : (구경 중)
은수 : 왜요.
최영 : 하늘나라 분들은 다 그렇습니까? 아니면 유독.. 임자만 그럽니까?
은수 : 뭐가요.
최영 : 하는 짓. 다.
은수 : 내가 뭐.
최영 : (일어서며) 열심히 해봐요. 얼른 풀어야 얼른 돌아갈 방법이 생길 거 아닙니까.
하며 최영이 아까의 자리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그런 최영을 보고 있자니 은수 맘이 좀 심난해진다.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어본다.
#58. 기철의 서재
들어서는 기철. 마음이 급해있다.
기철 : 개경에서 나가는 길. 동서남북. 산길 물길. 죄다 빈틈 없이 막았다. 그런데 왜 찾을 수가 없어. 왜 걸리지를 않아.
화수인 : 아무래도 개경 안에 아직 숨어있는 거 같아요. 전에 그 약장사 애들 한번 잡아서 족쳐봐요?
기철 : 찾아내. 다 뒤져. 다 털어봐. (하다가 문득) 덕흥군. 이 자는 어디 갔나.
양사 : 종일 보이질 않던데요.
기원 : (들어서며) 궁으로 갔답니다. 막.. 보고 듣고 오는 길입니다.
기철 : 궁? 왜? 무어 할 게 있어서.
기원 : 내부에 심어놓았던 애들이 거의 다 색출되서 말입니다. 이게.. 뭐가 어뜩게 되가는지 아주 답답합니다.
양사 : 새로 아이들을 심기 시작하겠습니다.
기철 : (생각하고 있다) 사제.
천음자 : 예.
기철 : 덕흥군. 니가 붙어줘야겠다.
천음자 : 그러지요.
기철 : 혹시 내가.. (멈추는)
모두 : (보면..)
기철 : 범을 불렀는가. 여우를 쫓겠다고.
#59. 객주집 부엌 앞
마당에 최영이 따분한 얼굴로 서있다. 한손에는 은수의 보따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검을 들고.
뒤의 부엌문 안을 향해 묻는다.
최영 : 아직 멀었습니까?
은수소리 : 다 됐네요. 그렇게 지겨우면 어디 좀 가든가. 왜 문 앞에 버티구 서서 사람 쪼구 그래요.
최영. 으이구 싶은데. 뒤에서 문 여는 소리. 돌아보았다가 멈칫.
부엌에서 씻고 나오는 은수. 젖은 머리칼을 면수건으로 닦으며 나오는 중.
최영, 저도 모르게 멈춰서 보고 있다가 은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며 돌아서 방 쪽으로 간다.
#60. 객주집 방 안
최영이 먼저 들어온다. 방안을 둘러보며 점검한다.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낮은 침상과 호롱불이 얹혀져 있는 소박한 문갑 외에는 가구 같은 건 없는 소박한 방안.
들고 온 보따리를 문갑 위에 놓아주며 뒤따라 들어오는 은수에게.
최영 : 방이 좀 그런데.. 그래도 밤이슬 맞으며 자는 거 보단 나을 겁니다.
말을 하는데. 좁은 방안에 은수가 바로 최영의 앞에 서서 방안을 둘러본다.
은수의 젖은 머리칼이 바로 최영의 눈 아래 있다. 젖어서 젖혀진 웃옷의 깃. 드러난 목덜미.
은수 : 근데..
하며 돌아서다가 너무 가까이서 마주보게 된 최영 때문에 멈춘다.
그렇게 잠깐 멈추어있던 둘 중에 최영이 먼저 돌아서 문으로 간다.
최영 : 주무십시오.
나가버린다. 문이 닫긴다.
#61. 객주방 문 앞
문 앞의 툇마루에 걸터앉는 최영. 검을 무릎에 얹고. 여기서 이렇게 밤샐 생각이다.
긴장했던 어깨를 풀고 뒤의 문설주에 기대 눈을 감으려는데.
방안에서 들리는 소리.
은수소리 : 거기 있어요?
