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39:14
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뵙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응답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이때가 히스기야왕의 중심과 진실성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때는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던 때.
학교에 대한 비전을 받고 땅을 3년 할부로 사고 은행 융자로 건축을 시작했던 그때.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대한 산과 싸우는 느낌이라 시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했던 그 시간이 돌아보니 가장 찬란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참 많이 울었는데…..
참 많이 힘들었는데…..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 몸부림 치던 그때가 지나고 보니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둘기 같이 슬피 운다해도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이 힘들다 해도…..
주님께 밀착된 때라면 가장 찬란한 시간임을 묵상하며 큰 용기를 얻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고난이 유익이었다고 히스기야 왕은 말합니다.
고통 중에 있었기에 살기를 하나님께 구하였으며, 그 기도를 들으사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심을 받고 죄도 주님께서 멀리 던지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심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통의 구렁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시니 두려울 것이 없음을 묵상합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가서 내 육신은 늙어져도 내 영혼은 날마다 새롭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마음이 변하지 않게 되기를, 늘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나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사야 제 38장 2절)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벽을 향해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는 히스기야가 기도합니다.
제게도 하나님기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것들로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말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기도하면서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내게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세요!!
주님께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습니다.
주님 인도하여 주세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받은 히스기야는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 뒤를 이어 왕이 될 후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만 병들어 죽는다는 의미가 아닌, 다윗왕조인 남유다가 영적으로 병들어 멸망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해석을 듣고, 지금까지 히스기야의 기도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여기서 병들어 죽게 되면 다윗의 왕조가 끝나기에,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 다윗에게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 주시길 간절히 전심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선 히스기야에게 15년이라는 삶을 연장하여 주시고 그 뒤를 이을 므낫세를 출생하게 하십니다.
자신의 정욕으로 기도한 히스기야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영적으로 병든 민족을 위해, 자신의 병든 영혼육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그를 봅니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14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 늘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토요일엔 공황장애 환우들과 함께 하는 괜찮아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직 영접하지 못한 제 친구의 딸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샵에서 일하는 호정씨도 초대가 되어 함께 했습니다. 우연히 둘이 옆자리에 앉게 되고, 비슷한 연령대와 둘 다 아버지를 어려서 일찍 잃었던 상처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서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교만한 맘에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호정씨 보다 더 든든한 믿음의 친구가 제 친구 딸에게 곁에 있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 안에 있는 이 세상에서 저역시도 병든 자임을, 중보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며 회개하게 하십니다.
늘 죄인임을 알고, 병든 저를 매일 치료해 주시는 중보자 되신 예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심을 늘 기억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믿음의 사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17 내가 이런 고통을 겪은 것이 내게는 유익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랑하시므로 나를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고, 내 죄를 주께서 멀리 던져 버리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15년을 더 주시며 앗수르 왕의 손에서도 건져 주시고 그의 성을 보호하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간절함과 진실된 마음을 보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과 간절함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낙심하지 않으며 원망하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기도, 진실된 눈물로 간구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거두어 가실때도 있습니다.
그는 나를 싫어하셔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느껴봅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고통을 겪은 것이 유익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더욱더 성장하며 성숙하였습니다.
약 35년간 살면서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을 겪었던 때가 작년 10월이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또 마음이 아픈 일을 겪었지만 그때가 믿음의 변화가 시작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살아왔던 저 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기쁨과 슬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살아서 역사하시며 돌보고 계심을 느끼며 우리 가정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고통이 유익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고통이고 슬픔이었겠지만 제게도 그런 시간을 허락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 날 돌보시며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음이 유익이었습니다.
고통도 유익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통을 겪는다 해서 결코 날 사랑하지 않으신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더 크게 성장하고 성숙케 하기 위하여 돌보시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며
그의 앞에 간절한 마음과 진실된 마음으로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찾아갈 수 있는 분, 그분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셔서 큰 위로가 됩니다.
히스기야의 눈물과 그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오늘도 찬양합니다.
지금 지나가는 모든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많이 경험하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이 상황을 회복 시켜주시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더 기쁘게 찬양하는 자로 세우시고 모든 아픔을 평안으로 바꿔주실 하나님, 앞으로의 저의 삶에도 신실하게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을 것을 알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무작정 병을 낫게 해달라 하지 않고 자신이 주님 앞에서 진실과 정직으로 행한 것과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 그의 생활 가운데에서 볼 수 있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 내게 히스기야 왕처럼 고백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할것입니다.
세상과 주님 사이에 발을 딛고 사는 모습, 어려운 일에 걱정부터 앞서는 모습이 저의 모습입니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욱 알기에 힘쓰고, 닮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