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를 찾아 나서다. 손 진 담
5월 7일 새벽, 북으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왔다. 오늘 기대했던 남북회담개최에 갑자기 재를 뿌린 북측의 야만성을 애써 외면한 채, 우리들은 예정된 DMZ 일대 자연문화유산탐방을 떠났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는 1953년 7월 27일에 설정된 군사분계선(휴전선)으로 비롯되었으며, 위도상 38 도선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서쪽 경계선이 남으로 내려가고 동쪽 경계선이 북으로 올라가 있다. 민통선(CCL) 이북지역은 남방한계선(휴전선에서 남으로 2km)에서 15km 이내 민간인 통제지역을 말하며, 일반인들의 출입이 비교적 어려운 곳이다. 이번 과학탐방은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안보공원과 DMZ 박물관,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 양구군의 자연생태공원과 두타연이 선정되었다.
정각 7시, 대형버스 두 대가 국립중앙과학관 주차장을 벗어나자 드디어 차창에 빗물이 흘러 내렸다. 북대전 요금소를 진입하여 7개의 고속도로(호남, 경부, 중부, 영동, 중앙, 춘천-양양, 동해 고속도로)를 거쳐야 속초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빗줄기는 갈수록 더해만 갔다. 도중에 들린 내린천 휴게소(인제군)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갈 만하였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백두대간을 통과하는 수많은 터널설명을 읽어보니, 난공사였음을 직감하였다. 긴 터널들을 빠져나와 영동지방에 들어서니 비는 주춤하고 점심때가 되었다. 속초의 명물인 황태 더덕 정식으로 배를 든든히 하고,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향하였다.
민통지역 검문소에서 소정의 출입절차를 거쳐 휴전선이 바로 보이는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은 고성군 현내면 동해 바닷가 언덕배기에 위치하며, 6.25 전시관, DMZ 박물관과 더불어 통일안보교육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보이지만 비가 내려 아쉽기만 하였다. 5년 전 고교 동기생들과 칠순기념 여행을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겨울이라 춥긴 했으나 쾌청하여 시계(視界)가 좋았었다. 그때와 달리 남북교류가 잘 진행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오늘 5.17 회담이 무산되는 걸 보니 날씨처럼 전망이 우중충해 보인다. 육이오 전시관을 둘러보니 가슴만 착잡하였다.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던 세대라서인지 무섭고 치가 떨린다. 밖으로 나오니 미군에서 지원한 무스탕 전투기가 전시되어있고, 351고지 탈환전에 거둔 혁혁한 전과를 보니 눈물겨웠다. 이제는 핵전쟁 시대라 전략 전술이 달라진 상태이다. 과학기술이 평화보다는 사탄의 손에서 놀아난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박물관에서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바라보자니 일련의 희망이 보인다. DMZ을 Dream Mother's Zone의 약자로 표기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가끔은 무위자연설이 인위문화보다 월등히 가치가 있어 보인다.
동해안의 절경은 화진포(花津浦)에 있었다. 먼 옛날 육지로 쑥 들어온 물굽이(만, 灣)가 파도에 밀려온 모래톱에 막혀 석호(潟湖, lagoon)가 된 이곳은 조용한 호수와 파도치는 바다가 공존하고 있어 별장지로 유명하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불린 화진포는 둘레가 16km나 된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로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였다. 우리들은 먼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소박한 별장으로 안내되어 그분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애국정신을 가슴 깊이 아로새겼다. 오늘의 부강한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대통령의 별장을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예산지원이 미흡함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송구스러움이 앞섰다. 차원이 떨어지는 누구는 궁전 같은 기념관을 짓고서 엄청난 국고를 쓰고 있다는데.... 허기야 누군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도 했지만.
