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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 강릉 세미나
일시:2016년 10월 24일 월요일~25일 화요일
장소:바우길, 한국여성수련원 세미나,송정 강문커피거리,허난설헌 생가, 경포호, 가시연습지,선교장 등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 횡성 휴게소
오늘은 강원도 강릉에서 1박 2일로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주최로 세미나와 출판기념회가 있는 ㅌ 첫날이다. 우리는 문인 부부다. 나는 시인이고, 남편은 수필가다. 항상 수필문학에서는 행사 때마다 나도 함께 초청하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번에도 초청받아 남편과 함께 참여했다. 그 동안 호주. 뉴질랜드 해외동포 세미나, 북경 세미나 등 국내외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함께 동행해왔다. 버스가 압구정역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주행할 때 문인들의 소개 시간에도 진행하시는 분은 나를 수필문학 같은 식구라고 소개하여 고마웠다. 그런저런 연유로 우리 부부는 이번 행사에 조식으로 떡과 음료를 회원님들께 제공해주었다. 강석호 회장님을 비롯한 사무국 직원 분들, 그리고 회원님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우리 부부에게 해주었다. 횡성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여 휴식시간을 갖고 떠났다. 뜻깊고 보람된 문학나들이다.
* 강릉 바우길
강릉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간 곳이다. 정동진 해변을 지나 높은 산정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버스를 주차했다. 산정에는 정동진 해변에서 올려다보았던 크루즈 선박 모양의 건물이 오롯하게 서 있다. 썬크루즈 호텔이다. 이곳에서 산을 하산하여 바닷가 바우길로 갔다. 긴 나무판 계단을 걸어 한참을 내려가서야 해변의 강릉 바우길을 만났다. 강원도 강릉 지역 중심의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다.
강릉 바우길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 등 동해를 잇는 총연장 350㎞의 트레킹 코스다. 강릉 바우길 16개 구간, 대관령 바우길 2개 구간 대관령 국민의 숲길, 대관령 눈꽃 마을길,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로 이루어져 있다.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리키며, 따라서 바우길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트레킹 코스를 친근하게 표현한 말이다. 또한 바빌로니아 신화에 손으로 한번 쓰다듬는 것만으로 중병을 낫게 하는 바우(Bau)라는 여신의 이름을 따서 사람들 모두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바우길로 표현하였다. 2007~2008년 제주도의 올레길 성공 이후 강릉에서도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강원도를 상징하는 친근한 용어인 바우라는 이름을 붙여 강릉 바우길을 구상하게 되었다. 2009년 봄 바우길 개척대가 만들어졌으며, 강릉 바우길의 한 축은 강릉이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이, 또 다른 한 축은 바우길 개척대장인 산악인 이기호가 담당하였다. 2009년 9월까지 바우길 개척대는 대관령 일대와 경포호, 해안 지역에 대한 현지답사를 통해 먼저 11개 구간의 바우길을 개척하였다. 전체 바우길 중에서 80% 정도가 산림청이나 강릉시가 이미 정비해 놓은 등산로나 산책길을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추진됨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트래킹 코스가 조성되었다. 2009년 11월 바우길 시범 걷기 대회가 열렸다. 2010년 6월에는 강릉 바우길이 문화 관광부 ‘바우길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바우길의 탐사와 법인 설립 준비를 마친 후 2010년 8월 사단 법인으로 강릉 바우길을 설립하였다. 이후 강릉 바우길은 11개 구간에서 16개 구간으로 늘어났고 대관령 바우길,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까지 조성되었다.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은 금년 2016년 10월 중순이다. 오늘 우리는 오픈한 지 1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바우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긴 구간 중에서 썬크루즈 호텔 건물과 심곡항 사이의 약 3Km정도의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바람이 매우 거세어서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붙잡고 다녔다. 한쪽으로는 망망한 바다, 한쪽으로는 우람한 산이 비경을 이룬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을 나무판 길과 쇠판 계단으로 꺾어지고, 휘어지며 길게 이어져 있다. 발 아래에서는 파도가 큰 함성으로 몰아닥쳤다가 소멸되어 되돌아가곤 한다. 투구바위와 육발호랑이 전설 바위도 만났다. 꼭 호랑이 같은 모양의 바위가 바닷가에 있다. 부채바위 전설 바위도 만났다. 꼭 부채 모양의 바위다. 산모롱이 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심곡항이 보인다. 서둘러 내려가서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에 승차하였다. 저녁 무렵의 바다는 매우 육중한 자태로 이방인을 포용하고, 이제 숙연한 자태로 이별을 고한다. 아름답고, 낭만 가득한 강릉 바우길을 떠나 세미나 장소로 이동했다.
