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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못고치는 의사들과 현대의학의 모순
"지금 의대에서 배우는 공부가 대체 뭐요?
모두 협잡꾼 되는 것만 가르쳐요.
환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잖아.
환자의 보호자에게
---'죽어도 괜찮다'는
서약을 시키고는
마음대로 몸을 뒤집어본단 말이야.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지거나
전쟁에서 총을 맞고 할 때는 수술이 필요하지.
그런데 암이나 심인성 질환은 수술하면 안 돼.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수술비 받으려고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위협해서 기어코 몸을 망쳐놔요.
의사들은 병을 잘 못 고쳐요.
똥과 오줌도 구별 못해.
이치를 모르고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야.
다 몸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주 달라요.
오줌은 내 몸속에서 나오니까 내 것이 맞지만,
똥은 내 몸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몸 밖에 있던 것이라 내 것이 아니거든.
할아버지는 똥오줌도 구별 못한다는 말을
내 것과 네 것도 구별 못한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 이치를 듣다 보면 우리의 몸에 이러한
이치와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먹어서 생기는 오물은 크게
똥과 오줌의 두 가지로 나뉜다.
우리는 둘다 몸에서 버려야 할 노폐물로 생각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어째서 똥과 오줌이 다르다고 말했을까.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입에 넣고 꼭꼭 씹어서 삼키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 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몸의 이치를 자연의 이치와 잘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음식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을 통과 해갈 뿐이다.
그중 일부가 몸속으로 소화ㆍ흡수될 뿐,
실제로 똥이 되어 나온 음식은
한 번도 우리 몸속에 들어온 적이 없다.
창자를 긴 관이라고 생각하고
이 관을 입과 항문까지 연결 지어 상상해보면,
우리가 입을 열고 항문을 열면
그 관은 양쪽이 서로 통하는 구조이다.
즉 인간의 창자는 몸 속에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퉁로리는 것이다.
이 창자를 육부라고 불렀는데,
이는 비어 있는 관이라는 뜻이다.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식도로 내려가서 위장에서 혼합되고,
작은창자를 거치며 몸 내부로 흡수되어 필요한 곳에
저장되었다가 에너지원으로 전신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흡수되지 못한 음식물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물건이 움직이듯이
대장, S결장, 직장 을 거쳐 항문으로 배출된다.
---이 배출물이 바로 똥이다.
그러므로
똥은 입에서 씹혀지고 위장의 소화액과 섞여졌지만
몸속으로 한 번도 진입하지 못한
음식물이 다만 형태만 바뀌어서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창자는 우리 몸의 바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육부을 양陽으로 보았다.
한편 몸속으로 흡수된 정미한 에너지는
산소와 영양물질
그리고 색깔에너지를 몸 전신에 전하면서,
동시에 노폐물을 가지고 나와 신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신장은 이 노폐물 중에서 아직
인체에 필요한 부분을 걸러내어 다시 간으로 보내고,
이제는 더 쓸 수 없다고 판단된 것들을
방광으로 보내어 오줌으로 배출한다.
이처럼
오줌은 내 몸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자기 것이고,
똥은 계속 몸 밖에 있었던 것이라 내 것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똥은 똥이고 오줌은 오줌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니 잘 구분하고 알겠지만,
오줌은 내 것이고
똥은 남이 것이란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줌은 내 것이라서,
나에 대한 정보가 전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서양 의학에서도
오줌으로 인체의 정보를
알아내고 질병의 유무를 검사한다
또한 오줌은 치료법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오줌 한 방울을
희석하여 마심으로써 몸을 고친다는
요료법은
이치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는 처방이다
오줌 한 방울을 물 한 잔에 섞어 희석해 마시면,
그 오줌 속에 든
체내의 정보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맛도 보통의 물과
다를 바 없어 거부감 없이 섭취할 수 있다.
이것을 마시면
몸에서 그 정보를 인식하여
이상이 있는 부위에 반응하는 면역물질을
훨씬 활발하게
만들어내기 때문에 실지로 치료 효과가 크다.
어떤 사람들은 요료법이 좋다니
새벽오줌을 한 컵 받아서 그대로 마시기도 하는데,
그것은 몸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당하는 고역이다.
인체는 정보체이기 때문에
오줌 한 방울로도 검사 및 치유로 쓰기에 충분하다.
할아버지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체로서의 인체를 이미 잘 알고 활용해왔다.
"서양의학은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지.
그러니 마음이 보여. 사랑이 보여?
마음병이나 상사병을 알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지.
재미있는 것은. 그네들은 또
신은 아주 철떡같이 굳게 믿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신이 눈에 보여? 안 보이지.
안 보이는 데 어떻게 신을 민을까?
참 환장할 노릇이야.
몸에는 보이지 않는 신이 있지.
이 신이 고장 나면 중병이 오는 거야.
우리말로 하자면 얼이 빠지면 중병이 와.
서양의학은 신은 믿지만 얼은 믿질 않아요.'
모 대학교의 J 교수는 서양의학에서
근본 원리를 찾아보기 어려움을 이렇게 증언한다.
