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래정을 처음 지은 조선 후기의 인물(이후, 李垕)이 경주 이요당을 직접 방문하여 이를 모델로 삼았다는 명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기록상의 직접적 연관성을 떠나, 조선 시대 누정 건축의 양식적 전승과 수경(水景) 문화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두 건물 사이에는 깊은 사상적·기술적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1664년(조선 현종 5년) 풍천 임씨 문중의 임의창(任義昌) 선생이 서출지에 건립한 이요당과 1816년(조선 순조 16년) 선교장의 3대 주인인 열화당 이후(李垕) 선생이 건립한 활래정이라는 두 건물 사이에는 약 15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며, 경상도(경주)와 강원도(강릉)라는 지리적 거리감도 있었다. 당시 가문 간의 직접적인 교류 기록이나 건축 도편수(목수)의 연관성이 명시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활래정의 중건자/건축가가 이요당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두 건물이 이토록 닮아있는 이유는 당대 조선 사대부들이 공유하던 건축 규범과 수경관(水景觀) 때문이다. 연못 바닥에 높은 돌기둥(장초석)을 박고 건물의 일부를 물 위로 돌출시키는 구조의 '가섭(架涉) 기법'은 백제 및 통일신라 시대의 궁남지나 안압지 같은 포석·수경 전통에서 출발하여 조선 시대 사대부 정원으로 정립된 고유의 건축 기법이다.
당시 전국을 유람하던 선비들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목수(도편수) 네트워크를 통해 영남 지방의 뛰어난 연못 정자 양식이 영동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특히 강릉 선교장은 전국 각지의 시인묵객과 학자들이 모여들던 영동 제일의 문화 거점이었으므로, 영남 지역의 내로라하는 정자들의 건축적 소문과 도면적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이요당과 같은 수중 누정의 전통을 참고했거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활래정은 한 단계 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요당이 강학과 휴식 중심의 전통 정자 형태에 충실하다면, 활래정은 복도 형태의 다실을 내부에 정교하게 짜 넣는 등 차(茶) 문화와 접빈 환대 문화를 고도화된 실내 구조로 완성시켰다.
활래정의 건축가가 이요당을 직접 가보았는지는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지만, 경주 이요당이 보여준 '수중 돌출형 누정'의 뛰어난 건축미와 풍류 전통이 조선 후기 강릉 활래정에 이르러 한층 더 완성도 높게 꽃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학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장 유력하고 타당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요당(二樂堂)이나 활래정처럼 ‘연못이나 수면 위에 건물의 일부분을 기둥(장초석 등)으로 들어 올려 띄운 구조(누각/정자)’를 갖춘 건축물은 동양 전통 건축에서 매우 매력적인 연당 건축(蓮堂 建築) 유형이다. 자연(물)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풍류와 심상적 유휴(遊憩)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명원(名苑) 건축물로 창덕궁믜 부용정(芙蓉亭), 봉화 청암정(靑巖亭), 함안 무진정(無盡亭) 등을 들 수 있다.
부용정은 활래정과 가장 완벽하게 비교되는 조선 궁궐 정원의 정수이다. 평면이 ‘십자형(十字形)’ 구조로 되어 있는데, 건물 남쪽의 두 기둥(하주)이 연못 부용지(芙蓉池) 수중(水中)에 석주(石柱)를 내려 직접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활래정이 사대부의 학문 수양과 과객 응접, 다도(茶道)의 공간이었다면, 부용정은 왕이 시를 읊고 낚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궁궐의 영역이다. 하지만 수면 위로 건물을 밀어 넣어 물과 하나가 되게 한 공간 감각은 활래정·이요당과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
충재 권벌 선생 고택에 위치한 봉화 청암정(靑巖亭)은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암반) 위에 정자를 짓고, 그 바위를 둘러싸고 인공 연못(수가/水家)을 조성했다. 물 위에 기둥을 세운 방식은 아니지만, 정자 전체가 연못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는 탁월한 수경(水景) 건축이다. 억센 바위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속세를 떠난 은일(隱逸)의 분위기가 활래정이나 이요당의 고고함과 매우 닮아 있다.
함안 무진정(無盡亭) 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정자 자체도 근사하지만, 정자 바로 앞에 넓은 연못(이수정)과 연못 한가운데 돌기둥과 목조 기둥으로 세운 연송루(蓮松樓) 및 영송교(迎松橋) 다리가 어우러져 있다. 물줄기와 연못을 마당의 일부로 끌어들여, 건물에 앉아 수면을 바라보며 시회를 열고 바람을 들이는 구조적 배치가 매우 닮아 있다. 낙화놀이로도 유명한 명소이다.
