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국제결혼을 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고 있고, 그 인기의 비결이 국제결혼으로 인한 문화와 관습의 차이, 때론 그 차이로 인한 오해와 화해등의 다양한 콘텐츠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젠 국제 커플 혹은 외국인들에 대한 낯섦과 경계심도 많이 옅어진 것 같다.
오래전 외국인들에 대한 낯섦이 제법 남아있고 길거리 포옹이나 입맞춤이 거의 없던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주 선명한 포옹이 있었다.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의 새벽 김포국제공항.
내 옆을 걷던 그 여자가 딱 멈추어 섰다. 뭔가 말을 걸어보려던 나도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기색이 이상해진 그 여자의 시선이 멈춘 앞쪽으로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그 남자인가 보다...'
그곳엔 그 남자가 서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니, 그 여자의 눈에는 곧바로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1990년대 중반,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던 4박 5일간의 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
적도 가까운 나라로의 첫 여행이라, 무작정 더울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여행 준비를 한 게 화근이 되었다. 첫날 회의를 마치고 나서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하더니, 룸의 에어컨을 다 끄고 이불을 두텁게 덮고 자도 이미 몸에 스민 한기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더운 나라에 와서 오뉴월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 걸리다니...
회의 일정 상 관광과 겸하다 보니 호텔 안과 밖을 수시로 넘나들게 되었는데, 바깥은 기온과 습도가 높고, 호텔 안은 얼마나 냉방이 잘 되어 있는지... 습도 높은 한 여름과 건조한 늦가을 기후의 반복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에이전트들과 공급사 사람들은 경험들이 있는지 긴소매와 반소매 옷을 상황에 맞추어 잘도 갈아입고 다니는데, 나는 반소매 옷만 준비를 해갔으니... 결국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약국에서 감기 약을 사 먹었지만 별 효과도 없고, 적도 쪽으로 여행을 하더라도 긴소매 옷과 비상 상비약을 꼭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만 깊이 새길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정을 힘겹게 마치고 늦은 밤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얼핏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잠을 깬 것은 찢어질 듯 고막이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그런 현상이 생긴다더니... 아이고~ 이젠 귀까지 말썽이네.
그때,
"Could you help me?"
내 옆자리 앉은 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스물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여린 듯 얼굴이 예쁜 그 여자의 테이블에는 한국입국신고서가 놓여있었다. 배낭여행을 하는 여대생처럼 보이는데, 내 코가 조금 높기로서니 외국 사람으로 착각하나 싶어서,
"저 한국사람입니다..." 했더니
그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입국신고서 작성을 도와주면서 말을 붙여보니 그 여자는 페낭에 사는 화교 출신의 말레이시아인이었다.
귀가 아프다 보니 잠자기는 그른 일이고, 마침 그 여자도 초행인 한국여행에 궁금한 점이 많았던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라, 그때부터 우린 밤새워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었다.
그 여자는 호주 유학시절 남자 친구를 한 명 알게 되었는데 그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라는 것.
그 남자 친구의 여자 동생도 호주로 유학 와서 오빠와 함께 지냈는데 자기와 동갑이라 셋이서 아주 친하게 지냈었고, 공부를 끝낸 세 사람은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는 것.
서로 가끔 안부를 주고받다가 기회가 되어 자기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지금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으로 있는 그 친구가 자기를 마중 나오기로 했다고...
조곤조곤 에피소드들을 섞어가며 들뜨고 행복한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음... 외국 유학 중에 만난 친구를 만나러 가는구나...' 쉽게 생각을 했었다.
그 여자는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태극기에 대해서도...
어른을 대하는 예법에 대해서도...
명절과 풍습에 대해서...
역사와 종교에 대해서도...
딸리는 영어 밑천으로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외국의 젊고 예쁜 여자가 한국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는 것이 기특하고 귀해서, 말로 하다가 안 되면 종이에 그리고, 종이에 그리다가 안 되면 몸으로 보여주며 애쓰는 동안에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아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의 김포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짐을 찾아 함께 대합실로 걸어 나오던 중이었다. 이제 제법 친한 느낌까지 들어서 그 남자 친구가 나왔는가 물어보려던 참에 두리번거리던 그 여자의 발걸음이 딱 멈추었던 것이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그 남자가 천천히 팔을 벌렸고, 그 여자가 그 남자에게로 천천히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나도 선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선 채 그들의 예측하지 못한 상봉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새벽의 한산한 국제공항 대합실은 막 도착한 승객들의 발걸음들로 분주했지만, 그 남자에게로 걸어가는 그 여자의 발걸음만은 아주 느렸다.
팔을 벌린 그 남자는 웃고 있었지만 그 두 눈에는 그 여자처럼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고, 드디어 다가간 그 여자가 그 남자의 품에 안기는 순간에 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남자의 품에 안겨 등만 보이는 그 여자도 아마 그랬으리라...
다가가던 걸음처럼 천천히 둘이 서로 마주 보다가 드디어는 입맞춤. 입술을 댄 채 가만히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도 했지만 그 두 사람의 입맞춤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당연히 그래야 할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이 그 두 사람에게서 느껴졌다.
친구가 아니라 서로가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었음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빛들을 보니 그간 애태운 사연들이 많았던 모양인데...?'
'국적이 달라서 양가에서 그들의 인연 맺음을 반대했을까...?'
'이제 한국의 부모가 오랜 반대 끝에 승낙을 했는가...?'
'아니면 무작정 연인이 그리워 집을 뛰쳐나온 것일까...?'
'두 사람 다 순수해 보이는데 잘 맺어지면 좋겠구만...'
