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운의 천재화가- 반 고흐 10년의 기록 展
박원명화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잠재된 아름다운 꿈이 있다. 그러나 그 꿈을 펼치기도 전에 대부분 현실이란 두꺼운 벽에 부딪쳐 갈등하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꿈으로 펼친 욕망의 생명력은 잡초의 근성만큼이나 끈질겨 누르면 누를수록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더러는 의지와 상관없이 자포 포기 심정으로 수피처럼 단단한 뜻을 꺾기도 하지만 타고난 끼는 절대 잠재우지 못한다.
타고난 끼는 발산해야 한다. 가슴속에 헤엄치고 다니는 풍부한 감성, 끝없는 상상, 고귀한 열정에 불을 지피는 일은 예술가의 운명이다. 자신이 가진 끼를 풀 때 예술가는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산고와도 같은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사는 것도 어쩌면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스스로 선택한 길인지도 모른다.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하는 결혼처럼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형벌도 감수해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며 팔자소관인 것이다. 스스로 짊어진 등짐하나(예술의 세계),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빛난다.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다. 한편의 아름다운 명작은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에서 탄생한다.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최후의 만찬), 에드바르트 뭉크(절규), 반 고흐(해바라기)등만 봐도 불운한 삶 속에서 타고난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역사적 명작을 남겼다. 세기의 명작은 결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천재들의 광기와 열정에서 탄생된다.
외롭다고 말하지 말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말고, 울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그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화가 반 고흐의 운명이었을까. 타고난 운명을 거역하지 못해 꿈으로 간직한 이상을 쫒아 나서다 결국 젊으나 젊은 나이에 생목숨을 끊었다. 죽자고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 한 점 밖에 팔지 못한 무명의 화가 반 고흐였지만 사후, 그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로 인해 그림은 세상을 휘감아 돌만큼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러 그는 천재화가로 불리고 있다.
이번 반 고흐 10년의 기록 전을 보고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예술가로 사는 동안 그의 일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던가를...전시는 아주 독특하다. 그동안 보던 것과는 완연히 다른 뉴미디어 기법의 전시라 흥미진진하다. 영상으로 제작해서 그런지 그림을 그냥 볼 때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단순한 관람이 아닌 현대의 IT기술과 회화의 만남이라는 데 짜릿한 흥미가 느껴진다.
상상도 못해본 일이 눈앞에 서 있다. 아니 얼핏 들어도 예술과 IT의 결합은 뭔가 어색하다. 그런데도 그 관념을 허물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를 하나의 키워드로 뭉쳐 놓았다. IT와HD프로젝트를 미디어아트기법으로 과감하게 스크린 속으로 끌어 들여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디지털 이펙트를 통해 회화 이미지를 전시물 전면과 측면, 플로어 모두를 활용해 실시간 영상으로 구현한 IT기술은 과학문명의 산물답게 다채롭다. 그림의 이미지가 실시간 변형되는 360도3D멀티미디어로 영상화 된 회화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관객인 내가 회화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착각을 불러온다. 뿐만 아니라 변형되는 영상의 피트백이 입체적 공간을 풍부하게 표현해 놓고 있어 그냥 그림을 볼 때보다 웅장한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테크놀로지 구현은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표사하고 있다.
특히 관객의 체험을 유도하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는 고흐가 평생을 그리워하던 고향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면 전체에 그대로 녹아 있다. 넓은 초원과 푸른 하늘, 아기자기한 집과 비오는 마을을 묘사한 화풍 안에 까마귀와 풍요로운 밀밭을 이머시브스크린에 옮겨 GPS기술을 입힌 3D 영상은 놀라운 IT기술을 체험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대형 스크린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그림 속 카테고리에 묶여 소박한 오베르 마을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반 고흐의 그림 중 나는 특별히 자화상을 좋아한다. 눈을 중심으로 초록과 빨강과 노랑을 사용해 방사선으로 퍼져 나가는 화법을 사용한 게 매우 독특하다.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 매력에 홀딱 빠져 고흐가 살아서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마치 내 영혼을 흡입하듯이 자화상의 두 눈동자가 내 시선을 잡아당긴다.
반 고흐의 이해도를 좀 더 높이고 싶다면 전시장에서 입구 왼쪽 편에 설치한 간이 극장에 들어가 ‘위대한 유산’을 관람하는 게 좋다. 매 30분 간격으로 상영하는 이 영화는 반 고흐의 일생을 그린 명화이다.
가끔, 일상이 지루하고 정신없을 때, 이렇듯 명작을 감상하고 나면 가슴이 확 트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바람이 없는데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삶에서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무수히 많은 전시회를 만나고, 무수히 많은 전시회를 보았지만 이번 반 고흐 10년의 기록 전은 내 생의 앨범에 새롭게 기억된 특별한 관람일 것 같다.
*이머시브(immersive) : 관람객을 에워싸는 듯한 설치 형태를 말함.
*오브제(objet) :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에서, 자연물이나 일상에서 쓰는 생활용품 따위를 원래의 기능이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분리하여 그대로 독립된 작품으로 제 시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인터렉티브(interactive) : 사용자와 컴퓨터 간 쌍방향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방식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