* 수필문학 강릉 세미나
수필문학 세미나와 출판기념회는 숙소이기도 한 강릉시 옥계면 금진솔밭길에 있는 한국여성수련원 강당에서 오후 4시 30분부터 개최한다. 바우길에서 조금 지체되어 서둘러 행사장으로 갔다. 강석호 회장님의 인사말을 듣고 내빈 소개를 했다. 각 지역별로 함께 앞으로 나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남편 곁에서 시인이며, 수필문학 회원은 아니지만 초청해 주셔서 왔노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자주 행사에 참여할 것이라는 인사도 덧붙였다. 특강으로 강석호 회장님의 '테마수필 주제선정의 필요성'과 오경자 교수님의'나의 테마수필 작법'을 들었다. 그리고 세 명의 수필가가 자신의 수필을 낭독했다. 서울지구와 강릉지구의 많은 문인들이 참석하여 교류하며 문학을 공부하는 흐뭇한 시간이었다.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 한국여성수련원
어제 이곳에 입소하여 세미나를 개최하고, 하루 밤을 유숙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여성 전용 교육 수련원이다. 아주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넓은 자락의 소나무 군락 단지 안에 있어 주변경치도 참 좋다. 방에서도, 정원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아침에 비가 내려서 뷔페조식을 마치고 건물 밖은 많이 산책하지 못하고 건물 주변만 돌아보았다.
한국 여성 수련원은 여성의 리더십과 성 평등 의식 함양 및 여성 중심의 열린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설립되었다. 2008년 12월 한국 여성 수련원 법인 설립 허가 및 한국 여성 수련원 건축 공사 준공을 마쳤으며, 다음해인 2009년 1월에 법인 설립 등기를 마쳤다. 초대 원장으로는 최정남이 취임하였다. 같은 해 4월에 한국 양성 평등 교육 진흥원과 MOU를 체결하였으며, 6월에 개원식을 가지고, 8월에 한국 여성 단체 협의회와 MOU를 체결하였다. 이어 10월~12월에 각각 강원도 인재 개발원, 한국 예술 총연합회 강원도 연합회, 한국 문화 예술 교육 진흥원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2010년에는 월정사 문수 청년회, 코레일 관광 개발, 이화 리더쉽 개발원, 한국 여성 인권 진흥원, 충북 대학교 인력 개발원, 가톨릭 대학교 수치료 사업단, 국립 평창 청소년 수련원, 한국 행정 DB 센터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2011년 6월에 최두영 이사장이 취임하였으며, 8월에 2대 김영녀 원장이 취임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상지 대학교 여대생 커리어 개발 센터, 한국 여성 재단, 국제 여성 가족 교류 재단 등과 MOU를 체결하였다. 2012년 5월에 일산 명지 병원과 MOU를 체결하였고, 9월에 지방 행정 연수원과 10월에 강원 도박 중독 예방 치유 센터와 각각 MOU를 체결하였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홈페이지 개인 정보 보호 우수 사이트로 선정[ePRIVACY 마크 인증]되기도 하였다. 2013년 4월에 김정삼 행정부지사[이사장]가 취임하였다. 여성 교육 문화 공간으로서 성 평등 의식 함양 및 영향력 강화 교육을 비롯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성별 영향 분석 평가 관련 교육, 역량 개발 및 파트너십 교육, 리더십 및 역량 강화 교육,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세대 리더 양성 교육 등이 있다.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 만들기를 위한 가족 역량 강화 캠프나 건강 부부 캠프가 있고 지역 주민이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문화 안내사 과정 등이 있다. 2014년 현재 한국 여성 수련원의 조직은 원장 1명, 경영 기획부 7명, 교육 문화 사업부 6명 그 외 이사회, 감사 그리고 자문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시설은 부지 면적 4만 3000㎡, 건물 면적 1만 126㎡[연수동 3,300㎡, 숙박동 6,826㎡]의 5층 건물이다. 1층에는 다목적실, 식당,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대강당, 헬스장, 사우나, 강의실, 휴게실, 유아 놀이방이 있으며, 3층에는 대강당, 강의실, 휴게실, 숙박 시설, 4층에는 휴게실과 숙박 시설, 5층에는 휴게실, 숙박 시설, 스카이라운지 및 매점이 있으며, 야외에 산책로와 소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건물구조도 수려하고 내부 시설도 현대식으로 잘 갖춰져 있다. 휴식공간에는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담소도 나무고, 벽면에는 그림도 있어 감상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오전 9시경 떠났다.
