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두 개 달린 사람들은 다 가는 여름휴가를 욕지도로 가기로 했다.
작년에는 설악산에서 2박3일을 애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이건 휴가가 아니고 거진 노역이어서,올해는 한적한 섬에나 가서 푹 쉬며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떤 섬에 가볼까 인터넷을 서핑해보니 욕지도가 그럴 듯했다.
이름이 좀 쌍스럽지만 욕자의 욕은 알고자 할 욕자인 것도 이번에 알았다.지식을 알고자 한다는 소리 아니겠나.
휴가계획을 의논하면서 아내는 4월 달에 유럽가서 돈을 많이 쓰고 왔는데 올해는 그냥 지내자 하는 걸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도 알 수 없는데 천년 만년 살겠냐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래도 휴가비랍시고 30만원이라도 주는 직장이라도 있을 때 가야지 하면서.
지난번 유럽여행 때 카플리 섬도 가보고 나폴리도 가보았지만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거다.
통영시 관내만 해도 무인도 150개를 포함해서 190개란다.
통영에서 50분 만에 욕지도에 당도했다.상상과는 달리 면소재지가 있고 농협 수협 탑마트가 있는 인구 2,000의 큰 섬이다.
일제시대는 어업 전진기지로 파시가 성황을 이루었던 전설 같은 섬 이라 한다.
보름 전에 팬션을 예약하려니 벌써 만원 사례라 어렵사리 여관을 잡았더니 70년대 식 여인숙 같은 곳이다.
그래도 이 성수기에 6만원에 에어컨 나오는 데가 어디고 싶다.
여관에 짐을 푸는 대로 섬을 일주 하는 천원버스를 탔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 대체로 버스 출발 시간 이고 아무 곳에나 손만 들면 태워주고 마을마다 주민들을 데려다 주며, 우리 같은 외지인에게는 구수한 만담도 섞어가며 재치 있는 설명이 일품이다.
욕지도가 남해의 가장 먼 섬이라서 남쪽 일주도로는 늘 쌍 시원한 태평양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어울어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이 얼마 만에 느끼는 시원함인가.
섬 북쪽으로는 올망졸망한 섬에서 부터 점.점.점으로 놓여있는 그림 같은 섬들이 남해 바다를 펼쳐 놓고 있다.
장쾌하다기 보다는 상쾌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운전기사는 조망이 끝내주는 곳에 차를 세워주고 5분간 사진도 찍고 힐링하라 한다. 통영시에서 운영하는지 욕지도에서 운영하는지 운전기사 양반 진짜 딱 마음에 든다.
저기 있는 섬도 무인도 저 너머도 무인도인데 가실 때 하나씩 가져가라 한다. 그 운전기사 직업이 천직인 것 같다. 매양 현대인이라면 저런 직업 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별미라는 고등어 회 하나를 시켜두고 좋은데이 한잔을 해 본다. 좋은데이가 부산도 좋은데이지만 욕지도도 좋은데이다.
휴가철에 날 잡아 각설이 공연이 바닷가 특설무대에서 신나게 펼치고 있다. 때로는 저속하고 육두문자 지껄여도 달빛에 바래져서
휩쓸리고 있다. 에어컨 없어도, 선풍기 없어도 좋은 선창가 벤치에서 망중한을 즐겨본다
아침을 먹고 유일한 관광명소인 출렁다리를 가봤다. 인위적인 다리에야 무슨 감명이 있으리오만 남해 태평양을 대면하는 사면은 온갖 풍상을 억만년 견뎌 냈음엔지 감탄스럽다. 태종대나 여타 섬에도 이런 곳이 있겠지만 절해고도에서 보는 감상이 새롭다
땡볕을 벗어나려 능선도로로 올라오니 노천카페가 있다. 그늘 그물도 쳐있고 분위기 있는 좌대도 좌대지만 위치가 산등성이에 있어 우선 바람이 태평양에서 넘나들고,좌우 전후 조망을 한번에 할 수 있어 눈요기가 장관이다
나는 솔찍히 요새 커피는 이름도 모른다.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도 그러겠지만 너무 비싼 것 같아 싫다.
싼 게 4,500원 비싼 건 만원도 하는가 보다.
카프치노는 뭐며,커피라떼는 뭔지 알고 싶지도 않다.에스프레소도 저번 유럽여행 때 처음 마셔 봤다. 엄청 쓴 커피였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눈치가 보여 비싼 무슨 커피 한잔에다 이곳 특산 고구마로 만든 뜨거운 음료 한잔씩을 시켜두고 이 세상에서 가장 폼나게 그리고 여유있게 대자연과 소통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여행과 관광과 휴가와 피서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어디를 가면 늘 시간이 촉박하여 잠깐 잠깐 들려서 눈요기 하고 내 왔다 간다며 사진이나 찍고 미친 넘 널 뛰듯이 했는데,
진득하니 두 시간을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조급증 나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내 생전에.
