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와 소새와 개미
채 만 식
왕치(방아깨비)는 머리가 훌러덩 벗어지고, 소새(물새의 한가지)라는 새는 주둥이가 뚜우 나오고, 개미는 허리가 잘록 부러졌다. 이 왕치의 대머리와 소새의 주둥이 나온 것과 개미의 혀리 부러진 것과는 이만저만찮은 내력이 있다.
옛날 옛적, 거기 어디서, 개미와 소새와 왕치가 한 집에셔 함께 살고 있었다.
개미는 시방이나 그 때나 다름없이 부지런하고 일을 잘 했다. 소섀도 소갈찌(소갈머리. 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는 좀 괴팍하고 박절스런 구석은 있으나, 본이 재치가 있고 바지런바지런해서, 제 앞 하나는 넉넉 꾸려 나가고도 남았다.
딱한 건 왕치였다. 파리 한 마리 건드릴 근력도 없는 약질이었다. 펀펀 놀고먹어야 했다. 놀고먹으면서도 양통만 커서, 먹기는 남 갑절이나 먹었다. 놀고먹으면서 양통만 커 가지고 먹기는 남 갑절이나 먹는 깃도 염치 아닌 노릇인데, 속이 없고 빙충맞았다. 희떱고(희떱다. 실속은 없어도 마음이 넓고 손이 크다) 비위가 좋았다.
부모 자식이나 동태(同胎) 동기간(同氣間)이라도 모를 텐데, 타성바지(시기와 다른 성(姓)을 가진 사람)의 아무렇지도 않은 남남끼리 한 집 한 울 안에 보여 살면서 그 모양이니, 눈치는 독판(독무대) 먹어 두어야 했다. 개미는 그래도 천성 이 너그럽고 낙천가가 되어서 과히 허물을 하지 않았지만 성미 까슬한(몹시 거칠고 빳빳한 느낌이 있는) 소새는 영 아주 왕치를 못 볼 상으로 미워했다. 걸핏하면 꽁해 가지고는 구박을 하고 눈치를 했다.
어느 가을이었다. 백곡이 풍등한(‘풍성한’ 의 방언) 식욕의 가을이었다.
가을도 되고 했으니, 우리 잔치나 한번 차리는 게 어떠냐고, 셋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소새가 발의를 했다.
“거 참, 조오흔 말일세!”
잔치도 잔치지만, 일변 저를 끕끕수(체면이 깎일 일을 당하여 갖는 부끄러움)를 주자는 설도(舌刀; 칼날 같은 혀라는 뜻으로, 날카로운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줄은
모르고, 먹을 속 살가운 왕치가 냉큼 받아서 찬성이었다.
잠자코 있으나, 개미도 이의는 없었다.
사흘 잔치를 하기로 했다.
사흘 동안 계속해서 잔치를 하는데, 차리기는 하나가 하루씩 독담(獨擔; 혼자서 담당함)으로 맡아서 차리기로 했다. 가령 첫날은 소새가 잔치를 차리면 둘째 날은 왕치가, 그리고 마지막 낱은 개미가…… 이렇게.
왕치는 그렇게 잔치를 하루씩 독담해서 차린다는 데는 속으로 뜨악 걱정스러웠으나, 그렇다고 체면에 나는 못합네 할 수는 없는 터라, 어물어물 코대답(탐탁하지 아니하거나 대수롭지 아니하게 여겨 건성으로 하는 대답)을 해 두었다. 둘이가 먼저 차리거든 우선 먹어 놓고 볼 일이라는 떡심(억세고 질긴 근육. 성질이 매우 질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반생을 이런 떡심으로 부지해 왔으니,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첫날은 개미가 나섰다.
들로 나갔다.
들에서는 한참 벼를 거두기가 바빴다. 마침 보니, 촌 마누라 하나가 샛밥(곁두리의 방언.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끼니 외에 참참이 멱는 음식)을 내가느라고, 한 광주리 목이 오므라들게 해서 이고, 들 가운데로 지나고 있었다.
좋을씨구나. 개미는 뽀르르 쫓아가서 가랑이 속으로 기어 올라가서는, 너벅 다리께(‘넓적다리’ 의 방언)를 사정없이 꽉 물어 떼었다.
“아이구머닛!”
죽는 소리를 치면서 촌 마누라는 머리의 밥 광주리를 내동댕이치는, 다리야 날 살리라고 도망을 첬다.
부우연 입쌀밥(입쌀로 지은 밥)에, 얼큰한 풋김치에, 구수한 된장찌개에 짭짤한 자반갈치 토막에, 골콤한 새우젓에…….
죄다 집으로 날라다 놓고는, 셋이 모여 앉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보기 드문, 건(걸다. 푸짐하고 배부르다) 잔치였다.
다음 날은 소새가 나섰다.
물가로 갔다.