* 옥계해변 금진솔밭길
한국여성수련원을 떠나 옥계 해변의 금진솔밭길을 걸었다. 긴 소나무 군락이 바다와 만나며 비경을 이룬다. 비가 약간 내리지만 촉촉한 솔숲길을 걷는 것은 아름다운 낭만이다. 넓은 옥계 해변을 따라 주변에 수령 30~40년생 이상된 송림지역이다. 인근에는 석병산이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숲에 한국여성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문운들과 정담으로 나누며 긴 솔숲길을 걸어갔다.
* 옥계 강문 해수욕장
금진솔밭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바다가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긴 백사장이 우리들의 걸음의 이끈다. 이곳은 옥계의 강문해수욕장이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해변이다. 경포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경계로 북쪽은 경포 해변, 남쪽은 강문 해변으로 나뉜다. 여름에는 경포여름해변축제도 열린다. 근처의 강문항에서 새벽에 싱싱한 횟감을 싸게 살 수 있고, 주변에 횟집 단지도 형성되어 있다. 낚시꾼들은 항구에서 황어, 노래미 등을 낚기도 한다. 경포호를 끼고 있는 초당동에는 바닷물로 만드는 유명한 초당두부가 있다. 이런저런 매력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갈매기떼가 백사장에 앉아 외객을 맞이 한다. 사진 액자틀도 백사장에 마련해두어 그곳에 들어가 기념사진도 찍었다. 긴 백사장을 거닐며 강원도의 깊은 바다와 마주하는 순간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 강문 솟대 다리
강문 솟대 다리는 강문에서 경포로 가는 인도교다. 아치형의 현대식 수려한 모양의 다리에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막도 설치했다. 우리는 강문에서 그 솟대 다리를 건너서 경포로 넘어 갔다. 강문 바다는 경포호에서 흘러드는 강물과 만나고 있다. 그 사이에 솟대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된 다리다. 강문해변과 경포해변이 연결 되었다. 그래서 강문과 경포를 왕래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다리다. 건축구조도 상당히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강릉의 바다 풍경은 더욱 비경이다.
* 강문 커피
강문 솟대 다리를 건너 와서 강문 커피 거리로 왔다. 어느 커피점에 들러 커피 한 잔씩 시켰다. 커피 맛이 정말 순수하고, 두뇌를 정화시킨다. 조금 마시고는 바다의 낭만을 섞어 마시자고, 커피 잔을 밖으로 들고 나왔다. 넓은 강릉의 바다와 마주하여 마시는 커피는, 평소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에게도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허난설헌 생가
강릉 출신인 허난설헌 허초희(1563~1589) 시인의 생가를 탐방했다. 여자 해설사를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곳곳을 둘러 보았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때의 여류 시인이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다. 어려서부터 시로 천재성을 드러냈던 난설헌은 8살 때 자신을 신선 세계의 주인공으로 묘사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시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결혼을 한 난설헌은 시를 쓰는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시어머니와 무능한 남편 때문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거기다 아이들까지 모두 잃고, 친정은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 몰락했다. 결국 허난설헌은 2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을 떠난 뒤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재평가된 허난설헌은 뛰어난 천재 시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중국에서도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출간되어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애송되었다고 한다. '죽지사(竹枝詞)'라는 세 번 째 시를 돌에 새겨서 이곳 강릉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 터 입구에 세웠다. 한시 죽지사는 장정룡이 번역하였고, 조각은 최종림 작가의 작품이다. 허난설헌의 시 죽지사에는 강릉이라는 지명이 들어있는데, 난설헌이 어려서 이곳에서 생활하였으므로 이 시를 택하였다. 허난설헌 시비는 허씨 오문장가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의 문학산책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1998년 12월 12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강릉지부에서 세웠다.
