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다양하고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전쟁 그 자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잔혹함과 비참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서조차 싹이 틀 수 있는 남녀 사랑의 이야기도 생산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극한의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뜻하지 않은 인간성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기희생적인 돌발사태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말 그대로 특별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평범한 삶 속에서 볼 수 없는 상황과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코 당하고 싶지 않은 사태를 경험하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호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적대적인 상황에서 만났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다가 그만 서로에게 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겨누던 총부리를 거두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지요? 살다보면 그런 일이 생깁니다. 환경이 만들고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서 변화됩니다. 소위 적응하게 됩니다. 그것이 적대적 관계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서로를 향하던 총부리가 제삼의 적에게 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양쪽에 위협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단 공동의 적부터 처리하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을 합하다보면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의 사람됨도 알게 됩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갈려서 전쟁을 한 경우라 해도 미국의 남북전쟁과 우리나라의 남북전쟁(6.25전쟁)은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물론 동기에 있어서도 질적으로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비교하기는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정말 너무 다르다 싶습니다. 우리 쪽은 아주 잔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저쪽은 그래도 비교적 신사적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야기 속에서 일반 백성을 잔혹하게 다룬 것은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간인도 많이 희생당했습니다. 그것도 어쩌면 잔인하게 학살을 당한 것이지요. 전혀 다른 민족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에게서 당한 일입니다.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어떻게 한 민족으로 그럴 수가 있는가?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저쪽은 19세기, 우리는 20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시대의 차이인가? 삶의 수준의 차이인가? 문화의 차이인가? 이념의 차이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지만 시대로 보면 우리 쪽이 훨씬 문명이 발달한 때임에도 더 잔인하게 많은 희생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 민족의 혈통을 자랑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렇게 이념과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사람을 괴물처럼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다른 처지이기는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괴물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잔혹한 짓들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도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북군이 남부지역으로 들어옵니다. 남군의 보급로를 차단시키려는 작전을 펼치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길목 그럴싸한 저택 근처에 병사들을 야영시킵니다. 전쟁 중인데 허락을 받다니, 놀랍지요. 그 집에는 한 여인과 하녀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속은 그렇지 않지만 북군 대령과 장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잘 대접하지만 북군의 작전회의를 숨어 엿듣습니다. 불행히도 들키지요. ‘말로우’ 대령은 어쩔 수 없이 여인 ‘해나’와 하녀 ‘루키’를 붙잡아 동행시킵니다. 우리 같으면 여지없었겠지요. 어쩌면 그 집 자체를 점령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뭔 전쟁이 이렇게 신사적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대에 군의관 ‘켄들’ 소령이 동행하는데 병사를 이끄는 대령과 부상자를 치료하는 군의관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합니다.
아무튼 적진 가운데를 몰래 지나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전투도 벌어지고 사망자와 부상자도 생깁니다. 저택에서 평화롭게만 지내던 해나는 전혀 새로운 장면들을 맞닥뜨리며 견디기 힘든 경험들을 합니다. 더 이상 귀부인 행세를 할 처지가 아닙니다. 군의관을 도와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봅니다. 그러다가 옆을 지켜주던 루키가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는 것까지 당합니다. 다른 주검을 보다가 자기의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을 봅니다. 일어나는 감정이 전혀 다르지요. 말로우 대령이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합니다. 정말 이 전쟁 신사적입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아무리 남자와 여자 입장이라지만 우리들 전쟁 속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지요.
참으로 부러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군대에서는 상관의 말이라면 이의를 달기 어렵습니다. 소위 토를 단다고요? 당장 군화 발에 차일 것입니다. 장교들 사이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사병이 부대장에게 토를 달아요? 죽지 않으면 기적입니다. 군대 안에서도 자유로운 의견을 내놓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계급장 무시하고 맞장도 붙습니다. 거참! 계급은 업무상의 차이이고 개인의 인격은 평등하다는 의식이 분명합니다. 놀랍고도 부럽습니다. 우리 군대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이야기임에도 마치 동화를 보는 듯합니다. 영화 ‘기병대’(The Horse Soldiers)를 보았습니다. 1959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