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탄핵의 외투 속에서 잠깐 봄이 왔다는 걸 잊었던 것 같다. 시대에 무감각한 석녀일지라도 깜박깜박하는 춘곤증의 무게도 눈 들고 귀 열면 봄꽃의 쿠데탄 걸 어찌 이 봄바람의 기세에 그 어느 누군들 안 당할쏘냐.
진달래꽃이 만발하다고, 이에 뒤질세라 개나리꽃이 기세등등하다고 봄나들이를 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진달래꽃은 가시가 있는 저 붉은 장미와는 차원이 다르고 독 있는 철쭉과도 다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의 공화국에서 진달래와 개나리를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없다. 어찌 이 둘 중 하나를 빼놓고 봄을 말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무슨 죄목으로 저도 모르게 몸의 감옥 속에 감금됐는지, 도대체 어떤 업장에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유폐 당했었는지도 모르게 그동안 답사 금족령의 가위에 눌려 사지를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꿈자리가 뒤숭숭해 잠을 설친 것처럼 생활의 좀 벌레와 탄력 없는 몸뚱이는 아무 쓸데없는 욕심살만 늘인다.
그래, 봄이다. 서정주의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와서 동냥하듯 가난한 바랑 하나 달랑 지고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빼앗긴 봄길을 따라 배고픈 소크라테스처럼 떠나야겠다.
논개 -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 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情)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江)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첫 답사지는 논개사당이다. 한줄기 별똥별 같은 삶을 살다간 드라마틱한 주다르크, 논개. 그러나 사실 논개사당에는 논개가 없다. 제법 그럴듯한 곳에 터를 잡고 비록 논개의 초개와 같은 호국의지를 기리는 사당이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실망감이 몰려온다.
먼저 현재 논개사당에 걸려 있는 초상화는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 뭐 친일경력을 시비 걸려고 하는 건 아니다. 초상화는 옆에서 보는 것와 같이 정말 예쁘게 잘 그렸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이 얼굴이 진짜 논개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만일 그녀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 그림을 보고 뒤로 자빠질 것이다. 이 그림은 결코 논개가 아니다. 사실 그림의 모델은 화백의 아내란다. 얼굴 또한 20대 중반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런데, 왜 논개도 아니면서 이해의 편의를 돕는다는 미명하에 전시하는 걸까. 이는 고인에 대한 모독이다. 차라리 불편하더라도 논개의 위패를 모시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얼굴을 보고 진짜 논개라고 생각하는 최면의 폐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 없다.
그리고 보자. 왜 논개일까. 사실 그 당시 논개보다 더 훌륭한 여인들은 많았다. 우리 여인들의 행주치마 힘은 예나 지금이나 유명하지 않은가. 또한 주논개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것도 17세기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영웅화한 것들로 보아 뭔가 냄새가 난다. 물론 양난으로 정신없었다고 쳐도 말이다. 코흘리개 정도로 생각하던 일본과 금에게 뒤통수를 맞아 구겨진 체면이야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각고의 자기반성을 하고 체질개선을 통해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래도 외양간은 고쳐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송논쟁으로 보듯이 관념논쟁에만 열을 올리고 민생은 뒷전이고 만동묘다 최근의 경우처럼 겉으론 여자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뒤로 숨는 졸장부들의 행태는 아니었을까. 사실 이때부터 가부장제도가 골수까지 파고들어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조선전기때까지도 분할상속에다 어느 정도 여성에 대한 권리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논개가 비록 기생은 아니지만 알려지기는 의기에다 최경회 지아비의 원수를 갚는 의부로서 그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논개의 업적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녀는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하고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 지금까지도 진주와 장수 지자체간의 논개분쟁처럼 이용만 하려고 했지 진정 논개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조차 없었다는 점은 반성해 볼 일이다.
춘흥 - 정몽주
안개 같은 봄비
밤중에야 비로소 빗소리 들리네
눈 녹아 시냇물 흐르는데
새싹은 얼마나 났을까?
교육은 백년지계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시험제도가 바뀌고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따라 똑같은 상품을 찍어 내듯이 입시지옥의 가마솥에서 학생들을 들들 볶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인간다운 시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에게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깊은 맛을 맛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혹시 헛된 욕망의 불빛을 향해 불나비와 같이 곡예비행의 삶을 방조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의 교육은 어떠했을까. 기본적으로 기초소양은 집에서 배웠다. 사실 집은 가장 원초적인 학교다. 집 학교처럼 일대일적이고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교육은 없다. 단지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학교로 공부하러 보내는 것일 뿐이다. 그래, 대개 양반 자식의 경우는 학식 있는 선생을 찾아 집을 떠나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는 훈장이 가르치는 근처 서당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향시를 통해 향교를 들어가거나 지방사립서원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공교육은 사립에 비해 비교우위가 낮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향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대성전에서 보듯이 성현들에 대한 각종 제사와 빈틈없는 예법으로 시험공부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유명한 사설학원인 서원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오직 과거시험만을 위해 파행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래 향교는 단지 군역기피를 위한 도피처로 전락되어 갔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전통교육은 책만으로 스승한테서만 배운 것은 아니다. 화랑에서 보듯이 자연은 훌륭한 학교요 스승이었던 것이다. 어찌 요즘 학생들이 정몽주의 춘흥과 같은 시감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눈멀고 귀 가득한 손아귀는 더 이상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 학생들에게도 자연의 학교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제 딱딱한 아스팔트에선 풀 한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흙의 감성으로 물의 지성으로 나비처럼 훨훨 날아야 한다.