"2001년 여름에 큰 아이(당시 고2)의
왼발 정강이 부분에 골종양이 발생해서
수원에 있는 모 의대
부속 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꼭 1년 만에 오른발 같은 부위에
같은 증세가 나타나 수술을 맡았던 주치의에 문의하니,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악성 종양이 아니니
고3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
수술해도 지장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과연
의료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인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학생을 보자마자
---"순환계의 장애로 굳이 수술을 할 필 요가 없으며
석 달이면 완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골수가 순환하지 못해 골속에 종양이 생겼으니,
혈액순환을 잘 들리면
골의 순환도 잘 되어 종양이 낫는다고 본 것이다.
그 진단대로 혈액순환 식약을 처방받으니
한 달 만에 통중이 가셨고,
두 달째부터 차도가 눈에 보이더니
세 달이 지나고서는
부은 부위가 작아지며 결국 완치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5년제 재발되지 않고 있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로버트5. 멘델존은
자신이 수 십년간 몸담았던 현대의학의 맹점을 지적하며,
의사는 병의 원인이 아니 라 증상만을 없앤다고 말한다.
---의사는 병의 원인이 아닌,
병의 증상에 휘둘리고 있다.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법이
현대의학의 숙명적인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의사들은
이 문제에는 그다지 접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의사가 행하고 있는 것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라,
그 증상 만을
억누를 뿐인 대중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자책과 회개의 고백에도
서양의학의 치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서양의학에는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총아가 바로 수술이다.
의사들은 치료법이
없을 때마다 수술이라는 말부터 꺼낸다.
의사들은 인체를 기계로 보면서,
고장난 부품을 같아치우거나 제거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인체는 기계가 아니다.
세포핵에서부터 조직, 장기, 그리고
팔다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상호 의존의 유기체이다.
칼을 대어 어느 한 곳을
떼어내는 순간 인체의 완전성도 파피된다.
수술 후의 부작용과 재발 가능성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의사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암을 수술하는 의사 본인이 암에 걸렸을 때
정작 자신은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까.
일본의 유명한 암 전문의였던 아키하라 씨는
암의 조기 발견과 수술을 권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암 선고를 받은 후에는 수술을 거부했다.
의사 본인도 겁을 낼 만큼 무서운 수술,
그것이 이 나라의
병원에서는 오늘도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구강암으로 판명이 나서 수술을 받았으나
암이 전이되어 결국 유명을 달리한 윤모 씨가
생전에 남긴 절망어린 심경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입안에 하얗게 뭐가 박히더라고요.
그게 암의 시초예요. 그렇게 암을
알아가지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의사의 말에 따라
항암치료를 여섯 번을 아주 열심히 받았지요.
그런데 1년 후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여기서는 더 이상
고치질 못하니까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지내다가 편히 가라는
식으로 병원에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것 말고는 더 할 얘기가 없대요.''
H 회사의 K 이사는 간암 선고를 받았다.
처음에는 간경화였는데 악화되어
간에 약 2센티미터 정도의 결절이 생겼고 했다.
의사들은 이 결절을 암으로 의심했고,
여러 번의 검사 결과
암이 확실하니 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나은 진단이라
K 이사는 아무 의심 없이 수슬을 결심했다.
수술은 보호자가 모니터로 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그런데 개복을 하고 아무리
간을 살펴보아도
암이라고 단정했던 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외과 의사들은 간암이라고 진단했던
내과의사들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이나고 따졌으나
아무런 대답도 알지 못했고
결국 몸은 다시 원상태로 봉합되었다.
알 선고를 받았을 때 무조건
수술에 응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암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닌 것처럼 하루아침에 죽지 않는다.
오늘부터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을 가지고 하루하루 자연치유력을
키우면 얼마든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수술하면 낫는다고 했던 암환자는 수술 후에 죽었고,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던 암환자는
공연히 후유증만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박태식 교수는
자신이 믿었던 서양의학에 어떻게 희생당하여
생명까지 잃을 뻔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는 2001년 7월 서울 현대 중앙병원(현 현대 아산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이후 6개월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위암 수술 이후 암 치료에 좋다고 하는
수많은 약과 보조식품 등을 복용하며 돈도 엄청나게 들어,
많을 때는 한 달에 천5백만 원 정도의 지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되던
2004년 5월부터
이상 징후를 느껴 동년 5월 13일에 검사한 결과,
소장과 대장
연결 부위의 장암과 복막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동년 5월 15일 친구인 K 원장이
운영하는 전주의 모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진통제를 주는 것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고,
또다른 친구인 당시
모 의대 학장 C교수가 인간이 할 일은 다했으니
기도를 하자고
했다는 말을 친구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당시 장폐색으로 엄청난 통증으로 고통을 당했고
음식을 조금도 섭취할 수 없어서,
아마도 며칠 내에
세상을 떠나게 될 것으로 예상 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박태식 교수의 위급한 상황을
다음과 같은 원리로 설명 한다.
위장에 암이 발생했다는 것은
음식을 그만 먹으라고 하는 신호이지.
위장은 뭐하는 곳이야?
