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절 난다가의 법문
1 어느 날 대애도 비구니는 오백 명의 비구니를 데리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비구니들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그때는 윗자리의 비구들이 차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게 되어 있었다. 난다가는 자기 차례가 되었지마는, 비구니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아난을 불러 누구의 차례인가를 물어보셨다. 그러나 그 차례인 난다가가 가르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시고, 다시 난다가를 불러 법문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난다가는 부처님의 명령을 받고, 다음날 아침 비구 한 사람을 데리고, 비구니들이 있는 왕사로 갔다. 비구니들은 난다가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만들고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난다가는 발을 씻고 준비한 자리에 나아가, 비구니들에게 법을 설했다.
"누이들이여, 질문이라는 말이 있다. 질문 받았을 때,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만일 어떤 의심이 있을 때에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 뜻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내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으로써 비구니들은, 난다가 비구에게는 자유로이 질문해도 좋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매우 기뻐했다.
"누이들이여, 눈은 항상됨이 있는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항상됨이 없고, 괴로움이요, 또 부서지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다'라고 볼 수 있을까?"
"대덕이시여,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또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대해서도 꼭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전부터 바른 지혜에 의해, 이런 것들의 육내처는, 항상됨이 없는 것이라고 실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착하다, 누이들이여. 이것은 이 가르침의 제자에 의해서, 바른 지혜에 의해서, 실다이 보여진 것이다.
누이들이여, 물질은 항상됨이 없는 것인가, 항상됨이 있는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항상됨이 없고, 괴로움이요, 부서지는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다'라고 볼 수 있는가?"
"대덕이시여,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또 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ㆍ법에 대해서도 꼭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전부터 바른 지혜에 의해서, 이들의 육외처는 항상됨이 없는 것이라고 실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이것은 이 가르침이 제자에 의해서, 바른 지혜에 의해서 실다이 보여진 것이다. 누이들이여, 눈의 알음알이는 항상됨이 있는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항상됨이 없고, 괴로움이요, 부서지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다'라고 볼 수 있는가?"
"대덕이여,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그에 따라, 귀의 알음알이ㆍ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ㆍ 몸의 알음알이ㆍ뜻의 알음알이도 똑같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전부터 바른 지혜에 의해, 이들 여섯 알음알이 항상됨이 없는 것이라고, 실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이것은 이 가르침의 제자들에 의해서, 바른 지혜에 의해서, 실다이 보여진 것이다. 누이들이여, 이를테면, 타고 있는 등불의 기름도 항상됨이 없는 것이요, 심지나 불꽃이나 빛도 항상됨이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기름과 심지와 불꽃은 항상됨이 없는 것이지만 빛만은 항상됨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른 소견이라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기름과 심지와 불꽃이 항상됨이 없는 것이라면, 빛도 또한 항상됨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이들이여, 항상됨이 없는 육내처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로움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닌 감각을 항상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은 정당한 것이겠는가?"
"대덕이시여, 정당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의해서 생긴 것은, 그것이 없어지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실로 그렇다. 다시 이를테면, 나무의 뿌리와 가지와 잎사귀는 항상됨이 없는 것이지마는, 그 나무의 그림자가 항상되다 한다면, 그 말은 정당한 것이겠는가?"
"대덕이시여, 정당하지 않습니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항상되지 아니하다면, 그 그림자도 항상되지 아니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이들이여, 그 항상됨이 없는 육외처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로움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닌 감각을 항상되다 한다면, 그 말은 정당한 것이겠는가?"
"대덕이시여, 정당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의해서 생긴 것은 그것이 없으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진실로 그렇다. 다시 이를테면, 익숙한 백정이 소를 죽여, 날카로운 칼로 속살의 몸뚱이와 겉껍질의 몸뚱이를 상하지 않고 갈라내어 살 속에 있는 막과 힘줄과 힘줄 밑동을 끊어 살을 발리고, 겉껍질로 그 소를 싸놓고 말하기를 '이 소는 원래와 같이, 껍질이 떠나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말은 정당한 것이겠는가?"
"대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 소는 껍질과 떠나 있는 것입니다."
"누이들이여, 이 비유는 그 뜻을 알기 위한 것이다. 속살의 몸뚱이라는 것은 안의 육처요, 겉껍질의 몸뚱이라는 것은 밖의 육처요, 살 속의 막ㆍ힘줄ㆍ힘줄의 밑동은 탐욕을 이름이요, 날카로운 칼은 마음속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이름이다. 누이들이여, 정념ㆍ택법ㆍ정진 ㆍ회 ㆍ경안ㆍ정ㆍ사의 칠각지를 닦으면, 번뇌를 없애고 마음의 해탈, 지혜의 해탈을 이 현재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난다가는 비구니들에게 이렇게 설법하고
"그러면 누이들이여, 이제 돌아가라."고 권했다.
3 비구니들은 난다가의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에게 나아가 예배했다. 부처님은 비구니들을 보낸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했다.
"비구들이여, 십사 일의 포살 날 밤의 달이 이지러져 있는지 꽉 차 있는지를 의심할 사람은 없다. 물론 달은 이지러져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난다가의 설법을 듣고 비구니들은 기뻐하고 있지만, 아직 그 생각이 원만해 있지 않다."
다음 날 부처님은 다시 난다가에게 비구니들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다.
난다가는 그 이튿날, 다시 사위성에서 걸식을 마친 뒤, 왕사로 가서, 어제와 같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비구들도 설법을 들은 뒤, 어제와 같이 부처님에게 나아가 예배했다. 비구니들이 돌아간 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십오 일의 포살 날 밤에는, 달이 이지러져 있는가 꽉 차 있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은 물론 차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난다가의 설법을 듣고 비구니들은 기뻐하고 또 생각도 원만해 있다. 이 오백의 비구니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반드시 깨달음을 얻기로 결정된, 물러나지 않는 예류과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