바닥이 들여다보이게 맑은 물에서 붕어도 뛰고 가물치도 놀고 했다. 여느 때와는 달라, 소새는 붕어나 가물치나 단치 따위는 눈도 거들떠 보지 않고, 말뚝에 가 오도카니(작은 사람이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앉아서는 기다렸다.
이윽고 싯누런 잉어가 한 놈 꿈틀거리면서 물 위로 머리를 솟구쳤다.
잔뜩 겨냥을 대고 노리던 소새는, 휘익 날면서 주둥이로 잉어의 눈을 꿰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개미와 왕치는 손뼉을 치며 맞이했다.
싱싱한 잉어를 놓고 둘러앉아서 먹는 맛은 또한 자별했다.
소새 차례의 둘째 날의 잔치도 그래서 걸게 지났다.
마지막, 셋째 날은 드디어 왔다.
왕치는 무어라고든 핑계를 대고서 뱃심(염치나 두려움이 없이 제 고집대로 버티는 힘)으로 뭉갤 생각이었으나, 보니 소새의 패앵팽한 눈살이, 안 될 말이었다.
잘 먹은 죄가 이렇게 큰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무 가량(假量; 어떤 일에 대하여 확실한 계산은 아니나 얼마쯤이나 정도가 되리라고 짐작하여 봄)도 없는 채 집을 나섰다.
우선 들로 나가 보았다,
펀한 들에는 벼만 가득히 익고, 농군들이 벼를 거두기에 바빴지, 보아야 만만히 건드림직한 거라곤 없었다. 설마 한들 벼이삭이나 한 목쟁이(‘목정강이’ 의 잘못) 주워 가지고 갈 수는 없고.
막막히 헤매고 다니다가 한 곳을 당도한즉, 애꾸눈이 엿장수가 엿목판을 뚜드리면서
“엿들 사려! 호두엿 사려.”
하고 멋들어지게 외우고 지나갔다.
덮어놓고 후룩후룩 날아가서, 엿목판에 가 앉았다. 한 목판 그득 담긴 엿이 또한 먹음직스러웠다.
이걸 송두리째 집으로 가져만 갔으면 걸기도 하고 한바탕 뽐낼 판인데, 그러나 무슨 재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꼬 하고 요리조리 엿목판을 끼웃거리며 궁리를 한다는 게, 무심결에 엿장수의 어깨에 가 앉았던 모양이었다.
“작것, 재수 없네!”
엿장수가 손바닥으로 탁 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엿장수의 어깨에서 참혹한 복음을 할 뻔하고는, 혼비백산 질겁하여 도망을 쳤다.
들을 지나서 산 밑으로 가 보았다.
꿩도 날고, 토끼도 기었다. 바위 틈바구니엔 벌집도 있고, 그 단 꿀 냄새에 회가 동했다. 그러나 보두가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의 떡)이었다.
잔디밭에서 송아지 데린 암소가 놀고 있었다.
어미는 너무 크고, 송아지들에 가 앉아 보았다. 간지럽다고 강종강종 뛰었다.
요놈을 어떻게 사알살 꼬여서 집으로 끌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도무지 도리가 없었다.
이마빡으로 옮아앉아서 터럭을 물고 진득이 잡아당겼다. 부룩송아지니, 대가리를 사뭇 내젓는 통에 저만치 가서 떨어졌다.
이 녀석 어디 보자고 엉덩짝에 가 앉아서는,
“이러! 이러!”
하고 간질여 보았다.
하는 것을 송아지는 파린 줄 알고, 꼬리를 획 쳐서 옆구리가 끄덕하도록 얻어 맞았다.
하릴 없이 물가로 와 보았다.
붕어가 뛰고 메기가 놀고, 역시 그럼직한 것이 없는 게 아니나, 잡는 재주가 없었다.
그럭 저럭 해는 점심 새때도 지나, 오래지 않아 날이 저물게 되었다.
그대로 빈손으로 돌아가자니 차마 체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이렇게 헤매기만 할 수도 없었다.
답답했다.
엉엉 앉아서 울었다.
막 그럴 즈음, 어저께 소새가 잡아 가지고 온 그런 잉어가 한 놈, 싯누런 몸뚱이를 굼싯거리면서 물 위로 떠올랐다.
왕치는 분연히, 울기를 그치고 팔을 부르걷었다(옷의 소매나 바지를 힘차게 걷어 올렸다)
“그래,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온 이래야 옳담매?”
그러면서 단연 그 잉어를 잡을 결심으로, 후르륵 날아, 마침 솟구치는 잉어의 콧등에 오똑 앉았다.
잉어야 그러잖아도 속이 출출한 판인데, 이게 웬 떡이냐고 날름 혀로 차서는, 씹고 무엇 하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꼴깍 삼켜 버렸다.
아침에 일찍 나간 채 한낮이 겨워도 왕치는 돌아오지 않아서, 집에서는 소새와 개미는 걱정을 하며 이제나 저제나 까맣게 기다렸다.
