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 총의 <듣기의 말들>안에
알베르 카뮈, <이방인>에 관한 글이
공감되어 인용한다.
“..
나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더위는 더욱 심해졌다.
별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내가 늘 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척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는
승리한 승리한 듯이 말했다.
”그것 봐, 자네도 믿잖아?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겠지?”
살인죄로 기소된 뫼르소는
재판에 앞서 예비판사를 만난다.
예비판사는 뫼르소를 돕겠다면서
십자가를 서랍에서 꺼내 회개를 촉구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앙을 선포할 뿐
뫼르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하기에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들이
전하보다 귀한 영혼의 말은 듣지 않는다.
“…
나는 그에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한 번 전신을 일으켜,
하느님의 믿느냐고 물으면서 훈계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분연히 앉아 버렸다. ”
예비판사는 뫼르소의 말을
두 번이나 무지른다.
자신이 이른바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자들은
대체 왜 제 말만 선포하고
비신자의 말을 듣지 않을까.
동굴에 가둬 놓고 쑥과 마늘만 먹이고 싶다.
신앙인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문제는 예비판사가
단순한 포교자가 아니라
뫼르소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강자라는 데 있다.
강자가 자신의 말을 받아 들이라고 강요하면
약자는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수긍하는 척
할 수밖에 없다.
강자는 “거 봐!”하면서 기뻐하지만
나중에 약자가 진짜로 받아들인 게 아님을
알게 되면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면서 힐난한다.
대체 언제 그들은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될까.
진정한 소통이란
동등한 위치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기는 할까.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누구를 만나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된다.
촉촉해진다.
이런 사람은 거의 드물다.
대부분은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평가, 제단, 훈계 거기에
정확한 정답까지 알려준다.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첫댓글 네 조심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