어둠은 어둠으로 빛난다 - 박두규
바람결에 흔들리며 눈물처럼 그렁거리는 별빛들, 깊은 골짜
기 그대 얼어붙은 별빛이 내 숨겨둔 감실(龕室)의 어둠에 이르
렀으나 오늘도 끝내 그대 시린 어깨에 손 한 번 얹지 못하고
솔숲의 촘촘한 어둠 사이를 말없이 빠져 나와야만 했다. 어둠
속 눈부신 강줄기 하나가 문득 이마에 걸리는 어는 세월이 있
을 것이다. 어둠이 어둠으로 빛나고 슬픔이 슬픔으로 빛나는
각질(角質)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을 것을 믿는다. 빛은 어
둠을 떠나 살 수 없으니 우리 어두운 날들이 소실점에 닿아 숲
속의 바람으로 흩어지는 날, 그 휘황한 빛살의 절망만이 남아
우리 어둠의 지층을 그리워하리, 감실의 문을 두드리리.
1885년 임오군란이다 갑신정변이다 보수다 개혁이다 라며 정치꾼들의 소모적인 감정싸움에 신물이 난 한 젊은이는 이 마이산에 들어왔다. 아마 코가 삐틀어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미친 듯이 허공에다 삿대질하며 춤을 췄을 것이다. 그리고 제풀에 지쳐 쓰러져 자다가 마이산의 스산한 바람결에 번쩍 눈을 뜨며 무심코 몸을 웅크리고 쫑긋 귀를 세우고 있는 마이산 두봉과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래 "이렇게 끝날 순 없지.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리라."
서해 금강을 따라 말고삐를 잡고 내쳐 달려오던 토룡은 이윽고 갈기를 풀며 긴 숨을 내몰아 쉬고, 남해 섬진강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오는 금빛 연어 떼들 또한 산란준비로 여기저기 자리 잡느라 난리법석이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갑신정변 이후 체결된 텐진조약으로 청일양국은 조선에 변란이 일어나 양국 중 어느 한 나라가 군대 파견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상대방에 통보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갑오농민전쟁 이후부턴 청일전쟁을 시발로 본격적으로 그들의 마각을 드러낸다. 결국 우린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어버렸다. 예전에 외양간만 고쳐서도…….
임진왜란 전에도 율곡선생은 소를 잃어버리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고 십만양병설을 상소한다. 또 본관 장수요 서인출신 정사 황윤길도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울타리를 정비하도록 제청한다. 그러나 그러면 가만히 있는 소가 발작할지도 모르며 본관 의성이요 동인출신 부사 김성일은 전쟁은 없을 것이라 한다. 물론, 민심의 동요를 완화하려는 깊은 뜻에서 한 말이 결국 임진왜란을 불러 일으켰음이야 어쩌랴.
역사는 반복된다. 이제 서쪽 금성은 모래사막에서 칼을 뽑아 일합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합까지 한 상태다. 그렇다면 중앙 토성은 어떤가. 동북의 바람은 동북공정의 황토로 서쪽의 바람은 진흙을 짓이겨 벽돌담을 쌓아올린 상태다. 폭풍전야 고요함이여. 태풍 매미 경계방송은 준비하고 있는가. 기상청 재해방송의 불신 때문에 아무 대비 없이 넋 놓고 있지는 아닌가.
돌을 모아야 한다. 큰 돌, 작은 돌, 조각난 돌, 다른 색깔의 돌. 돌의 종류는 무슨 상관이더냐. 제주도에서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충청도에서 강원도에서 경기도에서 황해도에서 평안도에서 함경도에서 간도에서 돌을 돌을 나르자. 그리고 차가운 물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정화수에 별 하나 띄워놓고 정성으로 한돌 한돌 쌓아올린다. 머리는 그믐이더니 이젠 백발의 달이 돋아 오르고 탱탱하고 떫기만 하던 감은 이제 홍시처럼 쭈글쭈글해졌구나. 그렇다고 그게 뭐 대수냐. 세월의 흐름이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법.