최영 :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다 옆을 돌아본다. 문이 삐끗 움직인다.
안에서 은수가 문에 기대 앉았다. 방안의 호롱불 때문에 종이문에 은수의 그림자가 비친다.
최영 : 안 주무십니까?
은수소리 : 잠이 안와요. 뭔가.. 우리 엠티 나온 거 같아요. 아. 엠티가 뭔 말인가 하면.. 멤버십트레이닝.
#62. 방안
문에 기대앉은 은수가 말하고 있다.
그 앞의 바닥에는 수첩의 내용을 베껴 적은 종이들이 있고. 종이의 하나를 들어 보다가 다음 장을 넘겨보는.
역시 잘 안 넘겨져서 손에 침을 묻혀서.
은수 : 그니까.. 같은 편끼리 여행가서 밤새면서 친해지기? 와. 하늘말 해석하기 진짜 어렵네.
하여간. 엠티에서 뭘 하냐 하면.. 아 그거하면 되겠다. 진실게임.
뭘 물어보면 정말 진실만 대답해주기. 듣고 있어요?
최영소리 : 듣고 있습니다.
은수 : 그럼 나 먼저 물어보기.
#63. 문 앞
은수소리 : 진실만 말하는 거에요. 숨기거나 거짓말하면 안되요.
최영 : (좀 웃고 있다) 거짓말은 잘 안합니다. 귀찮아서.
은수소리 : 그럼 질문. (하더니.. 말이 없다)
최영 : (기다리는)
은수소리 : 만약에.. 내가 이 수첩의 날짜를 풀게 되고. 그 날에 하늘문에 가게 되고,
갔더니 문이 열려 있어서. 그래서.. 내가 가버리게 되면.
최영 : (웃음기가 가셨다)
#64. 방안
은수 : (웃음기가 없이) 그럼. 당신 괜찮겠어요? 이렇게 착하고 실력좋은 주치의가 없어져서..
어디 다치고 와도 봉합해 주고 약 발라줄 사람이 없는데.. 당신.. 괜찮겠어요?
최영의 대답을 기다린다.
#65. 문 앞
최영이 옆을 돌아본다. 거기 종이문에 은수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최영 : 괜찮지 않을 겁니다.
문 너머의 은수는 잠시 말이 없다.
#66. 방안
은수 : (숨을 멈추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나두.. 괜찮을 거 같지 않아요.
내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정말 많이 생각날 거에요. 임금님. 왕비님. 우리 장선생. 우달치들..
(어쩔 수 없이 가라앉으며) 그리고 당신.
#67. 문 앞
최영이 손을 들어 그림자에 포개본다. 조금씩 올려 은수의 얼굴선을 따라 그려본다.
은수소리 : 많이 보고 싶을 거에요. 어쩌면 긴 꿈을 꾼 거 같을래나.
근데 원래 꿈은.. 날이 밝아지면 잊혀지는 거 아닌가.
최영의 손이 멈췄다. 그림자가 멀어지고 흐려진다.
#68. 방안
은수가 자세를 바로 하여. (그러느라 그림자가 흐려진)
은수 : 그럼.. 이제 당신 차례. 나에 대해서 뭐 더 알고 싶은 거 없어요? (기다린다)
#69. 문 밖
최영 : (손을 거두더니..) 없습니다. (뒤로 기대며 혼잣말처럼 은수는 못 듣겠지만) 지금도.. 너무 많습니다.
여운. 잠시.
#70. 방 안
은수가 문쪽을 돌아본다. 이제 더 이상 최영은 말이 없다.
#71. 궁의 정원 누각?
최상궁이 걸어나오고 있다.
보면 정원 누각에 앉아있는 덕흥군. 앞의 탁자에 종이 몇장을 쌓아놓고 있다.
최상궁이 옆으로 와 서며.
최상궁 : 곤성전의 최상궁입니다. 불러 계십니까.
덕흥 : 아.. 자네가 최영의 고모된다는 사람인가.
최상궁 : .. 그렇습니다만.