그러면서 개미는 소새를 자꾸만 탓을 했다. 부질없이 그런 설도를 해서 그 못난이를 갖다가 못할 노릇을 시켰냐고. 괜히 참, 어디 가서 함부로 넘싯거리다가 몸을 다치든지, 아닐 말로 죽든지 하면 저 일을 장차 어떡한단 말이냐고.
소새는 민망하여, 아 작자가 하도 염장(艶粧; 예쁘고 아리땀게 단장함)을 못차리고 보기 싫게 글기에 좀 그래 보았다고. 그래도 난 못 하겠노라고 아랫목에 앉아서 뭉개든지, 무어라고 핑계를 대고 꾀로 바워 내려니 했지, 누가 그렇게 성큼 나설 줄이야 알았느냐고. 아무려나 어서 무사히 돌아오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누누이 발명(發明; 죄나 잘못이 없음을 말하여 밝힘. 또는 그리하여 발뺌하려 함) 겸 후회하기를 마지않았다.
한낮이 겨우고 다시 새때(끼니와 끼니의 중간 되는 때)가 되어 오자, 참다못해 둘이는 왕치를 찾으러 나섰다.
개미는 들로 나섰다. 드러나 암만 찾고 다녀도 왕치의 종적은 알 길이 없었다.
소새는 물가로 나갔다. 역시 암만 찾고 다녀도(벌써 잉어의 뱃속으로 들어간 뒤라) 왕치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느덧 날은 저물어 땅거미가 져서 더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고, 소새는 마음만 한껏 초조하면서, 거듭 뉘우쳐 싸면서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혹시 그 동안 왕치가 제풀에 돌아와서 있으면 작히(‘어찌 조금만큼만’, ‘얼마나’ 의 뜻으로 희망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말) 좋으면 하는 일루(一縷; 한 오리의 실이라는 뜻으로, 몹시 미약하거나 불확실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의 희망을 가지고.
그리하여 마침 수면을 날아 건너는데, 잉어가 한 놈 굼실거리며 물 위로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이왕이니 사냥이나 해 가지고 갈 생각으로 홱, 몸을 떨어뜨리면서 주둥이로 잉어의 눈을 꿰어 찼다.
집에서는 개미가 먼저 돌아와서 까맣게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는 필경 일을 저지른 일이라고 걱정에 땅이 꺼졌으나, 다시 더 찾아본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밝는 다음 날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빠졌는데 집 안이 텅 빈 것같이 섭섭한 집 안에서, 둘이는 방금 소새가 잡아 가지고 온 잉어를 먹기 시작했다. 좋은 음식을 대하니, 한결 없는 동무가 생각이 나서 목에 결렸다.
중간쯤 먹었을 때였다.
별안간 후루룩 하더니 둘이가 먹고 있는 잉어 배때기 속에서 왕치가 풀쩍 뛰어나오는 것이었다. 아까, 왕치를 산 채로 차 먹은 그 잉어를 공교로이 소새가 잡아 온 것이었다.
소새와 개미는(반가운 것도 반가운 것이지만 깜짝 놀라) 뒤로 나가자빠지는데, 풀쩍 그렇게 잉어 배때기 속에서 뛰어나오면서 왕치의 하는 거동이 과연 절창(絶唱; 뛰어나게 잘 부름. 또는 그런 노래)이었다.
“휘! 더워! 어서들 먹게! 아, 이놈의 걸 내가 잡느라고 어떻게 그만 앨 섰던지! 에이 덥다! 어서들 먹게!”
이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땀 난 이마를 쓱쓱 손바닥으로 씻으면서.
소새는 반가운 것도 놀란 것도 인제는 어디로 가고, 슬그머니 배알이 상했다. 잡기를 번연히 소새 제가 잡아, 그 덕에 생선 배때기 속에서 귀신도 모르게 죽을 것을 살려 냈어. 한 것을, 넉살 좋게, 제가 잡누라고 앨 쓴 건 무어며, 숫제 어서들 먹으라고 연성 생색을 내니, 세상 그런 비위장도 있더냔 말이었다.
소새는 그래서 주둥이가 한 자나 되게 뚜우하니 나와 가지고는 샐룩한 눈을 깔아뜨리고 앉아 말이 없었다.
개미가 비로소 정신을 차려 둘이를 다시금 보니, 참 우스워 기절을 하였겠다.
속을 못 차리고 공것을 너무 바치고 하면 이마가 벗어진다더니, 정말 왕치는 이마의 땀을 쓱쓱 씻는데 보기 좋게 빈대머리가 훌러덩 단박에 벗어지고 만 것이었다.
소새는 또 주둥이가 한 발이나 쑤욱 나와 버렸고.
개미는 하도하도 우습다 못해 대굴대굴 구르다가 그만 허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래서 그 때부터 왕치는 대머리가 벗어진 것이고, 소새는 주둥이가 길어진 것이고, 개미는 허리가 부러진 것이고 했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