빛을 만나면 일광탑을 쌓고 어둠을 만나면 월광탑을 쌓자. 허리가 쑤시고 아프면 약사탑을 공양해야지. 외롭고 마음이 흔들리더냐. 그래 중앙탑으로 보시 좀 하지 뭐. 외로움이여 바람마저 정겹고 그리움이여 어둠마저 사랑스럽구나. 하지만, 세상의 일꾼은 오행인걸. 목, 화, 토, 금, 수. 나무야! 키 좀 크다고 자랑마라. 도끼 오면 꼼짝 못하면서...불꽃아! 밝다고 뽐내지 마. 물 앞에 쥐면서... 능구렁이 흙아. 까불면 마구 파버린다. 날카로운 칼아. 그래 그리 놀아라. 용광로에 팍 쳐 넣을라. 그리고 도둑놈 물아. 자꾸 좀 내려오지 마. 흙으로 아가리를 꽉 막아버린다. 그래그래, 싸우지 말고 결국 저희들은 다 친구가 아니더냐. 서로서로 도와가며 강강술래하면 집안이 편안하거늘.
이제 남은 건 진달래와 개나리를 출가시키는 것일 뿐. 애지중지 키운 아들딸이지만 품안에 끼고 천년만년 살 수는 없으니 봄의 산 중턱에서 미련 없이 짝 지어주자. 그리고 결혼은 말이야. 사랑만으론 부족해. 때론 정으로 감싸주기도 하고 비록 심하게 다투더라도 세간은 엎지 말고 적당히 져주면서 화해하는 것이 이기는 거야. 돌들은 말한다. 비록 마이산의 육중한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운신할 수는 없지만 너와 나의 정성과 정성이 모으면 어떤 비바람에서도 끄떡없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이갑룡 처사. 그는 돌만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미래와 희망을 쌓아올렸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백조가 아니다. 표면적으론 우아하고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실미도의 경우처럼 공작을 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시대는 지났다. 오늘의 시대는 바로 갈대다. 작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겉과 속이 같고 건강한 의견들을 교류하면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폭풍우 속에서 육중한 나무들이 나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서로 몸 부비며 끝까지 살아남는 갈대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남이가"에 속지 말자. 사실 경상도가 남이가. 전라도가 남이가. 충청도가 남인가. 그리고 정치노선이 다르다고 우리가 적은 아니다. 그저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상기되어 제 중심 잃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지 말자. 그리고 정치권 몇 명이 물갈이 되었다고 세상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온몸으로 조용히 실천할 때 그것도 조금 눈에 비칠 뿐이다.
지금 외양간은 어떤지 확인해 보자. 율곡선생처럼 소 잃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하든지 비록 소를 잃어버렸지만 학봉선생처럼 반성하고 바로 외양간을 고치던지 하자. 그러나 꼭 외양간만은 어떻게 하든 고쳐야 한다. 또 다시 외양간마저 잃어버리고 깡통 차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열대우림으로 보트피플 되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다시 마이산에서 돌들을 집어 들고 탑사를 세우면서 이갑룡 처사를 그리워한다.
[사진제공, 달새형님]
[BGM, Bic Runga - Listening for the Weather]
첫댓글 먼저 종원 형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열성을 다해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뵙지 못해 궁금하던 모놀과 식구들께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담에 또 만났음 좋겠습니다.
투철한 역사인식, 해박한 읽을거리까지 게다가 철철 넘치는 감성까지......내공이 빵빵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제 안에도 마이산탑사를 다시 세워봅니다
투철한 역사인식,해박한 읽을거리까지, 게다가 철철 넘치는 감성까지....잘 읽고갑니다.(2)
공부한 내용에다가 자신의 역사 지식까지 곁들여 감성적으로 잘 풀어놓은 답사 후기를 읽으며 신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 속에 있던 것을 구체화 시킨 통쾌함과 함께 저또한 새롭게 논개와 장수향교와 마이산을 정리해 봅니다.^^
해아리님의 눈으로 내가 보지 못했던것 보는듯합니다. 가슴속에 팍팍새기고 갑니다..구라고 담에는 인사도 하십시더~!! 아직까지 얼굴이 격이 안납니더...내도 탑하나 세워볼걸....
무게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비판정신이 담겨있어 더욱 돌아보아지는 글입니다.
시계를 뒤로 돌려 새로 답사지를 돌아봅니다. 해아리님의 생각과 시선을 따라..
좋은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감성적으로 잘 풀어놓은 답사 후기를 읽으며 신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공장도 부지런히 돌려 예쁜 2세도 맹글고 해라..아마 굴을 많이 먹어 그럴거야..장담!ㅎㅎ 반가웠어...
"흙의 감성으로 물의 지성으로 나비 처럼 훨훨 날게 해야한다." 헤아리님은 나중에 분명 훌륭한 아버지가 될겁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해아리님은 나중에 분명 훌륭한 아버지가 될겁니다..(2)해아리님의 글 오랫만에 접하니 참 좋은걸요..해남에서의 "애린"이 제일 기억 남아 있지요..두분 닮은 예쁜 아기 기다려 볼께요....ㅎㅎㅎ
헤아리님....어쩌면 이런 글 쓸 수 있나요???? 존경스럽습니다.....................
해아리의 풍부한 감성은 여전하구먼..
너무 멋진 후기입니다..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한편의 책으로 내도 손색이 없을만큼 짜임새 있는 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