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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지으시고 구속하신 목적
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사야 42장 18절부터 25절입니다. 즉,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그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려주고, 그리고 아직도 그러한 면들이 있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주께서 새롭게 하실 일을 소개합니다. 그 소개가 오늘 우리의 이사야 43장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백성에게 말씀합니다.
[
18 너희못듣는자들아들으라너희맹인들아밝히보라
/* 이것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향한 주 하나님의 권면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은 그들이 눈을 감고 보지 않았으며 귀로 듣지 않았다고 고발합니다. */
19 내 종 이스라엘보다 더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낸 심부름꾼보다 더 듣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택한 사람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고, 나의 종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다.
20 이스라엘아, 너희가 많은 것을 보았으나 복종하지 않았다. 너희가 귀는 열어 두었으나 듣지 않았다.
](사 42:18-20)
그리고 이렇게 주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가 상황을 해설합니다.
[
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22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사 42:21-22)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주의 율법으로 교훈하여 그 백성을 존귀하게 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언약을 깨뜨림으로 인해 바벨론 포로가 되었음을 상기시키며 그들의 현재의 비참을 가리킵니다.
[
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사 42:24-25)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의를 계속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42장에서 언급한 ‘새 일’입니다. 그 새 일은 이사야 43장에서도 언급됩니다.
[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20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19-21)
물론 이 ‘새 일’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주의 백성을 향한 주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는 창세 전에 하나님 사이에 계획되었던 구속의 언약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참으로 주의 말씀을 청종하고 행하려는 자들이 있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게으른 자들을 향해서는 주 앞에서 회개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사 42:23)
여기서 “뒤에 올 일”은 이사야가 말하는 ‘새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본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니,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백성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야곱’은 단수로 되어 있고, 그에게 속한 자는 이스라엘로 표현되어 있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하면 메시야를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여 구속하신 자들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야곱이며,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아무튼 1절을 보니, ‘야곱’은 여호와께서 ‘언약’으로 창조하신 특별한 무리입니다. 여기서 창조는 (바라)라는 히브리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곱은 이스라엘의 머리로서 하나님은 야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지었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야차르)입니다. 그 뜻은 토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바라), 즉 창조하시고, 야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야차르), 즉 지으셨습니다. (야차르)를 다른 말로는 “조성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고 말합니다. 구속하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가알)인데 대가를 지불하고 이스라엘을 샀다는 뜻입니다. 어떤 대가입니까? 그것은 이사야 53장에서 뚜렷하게 계시되는 내용인데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대가입니다. 그 대가를 누가 치르고 이스라엘을 샀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의 죗값을 치르시고 그들을 사서 자기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명하여 불렀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야곱에 속한 이스라엘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메시야를 믿고 그와 연합한다면 그는 야곱에 속한 이스라엘이요, 구속함을 받은 자이고, 여호와께서 지명하여 불러 자기 소유로 삼은 자입니다.
본문을 보면, 주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에게서 난 모든 택한 자들을 ‘너’라는 단수형으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말합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여러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고 심판하실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너는 이미 내가 택한 야곱이며 그에게서 나온 이스라엘이고 나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곱에 대한 주의 징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정결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자녀로 만들고자 함이지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실을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백성이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그들은 주의 징계를 감사하며 참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주의 백성으로서 야곱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이 여러분을 조성하신 분이요 아들의 생명으로 여러분의 죗값을 치르신 구속자요 택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실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이들은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약속에 의해 성령을 따라 난 자들”로서 위로부터 거듭난 자들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성령을 따라 난 자라”(갈 4:28-29).
여러분은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사실을 믿고 그분이 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신 만왕의 왕이요 주라는 사실을 믿고 아십니까? 그리고 오순절에 영광의 주께서 보내신 성령을 여러분도 받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시인하십니까?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0, 13)
이렇게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영접하고 모신 자들은 참으로 야곱이며, 이스라엘이며 지명하여 부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주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하나님은 그들을 늘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2-3).
한편, 주 하나님은 3절 후반에서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산헤립 때의 구원을 기억나게 하는 언급으로서 장래에 언제든 주 하나님은 나의 택한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세상 제국이든 나라든 희생 시킬 수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역대하 32장 7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
6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대하 32:2, 5-8)
이때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의 지혜로운 제안에 예루살렘을 치는 대신에 도리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점령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희생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사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바벨론은 물론이고 어떤 나라든지 공격하여 희생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희생시킬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즉, 주의 눈에는 이 우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주께서 택하신 야곱,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것으로 구별된 이스라엘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까지 희생시켜서라도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하신 창조주 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염려를 주께 맡기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4절 이하를 보니,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자신의 소유된 백성인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벨론 포로로 있는 가여운 주의 자녀에게 용기와 소망을 북돋아 주십니다.
[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 43:4-7)
이는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메시야가 오신 후에 세상 열방으로부터 주의 택한 야곱이 하나님 보좌 앞 시온으로 모여드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43장 8절부터 13절까지는 구약 시대에 우상을 섬기던 열방의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며 그분의 음성을 들어 온 특별한 백성인 사실을 강조합니다.
[
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사43:8-9)
창조주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경영을 세상 나라들에게 알려주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미래를 알 재간이 없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그들에게 역사의 경륜과 구원의 길을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야곱, 즉 택하신 족속인 이스라엘은 전혀 다릅니다.
