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피의 능선 전투
맹렬한 선제 포격
육군본부 전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 983고지 일대는 잡목이 무성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굵지 않은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잡목이 많았고, 잡초와 칡넝쿨 등이 우거져 있었다는 것이다. 울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수목이 제법 자리를 잡았고 여름 한 철의 잡초 등이 무성한 땅이었던 듯하다.
8월 15일 미 2사단장 루프너 소장의 명령에 의해 후방의 포병화력과 공중 화력이 먼저 나서서 사전 공격을 수행했다. 3일 뒤인 8월 18일 오전 6시 30분부터 다시 미 10군단과 2사단 7개 포병대대 126문의 야포가 능선을 향해 맹렬하게 공격준비사격을 펼친 뒤 30분이 흐르고 나서 한국군 5사단 36연대 황엽 대령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막강한 포병화력과 공중 폭격으로 982고지 등 적이 버티고 있는 진지는 곧 화염 덩어리로 변하는 듯했던 모양이다. 적의 진지에 정확히 떨어지는 아군의 포탄을 바라보면서 5사단 36연대는 곧 진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전격적인 진격을 감행했다.
공격 선두에 나선 부대는 36연대 예하 2대대와 3대대였다. 이들은 능선을 향해 포복과 근접 전투를 벌이면서 진격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북한군이 능선 전방 여러 곳에 매설했던 지뢰가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지뢰는 아군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복병이었다. 이에 따라 36연대는 공격을 일단 멈췄다. 느닷없이 터지는 적의 지뢰에 의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따라서 후방의 아군 포병대에 추가적인 포격을 요청했다. 적의 진지 주변으로 포격을 집중해 땅에 매설한 지뢰를 우선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맹렬한 선제 포격
육군본부 전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 983고지 일대는 잡목이 무성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굵지 않은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잡목이 많았고, 잡초와 칡넝쿨 등이 우거져 있었다는 것이다. 울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수목이 제법 자리를 잡았고 여름 한 철의 잡초 등이 무성한 땅이었던 듯하다.
8월 15일 미 2사단장 루프너 소장의 명령에 의해 후방의 포병화력과 공중 화력이 먼저 나서서 사전 공격을 수행했다. 3일 뒤인 8월 18일 오전 6시 30분부터 다시 미 10군단과 2사단 7개 포병대대 126문의 야포가 능선을 향해 맹렬하게 공격준비사격을 펼친 뒤 30분이 흐르고 나서 한국군 5사단 36연대 황엽 대령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막강한 포병화력과 공중 폭격으로 982고지 등 적이 버티고 있는 진지는 곧 화염 덩어리로 변하는 듯했던 모양이다. 적의 진지에 정확히 떨어지는 아군의 포탄을 바라보면서 5사단 36연대는 곧 진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전격적인 진격을 감행했다.
공격 선두에 나선 부대는 36연대 예하 2대대와 3대대였다. 이들은 능선을 향해 포복과 근접 전투를 벌이면서 진격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북한군이 능선 전방 여러 곳에 매설했던 지뢰가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지뢰는 아군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복병이었다. 이에 따라 36연대는 공격을 일단 멈췄다. 느닷없이 터지는 적의 지뢰에 의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따라서 후방의 아군 포병대에 추가적인 포격을 요청했다. 적의 진지 주변으로 포격을 집중해 땅에 매설한 지뢰를 우선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 1951년 5월 산악 이동을 펼치고 있는 미 2사단 9연대의 모습. /미국 육군 제공
아무래도 북한군은 아주 많은 수의 지뢰를 땅에 묻었던 듯했다. 야간 공격에 나선 아군이 진지 주변으로 접근할 때마다 또 다시 지뢰가 여기저기서 터졌다고 했다. 그에 따른 아군의 희생이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아울러 북한군의 기관총 사격도 멈추지 않았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사람과 그 고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의 투지는 서로 아주 강했던 모양이다. 고지 전투에 나서 당당히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자 했던 한국군의 의지와 ‘이곳은 내줄 수 없다’며 버티려고 했던 북한군의 투지가 서로 엉켰던 듯하다.
진격을 막은 북한군 지뢰
특히 북한군은 진지에 견고한 유개호를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지 전체를 맹폭했던 아군의 후방 포병 화력에도 그들은 살아남아 진지를 향해 올라오는 국군을 향해 계속 사격에 나서고 있었다. 적의 지뢰가 폭발할 때마다 발목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아군의 모습이 줄을 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컴컴한 밤중에 급한 경사면을 오르려다 높은 고지에서 쏟아지는 북한군의 기관총 사격을 맞아 땅에 나뒹구는 국군 사병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36연대 2대대와 3대대 장병들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군의 희생이 점차 심해지면서 연대장 황엽 대령은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군은 예상했던 것보다 셌다.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전쟁 초기의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의 강력한 반격에 밀려 전선을 돌파하지 못한 뒤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진다. 특히 맥아더 장군이 이끌었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낙동강 전선에 틈을 내고 북상한 아군 육상전력에 밀려 평양 이북으로 패주한 뒤의 북한군은 정말 그랬다. 그들은 군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패잔(敗殘)의 명운을 비켜가지 못했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