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보다 열 살 위다.
내가 초등학교 교단에 섰을 때
그는 동숭동 마로니에 거리에서
학생운동의 격문을 써댔을 거다.
신문사에 들어가 삼십년 내내
유럽 특파원을 했다.
이 기간 그는 떠나가는 배라 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 하며
국내사정은 아랑곳할 것도 없이
유럽 문물을 유랑했다.
나이 50이 되었을 때 귀국해
욕지도에 정착했다.
독신은 미친짓이라며
욕지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딱 50명을 초대하고
50년 산 와인 50병을 풀어놓고
혼례를 올렸던 거다.
결혼 후의 삶을 돌아가는 배라 했다.
이 전편 후편을 통합해
'돌아가는 배'라 제호를 달고
산문집을 펴냈다.
돌아와 어느 신문사 편집주간도 했는데
이젠 김** 옹이라 불리기도 한다.
얼마 전 시국을 걱정하는 글을 발표했다더라.
허나 나는 읽어볼 생각이 일지 않더라.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는데
(토인비)
나는 늘 도전을 받아왔지만
피하지 않고 순응했을 뿐이요
그렇다고 도전해본 일도 없다.
떠나갈 줄 모르고 돌아갈 줄도 모르는,
나는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그 전형인지도 모르겠다.
그시절 나는 매일 "새벽종이 울렸네..."를 부르며
학생들과 함께 했으므로~
첫댓글 첫댓글 달기가 두럽군요
김성우라는 분 참 대단하신 분인가 싶습니다
로망이기도 했고
왠지 다른기분이기도 했는데
그걸 다 표현하지 못하겠네요.
10살 위인 김성우 옹이라는 분과는
어떤 형태의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서로 가는 길과
인생 목표가 달랐을 것 같고,
김성우라는 분은 언론인인 것 같네요.
산문집을 낸 것은 석촌님과 같은 문인인 것 같습니다.
성실한 삶을 사신 분과
도전의 삶을 살고 세상에 이름을 낸 분과의 비교인지요.
석촌님의 글의 의도가 알 듯 모를 듯...
시국을 발표하는 글을 석촌님께서 올려도
밑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분의 유명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글이나,
제 느낌을 적어 올렸습니다만,
잘 못 썼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멋지게 산 분이란 말만 하렵니다.
갯바위에 부딪혀 생겨난 포말들.
무지개색으로 반짝이며 뽐내기도 하고
무채색으로 투명하게 우주를 품기도 하고
갖가지 빛깔로 존재감을 보이다가
다시 바다가 되는 짧은 여정을 삽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림없이 떠나가고
걸림없이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참 멋진 분이십니다.
개인생활이야 부러울 뿐이죠.
저도 멋진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
그분과는 다른 삶을 살고 계신 석촌님도
멋지시고요 .
네에, 저야 평범도 벗어나지 못한 노야일 뿐인걸요.
제 기억에, 김성우 선생은 한국일보 파리 특파원
하신 그분으로 짐작됩니다, 기자라기보다는 문화
평론가의 향취가 듬뿍 했던 그분의 책을 젊은 날
사서 유럽 출장길에 감사히 보았는데 지금도 제
낡은 서가 어딘가 꽂혀 있습니다
욕지도는 선배가 그곳 중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빈 교실에 모기장 치고 며칠을 신세지며 섬 구석
구석 눈도둑질한 기억이 납니다
그렇군요.
당시엔 해외취재랄 것도 없고
어려운 시절 없는 외화를 써가며
호사를 누렸다고나 할까요?
문화귀족이라 할만 하지요.
얼마 전엔 그곳에 그의 문장비도 세운 모양이던데
찾고 싶은 섬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