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반. 서울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교보문고) 앞 가로수 그늘 아래 의자엔 20대 대학생인 듯한 청년들 댓 명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나는 부채를 부치며, 나무 그루터기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무료한 시간만을 죽일 수 없어 책(인간대화술)을 펴 들었다. 이런 자투리 시간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책 한 권 정도는 늘 내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 이럴 때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시간도 지루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다.
가끔 살랑살랑 불어주는 바람이 흰모시 바지저고리 속으로 스며들어 시원하다. 서울에도 이렇게 고마운 바람이 있을까. 신기하다. 뿐만 아니라 한 줄기 지나가는 빗소리 같은 말매미 울음소리가 가로수 숲 속에서 퍼붓는다. 마치 철공소의 쇠붙이 깎는 소리처럼 내 고막을 찢어 놓을 것만 같은 말매미 울음소리가 지나가는 차량들 소음에 뒤질세라 더 날카로운 소음공해다. 그러나 듣기 싫지는 않은 자연의 소리다. 이 '자연의 마음' 있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두어 발자국 땅바닥에 무엇인가 툭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책을 읽다가 시선을 던졌다.
뜻밖의 참새 한 마리가 장난감처럼 폴짝 날아오른다. 서울 한 복판에서 참새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기적처럼 반갑구나. 이 서울참새의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덕수궁기와집의 추녀 속일까. 갑자기 어릴 적 시골에 살며, 눈오는 겨울밤에 초가집 처마 속에 잠자는 참새를 전등불로 비추어 잡던 보드라운 깃털의 촉감이 '추억의 그림'으로 떠오른다.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수 없지' 또 '참새가 암소 등에 올라앉아 쇠고기 10근과 바꿔주지 않겠다'라는 옛말도 기억난다.
이러한 참새가 일깨워주는 '참'을 생각하게 하는 '참교육'이다. '참언론'도 있다. 또 '참세상' 만들겠다고 온 국민들이 지난 해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서울의 택시운전사 열 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마 일곱 사람은 '이회창 대통령'이 될 거라고 확신들을 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기적'이었다. 이렇듯이 '참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오도록 우리들이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언론'의 강력한 힘이 강물처럼 넘쳐야 한다. 그리하여'조선일보는 악의 뿌리(청주의 신성국 신부님에 의하면)'같은 자사 이기주의적인 언론사들이 현실을 지배하는 사회구조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즉 <한겨레>같은 신문과 인터넷 오마이뉴스, 대자보, 등등의 힘이 지난 해 대선에서 크게 작용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자랑거리인 <한겨레>는 주주가 6만이 넘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신문사다. 그러나 자본금 덩치로 보면 '참새'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은 '독수리'처럼 덩치가 크다. 뿐만 아니라, 불과 십 수년 전에 군부독재에 아부하고 빌붙어 '관제언론'으로 기생해온 '악의 뿌리'들 세력이 발악적으로 오늘의 노무현 정부를 흔들어 대고 있다. 아니 독수리처럼 사나운 입으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할퀴고 있다.
이제 '독수리' 셋 쌍둥이 조중동은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들만의 먹이를 찾아 최후의 발악으로 공격해올 것이다.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말해 여기 참새들은 저들에게 다 잡혀 먹히고 말 것인가. 서울의 참새들이여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독수리 편을 들자가 누구인가.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참새공화국'에서 살고 싶지. '독수리독재국가'에서 노예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삼복 더위에도 불구하고 이 장소에 모여서 '참'을 일깨우고자 온몸으로 거리 홍보에 나섰다. 독수리 언론 재벌들은 홍보를 돈을 처발라서 TV광고에 하기도 하지만, 여기 참새언론은 힘겹다. 보다 못해 독자들 스스로가 선구자처럼 길거리로 나왔다.