[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사 43:10-13)
그리고 실제로 바벨론에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물론 이 일은 바사와 고레스를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곧 너희를 구하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해 바벨론에 군대를 보내어 바벨론의 성문 빗장을 다 부수게 하겠다. 바벨론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변하여 애통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사 43:14).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분은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을 지은 하나님이시며, 나아가 그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 곧 너희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을 지은 하나님이며,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5).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상에 물든 세상은 성령을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며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압니다. 성령을 압니다. 사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루어 오셨고 어떻게 보호해 오셨고, 또한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복음과 섭리와 만남으로 역사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사랑해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구원자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태초부터 예정함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자이니 누가 주의 손에서 우리를 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
[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0-39)
그런데 이렇게 메시야 안에서 야곱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조성하시고 창세 전부터 택함 받은 자녀들을 각각 지명하여 불러내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즉, 여러분을 지명하여 불러내시고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께서 십자가의 속량으로 구속하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3가지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종”으로 부른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사 41:8-9)
종은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 또는 심부름꾼을 말합니다. 또는 왕의 신하들을 뜻합니다. ‘종’의 직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며 주인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시키시는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기 전,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 2:4-8)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땅을 갈며 지냈습니다. 땅을 갈며 일을 하는 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도리어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은 목적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5절에서 “땅을 갈 사람”이라고 할 때 그 구를 원어로 보면 (르-에보드 에트 하아다마-ㅎ)로 되어 있습니다. 땅을 ‘갈다’할 때 (르-에보드)의 원형은 (아바드)입니다.
여기서 원어 (아바드)의 뜻은 두 가지인데 “일을 하다”와 “하나님을 예배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일하는 것이 예배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배와 일이 구별되지 않았고 예배가 일이며 일이 곧 예배였습니다. 물론 안식일은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주의 백성이 일을 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이며 보람 그 자체이고 한 없는 즐거움이자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둘째로, 구원을 받은 목적 또는 의무는 증인의 삶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사 43:10).
창세 전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가 시작됩니다. 주의 섭리는 그 한 사람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사건을 주장하면서 마침내 메시야를 알게 하시고 믿고 영접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율법을 알게 되고 죄라는 것에 대해 성령의 역사로 바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파렴치한 죄인인지 깨닫게 되면서 지옥에 합당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속량하신 사실을 알게 되고, 또한 부활 이후의 영광의 주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새생명을 얻어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성경이 이해되고 그 안에 묘사된 하나님과 메시야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구속자이심을 배워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으로 확증하게 됩니다.
이제 그 신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체험적으로 누리게 만들기 때문에 그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43:11-12)
[
5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사 44:5-8)
우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창조주,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고, 그분이 보내신 메시야, 즉 말씀 하나님,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메시야가 되신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께서 세상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만유의 주와 심판 주가 되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받았기에 그 생명의 거룩함과 사랑함과 진실함과 신실함을 삶과 성품으로 나타냄으로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지명을 받아 구원함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과 메시야를 증거하는 증인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마지막으로, 셋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0).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내가 지었고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각 사람의 존재 가치와 의무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영화롭게 하지 않음에서 시작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영광을 받기 위해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
21 (이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5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18, 21, 25)
또한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부패한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진술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롬 3:23).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품과 삶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목표이며 지명하여 불러 세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오신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목적이며, 나아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목적입니다. 즉, 삶과 성품과 고백과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개혁주의의 가장 중요한 신앙 고백 중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참된 동기를 갖고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주 하나님은 메시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구속주가 되게 하신 후에 그를 영화롭게 하시며 주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9 …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5, 9, 11)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머리이신 주인의 뜻대로 행하며 그분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명령 중에 가장 중요한 명령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주의 이 계명은 신구약 전체의 율법과 교훈을 다 포함한 것으로서 그 계명이 새 계명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얻으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새 시대에 새로운 능력으로 우리 역시 그리스도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갖추기 위해 주의 교훈과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대로 행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철저하게 주께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새 생명과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가 거하는 환경 역시 하나님 나라가 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주의 명령과 교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배가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여러분은 삶과 성품과 선행과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까? 구원 받은 삶임에도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주께서 실망하실 것이고, 우리는 복음에 담긴 한량없는 특권을 전혀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고 있는지, 평소의 삶과 성품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지, 그것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으로서 영원한 평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의 삶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호흡을 마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해 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늘 이렇게 기도 드리셨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주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과 기적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
6 …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9:6-8)
[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예수께서)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15:30-31)
[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눅 7:11-16)
[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눅 13:10-13)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절대로 자신이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요 5: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8).
“나는 …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느니라”(요 8:49-50).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는 아들 예수님을 항상 영화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요 8:54).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라”(요 13:32).
이처럼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만을 경배하는 것을 이 세상 전부를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즉, 너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8-10)
이와 같이 주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것을 삶의 최고의 목표로 두신 예수께서는 동일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7-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요 21:18-19)
반면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참된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마 6:2).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호흡이 마치는 순간까지를 말합니다. 그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돈과 권력과 사람들의 인정과 얼마나 세상의 인기와 낙을 누렸는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만드신 목적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들로 주를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는 날짜와 부모와 나라와 시대가 결정된 상태로 왔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떠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지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분의 아들로 구속하신 목적을 이루어가며 살아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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