여러 있음 직한 사연들을 소설처럼 떠올리며 그들 곁을 지나는데... 그 여자가 나에게 말없는 미소를 보내왔다. 참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분위기를 깰 새라, 나도 눈으로만 인사를 하고 대합실 문을 나오면서 돌아보니 그때까지도 그들은 아름다운 포옹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날, 신선한 김포의 새벽 공기를 마시니 어느새 감기로 불편했던 몸은 가벼워졌고, 밤을 새운 피로 또한 내 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신 새벽 아름다운 포옹의 목격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유튜브에서 국제결혼을 한 젊은 커플들을 보면 난 늘 그날의 아름다운 포옹을 떠올리며 그들의 오래 변치 않는 사랑을 빌어주곤 한다.
첫댓글 잔잔한 옴니버스 영화 한 편 본 것 같아요.
나머지는 보는 이의 상상에 맞기고.
화자는 흐뭇한 맘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역시 마음자리님의 글은 믿고 읽습니다.
계신 곳은 여기 만큼의 폭염이 없는지요?
늘 건강히 안전 운전 하세요.
여긴 연일 사십도를 오르내립니다.
대신 그늘진 곳에 들면 금세 시원해지고요.
사실 집이나 트럭 안에 있으면
외부 기온은 잘 못 느끼고 삽니다. ㅎ
어제 낮 외출에서 돌아 오는 전철 안에서 보았던 어린 남녀의 애정행각이
완전 다른 차원으로 떠오릅니다.^^
앵커리지님 글에 둥실님이 다신 댓글을 보았습니다.
어린 친구들의 정서에 공감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ㅎ
아름다운 남과 녀 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좋겠는데 알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충성
서로 깊이 사랑하던 모습으로 기억된 걸 보면 아마도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포옹은 눈에 남지요.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지금 껏 기억하는 것은
마음자리님의 순수성 때문일까요.
그 당시는 결혼이 '인륜지 대사'라 하며,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게다가
국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내기에는
고난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두분은, 지금 쯤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우리들 처럼 늙어가고 있겠지요.
여름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네. 저도 그 젊은 커플들이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잘 살며 숙성되어 가기를 바랐습니다.
내일 또 캘리포니아로 달려갈 예정입니다.
안전운전 하겠습니다.
소설 한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억도 좋으시고
표현도 좋으시고
그렇게 애틋한 관계
결혼하여 잘살고 있을지
남의 애정표현에
감기도 놀랐었나 봅니다.
아무튼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되세요.
기억에 남는 일들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새겨져 있는데
글로 표현하려면 늘 길어지고 맙니다.
그 당시 공공의 장소에서 그런 장면
연출하는 것이 드물 때여서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장면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더라구요.
사랑 이야기만 나오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ㅎ
다시 태어나고 싶은 그 마음으로
지금 사랑하면 좋으실 텐데요. ㅎ
참 아름다운 커플의 진한
포옹이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무리 멀어도 멀게 느껴지지
않겠지요.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는 연구원.
문득 제 아들 생각이 납니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저녁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녀에게서 약간의 긴장과 들뜸이 느껴졌는데... 모쪼록 모든 일이 달 풀리기를 기원했습니다.
아드님이 나라의 초석이군요.
아름다운 포옹의 기억이 마음자리님의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 이었네요 . ㅎㅎ
포옹에 어설퍼했던 저는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포옹을 잘 합니다 . 문화에 익숙해져서요 .
잠깐의 만남에서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준 그 커플의 훗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은 행복이었습니다 .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며 입가에 미소가 ㅎㅎ
ㅎㅎ 저는 포옹에 여전히 어색합니다.
그 커플들 좋은 인연의 결실을 맺어 잘 살기를, 그 둘이 생각날 때마다 기원했습니다. ㅎ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는데요.
자정이 가까워 오는 이 시각
사랑 찾아 삼만리 영화 한 편을 본 것같아요.
화수분처럼 술술술 글 참 잘쓰세요.
맘자리 님은 타고 났다니까요^^
인연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 유독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녀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공항에 근무하면서 수도 없이 보아온 풍경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진한 애정표현이 거슬리기도 하고
표정들이 절절했는데,
요즘엔 거의 모두가 쿨한 표정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게지요.
정말,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
이젠 어질어질합니다. ㅎ
한 장면의 영화를 보듯이 설명을 잘 하시군요.
요즘은 국제결혼이 너무 흔하여
우리 딸도 외국인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세상이 좁아지고 더 가까워지다 보니 국제결혼도 이젠 전혀 낯설지가 않아요.
잘 만든 영화처럼
연인의 사랑을 설득력있게 보여 주십니다.
사랑 이야기는 흥미가 없는데
이 이야기는 쫄깃합니다.
아,그럴거라는 공감까지,잘 읽었습니다.^^
쫄깃하셨다니 다행입니다. ㅎ
순간 순간의 사랑 장면이 때론
큰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연인들이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을지...
사랑은 참 아름답지요.
그들의 좋은 결과까지 상상해봅니다.
로맨틱한 글 잘 보았어요.^^
친구를 만나러 가나보다 짐작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아...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구나 알았습니다.
그당시 힌국 분위기에선 사랑 이루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 속 마음으로 많이많이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도척의 눈에는
도둑만 보인다더니 마음 착한 마음자리님
눈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보이고 제 눈에는
지하철 반나의 젊은 추태만 보입니다
양의 동서와 때의 고금을 떠나 영육간에
건강한 젊은이들의 질곡한 사랑은 늘 아름
답습니다
도척 무리 속에 있으면 저도 도척이고, 선한 분들 계신 곳에 있으면 저도 선해집니다. ㅎㅎ
수필방이 선하니 그래서 저도 선해집니다. ㅎ
잘 읽고 갑니다.
늘 제가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