허난설헌 생가 터는 상당히 넓다. 그가 생시에 살았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루에 앉아서 설명을 들으며 그 옛날 여류 시인의 시향에 젖어 보았다. 설명을 다 듣고는 수필문학 단체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남편이 몸 담고 있는 문단에 초청되어 온 사람인데 수필문학 식구들과 하나 되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고맘고, 감사하였다. 정원에는 고운 꽃과 독특하게 몸통을 비틀어 자란 나무 등이 있어 아름답다. 생가에서 나와 드넓은 바깥 풍경을 조망하며 걸었다. 그의 시 '죽지사' 한자 원문과 함께 한글로 번역하여 새긴 시비가 있다.
죽지사 3 / 난설헌 허초희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문 앞의 강물에 비단 옷을 빨았어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
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
그날의 정경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다. 아들딸을 여의고 쓴 시비도 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픔이 배인 시다. 허난설헌의 동상이 생가터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손에 든 책이 더욱 문학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맞은 편에는 허난설헌 기념관도 있다. 초희 전통차 체험관도 있다. 가을이 촉촉하게 배이는 드넓은 뜨락은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잘 다듬어진 산책길도 아름답고, 나무와 꽃들이 비경을 이룬다. 강릉의 대표하는 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생가 곁의 토담 순두부집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생가 안을 거쳐 다음 일정에 따라 이동했다.
* 소나무 숲길
허난설헌 생가 주변에는 온통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었다. 허난설헌 솔숲은 허난설헌 생가터 주위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군락이다. 허난설헌은 27세에 요절한 조선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다. 허난설헌이 7살 때까지 동생 허균과 뛰어놀았던 깨끗한 앞마당이 너른 소나무숲에 바로 맞닿아 있다. 사시사철 시원하고 향긋한 솔바람이 불어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허난설헌 솔숲은 2010년 민간환경단체인 생명의 숲과 유한킴벌리, 산림청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과 '아름다운 누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소나무 숲 인근에는 허난설헌 생가 외에도 기념관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서 허난설헌 문화제와 허균 문화제를 개최하여 두 문인을 기리고 있다. 강릉 곳곳에서 만나는 소나무 숲길이 매우 향기롭고 걸음을 쾌적하게 한다.
* 강릉 경포호
다음은 경포호로 갔다. 드넓은 바다 같은 호수가 전개된다. 오늘 강릉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가슴에, 두 눈에, 머리 속에 모두 담아가는 듯하다. 경호(鏡湖)라고도 한다. 시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6 km 지점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유천 등의 작은 하천들이 흘러든다. 본래 주위가 12 km에 달하는 큰 호수였다고 하나, 현재는 흘러드는 토사의 퇴적으로 주위가 4 km로 축소되고, 수심도 1∼2 m 정도로 얕아졌다. 호반 서쪽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경포대는 예로부터 경포호를 배경으로 한 관동8경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경포호는 호수 주위의 오래 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유명하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 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호변을 따라 산책로를 잘 조성해 놓았다. 도로변에는 조각 작품들도 세워두어 조경이 더욱 아름답다. 허난설헌 생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곁에는 허난설헌 공원도 있다. 바다 같은 호수다. 건너편으로는 도시가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호변 길을 경포호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과 함께 소녀처럼 걸었다. 고운 돌에 앉아 사진도 찍고, 조각상과 하나 되어 사진도 찍고, 하루 온종일 돌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경포호다.
