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일본 간나오토 총리의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 발언' 기사를 보고 분통이 터져서 잠 못 잔 우리 국민 많을 것 같다. 심심하면, 신사참배, 독도는 일본땅 망언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본의 지도층들. 그런데 이번엔 나가도 너무 나갔다. 글쎄, 일본 최고 통수권자가 한다는 말이 '한반도 유사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해 자위대를 파견'하면 좋겠다니 말이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전쟁특수로 호황을 누리더니,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호위함, 수송기)를 동원 직접적으로 자국민을 데려오겠다는 일본. 남의 나라 불행에 자기들 잇속을 챙기겠다는 이 발언은 분명 정상적인 언사가 아니다. 독도 망언을 뛰어넘은, 21세기형 망언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 망언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뭔가 꼼수가 엿보인다.
조선 조정을 향해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빌려달라'(征明暇道)고 공갈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문득 떠오른다. '자국민 구하러 갈테니 남한을 경유하게 해달라'는 간나오토 총리의 말과 싱크로율 99%쯤 되지 않나?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배우는 요즘 청소년들은 잘 모르겠지만.)
온갖 미사여구를 내세웠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은 전쟁이었는데, 간나오토 총리의 진의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 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강력한 군대를 지닌 보통 국가로 만들려는 꿍꿍이는 아닌지 우려스럽다. -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말이다.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12일, 도쿄 신문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위해 일본 정부가 자위대를 한반도에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한국 정부에 타진했다고 헤드라인 기사(연합뉴스인용)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여러 매체에 '뜬금없다'(한국경제), '현실성 떨어져'(헤럴드생생)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MB 정권 들어 일본과의 군사적 교류가 더욱 공고해졌던 것이 이런 논란을 만든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지난해 7월 열린 한일 해군 '6번째 한일 수색 및 구조 훈련(SAREX)'이 독도 인근 해상(동남방 80㎞)에서 열리고, 함선을 동해항에 최초로 입항했던 것은 그 한 예, 당시 일본의 해상 자위대에게 대한민국의 독도를 숙지시켰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후, 한·미·일의 군사적 공조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런 기류를 틈타 마이클 멀린 미국 합동참모본부 8일 한미 연합훈련에 일본(현재 옵저버 참여)의 참여를 강력 희망하기도 했다. 일본 총리의 망언 뒤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공조를 북, 중 압박의 하나의 카드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외교를 넘어, 최근 일본과 군사적 교류로까지 확대하려는 일련의 흐름은 우려스럽다. 일본이 과연 믿음직스러운 '혈맹'이냐는 의문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강제 정렴해 씻지 못할 고통을 줬던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일본과의 군사교류, 특히 우리나라 영토 안에 군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세계 2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친 전범 국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긴 역사동안 한반도를 수없이 침탈했던 일본에게 우리 안방을 내주는 것은 '어물전을 고양이에게 맡긴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군에서 <전쟁법해설서>를 통해 '일본의 한국 전투지역 진입은 확전의 가능성이 있어, 일본을 포함한 제3국의 한반도 개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해서만 추진돼야 한다'(서울신문 보도)는 것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을 우려한 한 예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은 혈맹인가?
한반도에서 남, 북간의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사태지만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유사 사태가 일어났을 때를 가정해보자. 우리 영토안에 자위대를 주둔 시켜도 될 만큼 일본은 믿음직스런 동맹일까?
유사시라는 특수 상황에 우리 영토 안에 다른 나라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경우는 믿을만한 동맹이어야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친 미국, 그리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터키, 영국, 태국을 비롯한 병력과 의무를 지원한 21개국 UN군들이 바로 그런 동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전쟁속에서, 큰 희생을 치른 '혈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 혈맹에 일본은 자리잡고 있지 않다.
일본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지금, MB 정권에게 일본만큼 충실한 동맹이 없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켰던 일본은, 이후 끊임없이 한반도를 침탈, 유린했다. 대륙으로 끊임없이 진출하고자 했던 야욕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같은 한반도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런 과거의 만행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조차 없던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파견 발언을 했다. 우리 정부는 뜬금없다는 발언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단지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만약 공식 요청이 온다면 우리 정부는 즉각 거부하고 경계해야할 사안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않은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발언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모욕감까지 느낀다. 끊임없이 한반도를 침탈해 왔고 근현대에는 한반도를 강제 정렴하기도 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줬던 일본,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도 배상도 못하는 국가가 어떻게 자위대 파견을 운운한단 말인가.
노무현 정권 당시, 일본이 순시선을 동원해 독도 인근 수역에서 위력시위를 했던 것이 엊그제 기억처럼 선명하다. 일본은 스스로를 돌이켜보라.
대한민국 위기에서 등 돌렸던 일본, 한반도 유사시 도움 줄까?
친 일본적인 혹자들은,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도움을 줄 것이란 견해를 밝힌다. 하지만 일본이 다른 혈맹들처럼 우리를 도와줄 거란 생각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반추하면 그렇다. 일본은 과거,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거절한 사례가 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국가 부도 사태까지 직면했던 김영삼 정권 시절, 우리 정부는 굴욕적으로 일본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No였다. 고마운 이웃나라(?)를 둔 덕분에 결국 우리는 IMF 구제 금융을 받고 인고의 시절을 겪어야 했다. 불과 십여 년 전, 돈 몇 푼도 빌려주지 않던 국가가 과연 목숨을 걸고 우리를 도와주는 혈맹으로 변신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과거, 대한민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씁쓸해질 뿐이다. 한국 전쟁 때 한반도의 비극을 자국 경제회생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 일본이다. 전범국가로 패망한 일본에 숨을 불어넣었던 인큐베이터는 결국 한국 전쟁에서 쓰인 메이드인 재팬 물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 수혜는 누가 입을지 뻔하다. 그렇기에 일본의 '전쟁 운운'하는 발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유사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까?
어떤 사이비 보수들은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한반도 유사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나오토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 발언'을 꺼내든 것은 그런 기대감에 편승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북한을 압도하고도 남을 군사전력과 동맹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미 압도적 전력을 지니고 있는 마당에, 15만 명이 전부인 육상 전력과 지상 타격이 안 되는 공군 무기 체계를 보유한 일본 자위대의 도움은 미미하다. 그렇기에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은 결국 우리에게는 별 쓸모없는 일이다. 오히려 위험 부담만 안게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도 문제를 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우리 영해안에서 일본 자위대의 수송기, 전투기, 호위함등을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독도 수호를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권 당시, 일본은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고유한 독도 주변 해양 조사를 막아섰던 적이 있다. 당시 해상 교전 일보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둬야 한다.
6척의 이지스함과 1만3천5백 톤급 헬기모함 휴우가, 2900톤에 달하는 소류급 잠수함을 비롯한 수십 척의 최신예 잠수함으로 무장한 일본의 해상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 독도를 기습 점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자위대를 한반도 영토에 드나들게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간나오토 총리의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 발언'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 지금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 개입 발언이 아니라, '한반도에 전쟁은 없으며,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고, 앞으로 독도 인근에 함선을 보내지 않겠다'는 평화 발언이다.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한민국의 동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