오후 3시가 넘자 황두환(83세) 김용신(78세) 두 할아버지와 성경희(76세) 할머니, 그리고 김종렬 회장, 김현희 부회장, 철물 사장님, 흰머리소년, 아름다운청년이 약속 장소로 나왔다.
연세 드신 어른들이 나오시어 더 힘이 났다. 이렇게 곁에만 있어줘도 힘이 저절로 솟구쳤다.
어깨띠를 두르고 <국민이 주인인 한겨레신문> 열 가지 내용이 인쇄된 홍보물을 들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김회장과 흰머리소년은 광화문 지하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차를 타려는 데 정신이 없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장소를 옮겨 둘이서 5백장 넘게 열심히 나눠주었다.
날씨가 무더워 속내의가 다 졌었다. 목이 탔다. 시원한 쥬스를 사서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다른 장소로 갔다. 나는 혼자서 길 건너 외환은행 서린지점 앞에서, 이쪽 저쪽 신호등을 받고 오는 분들에게 남녀 불문하고 무조건 나눠준다. 나는 벙어리가 아니다. "한겨레 좀 봐주세요" "한겨레 좀 살려주세요"라고 '거지가 구걸하듯' 받아가라고 종이 한 장을 내밀어도 외면하는 젊은 여자들은 이국사람 같구나. 우두커니 신호등 앞에 서 있는 분들에게 다가가서 '불쑥' 준다. 거부 못하고 어색하게 받아든다. 길에 내버릴 수는 없고, 단 몇 십 초라도 기다리는 시간에 글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은 보람을 느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주지 않고 손에 들고만 있으면 백 사람 중에 다섯 사람도 스스로 달라고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 나눠주는 행위도 쉬운 게 아니다. 마침내 몇 십장 남았다. 그 때였다. 한 걸음 바로 앞에 나타난 낯익은 분이다. 당그레 출판사 사장님이시다. 나이가 나보다 적으니까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뜻밖이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5가에 끈을 사러 간단다. 그리고는 흰모시 바지저고리를 입고 노란 어깨띠를 두른 내 몰골을 보고는 "멋져 보인다"고 한 마디 던지는 그 얼굴에 미소가 아름답다. 다음에 전화통화 하자며 해어졌다. 넓은 서울 바닥에서 아는 분을 만나기도 쉽지 않건만, 참으로 우연히 만난 한 토막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어디선가 일을 다 마치고 김회장이 내게로 다가와서 가자고 한다.
모두들 2천여 장을 열심히 나눠주었다. 철물 사장님, 아름다운청년이 처음 장소에서 나눠주고, 이곳에는 또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증산교 신도 고등학생인 듯한 애송이들이 야외용 상에 진열해 놓고 열심히 홍보한다. 이 책을 나는 20년 전에 대전 역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남 ㄷ대학교 국문과3년 여학생을 만나 얻어 읽어보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사회에 종교가 너무 많아 탈이다. 문제는 많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겨레>를 볼 줄 모르고 그들의 눈이 현실 도피적인 그곳에 머물러 있어, 사회를 보는 시각이 까막눈인 것이다. 이러니 어찌 사리 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끝까지 교보문고 입구에서 나눠주고 있는 김부회장에게로 합세하여 나눠주었다. 그때 60대 노신사 한 분이나를 보고 "ㅈ신문이 강제로 투입하여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은평구에 산다면서 자기도 한겨레 주주라고 했다. 그는 나의 명함을 달라고 했지만 없어서 못 주고 손전화 번호만 적어줬다.
8월 둘째 주 토요일 거리 홍보도 많은 분들이 바쁘다 보니 함께 하지 못했고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른들 모시고 저녁 정기 모임의 장소인 느티나무까페로 가는 발걸음은 개선장군처럼 가벼웠다.
(죄송합니다. 진작에 올렸어야 했는데 날씨 무덥고, 새벽에 비 자주 오고 <참새신문>배달하기가 더욱 힘이 들었고 쓰기도 쉽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