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위원장님의 카톡에서]
어떤 창문을 열고 있나?⚘️
기원전 344년 어떤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에게 몸집이 큰 말을 끌고 왔다. 부케팔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말이었다. 부케팔로스는 ‘소 머리’라는
뜻이다. 머리가 매우 커서 붙은 이름이었다.
그는 말 값으로 13달란트의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다.
왕은 말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신하들과 함께 벌판으로
나갔다. 말은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이 타려고만 하면
이리저리 날뛰었다. 왕은 쓸모없는 말이라면서 당장
끌고 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때 왕의 어린 아들인 알렉산더가 말을 길들여 보겠
다고 나섰다.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에게 다가서더니
태양을 등지고 서 있던 말이 태양을 바라보도록 돌려
세웠다. 사나운 말이 갑자기 얌전해졌다. 부케팔로스의
그림자가 말을 흥분시킨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
더는 말에 올라타고는 쏜살같이 벌판을 달렸다.
만약 내 앞에 불운의 그림자가 가득하다면
부케팔로스처럼
태양을 등지고 서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태양을 향해 돌아선다면 내 얼굴에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는 어두운 생각
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이 하루
에 떠올리는 생각을 분석해 봤더니 83%가 부정적이
생각이었다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
보다 5배나 많은 셈이다.
'자기 계발의 아버지' 데일 카네기는 “행복한 일을 생각
하면 행복해진다. 비참한 일을 생각하면 비참해진다.”고
말했다.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길을 막고 있는
걸림돌도 생각을 바꾸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돌려세우면 부케팔로스처럼 명마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한 소녀가 창가에 엎드려 울고 있다. 창밖에서는 사람들
이 소녀가 사랑했던 강아지를 땅에 묻고 있다. 그때 할아
버지가 소녀를 다른 창가로 데려가더니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에는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소녀
의 얼굴엔 슬픔이 가시고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할아버
지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애야, 네가 창문
을 잘못 연 것뿐이란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하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도와 폭력과 전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고 한탄한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창문을 잘못 연 탓일지 모른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긍정과 부정, 두 개의 창문이 놓여
있다. 한쪽의 창문을 열면 죽은 강아지가 보이지만 다른
쪽을 열면 장미꽃이 만발할 것이다. 어느 쪽을 여느냐는
각자의 자유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창문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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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말씀 ]
세수는 남 보라고 씻는다냐 ?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겠냐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아라고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거 아니냐..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낮을 왜 만날 씻겠냐 ?
고추 모종은
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되고
배꽃 필 때 한 번은 추위가 더 있다.
뻐꾸기가 처음 울고
세 장날이 지나야
풋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하다 안 하더냐.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
처섯비는 사방 십리에 천석을
까먹는다 안 허냐.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쫌 와야 할텐데....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안 부서져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든
살펴봐 감서 해야 한다.
까치가 집 짓는 나무는 베는 것 아니다.
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허제.
밉다고 다 없애면 세상에 뭐가 남겠냐?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
나무가 앙 갚음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고
막심으로 땅을 찍으대면
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것이다.
세상에 쓸데 없는 말은 있어도
쓸데없는 사람은 없는것이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놈이 있고 작은 놈이 있는 것이나,
야문 놈이나 무른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 나가먼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겠냐?
밥 하는 놈
따로 있고
묵는 놈
따로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도
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없어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냐.
내 살아보니 그닥시리
잘난놈도 못난 놈도 없더라
허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
잘 배우나 못 배우나
별 다른 거 없더라.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
많이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는 갑더라.
거둬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뜻하고,
모질게 거둬들이기만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지도
까시가 돋니라.
어쩌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가면서 살아라 해라.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맞춰 보면
별 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다리는 두개라도
입은 한 개니까
사람이 욕심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손 두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도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든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사니라.
그러니
사람한테야
굳이 말해서 뭐하겠냐?
내는
이미 이리 살았지만
너희들는 어쩌든지
눈 똑바로 뜨고 단단이 살펴서,
마르고 다져진 땅만 밟고 살거라.
개는 더워도 털 없이 못 살고,
뱀이 춥다고 옷 입고는 못 사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 나면,
아아는 두 번 되고
어른은 한 번 된다더니,
어른은 되지도 못하고
아아만 또 됐다.
인자 느그들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도
손을 짚어야 걷는다니.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에 있냐?
하다 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 익고
그러면
그렇게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
다들그렇게 사는 것이지....
/ 옮겨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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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 날'
입니다.
이 말을 나는 요즘도 자주 인용합니다.
아주 오래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때
선물의 집에서 조그만 크기의 책갈피 하나를 사게 되었는데
그 안에 적혀 있는 바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오늘은 그대의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그 순간 이 글이
내 마음에 어찌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 위로를 주는 멋진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늘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살게하소서!' 하던 기도를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첫 날임을 기억하며 살게하소서!' 라고 바꾸어서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이라는 말은 왠지 슬픔을 느끼게 하지만
첫 날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기쁨을 주는 생명성과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어
정말 좋습니다.
오늘도 새소리에 잠을 깨면서,
선물로 다가온
나의 첫 시간에 감사하였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회를 잘 살리도록 노력해야지' 하고 마슴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해야 할 일을 적당히 미루고 싶거나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적에
나 자신에게 충고합니다.
한 번 간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하세요. 성실하고 겸손하게.
문득 문득 다시 생각나는 말,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
삶이 힘들 때 충전을 시켜주는 약이 되는 말!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이 말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이 말을 계속 되새김하다 보니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오늘도 싱싱한 희망의 첫 마음으로 내 남은 생의
첫 날을 살게 하소서
새로운 감탄과 경이로움을 향해 나의 삶이 깨어 흐르게 하소서.!!
/ 이해인 수녀의 책
'기다리는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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