건너편 산언덕에는 화진포의 성(일명 김일성 별장)이라 불리는 규모가 큰 돌담 집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이 건물은 1938년 독일인 웨버에 의해 지어졌고, 외국인 선교사 셔우드 홀이 예배당으로 사용한 건물인데, 해방 후 전쟁 전에 김일성 가족이 사용한 하계휴양지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화진포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비가와도 바닷가의 경관은 아름다웠다. 저녁은 속초 대포항의 큼직한 식당 ‘만선횟집’에서 푸짐한 해산물과 소주를 걸치고 한화리조트 설악 소레노에서 뒤풀이를 하였다. 중국연길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은 우리와 비슷한 코스에서 여러 번 만났는데, 목소리들이 우리보다 매우 큰 편이었다. 무식하면 할수록 목소리만 크다고 했던가.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빗줄기가 컸지만 일정대로 움직였다. 양구로 가서 자연생태공원을 들렀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자연공원에는 양구 생태식물원과 야생동물 생태관, 생태 탐방로가 어우러져 있었다. 식생이 잘 보존된 대암산 해발 450m의 자락에 조성되어 자연생태의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조를 인솔하는 숲 해설가는 해박한 지식으로 식물 분재원과 전시관을 돌면서 이곳의 재미있는 자연현상을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좋은 자연환경에 돈도 벌 수 있으니 특혜를 받은 사람 같았다. 나도 이런 걸 부러워해서 8년 전에 숲 해설가 자격증을 산림청으로부터 어렵게 취득하였는데, 이래저래 실전에 써먹지 못하고 휴면중이다. 공원탐방이 끝날 즈음에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끝내고, 숲 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가 된 김 사장은 10년 전부터 경기도와 강원도 일원의 산림공원에서 해설을 해왔는데, 올해는 이곳 양구 자연생태공원에서 노후를 즐기면서 일한다고 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가 전해 준 자작수필집(김진록 지음, 나무가 전하는 말)을 차안에서 읽어보았다.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숲 해설가이자 수필가인 친구에게 찬사를 보내며, 우리는 민통 지역인 방산면 두타연으로 이동하였다.
두타연 초입 이목정에서 실시하는 검문소의 출입절차는 보다 까다로웠다. ‘적에게 전율과 공포를 주는 00사단’이란 대형 간판 아래에는 여기서부터 민간인 통제구역임을 알리고 있었다. 10명당 한사람씩 위치 추적 장치가 지급되고, 인원 파악하느라 젊은 장병들이 분주하였다. 비포장도로를 서행하여 한참 후에야 두타연 주차장에 도착하니 70대 전문 해설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단장의 능선이 바라보이는 양구 전투 위령비 앞에서 경건히 묵념을 올리고, 양구지역 9개 전투(백석산 전투를 비롯하여 펀치볼, 피의 능선, 도솔산, 단장의 능선 전투 등)상황을 정리한 전시물 앞에서 6.25 전쟁 시절을 회상하였다. 어린 시절 백마부대 마크를 달고 휴가 나와 무용담을 들려주시던 큰형님(1931년생)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지리산 공비토벌 경찰에 동원되어 피아골 전투 등 수 없는 사선을 넘어온 형님이 또다시 이곳 포병부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였다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전쟁 없는 평화의 천국에서 옛 전우들을 만나고 계시겠지.
투타연(頭陀淵)은 우리나라 사대 관음 성지로, 설봉스님((1678-1738)과 보덕굴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지난 50여 년 간 통제되었다가 2004년부터 개방된 명소로, 2014년에는 ‘강원평화지역 국가 지질공원’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천 년 전에 있었다는 두타사지 옆에 위치한 두타연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의 지류, 사태천이 이곳에서 감입곡류(嵌入曲流)하는 과정에서 수로가 바뀌어 생겨난 폭포 연못이다. 폭포수가 자갈 모래를 회전시켜 암반을 마모할 때 생겨난 돌개구멍(pot hole), 하식절벽, 하식동굴(보덕굴)등 마식(磨蝕) 미지형(微地形)과 곡류절단으로 물길이 바뀐 구하도(舊河道)를 볼 수 있었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이용하여 한반도 형상의 폭포를 배경으로 모두 사진 촬영에 바빴다. 홍수로 커진 폭포는 경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했다는 두타연은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로 생명의 보고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보덕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관음보살이 무지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제는 생명과 평화의 땅, 두타연 숲길을 돌아 나오는데 화강석 시비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전문을 읽어보니 이번 여행기에 더 보탤 말이 없어졌다.
두타연 숲길에서 양성우
오늘 하루 모처럼 세상의 소리에 두 귀를 막고
두타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숲길을 거닐다.
긴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유리알 같고
사람의 손길을 안 탄 산꽃잎들이 싱그럽다.
누가 새들만 날아서 남과 북을 오간다고 말하는가
금강산 가는 옛 길목 하야교 삼거리에서는
윗녘 물줄기와 아랫녘 물줄기가 소리치며 흘러와
하나로 합쳐지느니
혹시나하여 조심히 닫는 발자국소리에도
어디에선가 흙무더기 솟구치며 터져오를 것만 같은
검푸른 산빛 속에 틈틈이 묻힌 지뢰밭,
그 속에서 이끼 묻은 쪽동백 고로쇠 물박달
돌배나무들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는 듯이
머루 다래 칡넝쿨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니
이미 시간을 뛰어넘어 산비처럼 숲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는 남모를 슬픔이여
여기 와서 내 안에 이는 새삼스런 바램이 있다면,
피어린 저 산등성이들 깎아지른 벼랑 위에
겹으로 두른 철조망을 다 거두어서 구부려 만든
붉고 노란 큰 꽃송이들을
살아서 이 눈으로 역력히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