* 경포 가시연 습지
경포호 곁에 연결된 가시연 습지다. 나무판 길을 따라 연꽃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10월이라서 연꽃은 사그라졌지만 드넓은 가시연 습지가 눈과 가슴을 정화시킨다. 경포 가시연 습지는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습지공원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연꽃과 신비의 꽃 가시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열매와 잎에 뾰족한 가시가 나 있어 가시연이라고 명명되었다. 가시연은 전주, 광주, 대구, 창녕, 담양, 강릉 근처 연못과 경기도의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도 자란다. [특히 강릉시의 경포 가시연 습지에서 가장 많이 자생한다. 과거 강릉의 풍호에서는 많은 가시연 종자가 채취되었으며, 강릉 향교 때는 대제례에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풍부했지만 현재는 해일과 수질 오염 때문에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실정이다. 강릉시에서는 가시연의 서식 환경을 보호키 위해 천이 억제 작업을 실시했다. 경포 가시연 습지 옆으로는 경포 호수를 낀 한적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산책로를 걸으며 다양한 야생화와 조각공원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사계절 내내 경포 가시연 습지에서 조류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한참을 걸어서 연꽃 습지를 나오니 '가시 연꽃 발원지라 입구'는 안내문구와 함께 아치형의 문이 반긴다. 오늘 신기한 가시 연꽃에 대하여 배웠다. 가시연 습지 앞에서 단체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떠났다
* 경포 조각공원 삼일운동기념탑
경포호 주변에는 여러 기념물들이 많다. 박물관도 있고, 조각공원도 있고 또한 삼일운동 기념탑도 있다. 위안부 소녀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있다. 중앙의 기념탑에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을 외치는 동상들이 서 있다. 주변으로는 그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사람들의 흉상과 설명이 새겨져 있다.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철학으로 국가를 잘 이끌어 가야함을 새삼 다짐했다.
* 강릉 경포대
경포호변에 있는 정자 경포대에 갔다. 그러니까 경포호 산책로를 따라 거의 반 바퀴 이상을 돌아 이곳에 다다랐다. 울창한 나무들이 가을의 고운 색상을 머금고 외객을 반긴다. 긴 계단을 걸어서 정자에 올라가니 경포호와 시가지가 아름답게 전개된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다. 강릉 오죽헌에 있던 율곡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1326년에 관동존무사 박숙정이 현 방해정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를 중심으로 8경이 있는데, 녹두일출, 죽도명월, 강문어화, 초당취연, 홍장야우, 증봉낙조, 환선취적, 한사모종 등을 말한다. 소나무 사이로 뜨는 경포호의 비경을 사진에 담아 내려왔다.
*강릉 선교장
경포호를 산책하고 경포대에 올라 조망하고 선교장에 왔다. 외부인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강릉에서는 소중한 역사유산이다. 입장하여 들어가니 웅장한 한옥과 초가지붕의 장자가 반긴다. 어느 한옥마을 같은 인상이다. 선교장은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품위있는 사대부 가옥이다. 강릉시에 경포쪽으로 4km 쯤 떨어진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곳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타고 건넌다'고 하여 이 동네를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는데, 선교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 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있다. 총건평 318평으로, 긴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옛날의 생활용품 등을 둘러보았다.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도 하고 경포호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고도 하여 이름 붙은 선교장(船橋莊)은 조선시대 사대부 이내번의 집이다.
선교장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입장하여 가장 먼저 본 건물이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복원하였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행랑채가 있다. 또한 건물의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터가 있다. 경부 양동한옥마을 같은 분위기다. 꽤 넓은 터에 정원과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잔디광장도 있고, 연못도 있다. 곳곳에서 옛 정취를 느꼈다.