활래정을 처음 지은 조선 후기의 인물(이후, 李垕)이 경주 이요당을 직접 방문하여 이를 모델로 삼았다는 명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기록상의 직접적 연관성을 떠나, 조선 시대 누정 건축의 양식적 전승과 수경(水景) 문화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두 건물 사이에는 깊은 사상적·기술적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1664년(조선 현종 5년) 풍천 임씨 문중의 임의창(任義昌) 선생이 서출지에 건립한 이요당과
1816년(조선 순조 16년) 선교장의 3대 주인인 열화당 이후(李垕) 선생이 건립한 활래정이라는
두 건물 사이에는 약 15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며, 경상도(경주)와 강원도(강릉)라는 지리적 거리감도 있었다. 당시 가문 간의 직접적인 교류 기록이나 건축 도편수(목수)의 연관성이 명시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활래정의 중건자/건축가가 이요당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두 건물이 이토록 닮아있는 이유는 당대 조선 사대부들이 공유하던 건축 규범과 수경관(水景觀) 때문이다.
연못 바닥에 높은 돌기둥(장초석)을 박고 건물의 일부를 물 위로 돌출시키는 구조의 '가섭(架涉) 기법'은 백제 및 통일신라 시대의 궁남지나 안압지 같은 포석·수경 전통에서 출발하여 조선 시대 사대부 정원으로 정립된 고유의 건축 기법이다.
육지 쪽 온돌방(생활/성찰)과 물 위 쪽 누마루(관조/접빈)를 'ㄱ'자로 연결하는 구성은 자연을 감상의 대상이자 수양의 공간으로 본 조선 성리학자들의 공통된 건축적 언어였다.
당시 전국을 유람하던 선비들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목수(도편수) 네트워크를 통해 영남 지방의 뛰어난 연못 정자 양식이 영동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특히 강릉 선교장은 전국 각지의 시인묵객과 학자들이 모여들던 영동 제일의 문화 거점이었으므로, 영남 지역의 내로라하는 정자들의 건축적 소문과 도면적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이요당과 같은 수중 누정의 전통을 참고했거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활래정은 한 단계 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요당이 강학과 휴식 중심의 전통 정자 형태에 충실하다면, 활래정은 복도 형태의 다실을 내부에 정교하게 짜 넣는 등 차(茶) 문화와 접빈 환대 문화를 고도화된 실내 구조로 완성시켰다.
활래정의 건축가가 이요당을 직접 가보았는지는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지만, 경주 이요당이 보여준 '수중 돌출형 누정'의 뛰어난 건축미와 풍류 전통이 조선 후기 강릉 활래정에 이르러 한층 더 완성도 높게 꽃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학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장 유력하고 타당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요당(二樂堂)이나 활래정처럼 ‘연못이나 수면 위에 건물의 일부분을 기둥(장초석 등)으로 들어 올려 띄운 구조(누각/정자)’를 갖춘 건축물은 동양 전통 건축에서 매우 매력적인 연당 건축(蓮堂 建築) 유형이다.
자연(물)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풍류와 심상적 유휴(遊憩)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명원(名苑) 건축물로 창덕궁믜 부용정(芙蓉亭), 봉화 청암정(靑巖亭), 함안 무진정(無盡亭) 등을 들 수 있다.
부용정은 활래정과 가장 완벽하게 비교되는 조선 궁궐 정원의 정수이다. 평면이 ‘십자형(十字形)’ 구조로 되어 있는데, 건물 남쪽의 두 기둥(하주)이 연못 부용지(芙蓉池) 수중(水中)에 석주(石柱)를 내려 직접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활래정이 사대부의 학문 수양과 과객 응접, 다도(茶道)의 공간이었다면, 부용정은 왕이 시를 읊고 낚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궁궐의 영역이다. 하지만 수면 위로 건물을 밀어 넣어 물과 하나가 되게 한 공간 감각은 활래정·이요당과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
충재 권벌 선생 고택에 위치한 봉화 청암정(靑巖亭)은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암반) 위에 정자를 짓고, 그 바위를 둘러싸고 인공 연못(수가/水家)을 조성했다.
물 위에 기둥을 세운 방식은 아니지만, 정자 전체가 연못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는 탁월한 수경(水景) 건축이다. 억센 바위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속세를 떠난 은일(隱逸)의 분위기가 활래정이나 이요당의 고고함과 매우 닮아 있다.
함안 무진정(無盡亭)
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정자 자체도 근사하지만, 정자 바로 앞에 넓은 연못(이수정)과 연못 한가운데 돌기둥과 목조 기둥으로 세운 연송루(蓮松樓) 및 영송교(迎松橋) 다리가 어우러져 있다.
물줄기와 연못을 마당의 일부로 끌어들여, 건물에 앉아 수면을 바라보며 시회를 열고 바람을 들이는 구조적 배치가 매우 닮아 있다. 낙화놀이로도 유명한 명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