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교 졸업식을 했습니다.
졸업식에 학교장이 회고사를 해야 한다고해서 글을 써 봤습니다.
늘상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고,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이 대개 나와는 사제간의 인연이 있기에
졸렬한 글이지만 옮겨 봅니다.
회고사(回顧辭)
(용하중학교 제27회 졸업생을 보내며)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학부모님께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의 졸업을 기념해서 학교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곳에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고, 본 것만큼 느낄 수 있고, 느낀 것만큼 행할 수 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배움의 단계가 더 남아 있는 여러분이 기억했으면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많이 알자”라는 의미를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기념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왜 많이 알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왜 우리 보고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시지?
‘운명, 숙명, 천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타고난 운명(運命)이 있다고 합니다. 팔자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겠습니다. 운명은 본인의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숙명(宿命)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숙명이라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하고, 성패(成敗)는 하늘에 맡기라는 천명(天命)도 있습니다.
교장이 60년 정도 세상을 살아 보니, 자기 운명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팔자였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제, 운명, 숙명, 천명이 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운명을 바꾸려면, 운명을 개척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여기, 탁자가 하나 있고, 그 탁자 위에 찻잔이 하나 있습니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크기의 탁자를 주었다고 합니다. 찻잔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 찻잔이 탁자 위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많이 넓게 탁자 위를 움직이는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책에서 읽거나 소문을 들어 많이 아는 사람은 “그래, 두타연이라고 경치가 좋은 곳이 있다는데 가 봐야지. 진로 박람회가 있다는데 내가 앞으로 어떤 진로를 택할 수 있는지 가 봐야지” 등등 많이 움직여 볼 것이고, 그런 사람은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소문도 못 들은 사람, 아는 게 없는 사람은 두타연에 가 볼 생각도 못하고, 막상 가 보려고 해도 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그저 자기 주위를 조금 움직여 보고는 더 이상 볼 것도 갈 곳도 없다고 생각하며 “그래, 이게 내 운명이야. 내 팔자야. 참 재미없네.” 할 것입니다. 주저앉아 신세타령만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운명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척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고3교실의 급훈 중에 “4당 5락”이 있었습니다. 4시간 자면 목표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급훈이랍니다. 또, “1시간을 더 투자하면 미래의 신랑감이 바뀐다”라는 급훈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급훈들이죠.
하지만 아무리 부지런한 찻잔이라도 탁자의 가장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부지런히 탁자의 구석구석 끝까지 샅샅이 살펴본 사람은 “아! 더 이상 갈 곳이 없구나! 이게 내 한계인가 보다!” 라고 느낄 것입니다. 탁자의 끝 가장자리를 넘어서면 떨어져 깨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죠. 이 탁자의 가장자리를 숙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찻잔을 만들고, 탁자를 만들고, 탁자의 가장자리를 만든 무엇이 있습니다. 이것이 천명입니다. 천명은 부지런한 사람이 탁자 구석구석을 다 살펴보고 “더 이상 볼 것이 없구나!”라고 했을 때 “그래? 그렇다면 이쪽 새 탁자에 가 봐. 새로운 즐거움이 있을 거야.”하며 다른 탁자로 옮겨 주는 존재라고 봐야 하겠죠.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고, 운명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고, 본인이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노력했다면 하늘이 도와서 새로운 운명을 열어 주기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는 것이 있어야, 아는 것이 많아야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겠죠. 두타연이 어디 있는지, 내가 택할 수 있는 진로가 무엇 무엇이 있는지, 뭔가 아는 것이 있어야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고, 그래서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여러분 나이를 지학(志學)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지학이란 배움에 뜻을 두는 때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많이 배워야 할 때입니다. 많이 알아야 할 때입니다. 큰 뜻을 품고, 그 포부를 이루기 위해 아무쪼록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그리하여 남을 이끌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의 앞날에 영광만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하며 회고사에 가름합니다.
2013. 2. 14.
龍下中學校長 金 泰 完
첫댓글 운명,숙명,천명의 뜻을 선생님 회고사를 통해 알았습니다. 좋은 말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오.
좋은글 항상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