덕흥 : 궁 안과 궁 밖의 모든 정보를 잇는 사람이라 하던데. 맞는가.
최상궁 : 원래 궁에 거하는 자들은 하는 일, 사는 일이 단조로운지라 없는 얘기를 많이 부풀려합니다.
덕흥 : (웃더니 앞의 종이를 가리킨다) 이 종이들 보이는가.
최상궁 : 보입니다.
덕흥 : 한 장씩 떼어보겠는가.
최상궁. 마음에 안 들지만 시키는대로 한 장을 떼어보려 한다. 잘 안 떼어진다.
두 손을 동원해서 애를 쓰는데.
덕흥 : 그 종이가 원래 그렇게 잘 안 떼어진다네. 그래서 보통 그 종이를 쓰는 자는 침을 묻히게 되지.
이렇게... (하면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종이 한 장을 떼어낸다)
최상궁 : (불안해지며 본다)
덕흥 : 그래서 이 종이 귀퉁이마다 약간의 독을 칠해놓으면.
이 종이를 쓰는 자는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간다네.
최상궁 : ... 누가 이 종이를 쓰게 되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덕흥 : 며칠 전에 의선께 종이를 드렸네.
최상궁 : (놀랐다)
덕흥 : 뭔가를 베껴 쓰시길 원하셨는데. 마침 내가 이 종이를 갖고 있었거든.
#72. 회상 # 6/ 전의시
쌓여져 있던 몇장의 종이. 옆에서 종이를 한 장 침 묻혀 떼어내던 은수. 베끼는 모습.
덕흥소리 : 그래서 종이를 몇장 드렸다네.
아 참.. 의선께서는 글씨를 대단히 이상한 식으로 쓰시더군.
#73. 궁의 정원 누각?
덕흥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최상궁 : (애써 침착하게) 그럼.. 혹 의선에게 드렸다는 그 종이에도 독이 발려져 있었습니까?
덕흥 : (끄덕이는) 그렇지. 그 독이 말이야. 내가 천축국에 갔을 때 구한 것인데
무색. 무취한 것이 아주 신통하다네. 그리고 그리 급히 증세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야.
며칠쯤 차곡차곡 내장에 쌓였을 때 갑자기 발독을 하거든.
최상궁 : 그럼 그 해독제는..
덕흥 : 물론 내가 갖고 있지.
최상궁 : .... 어찌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덕흥 : 지금 의선은 어디 계신가. 어디 계신지를 알아야
내가 가서 직접 해독제도 드리고 간호를 해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
최상궁이 굳어서 덕흥을 본다. 덕흥은 온화한 미소로 마주보고 있다.
덕흥 : 너무 늦으면 참으로 곤란해지지 않겠나. 그 의선. 여러 사람에게 중한 분인 거 같던데.. 아닌가?
#74. 주막집 마당 / 밤
방문 앞 벽에 기대 앉아 잠이 들었던 최영. 문득 눈을 뜬다. 귀를 기울인다.
불이 꺼져 어두운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 미약한 신음소리.
찌푸리고 신경이 쓰이는데. 숨소리가 아무래도 거칠다.
최영 : 악몽을 꾸십니까. 의선..
대꾸가 없다. 숨쉬기가 힘들어 보이는 기침소리.
최영 더 못참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75. 방안
어둠 속. 침상에 누워있는 은수. 그쪽으로 가던 최영이 아래를 본다. 발에 밟히는 필사 종이.
침상 옆으로 붙는다. 이제 분명히 들리고 있는 거친 숨소리. 간간히 신음소리.
최영 : 무슨 꿈을 이렇게.. (어깨를 흔든다) 이봐. 잠 좀 깨봐요.
하다가 뭔가 이상하다. 후딱 화섭자를 꺼내 옆의 호롱불에 불을 붙인다.
이제 불빛에 드러나는 은수의 얼굴.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다.
최영. 놀라서 칼을 던지고 은수를 안아 올린다.
최영 : 임자.. 이봐.
그러나 최영의 품에 안긴 은수의 고개가 지탱을 못하고 힘없이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