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흠 노스님에게는 여러 가지 별칭이 있다. 호랑이를 조복시켰다고 해서 “복호화상(伏虎和尙)”이라고 하며, 대만으로 건너와서 평생 과일만 드시고 생명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과일스님[水果師]”이라고 하였으며, 평생을 일반인이 행할 수 없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였기 때문에 “고행승(苦行僧)”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광흠 노스님의 일생은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하고 신기한 면이 많이 있다.
광흠 노스님은 일생 동안 염불수행을 하였으며, 인욕(忍辱)보살이라고 할 정도로 절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염불하였다고 한다. 36세 때 새벽예불의 종판을 5분 늦게 쳐서 대중들의 수행에 지장을 주었다고 느끼고 크게 참회하면서 그때부터 밤에 누워서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염불하며 잠시 잠을 자는 “장좌불와”를 시작하여 입적하기 얼마 전까지 지속하였다.
스님은 39세 때 고산(鼓山) 용천사(湧泉寺)에서 불칠(佛七: 7일간의 염불정진) 법회 기간에 염불삼매를 얻었으며, 이후 대만에서 외국인과의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그 당시 염불하는 소리 가운데 홀연히 몸과 마음이 적정(寂靜)한 것이 마치 타향 이국에 들어가 눈으로 보는 것 같았으며, 새소리, 꽃 향기, 바람이 불어 풀이 움직이는 등 모든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염불, 염법, 염승 아닌 것이 없었다. 이러한 경계가 3개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다.”
그리고 43세부터 복건성 천주(泉州) 청원산의 동굴에서 13년간 수행하였으며, 식물의 뿌리를 캐서 연명하였으며, 원숭이들이 자주 야생의 과일을 가지고 와서 스님께 공양 올리기도 하였다. 이 기간 호랑이 한 마리에게 삼귀의를 해 준 후 그 호랑이는 가족 호랑이를 데리고 와서 스님의 동굴을 지켜주었다고 해서 “복호화상”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이 기간 4개월간의 긴 삼매에 들어가 하마터면 화장(火葬)을 당할 뻔하였는데, 그 당시 그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홍법활동을 하시던 홍일(弘一)대사에게 연락하여 광흠스님의 지금 상태가 삼매에 든 것인지, 아니면 입적하신 것인지를 감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홍일대사는 급히 오셔서 살펴보시고는 이 상태는 정말 얻기 힘든 삼매의 상태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세 번 튕겨서 광흠스님을 선정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노스님은 대만과 인연이 성숙하였음을 아시고 56세 때 대만으로 건너왔으며, 매일 과일만 먹고 생활하여 “과일스님”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밤에는 절 바깥에 앉아서 좌선하였다. 대만에서 신도들이 오면 단지 “착실하게 염불하라[老實念佛]”는 말씀만 하시면서 불자들에게 염불수행을 강조하였다. 노스님은 대만에서 아미타불 염불수행을 널리 펴시는데 큰 공헌을 하신 대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노스님은 1958년 타이베이 근처에 승천선사(承天禪寺)를 건립하였으며, 1963년에는 타이중(臺中)에 광룡사(廣龍寺)를, 1969년에 광승암(廣承岩)을 지었으며, 1982년에는 대만 남부 까오슝(高雄)에 묘통사(妙通寺)를 건립하였다. 노스님은 1986년 95세의 세수로 이 사바세계를 떠났으며, 입적하시기 3일 전에 허공에 연꽃이 나타났으며, 입적 후 수많은 사리를 남겼다.
이 책은 정토법문과 염불수행에 관한 법문뿐만 아니라, 생사윤회와 해탈, 반야와 수행, 고통과 출가, 습기와 아상의 제거, 인과, 중생제도 등 불교의 전반적인 방면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정토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