만원을 주면 낚싯대를 빌려주고 하루 종일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기에 그럴까 하다가 20분이면 가는 옆에 있는 연화도에 무턱대고 갔다.
선착장에 내리니 콘크리트 도로가 열을 받아 화끈거리고 바람도 한 점 없어 이 답답한 섬에 괜히 왔나 후회스러워 졌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선창에서 봤던 절벽에 있는 절에 갈려면 여기서 먼가요 하고 물으니 30분은 가야 한다기에 10여분 거리에 있는 연화사를 흥미없이 관람하고 선착창 대기실에 돌아오니 등산객들로 꽉 찼다. 에어컨이 한대 있지만 과부하가 걸려 지가 사람 덕 볼려는지 영 맛이 갔다.
대형선풍기 하나라도 천창에 매달면 확실히 시원해질 거구만은 그 머리가 안 돌아 간다.
괜히 와서 세시간이나 허비하고 고생만 했다싶다.
다시 우리가 묵을 여관이 있는 욕지도행 배를 타고 선내의 사진을 보니 연화도의 유명한 절은 연화사가 아니고 보덕암이란다.
불사를 잘 한 것 같다. 바다절벽에 세운 5층 법당인데 바다에서 보면 5층이고 섬에서 보면 1층 법당이란다.
남해 보리암 해동 용궁사 여수 항일암 같은 기도도량을 밴치마킹했나보다.
매번 하는 소리지만 처처불상이면 사사불공이니라 (處處佛像事事佛供 )
하루밤을 잤지만 만리장성을 쌓았는지 욕지도에 다시 내리니 내 집 같은 정이 든다.
다시 한번 천원 주면 되는 일주버스를 탔다 .운전기사도 벌써 단골이 됐다.
시원한 바다를 어제 보고 오늘 또 봤지만 싫증이 안 난다.
망망대해 푸른 바다 점점이 떠다니는 그림 같은 섬, 섬, 섬
첫댓글 그래서 오실 때 그 섬 하나 가지고 오셨나요? ㅎ
욕지도 섬 풍경이 눈 앞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정말 좋은 섬 입니다
언제 한번 가셔서
섬하나 가져오시지요
철썩이는 파도뿐 아무 것도 아니 보이는
동해와 달리 손자 장난감을 보따리로 쭈악
뿌려놓은 듯 섬들이 올망졸망한 남해는
이제는 가는 곳마다 돈질이라 더러 기분
상하기도 하지만 설렁설렁 둘러보기는
좋지요.. 욕지도 가본지도 십년입니다
거기도 많이 변했으리라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곳이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잘읽고 갑니다.
저도 욕지도 관련 잡문 하나 생각나 올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양의 나포리라는 예향인 통영,
통영의 가까이 있는 욕지도를
이유없이 좋아합니다.
어제 오늘, 무척 더운 날씨지만
저는 우리 카페의 사진방 여러분과 함께
고추가 유명 산지인 경북 영양이
가 볼만한 고장임을 체험하고 돌아 왔지요.
장고님의 여름휴가 욕지도,
잘 읽고 갑니다.^^
이유없이 좋아할 만큼 좋은 섬입니다
사진방 체험이 부럽습니다
저도 눈이 두 개 달려 있기에 거기 가 봤습니다 ^^
돈 많고 낚시 좋아하는 선배가 거기에 집을 사서
거주하는데, 참 좋은 곳이더군요.
낚시로만 알려지기엔 아까운 섬이지요.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섬이군요
다시 가고싶은 섬중에 하나입니다
저도눈이 두개 달려 있기에 가 보았는데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
이름이 좀 특이했다는것 외엔 ..
달러를 좀 아껴쓰고 훗날 가서 섬 몇개
가져 올까 하는 생각입니다 .
휴가 다녀오신 후기 읽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
이번 글은 장고님의 다른글과 좀 다르네요 .ㅎㅎ
눈 두개가 없는 사람은 서운하겠습니다
무인도 하나 불하받으시길 바랍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로만 듣던 욕지도를 방금 다녀 온 것같아요. 정말 섬 일주 시켜주시는 운전기사 님
넘나 멋있으세요.^^
약간의 해학이 곁들인 글 참 잘 쓰시네요.
앞으로도 쭈~욱 잼난 이야기 부탁드려요.
ㅎ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합니다
함가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