먹은 음식을 쌓아놓는 창고야.
그런데 그곳에서 암이 발생한 거야.
위암은 위장의 파업이야.
파업하면 공장이 안 돌아가지.
그런데도 계속 먹어대고,
또 좋다는 것은
더 챙겨 먹으니
어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어?
위장에는 소식이 최고예요.
사람이 먹어야 산다지만 그 말은 틀린 말이야.
안 먹어야 살아.
그런데 안 먹을 수 없으니 아주 적게 먹어야지요.
오래 사는 것들을 보면 전부 창자가 비어 있어.
가능한 한 위장을
비워 놓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얘기지.
그 먹는 음식이 뭐가 돼? 결국 똥이잖아.
목구멍까지 똥이 차도록 먹어대니
위장이든 대장이든
어느 창자에서 파업을 안 일으키겠냐고.'
할아버지는 우선적으로 막힌
창자를 뚫는 약을 처방하고 음식을 절제시켰다.
창자에 휴식을 주면서
몸을 회복하는 약을 5개월 정도 처방받은
박태식 교수는 이후 병세가 현격히 호전되어
지금은 휴강 없이 국내외
출장도 다녀오는 등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환자의 선천적인 자연치유력을
잘 유도해내서
자신의 힘으로 병을 낮게 하는 것이 아닐까?
가능한 한 약과 주사의 사용이나 수술을 억제하고
환자 스스로 병을 이겨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연치유력을 복원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겁을 주 어 인체의 면역력을 파괴한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어.
알게 되면 공연히 걱정하고,
걱정하다보면 몸이 아파 더 병들게 되지.
그래서 요즘 양의사들이
건강 검진하라고 하는데 그거 하면 안 돼
검진해서 뭐라도 발견되 면 걱정부터 앞서고,
그걸 치료한다고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해대면 오히려 병을 더 악화시켜.
어떤 60대 부인이 건강 검진한다고
병원에 갔는데 뇌에 조그만 종양이 있다고 그랬대.
의사들이 간단한 수술이니 염려 말라고 했는데
수술 도중에 원인 모를 심장 쇼크로 죽었어.
몰랐으면 더 살 았을 텐데, 알고 나면
걱정이 되니까 의사들 말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어떻게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간다.
아픈 원인이나 치유방법은 생각해보지 않고
무조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의사들도 역시 아픈 환자는 반드시
병원에 와서
자신들에게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고치거나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런 엄포에 평소에는
그렇게 자기 몸을 애지중지하던 사람들도
하는 수 없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겁을 먹고 의사에게 자기 몸을 완전히 내맡긴다.
자기 몸의 주인 자리매 의사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고 귀한 생명은 다투는 의료행위가
환자의 절대복종을 전제로 하는
주종의 관계 위에서 행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를 성직자 이상으로 우러러
받들며 생명까지 맡기고,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성직자로서 거듭나지 않고 오히려
사이비 교주처럼 환자들의 나약한 믿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
<항암제로 살해당하다>의 저자 후나세 순스케는
의사들이 암환자를 볼모로 하여
생명보다 돈을 취하는 세태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항암제는 고가의 약품이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대가로 '연구비'라는 명목의 뒷돈이
병원 또는 의사에게 제공되는 관행 또한
항암제가 다량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에겐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항암제란 암세포를
죽이는 목적으로 투여하는 세포독이다.
그런데 항암제가 무서운 까닭은
정상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맹독을 몸속에 '퍼붓기'
때문에 환자는 지옥의 고통을 겪는다.
여기에 개복 수술에 따른 절제도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중략)..
항암제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로 구토가 있다.
그런데 의사는
구토를 억제하는 제토제도 함께 병용한다.
예를 들면 시스플라틴이라는 항암제는
환자에게 맹렬한 구토를 유발한다
---(몸이 독을 밖으로 배출하려는 작용이다).
이외에도 신부전도 일으킨다.
그야말로 환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약이다....
후나세 순스케는 실지로
오늘날 암환자의 80퍼센트는
항암제와 방사선 요법동으로 살해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과거 아우슈비츠수용소나
일본군 731부대의 화학가스로 인한
학살극과도 같은 음모라고 주장한다.
즉, 거대자본의
화학 이권에 얽힌 악랄한 암산업에 의해
환자들이 살해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환자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고 외친다.
환자들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배우고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는 생각으로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약 백만 번 정도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하며,
암세포가 우리 몸 안에 나타니는 경우는
80세 수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억 회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지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생체방어 기구가 암세포를 잡아 먹기 때문이다.
이 생체방어 기구가 곧 면역기관이다.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진 음식을 먹었거나
발암인자를 접했다고 해서 모두 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암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면역기능의 충실 여부에 달려 있다.
면역력이 있으면 암에 걸리지 않고
설사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 암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다시 면역기능을 높이면 치유할 수 있다.
서양의학은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른다.
인체에 면역력을 키워주면 암을 치료할 수 있다.
똥과 오줌을 구별할 수 있는
원리를 알아야 인체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니 원리가 있어야 의학이고
또 그것을 공부해야 진정한 의원이 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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