* 강릉 오죽헌
이곳은 두 아들 학교 다닐 때 왔었다. 그때는 허름한 유적지였는데 오늘 다시 와 보니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놓았다. 입구의 출입문에서부터 내부 곳곳이 잘 정리되고 잘 복원하여 보존하고 있다. 강릉은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고장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율곡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다. 조선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던 정여립을 천거했고 위대한 인본주의자였던 율곡 이이는 강릉시 죽헌동에 자리한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그런 연유로 율곡의 어릴 적 이름을 현룡(玄龍)이라 하였으며, 산실은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여 고뇌하던 이이는 19세 되던 해 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그 무렵 이이가 친지들에게 보낸 글에서 그의 마음의 일단을 읽어볼 수 있다. 이이는 49세가 되던 1584년 정월 열엿새 새벽에 서울 대사동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시신을 수습했던 일가친척들의 말에 따르면, 남긴 재산이 없어 수의도 친구의 것을 빌려 썼다. 이이의 부고를 듣고 애통하여 우는 선조의 울음소리가 대궐 밖에까지 들렸다고 하며, '연려실기술'에는 발인하는 날 횃불을 들고 뒤따르는 사람이 수십 리에 뻗쳐 거리를 메우고 동리마다 슬피 우는 소리가 들판을 진동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훗날 제자 이윤우는 그의 온화한 성품을 봄바람에 비유하면서 “어리석고 철없는 자들이라도 한번 선생의 안색을 보면 진심으로 흡족해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강릉시 율곡로에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일곱 살 무렵부터 세종 때의 이름난 화가인 안견의 그림을 따라 그릴 만큼 그림에 뛰어났으며, 열아홉 살에 이원수와 혼인하였다. 시집의 선조들이 살았던 파주와 평창군 봉평면 그리고 강릉을 오가며 살았는데, 서른셋 나이에 오죽헌에서 율곡을 낳았다. 시와 문장 그리고 그림에 뛰어났던 신사임당은 마흔여덟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인 율곡 이이 그리고 남편 이원수와 더불어 경기도 파주시 자운산 기슭에 묻혔다. 그녀가 남긴 여러 편의 시 가운데 강릉에 있는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 '어머님 그리워' 가 있다. 율곡 이이의 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다. 자경문으로 을어가서 율곡의 외가댁 사랑채 마루에도 앉아보았다. 안채와 바깥채도 보고 률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에도 가 보았다. 내일이(2016년 10월 26일) 율곡 이이의 제사날이라고 하여 큰 행사 준비로 사람들이 분주하다. 기녑관 앞 넓은 마당에도 의자 많이 놓여있다. 신사인당과 율곡은 우리나라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자가 돈에 얼굴이 들어가 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5만원 짜리 지폐에, 아들 율곡 이이는 5천원 짜리 지폐에, 그리고 5천원 짜리 지폐에는 또한 강릉 오죽헌 사진이 들어가 있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와 아들을 오늘 만났다.
* 평창동계올림픽(2018년) 경기장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현지 시각으로 2011년 7월 6일 17시 18분(한국 시각 7월 7일 0시 18분) 열린 123차 IOC 총회에서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을 개최지로 결정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나가노 동계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3번째 개최이고,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이며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의 두 번째 올림픽이다. 평창에서 개회식 및 폐회식과 대부분의 설상 경기가 개최되며, 강릉에서는 빙상종목 전 경기가 개최될 예정이다. 정선에서는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개최될 예정이다. 오늘 우리 일행은 상경하는 길목에서 이곳 강릉 빙상 경기장 공사 현장을 잠시 둘러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경기장이지만 그 윤곽은 잡혀있다. 그 위용이 대단한 모양새다. 바로 앞에는 강릉 종합경기장도 있어서 주변 경관이 올림픽 경기장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저 빙상 경기장에서 선전하여 좋은 성적 얻기를 기원하며 떠나왔다.
* 귀가 길 대관령 운무
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도중에 대관령 운무를 맞았다. 낮은 도로에서 산을 바라보았을 때 구름무리가 아주 웅장하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아름답다 하였는데, 우리를 태운 버스가 그 구름 속을 뚫고 가야할 줄이야. 참 아득한 길이다. 긴긴 구름 터널을 지나간다. 산정 대관령 운무다. 속도가 완전 서행이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두려움까지 서린다. 그런 와중에 긴 터널을 지났다. 아, 이게 어이된 일일까. 터널을 지나자 언제 운무 가득한 산정이었냐는 듯, 화창한 하늘이다. 돌아보니 운무서린 산길은 아득한 곳에 있다. 대관령은 종종 이런 운무가 서린단고 한다. 오늘 참으로 신기한 대관령 운무 체험을 했다. 이것으로 수필문학 강릉 세미나는 마무리 되고 늦은 저녁 귀가하였다. 1박 2일 동안 강릉에서 문학공부도 많이 하고, 문인들도 많이 만나 알게 되고, 강릉의 자연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뜻깊은 문학 나들이다.